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64화 (65/270)

서몽

# 남을 속이는 자는 두려워하면 산다.

나스닥 선물을 매각한 금액은 비용과 수수료를 제외하고 일억육천만 달러였다.

이주가 안되는 시간에 육천만 달러를 번 셈이었다. 하지만 엄청난 금액에도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조금만 신경을 썼더라면 벌 수 있었던 육백만 달러를 날린 셈이었다.

이런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일본 총재 선거 결과가 발표되고 난 후에 팀원 회의를 소집했다.

팀원 회의라고는 참석자는 나를 포함해서 4명이었다.

"조금 전 일본 총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1차 선거인단 투표에서 고이즈미 의원이 87%의 득표를 얻었다고 하더군요. 2차로 의원들의 투표결과도 예상을 깨고 고이즈미 의원이 더 많은 표를 얻었고요."

선거인단의 투표결과는 충격이었다.

일본에 있을 때도 여론의 추세가 고이즈미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는 생각은 했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87%라면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였다.

이게 내가 관여한 하시모토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을 낸 결과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이 정도라면 굳이 CIA가 관여하지 않았더라도 고이즈미가 압승을 거뒀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가지 않은 길이었다.

이미 CIA 일본지부는 총재 선거에 상당한 공을 들였고 그 사실을 고이즈미도 알고 있었다.

현재로서는 고이즈미의 당선에 일등공신은 CIA라고 할 수 있었다.

단테 패트릭은 아마 지금쯤 춤이라도 추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일은 단테 패트릭의 기분이 아니었다.

이번 선거 결과가 가져올 영향이 내게 더 중요했다.

"앞으로 일본의 주가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팀원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언제나처럼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리안이었다.

"오르지 않겠습니까? 최근 일본 주가가 낮았던 이유는 경제 상황이 나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모리 총리의 지지율이 낮은 정도가 아니라 한 자릿수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정치가 불안하다 보니 그게 그대로 주가에 영향을 준 것이죠. 대중적인 인기가 높은 고이즈미가 당선된 이상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분들은요?"

나는 다른 두 사람, 브레이크와 카이 황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브레이크가 말했다.

"그래요?"

내가 다시 물었다.

나도 리안과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에 브레이크의 이야기는 좀 의외였기 때문이었다.

"당장 한 주 정도는 오르겠지만 그런 상황이 오래가기는 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낙관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일본 경제 상황 자체가 몹시 나쁩니다."

맞는 이야기였다.

일본 경제의 불황은 어제오늘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멀게는 프라자 회담이 시작이었다.

미국의 요구에 굴복해서 환율을 조정한 것이 지금의 결과를 가져온 것이었다.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해결하기는 어려웠다.

"단기적으로는 괜찮지만, 장기적인 상승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정치적 안정이라는 것도 일단 7월 말에 있는 참의원 선거에서 현 집권당이 승리를 거둔 다음에야 논의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브레이크가 말했다.

브레이크의 말을 들으니 그의 말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난 열흘 동안 일본에서 지내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국가 전체가 전반적으로 활력이 많이 떨어져 생각이었다.

특히 청년들이 이른바 프리터라는 단기적인 일자리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았다.

젊은 층이 미래에 대한 꿈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의미였다.

국민의 심리에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은 주가만 아니었다.

경제도 국가나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영향을 받는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고이즈미 신임 총리도 아닌데 일본 경제의 장기 전망을 걱정할 필요는 없죠."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팀원들을 다시 한번 둘러보고는 브레이크를 보며 덧붙였다.

"어쨌든 단기간에는 일본의 주가가 오른다는 점에서는 리안 씨와 같은 생각이라는 말이죠?"

브레이크의 얼굴이 굳어졌다.

내가 리안의 편을 든다고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단기간으로는 그렇습니다."

브레이크가 마지못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부터 일본주가 상승에 투자하겠습니다. 일단 AAM의 투자금 중에서 한국에 투자했던 천삼백만 달러와 W&R 투자금 중에서 나스닥 선물을 판 금액 중에서 이천만 불을 투자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투자는 우선 리안 씨께서 맡아주세요."

일본에 대한 투자를 리안에게 맡겼다.

투자 금액은 두 회사를 합쳐서 삼천삼백만 달러였다.

"이번에도 닛케이에 포함된 대기업 위주로 투자합니까?"

리안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이번에는 특정 기업이나 산업만 영향을 받는 호재가 아니니···. 그냥 일본 종합지수인 TOPIX 선물에 투자하죠. 레버리지는 100% 정도만 사용하고요."

"TOPIX 선물이라···. 알겠습니다."

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번에는 카이 황에게 고개를 돌렸다.

"W&R의 남은 투자금 중에서 천사백만 달러 정도를 싱가포르에 추가 투자할 생각입니다. 그걸 카이 황 씨께서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투자금은 일본과 같은 이천만 달러로 늘리는 건가요?"

카이 황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위험 분산 차원에서 앞으로는 미국 선물에 투자하는 금액은 일억 달러로 한정할 생각입니다. 일억 달러를 넘어가는 나머지 금액은 셋으로 나눠서 분산 투자할 생각입니다."

선물투자가 수익성은 좋지만 그만큼 손해가 발생할 위험도 컸다.

처음과는 달리 레버리지를 많이 줄였지만, 여전히 다른 투자에 비해서 위험이 컸다.

나는 마지막으로 불퉁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브레이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브레이크 씨는 그동안 조사 많이 하셨습니까?"

"저 말입니까?"

브레이크가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마도 내가 자신에게 질문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여기 브레이크라는 사람이 따로 더 있습니까?"

