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몽
# 능력을 드러내지 않고 실력을 기른다.
-다청의 임순입니다.
"홍콩의 에드릭입니다. 물어볼 것이 있어서 전화했습니다."
-무슨 일이신지요?
"지난번 의뢰했던 웬 지하오에 대한 조사에 관한 일인데요···."
-그렇지 않아도 정리되면 전화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웬 지하오가 천샤오루 회장과 결별하고 새로운 라인을 잡은 것 같습니다. 아직 정확하지는 않은데···.
"알아냈습니다."
-그렇습니까?
"상하이에서 온 사람으로 여기 홍콩에서 차우 칭낭가이라는 이름을 쓴다고 하더군요."
-아, 역시···.
전화기 너머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는 사람입니까?"
-여기 상하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인물입니다. 상하이 최고 부자니까요.
"상하이 최고 부자요?"
뜻밖이었다.
-그렇습니다.
"상하이 최고 부자는 저우정이(Zhou Zhengyi,周正毅)라는 부동산 개발업자 아닌가요?"
상하이 최고 부자는 실제로는 장쩌민이나 장쩌민의 아들인 장 멘헝(Jiang Mianheng) 혹은 다른 상하이방의 관리들이겠지만···.
그들의 재산은 공식적인 재산이 아니었다.
현재 알려진 공식적인 상하이 최고 부자는 저우정이였다.
-차우 칭낭가이가 바로 저우정이입니다.
"아···."
충격이었다.
무시했던 웬 지하오가 새롭게 잡은 뒷배가 상하이 최고 부자라니···.
-말씀드리지 않아도 알겠지만, 만약 저우정이가 웬 지하오의 뒷배라면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었다.
"뭐래? 차우 칭낭가이가 누구래?"
리안이 재촉했다.
"차우 칭낭가이가 저우정이란다."
내가 말했다.
"그 상하이의 저우정이?"
리안이 물었다.
설마 하는 표정이었다.
"맞아. 그 저우정이란다. 상하이 최고의 부자."
내 말에 리안의 눈이 커졌다.
"허···. 웬 지하오 팀장 능력 있네."
저우정이는 나도 이름을 알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최근 십 년간 중국에서 맨손에서 시작해서 벼락부자가 된 사람이 많지만, 저우정이는 그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중국과 상하이 경제 발전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그는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10년 전 작은 식당을 개업했다.
그 식당을 확장해서 새로운 식당을 열고 그 식당을 기반으로 건축자재 유통에 뛰어들었다.
상하이 건축 붐으로 건축자재 유통에서 다시 큰돈을 번 그는 주식거래와 선물로 다시 대박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렇게 번 돈으로 다시 부동산 개발업에 뛰어들었다.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던 저우정이였지만 41살인 지금은 알려진 재산만 3억 불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렇지만 웬 지하오가 저우정이의 수족이 됐다는 것은 단순히 저우정이가 가진 재산 때문이 아니었다.
"이제 진짜 웬 지하오를 상사로 모셔야 할 상황이네."
내 말에 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웬 지하오 팀장은 상하이방 핵심이 된 거나 마찬가지인데 어쩔 수 없지. 뭐···. 최소한 주석이 바뀌는 2003년까지는 잘 지내봐야지."
내가 말했다.
얼마 전까지 웬 지하오를 무시했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저우정이는 그런 걱정을 할 만큼의 거물이었다.
저우정이는 부동산 개발로 빠르게 재산을 모았다.
빠르게 재산을 모은 것은 이유는 그가 뛰어난 수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저우정이는 상하이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상하이방의 거물들과 가까웠다.
어느 나라나 그렇듯 빠르게 발전하는 도시에서 부동산 개발은 권력의 힘이 없으면 불가능한 사업이었다.
특히 모든 것을 국가가 관리하는 중국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리안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어쩔 수 있냐? 저우정이가 상하이 부시장인 천량위(Chen Liangyu, 陳良宇)의 자금줄이라면서? 천량위는 직책은 상하이 부시장이지만, 상하이방 내에서도 실제 서열이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거물이야."
골치가 아팠다.
손이 저절로 목덜미로 향했다.
"웬 팀장 눈치를 보면서 회사 생활하게 생겼네."
"그러게···. 웬 팀장이 너에게 당한 것이 있으니 갚으려고 할걸! 그러게 적당히 좀 하지."
리안이 말했다.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나?"
웬 지하오와 사이가 틀어진 데는 내 잘못도 어느 정도 있었다.
웬 지하오가 홍콩에 적응하지 못해서 하는 실수를 그대로 받아쳤다.
굳이 그렇게 문제를 만들 필요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웬 지하오를 내 요원 생활에 긴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가볍게 대했던 것이 문제가 된 셈이었다.
