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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슈퍼리치 되다-70화 (71/270)

서몽

# 최선을 기대하라, 하지만 최악을 대비하라.

나는 한동안 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뉴스가 끝나고도 한참을 멍하니 그대로 서 있었다.

얼마 후 정신을 차리고 인터넷을 통해서 관련 뉴스를 찾아보았다.

특히 미국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중점적으로 찾아보았다.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내용은 뉴스 자막을 봤을 때 생각했던 내용과는 조금 달랐다.

미국에서도 이번 일은 속보로 다루고 있지만, 방향은 중국의 보도와는 아주 달랐다.

이번에 체포된 5명은 중국 출신으로 모두 외국에서 공부했고 중국에 비판적인 연구 활동을 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점 때문에 미국과 서방의 언론은 학자들에 대한 언론탄압으로 프레임을 맞추고 있었다.

스파이 혐의에 대한 중국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스파이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스파이였다고 해도 알아볼 방법도 없었다.

CIA 내부 전산망에 스파이 '누구누구'가 체포되었다고 글이 올라오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다른 CIA 직원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진짜 미국의 요원이라고 해도 이제 막 체포된 요원의 신상을 알려줄 사람은 없었다.

내가 고위직이라면 알아낼 방법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에이전트 에스팀의 보안등급이라면 요청하면 정보에 접근할 수도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요원 '개인으로서의 나'는 정보분석 요원을 하다가 작전에 막 투입된 위장임무를 수행 중인 작전 요원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체포된 사람 중에는 홍콩 대학교수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중국 쪽 정보를 알려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나는 회사로 리안에게 전화를 걸었다.

리안은 내가 지시한 나스닥 선물 거래 때문에 아직 회사에 남아 있었다.

-무슨 일이야? 퇴근한 사람이? 고생하고 있는 부하 직원에게 격려라도 하려는 거야?

"혹시 중국 정부에서 스파이 혐의로 5명을 체포했다는 소식 들었어?"

나는 애써 담담한 말투로 물었다.

-들었지. 뭐 별일 아니잖아.

리안은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였다.

"체포된 사람 중에는 홍콩에서 교수로 일하는 미국 시민권자도 있다던데?"

-그걸 왜 신경을 써. 네가 정부 비판기사나 논문을 쓸 것도 아닌데···.

"너야 상관없겠지만 나는 아니지. 요즘 미국과 중국 사이도 좋지 않잖아. 홍콩에 사는 같은 미국 시민권자가 체포된 사건이니 신경이 안 쓸 수가 없잖아.

-요즘 미국과 사이도 좋지 않고 대만 집권당에서 대만 독립 이야기를 꺼내니 불편했나 보지. 그리고 홍콩시민인 내가 더 불안해야지. 너는 미국 시민권자니 잡혀가도 풀려나겠지만 나는 스파이 혐의나 부패 잡히면 최소 10년 형이야.

"그래도 모르니 알아봐 줘. 어떻게 된 일인지···"

-지금 안 그래도 바쁜데···. 알았어. 아저씨께 부탁해놓을게.

나는 전화를 끊었다.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 책상과 서재를 다시 한번 정리했다.

초조한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한 행동이었지만 금방 끝났다.

매일 매일 정리를 하다 보니 별로 정리할 것은 없었다.

책상을 매일 정리하는 것은 CIA에 들어오고 난 뒤에 생긴 습관이었다.

습관이라기보다는 CIA에서 교육받은 내용 중 하나였다.

혹시 모를 흔적을 지우고 누군가 내 물건을 뒤졌을 때 바로 알아보기 위한 교육이었다.

강제로 몇 년간 하다 보니 이제는 나도 모르게 일과를 끝내기 전에 정리하고는 했다.

책상 정리가 끝나자 나는 내가 없는 동안 서재 한쪽에 쌓여있던 신문들을 읽기 시작했다.

뭔가 단서라도 찾기 위해서였다.

얼마 후 카이 황이 집으로 찾아왔다.

나는 거실에서 그를 맞았다.

"어서 오세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나는 카이 황을 서재로 안내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이사를 오시고 가끔 오기는 했지만, 서재는 처음이네요."

카이 황이 서재에 둘러보며 말했다.

"다른 곳은 이전과 똑같은데 여기는 조금 다르네요."

그의 말대로 이사를 온 이후에 집의 다른 곳은 거의 건드리지 않았다.

내 취향과는 달리 조금 화려하기는 했다.

어차피 그게 이쪽의 취향이라면 굳이 바꿀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서재만은 내가 주로 머무는 곳이다 보니 내 취향에 맞췄다.

