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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슈퍼리치 되다-74화 (75/270)

서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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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끼를 먼저 잡아라.

존 베비스를 만나러 오기 전 그에 대해서 이미 알아보았다.

내가 알아본 바로는 존 베비스는 돈에 대한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정확하게는 돈으로 얻을 수 있는 권력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존 베비스는 변호사가 된 이후 판사로 있다가 클린턴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CIA에 들어온 경우였다.

존 베비스가 예일 대학을 나온 변호사이기는 했지만, 금전적으로는 여유가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물론 에디 미첼의 성격상 그에게도 꽤 많은 돈을 따로 줬을 것이다.

내게 꽤 많은 보수를 준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존 베비스는 돈보다는 권력에 대한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그는 에디 미첼에게 받은 돈 대부분을 그런 목적을 위해서 이미 쓴 상태였다.

그에게는 에디 미첼이라는 얼마든지 자금을 대줄 수 있는 화수분이 있었다.

하지만 그 화수분은 이미 죽은 상태였다.

CIA에서 갑자기 밀려난 이유도 에디 미첼과 관련이 있었다.

하지만 에디 미첼이 죽어서 팀이 해체된 것이 이유는 아니었다.

새롭게 들어선 공화당 유력 정치인에게 약속한 후원금을 주지 못한 것이 이유였다.

정치인이란 약속한 후원금을 받지 못하게 되면 상대가 자신의 돈을 떼먹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존 베비스도 나도 에디 미첼이 그렇게 갑자기 사고를 당할지 몰랐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로서는 나쁜 결과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에디 미첼이 잘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아무리 에디 미첼을 인간적으로 좋아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죽음에 대해 기뻐할 정도로 쓰레기는 아니었다.

한동안 수표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존 베비스가 입을 열었다.

"자네 도대체 에디 미첼과 뭔 짓을 저지른 건가?"

나는 존 베비스의 질문에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생각하시는 것만큼 불법적인 일은 아닙니다. 그냥 이천만 불을 빌려서 주식거래를 했을 뿐이죠."

존 베비스의 눈이 수표로 향했다.

"설마 이게 도이치뱅크의 돈인가? 횡령한 돈이라면 받을 수 없네."

존 베비스가 수표를 든 손을 나에게 내밀었다.

내 눈에 그의 손이 약간 떨리는 것이 그대로 보였다.

'하여간 소심해서는···.'

정보기관에서 팀장이었다는 사람이 저렇게 담이 작다니···.

존 베비스가 CIA에서 8년이나 근무하기는 했지만, 홍콩의 오기 전 나와 마찬가지로 현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에디 미첼을 통해 얻은 고급 금융정보를 독점해서 CIA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준 것뿐이었다.

"도이치뱅크에서 빌린 이천만 불은 일 년 후에 그대로 갚을 생각입니다."

"그럼 이건···?"

"주식거래로 번 돈이지요."

"에디 미첼과 내부자 거래라고 한 것인가?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르나? 지난주부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United States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SEC)에서 내부자 거래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벌어지고 있어!"

존 베비스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걸릴 가능성 전혀 없으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에디 미첼이 어떤 사람인지는 팀장님이 더 잘 알지 않으십니까?"

에디 미첼과 내 거래도 일종의 내부자 거래라고 할 수는 있었다.

그렇지만 이 거래가 걸릴 가능성은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상적인 거래였을 뿐 아니라 손해만 보고 이익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도대체 얼마나?"

"이천구백만 불 정도 됩니다. 물론 이 중에서 이천만 불은 일 년 후에 도이치뱅크에 상환해야 하는 금액이고요."

내가 현재 상황을 말했다.

현재 AAM의 투자금액은 이천구백만 불로 늘어나 있는 상태였다.

물론 전부를 말하지는 않았다.

에디 미첼과의 거래에서는 손해만 봤다.

이천만 불은 나중에 내가 벌어들인 돈이었다.