"내가 한 행동이 있으니 어느 정도는 참아 줄 수 있어. 그렇지만 일방적으로 계속 당할 생각도 없어. 웬 팀장이 선을 넘지 않기를 바래야지."
내 말을 듣던 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생각했어. 괜히 문제 만들 필요 없지. 저우정이라는 작자는 여러 가지 구설수가 많은 인간이야. 아마 2003년 주석이 바뀔 때 가장 먼저 정리될걸. 밖으로 능력을 드러내지 않고 실력을 기르면서(도광양회, ?光?晦), 꼭 해야만 하는 일은 한다(유소작위, 有所作?)."
리안이 말했다.
그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어느 때보다 진지한 것은 바로 도광양회와 유소작위가 리 안 본인의 상황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가 상하이방과의 갈등으로 홍콩을 떠난 이후 홍콩에서 리안의 생활이 바로 도광양회와 유소작위의 삶이었다.
리안이 저렇게까지 나오는데 웬 지하오의 이야기를 계속할 수는 없었다.
"상황을 보아하니 내가 며칠 더 회사에 나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아."
힘이 없다가 생기면 그 힘을 써보고 싶은 법이었다.
내가 회사에 출근해서 웬 지하오를 굳이 자극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 투자는 어떻게 하려고?"
리안이 물었다.
"네가 나가지 못하면 네가 회의를 진행해야지. 방침은 이미 정해놓았어."
직책만 없다뿐이지 우리 팀에서 팀장은 나 다음은 리안이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팀장을 내가 맡고는 있지만, 리안과 나는 거의 동등한 위치라고 할 수 있었다.
내가 투자 방향을 결정하면 리안은 그걸 실행한다.
이게 우리 팀의 투자 방법이었다.
"그래? 어떻게 정했는데?"
"우리 팀 가장 큰 투자는 나스닥에 대한 투자인데···. 이건 아직 정하지 못했어. 이건 너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눠보고 결정하려고···. 그래서 일단 다른 것부터 이야기할게."
"그래 그럼···."
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내가 생각한 다음 주 투자 방향이야."
나는 책상 위에서 있던 서류를 리안에게 건넸다.
"우선 닛케이 지수는 하락 포지션에 잡는다고?"
"응. 외신 기사를 보니까. 장관들이 전체적으로 강경파 위주라는 말이 있더라고···. 그래서 고이즈미 내각이 모리와 별다른 것이 없지 않으냐는 의견이 많아. 개혁을 내세워서 총리가 된 것치고는 초반 행보가 실망스럽다는···. 뭐, 그런 거지."
내가 말했다.
"하긴 뭐···. 중국을 위해서는 하시모토 류타로가 총리가 돼야 했는데···."
리안의 말에 나는 조금 움찔했다.
선거에 관여한 나로서는 조금 불편한 이야기였다.
"코스피는 아무래도 지난주 미국 주가가 하락했으니 하락 포지션이 나을 것 같아."
내가 말했다.
내가 코스피를 언급하자 리안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코스피는···. 내가 투자하자고 했는데···. 지난주에 겨우 0.8 하락에 그쳤잖아. 내가 다른 직원들에게 할 말이 없어. 0.8%가 뭐야 0.8%가···. 지금까지 투자한 수익률 중에 거의 최악 아니야?"
리안이 자조 섞인 말을 내뱉었다.
그의 말대로 지난주 한국의 코스피는 0.8% 하락하는 데 그쳤다.
레버리지를 썼지만 그래 봐야 1.6%···.
여기에 한국은 아직 류오린의 지사가 없는 나라였다.
다른 투자회사를 통해 수수료를 주고 투자하는 것을 생각하면 실제 수익률은 더 낮았다.
"신경을 쓸 필요 없어. 우리가 투자하는 자금이 점점 커지고 투자하는 국가나 기업이 많아지면 수익률도 내려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야. 투자에서 항상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는 없어."
내가 말했다.
물론 나도 코스피 선물에서 얻은 예상보다 너무 수익률이 낮은 것이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걸 리안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하필 내가 추천한 코스피에서 지금까지 가장 낮은 수익률을 얻으니 좀 그래. 코스피 말고 다른 곳에 투자하는 것이 어때? 어차피 나스닥에 투자하고 있으니 비슷하게 움직이는 다우나 S&P에 투자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
리안이 코스피 말고 다른 시장에 투자할 것을 제안했다.
나는 리안의 제안에 고개를 저었다.
"수익률만 생각했으면 처음부터 나스닥에 투자금 전체를 투자했겠지. 어차피 위험 분산 차원에서 투자하는 것이니 그냥 코스피에 투자를 유지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하락할 때는 두 나스닥이나 코스피나 비슷하게 움직이기는 하지만 시차가 있으니까."