"그냥 일할 때는 복잡한 것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싫어서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여권이나 비밀서류 그리고 총기가 들어있는 비밀 금고를 설치하려면 바꿀 필요가 있었다.

"그러시군요."

고개를 끄덕이던 카이 황이 가방에서 서류를 꺼냈다.

"시간이 얼마 없어서 자세하지는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카이 황이 건넨 서류를 서둘러 건네받아 확인해보았다.

서류는 이번에 체포된 5명에 대한 신상정보와 혐의 내용이었다.

카이 황은 자세하지는 않다고 이야기했지만, 정보는 꽤 구체적인 내용까지 들어가 있었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느 학교에 다녔는지 그리고 현재 국적이나 가족관계에 관한 내용이 가장 먼저 나와 있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지난 몇 년간의 주요 연구와 이번에 스파이 활동으로 기소된 주요 혐의가 나와 있었다.

나는 서류에서 눈을 떼고 카이 황을 바라보았다.

"잠깐 어떻게 이런 것까지?"

카이 황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리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여기 홍콩의 언론사들에서도 이번 사건에 관심이 많더군요."

언론사에서 뺐다는 이야기였다.

아마 이 서류 자체가 언론사의 내부 자료인 것 같았다.

"서류를 보면 다섯 명 모두 중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이지만 지금 국적은 조금씩 다르네요?"

카이 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우 지아민(Wu Jianmin)과 리 샤오민(Li Shaomin)은 미국 시민권자이지만 카오 잔(Gao Zhan)과 친 광광(Qin Guangguang)은 미국 영주권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지막 수 저롱(Xu Zerong)은 여기 홍콩 거주권자입니다."

카이 황을 이야기를 들으며 서류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현재로서는 정식으로 기소된 사람은 카오 잔이라는 미국 워싱턴 대학에 근무하는 연구원뿐이군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중국도 체포와 구속은 다른 의미였다.

현재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 사람은 5명이지만 그중에서 정식으로 기소된 사람은 미국 워싱턴 대학의 연구원이자 미국 영주권자인 카오 잔 한 명뿐이었다.

나는 기록을 살피다가 한 가지에 눈이 갔다.

"이미 2월에 체포됐었네요?"

기소된 것은 얼마 전이지만 체포된 것은 2월이었다.

중국은 공안이 용의자를 체포한 이후에 7일 이내에 검찰에 기소 여부를 요청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안이 원한다면 최장 37일간 이 기간을 연장할 수 있었다.

공개적으로 알리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습니다. 아마 자세한 상황이 알려지면 미국 쪽 언론에서 꽤 시끄러워질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아이가 관련된 일이다 보니···."

카이 황이 말했다.

나도 카이 황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네요. 그렇지 않아도 중국에 대한 압박을 하는 미국 정부가 이번 일을 이용하지 않을 리 없겠죠."

서류에 따르면 공안이 카오 잔을 체포한 것은 2월 11일 베이징 공항에서였다.

사실 여기까지는 아무리 다른 나라라고 해도 뭐라고 할 부분이 없었다.

문제는 그녀가 남편과 다섯 살 난 아들과 함께 있다가 체포됐다는 부분이었다.

이때 남편인 슈 동화(Xue Donghua)도 함께 체포됐다.

여기서 문제는 남겨진 다섯 살 난 아이가 미국 국적자였고 무려 26일 동안 베이징 유치원에 홀로 남아 있었다는 부분이었다.

당연히 중국 공안이 미국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연락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

카이 잔이 스파이라도 미국에서 동정여론이 생겨날 상황이었다.

아이가 관련되어 있으니 이 사건이 보도되면 미국 여론이 어떻게 될지는 상상할 수 있었다.

아이가 관련된 사건에 유독 민감한 것이 미국 여론이었다.

"이번 일이 어떻게 진행될 것 같습니까?"

나는 카이 황을 보며 물었다.

스파이 사건을 다루는 각국의 대응은 나라마다 달랐다.

어디까지를 스파이 행위로 볼 것이냐에 대한 기준도 다르고 그 스파이를 어떻게 처리하는지도 다르고 스파이 행위의 경중에 따라서도 달랐다.

당장 러시아에서 스파이 혐의로 20년 형을 내린 것이 2월이었다.

"이번에 체포된 사람들 모두가 중국에서 태어나서 중국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입니다. 천안문 사태가 발생할 때 학생이었다가 나중에 유학을 떠나서 중국 문제를 연구한 사람들이고요."

리안과 마찬가지로 카이 황도 이번에 체포된 학자들이 스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천안문 사태는 중국 지도부의 변화를 가져왔지만, 당연히 그 일을 경험한 학생들에게도 충격을 주었다.