그 외에도 W&R 투자금 일억구천만 불도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의뢰인과 변호사 사이에 비밀유지조항이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을 존 베비스에 말하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존 베비스가 내가 구백만 불을 챙겼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았다.

"그럼 구백만 불 중에서 내게 백만 불만 주겠다는 말인가?"

구백만 불이라는 말에 존 베비스가 바로 욕심을 내비쳤다.

"욕심이 많으시네요."

"욕심이 많은 것은 자네 아닌가? CIA 임무 중에 구백만 불을 벌고 그대로 CIA를 떠나려고 하다니!"

"전 팀장님을 통해서 CIA를 그만두지 않아도 됩니다. 구백만 불이면 복귀 후에도 저를 위해 나서줄 사람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CIA 임무 중에 얻은 돈은 자네 개인 소유가 아니라 CIA와 국가의 돈이네."

"그런가요? 몰랐네요. 그럼 지금 가서 CIA에 알리시던가요. 혹시 알아요. CIA를 위해서 구백만 불을 얻게 해준 공을 생각해 복직하실지···. 하지만 공화당 일색인 CIA에서 다시 쫓겨나시면 그때는 뭘 하시고 사시려나. 그때는 적어도 그때는 더는 변호사는 아니시겠네요. 아! CIA 돈도 아닌가요? 주인을 굳이 따지자면 에디 미첼의 유가족이나 도이치뱅크에 줘야 할 돈이네요. 복귀도 못 하시겠는데요?"

존 베비스는 나를 절대 CIA에 고발하지 못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그가 나를 연수라는 목적으로 에디 미첼에게 보낸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

에디 미첼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서 CIA의 요원을 이용한 것이었다.

에디 미첼이 죽은 이상 그 책임은 전적으로 존 베비스가 져야 한다.

심지어 그가 조사한다고 해도 나는 적어도 에디 미첼과의 거래 때문에 번 돈을 회수당할 가능성은 없었다.

오히려 그와의 거래에서 나는 천백만 불을 손해를 봤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이런 사실들이 밝혀졌을 때 CIA를 그만두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 범죄혐의로 처벌받는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존 베비스가 나를 CIA에 알려서 얻을 이익이 없었다.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한다는 것은 단순히 변호사 일을 더는 못한다는 것이 아니었다.

비밀 유지 의무를 저버려서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한 사람에게 무슨 정치적 미래가 있겠는가?

더구나 다른 변호사들이 존 베비스와 접촉하는 것 자체를 꺼리게 됨으로써 그가 가진 인맥 상당 부분을 잃게 된다.

'야망의 함정(The Firm)'이라는 영화에서 톰 크루즈가 변호사 자격을 지키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금 자네 나를 협박하는 것인가?"

존 베비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냥 서로 윈윈하자는 겁니다. 저는 자유를 얻고 팀장님은 돈을 벌고···."

존 베비스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이렇게 하죠. 팀장님이 약속을 지키시면 제가 팀장님이 지정하시는 곳에 추가로 백만 불을 팀장님 이름으로 기부를 하겠습니다. 잘만 활용하면 팀장님이 원하시는 것을 얻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게 공직에 다시 나가는 일이든 아니면 선거에 나가는 일이든···.

기부와 선거라는 말에 존 베비스의 눈이 커졌다.

"이백만 불! 그 이하는 안 되네."

존 베비스가 금액을 이백만 불로 올렸다.

협상에서 금액을 두고 일단 금액을 올리는 것은 변호사들의 전형적인 수법이었다.

백만 불이나 이백만 불이나 큰 부담이 되는 금액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여기서 그대로 승낙하면 존 베비스가 의심할 수도 있었다.

"오십만 불 더 기부하죠."

"Deal! 좋네! 백만불은 수표로 나머지 백오십만 불은 내가 정하는 곳에 기부하는 것으로 하지."