"뭐 네가 그렇다면야···. 혹시 내가 코스피를 추천해서 그런 거면···."
"아니야."
내가 말했다.
"그리고 러시아 투자 말인데···. 지난 2주간 13% 이상 올랐잖아. 이번 주에 오른 것만 거의 8% 가까이 되고···."
"그렇지."
"그래서 말인데···."
나는 리안을 보며 말을 이었다.
"브레이크에게 러시아 하락에 포지션을 잡도록 이야기해봐. 자율권을 주기는 했으니 강요는 하지 말고···."
브레이크에게 러시아와 동유럽 투자에 대한 자율권을 주기로 했다.
그렇지만 그게 투자에 대한 방향을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렇게 할게. 브레이크가 그렇게 고집 센 사람이 아니야."
"다음으로 태국에 투자했던 투자금 말인데···. 이번에는 인도에 투자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하고 있어."
"인도?"
인도에 투자한다는 말에 리안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갑자기 뭔 인도야? 지금까지 극동과 동남아를 중심으로 투자했잖아?"
리안이 물었다.
"얼마 전에 골드만 삭스에서 브릭스(BRICS)라고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가 가장 유망한 투자처라고 발표했잖아. 우리는 러시아에는 이미 투자하고 있고 중국은 한동안 투자를 보류한 상태고 브라질이나 남아프리카는 우리가 중점적으로 투자하는 아시아가 아니잖아. 아시아에서 남은 투자할 곳은 인도뿐이잖아. 요즘 주가 흐름을 보니 괜찮을 것 같더라고···."
내가 말했다.
내 말에 리안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그 보고서는 봤는데···. 지금 인도 집권당인 바라티야 자나타 당(Bharatiya Janata Party, BJP)은 답이 없는 놈들이야. 그 당이 내세우는 것이 종교와 극우인데···. 내가 그 둘이 한꺼번에 내세우는 당 중에서 제대로 된 방향으로 국가 끌고 가는 놈들을 본 적이 없어."
"그렇기는 하지···. 종교와 극우적 민족주의. 둘 다 경제정책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이념이라는 것에는 나도 동의해. 심지어 지금 인도 집권당은 그 둘이 하나로 모인 당이지. 그런데 다음 주에 주 단위 선거가 있더라고···. 그리고 그 선거에서 예전 집권당인 국민회의가 승리할 것이 거의 확실하고···."
"그래? 여전히 나는 조금···."
여전히 인도 투자에 대해 고개를 젓던 리안이 입을 열었다.
"이전에 투자하지 않았던 새로운 나라에 투자하려면 얼마나 분석을 해야 하는 줄 알아. 너야 그냥 지시만 내리면 되지만 나는 당장 오늘 밤에 밤을 새우면서 조사를 해야 한다고···. 인도에 투자할 생각이면 일주일 전에는 말해줘야지. 당장 내일이면 투자를 해야 하는데 오늘 이야기하면 어쩌자는 거야?"
리안의 입에서 인도 투자를 반대하는 진짜 이유가 흘러나왔다.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계속 내 주장을 밀고 나갈 수는 없었다.
"알았어. 이번에 인도 투자하자는 계획을 철회할게."
내가 생각해도 내일까지 인도를 조사하라고 하는 것은 무리였다.
전에도 하루 전에 국가나 기업에 대한 조사를 맡긴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리안이 투자하던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조사였다.
"내가 내일부터 인도에 대해서 조사를 시작할게. 내일까지 조사해서 인도 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무리야."
리안이 말했다.
"그럼 아까 한 이야기인데···. 곧 있으면 연준 회의가 있는 것은 너도 알 거야."
"나도 알아."
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도 대부분 금리를 추가 인하할 것 같다는 것이 월가의 대체적인 예상이야. 이런 상황에서 아마 금리를 추가 인하하지 않으면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주식시장이 폭락할걸···. 그린스펀이 그런 위험을 감수할 리가 없지."
리안이 말했다.
"나도 비슷한 생각이야. 그런데 요즘 분위기로 봐서는 나스닥이 오르기는 오르겠지만 크게 오를 것 같지는 않다는 말이야."
"하긴 요즘 실리콘밸리 기업들 사이에 감원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하더군. 이미 발표된 실적도 나쁘고···."
"그래서 말인데 태국 투자에서 회수한 자금을 인도가 안 되면 다우나 S&P에 투자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내가 말했다.
"알았어. 내가 내일 회의에서 네가 한 이야기 그대로 전할게."
리안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렇게 해줘. 그리고 나는 한동안 출근 못 한다고 회사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 리안을 보며 말했다.
"인도는 내가 오늘부터 조사 시작할게."
리안이 떠나면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