한창 비판적인 젊은 나이에 그런 일이 발생하면 학자로 있는 동안에는 그 문제를 잊을 수가 없는 법이었다.

결국, 중국에 비판적인 논문을 쓰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카이 황은 그런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일종의 경고라고 할 수 있겠군요. 중국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요."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한꺼번에 5명이나 체포하지는 않았겠죠. 미국이 정찰기로 여전히 남중국해를 정찰하는 것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고요."

외국에서 중국 현대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번 일을 경고로 받아들일 것이다.

"말씀대로라면 다섯 명 모두 곧 풀려나기는 하겠군요. 물론 다시 중국에 재입국하지는 못하겠지만요."

중국 공안이 중국에 비판적인 학자를 체포했다가 추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몇 년 전에도 중국 공안은 송 영의(Song Yongyi)라는 학자를 스파이 혐의로 체포했다가 추방한 적이 있었다.

중국 공안은 송 영의가 자신의 죄를 인정했기 때문에 미국으로 추방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미국으로 돌아온 송 영의는 중국 공안의 말을 부인했다.

카이 황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렇게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요?"

"예. 중국 형사법은 최장 37일 구류 후에도 검찰의 비준을 받으면 최장 6개월 동안 수사를 연장할 수 있습니다. 10년 이상 선고 가능한 중대범죄라면 최장 8개월까지 가능하고요.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 이상 8개월 동안은 체포된 상태로 공안에서 수사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더구나 이건 공안의 수사 기간일 뿐 검찰에 넘어가면 다시 최장 6개월 반 이상의 수사 기간이 연장됩니다. 1심 재판 기간에도 6개월 반 이상 구금이 연장되고요. 당연히 그 기간 미국처럼 변호사의 지속적인 도움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1심에서 무죄를 받더라도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중국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더구나 중국 사법부를 생각하면 이런 사건이 무죄가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나는 카이 황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솔직히 조금 안심하고 있었다.

스파이라기보다는 중국에 비판적인 학자에 대한 기소라는 점과 이전에 비슷한 경우에 풀렸다지 않는가?

내 정체가 드러나 체포되더라도 금방 풀려날 수 있다고 안심하고 있었었다.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1년이 넘게 감옥에 가둬둘 수 있다는 의미군요."

"그렇습니다. 그나마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그나마 미국 시민권자인 우 지아민과 리 샤오민이나 미국 국민의 동정여론을 받을 영주권자인 카오 잔이나 친 광광은 길어야 6개월 정도면 풀려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홍콩 거주권자인 수 저롱은 운이 좋지 않을 것 같네요. 저도 참석한 모임에서 인사는 나눈 사이인데···."

카이 황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말을 하지 않았지만 수 저롱에 대해 동정하는 표정이었다.

"실제 형을 살 수도 있다는 말입니까?"

내가 물었다.

"혼자 체포됐다면 어떻게 풀려날 기회를 잡을 수도 있었겠지만, 중국 공안도 다섯 명을 모두 풀어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럼 얼마나?"

"유죄를 받을 테니 최소 십 년이죠. 당연히 중간에 풀려날 일도 없을 테고요."

"아···."

나는 리안이 했던 말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나는 최악의 경우라도 죽지만 않는다면 체포된다고 해도 풀려날 가능성이 있지만, 리안의 경우는 달랐다.

더구나 그의 말대로라면 상하이방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이번 일을 통해 리안의 아버지가 홍콩을 떠나서 캐나다에 이민을 하고 리안이 홍콩에서 조용히 지내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 홍콩에 머무는 이상 조금 더 조심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확실히 신분을 감출 필요를 느꼈다.

지금까지 나는 내가 중국에서 스파이 활동을 한 적이 없다는 것에 안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중국 정부에 위해가 되는 활동을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중국의 하이난 협상 전략을 미국에 알려준 것 같은 직접적인 일 외에도 일본이나 필리핀에서의 일도 그 목표는 결국 중국의 고립이었다.

내가 바라는 최선은 내년에 CIA를 그만두고 그때까지 번 돈으로 본격적으로 내 일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최악도 대비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바로 CIA를 그만두지 못하는 상황에서 다른 나라의 정보기관에 체포되는 일이었다.

그때 무사하려면 다른 나라의 정보기관이 나를 함부로 하지 못하고 CIA도 나를 포기하지 못할 정도로 중요한 인물이 되는 것이었다.

최선을 기대하라, 하지만 최악을 대비하라.

요원이라면 항상 명심해야 할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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