말을 마친 존 베비스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으며 악수를 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지만, 그 수표는 제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CIA를 그만둔 다음에야 유효합니다."

내가 말했다.

존 베비스는 CIA에 8년이나 근무했다.

욕심에서 사람을 동원할 가능성은 충분했다.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내가 그렇게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보이나?"

"여기서 누구를 믿겠습니까?"

"걱정하지 말게. 내가 책임지고 자네를 CIA에서 무사히 나갈 수 있게 하겠네. 자네나 기부 약속이나 잊지 말게."

존 베비스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대가를 받으시려면 먼저 약속을 지키셔야 합니다. 산토끼를 먼저 잡으라는 말이 있죠. 결과가 따르지 않는 듣기에 좋은 말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이죠. 이미 겪어 보셨으니 잘 아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점은 이미 뼈저리게 느끼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게. 내가 비록 지금, 이 꼴이지만 나도 이대로 여기서 변호사를 하면서 인생을 끝낼 생각은 없네."

나는 존 베비스에 인사하고 그의 사무실을 나왔다.

이번에 존 베비스를 방문한 목적은 100% 달성한 셈이었다.

존 베비스가 나를 내년에 확실히 CIA를 떠날 수 있게 만들어 준다고 믿는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존 베비스는 야망은 큰데 능력은 거기에 따르지 못했다.

아마 그 성격 나쁜 에디 미첼이 존 베비스와 일을 같이한 이유도 친분 때문은 아닐 것이다.

존 베비스는 내 의도를 숨기고 이용하기에 좋았다.

내가 오늘 존 베비스를 방문한 목적은 그를 통해서 CIA를 나가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현재 내 상황이 어떤지 알아보고 앞으로 내 상황의 변화가 올 때 그런 변화를 알려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존 베비스의 대화를 통해서 내가 왜 이렇게 이상한 상황에 부닥쳤는지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나는 지금 정식요원이 아니었다.

그것도 아시아 지부에 파견된 것도 아니니 아시아 지부 소속도 아니었다.

정식 조직 밖에 있었기 때문에 아시아에서 만난 CIA 관계자들이 나에 대해 몰랐다.

존 베비스는 에이전트 에스팀에 대해 모르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건 존 베비스가 아니라 에디 미첼과 관계된 일일 것이다.

물론 그가 죽은 이상 진실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존 베비스는 앞으로 남은 일 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이백오십만 불을 받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 노력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내 상황 변화면 곧바로 알아내서 나에게 알려줄 것이다.

그 정도면 존 베비스와 그에게 주기로 약속한 이백오십만 불 가치는 충분했다.

변호사 비밀유지의무로 묶이고 이백오십만 불을 받기로 한 이상 적어도 존 베비스가 나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다닐 가능성은 없었다.

나는 센터빌에서 이틀간 머무르면서 존 베비스를 살폈다.

위험한 짓을 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센터빌에 머물면서 한인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 중 열 명 중 한 명 정도는 한국인으로 보였다.

그들도 나랑 비슷한 생각인지 나에게 한국어로 길을 물어보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한국 음식도 머물며 이틀간 머물다가 나는 댈러스 공항을 통해 뉴욕으로 향했다.

내 투자금 중 대부분이 뉴욕, 정확히는 나스닥에 투자되어 있었다.

뉴욕 월가에 머물며 조사도 하고 분위기를 살폈다.

주가는 궁극적으로는 실물 경기를 따라간다지만 단기적으로는 심리적 영향이 컸다.

월가의 분위기는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그런 분위기가 조금 바뀐 것은 부시 행정부의 대규모 공적 자금 투입과 감세 약속이 발표된 이후였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예상했던 대로 미국 연방준비이사회는 금리 인하를 발표했다.

나는 금리 인하 소식을 보고 홍콩행 비행기를 탔다.

미국은 내가 나고 자란 곳이지만···.

지금은 홍콩이 내 삶이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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