"아니 좀 갑작스러워서···."

브레이크는 여전히 당황한 듯 말을 흐렸다.

"제가 들으니 그동안 매일 열심히 조사하셨다면서요? 그럼 투자하면 괜찮을 것 같은 국가나 기업이 있을 것 아닙니까?"

내가 다시 물었다.

"있기는 합니다만···."

브레이크가 말을 여전히 흐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이야기해 보세요. 제가 듣고 괜찮다는 생각이 들면 투자금을 맡길 생각입니다."

"···. 그게 사실입니까?"

브레이크가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당연한 말 아닙니까? 그냥 러시아에 대한 장기 투자만 맡길 생각이면 뭐하러 브레이크 씨를 스카우트 해왔겠습니까? 그냥 러시아에 투자하고 묻어두기만 하면 되는데요···."

"아···."

"지난번 브레이크 씨의 제안을 거절한 일로 기분이 상하셨을 수도 있다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일에는 절차가 필요한 법이죠. 그런 면에서 브레이크 씨와의 관계는 오늘부터 한 발 더 나갈 때인 것 같습니다. 투자하고 싶은 곳이 있습니까?"

내가 브레이크를 보며 물었다.

브레이크를 향해 한 말은 반쯤은 사실이었지만 반쯤은 사실이 아니었다.

이런저런 일로 바빠서 브레이크와 내가 근무한 시간 자체가 별로 없었다.

나와 브레이크 사이에는 인간적 신뢰도 없고 능력도 내가 제대로 보지 못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브레이크에게 투자를 맡기는 것은 나중에 할 생각이었다.

나는 언젠가부터 다른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한다.

아무래도 나부터가 항상 남을 속이는 스파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 생각에 스파이와 사기꾼의 차이는 국가에 소속되었느냐 아니냐의 차이뿐이었다.

내가 리안이나 카이 황을 믿는 이유는 그들이 나를 배신해서 얻을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런 계획을 바꾼 것은 카이 황의 충고 때문이었다.

카이 황은 내가 브레이크의 제안을 거절한 직후에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이대로라면 브레이크가 팀을 떠날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되면 브레이크를 추천한 리안의 체면을 깎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그렇지 않아도 점점 바빠지는 상황이었다.

사람을 더 뽑아도 모자란 상황에서는 팀원이 떠나는 것은 곤란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것이 자금 일부를 브레이크에게 맡기는 것이었다.

브레이크는 팀의 주요 투자를 같이하기에는 나와의 신뢰가 모자랐다. 하지만 능력 자체는 리안이 보장한 사람이었다.

브레이크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지난번 회의에서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러시아는 단기는 물론이고 장기적으로도 전망이 괜찮습니다. 투자할 만한 국가죠."

러시아는 나름 좋은 투자처였다.

무엇보다 러시아에 대한 투자는 자회사를 통해서 투자한 홍콩 부호들에게 보여주기도 좋았다.

"다른 투자처는요? 우리 팀이 기존에 투자하고 있는 곳을 제외한 곳 중에서 투자하기에 적당한 곳은 따로 없습니까?"

내가 다시 물었다.

러시아에 대한 전망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 외에 브레이크가 했다는 조사 결과를 듣고 싶었다.

"음···."

잠시 생각하는 듯하던 브레이크가 다시 입을 열었다.

"터키도 괜찮습니다."

브레이크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러시아라면 모르지만, 터키는 썩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터키요? 터키라면 지난주에 이미 많이 오르지 않았나요?"

내 말에 브레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렇습니다. 지난 한 주 동안에 11% 이상 올랐죠."

"그런 곳을 특별히 추천하는 이유가 있나요?"

"현재 IMF와 세계은행이 터키와 100억 달러 정도의 추가 구제금융을 의논하고 있고 그 협상이 거의 막바지에 와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추가 구제금융이 통과될 가능성이 크고요. 당장은 아니더라도 만약 협상 결과가 발표되면 시장이 폭등할 가능성이 큽니다."

브레이크가 자신이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잠시 브레이크의 이야기를 생각해보았다.

러시아에 대한 투자는 나도 장기 전망을 괜찮게 보고 있었다.

아마 그렇지 않았다면 리안을 통해 투자한 홍콩 부호들의 자금을 러시아에 장기투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터키는 환율도 불안하고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를 정도로 정치도 불안했다.

내가 고민하자 카이 황이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 문득 내가 왜 이렇게 고민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브레이크에게 맡길 금액은 전체 투자금 중에서 많은 금액이 아니었다.

더구나 아무리 불안하다고 해도 터키가 한 주 동안에 완전히 망할 정도는 아니었다.

"남은 투자금 중에서 이천만 달러를 브레이크 씨에게 맡기겠습니다. 러시아와 터키에 각각 천만 달러씩 투자하는 것으로 하죠."

아무리 생각해도 터키에 대한 투자는 불안했기 때문에 나는 러시아와 터키 절반씩 투자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정말입니까?"

브레이크가 되물었다.

그는 내 말이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내가 자신에게 진짜로 자신에게 투자금을···.

그것도 이천만 달러나 되는 거금을 맡길지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러시아나 터키에 어떻게 투자할지는 전적으로 브레이크 씨가 알아서 결정하세요."

"제가 알아서 하라는 말씀입니까?"

"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 동유럽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브레이크 씨 아닙니까."

내 대답에 브레이크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브레이크가 문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성공적으로 회의를 마쳤을 때 문이 열리고 웬 지하오가 들어왔다.

데자뷔가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이제는 별로 긴장이 되지도 않았다.

또 무슨 불만이 있어서 궁금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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