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몽
# 걱정하는 것만으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홍콩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겨우 일주일이지만 그사이 상당히 더워진 것처럼 느껴졌다.
여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실제로도 기온이 올라가기도 했지만, 기온이 10도 정도 낮은 뉴욕에 있다고 온 것이라서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는 공항에서 우산을 하나 샀다.
택시를 탈 생각이라서 별로 쓸 일은 없겠지만 만약을 위한 대비였다.
류오린에 도착해서 팀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로 가는 동안 다른 팀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이건 또 뭐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리안이 가볍게 손을 들었다.
"왔어?"
카이 황이 다가와 가방을 잡았다.
"이리 주시죠."
"괜찮습니다."
나는 가방을 직접 들고 내 자리로 가서 앉았다.
가방에서 M&M 초콜릿이 가득 든 유리병을 꺼내 팀원들에게 하나씩 나눠주었다.
팀원들이라고는 하지만 리안, 카이 황, 브레이크 달랑 세 명이지만 말이다.
리안이 잠시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M&M 초콜릿이 가득 든 유리병을 바라보았다.
"이건 뭐야?"
리안이 말했다.
"여행안내 책자를 보니 M&M 초콜릿이 뉴욕 방문 선물로 인기가 있다고 하더라고."
내가 말했다.
"지금 장난해? 돈도 많은 놈이 겨우 초콜릿을 여행 갔다 온 선물이라고 준다고? 적당한 시계라도 사 오지."
리안이 말했다.
그는 여전히 나를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시계에는 관심도 없어. 시계가 사고 싶으면 네 돈으로 사."
"역시 벼락부자라서 그런지 시계 모으는 재미를 모르네. 한 번 시계를 모으는 데 취미를 가지게 되면 빠져나올 수 없다니까."
"너나 많이 모으세요."
내가 말했다.
"지금은 그렇게 말하지만, 나중에도 그런 말 하나 보자. 내가 부자 중에서 시계를 모으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특히 벼락부자들이 더 하더라고···. 나중에 내 시계 컬렉션에 욕심이나 부리지 마."
"됐네요."
나는 리안의 시계에 관한 이야기를 자르고는 팀원들을 보며 말했다.
"회의나 시작하죠."
잠시 후 회의가 시작됐다.
평소처럼 카이 황이 시작 전에 보고서 2부씩을 팀원들에게 나눠주었다.
투자 결산과 내가 뉴욕을 떠나기 전에 지시한 다음 투자에 대한 계획이었다.
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모습이지만 지금 보니 뭔가 어색했다.
나나 리안 브레이크는 이제 이십 대 중반이었는데 비해 카이 황은 팀원 중 유일한 사십 대였다.
카이 황이 능력이 모자라는 것도 아니고 하는 일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예전 팀의 주력이었던 AAM의 투자는 사실상 카이 황이 전담하고 있었다.
"팀에 새로운 직원 뽑죠."
"새로운 팀원? 그야 나야 좋지. 막말로 네 명이 2억 불···. 아니지 AAM이나 러시아에 투자하는 회사까지 합치면 3억 불이 넘네. 하여간 네 명이 그 정도 금액을 운용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지."
리안이 말했다.
나는 리안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트레이더는 차차 사람을 알아보고 있으니 나중이고···."
시선을 카이 황을 향하며 말을 이었다.
카이 황은 팀원들이 마실 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카이 황 씨가 하는 일이 없는 것도 아닌데 저런 일까지 하는 것은 좀 아닌 것 같네요."
"저는 괜찮습니다. 이 정도는 어렵지도 않은 일인데···."
카이 황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제가 부담스러워서 그래요. 리안 같은 부잣집 도련님이야···. 카이 황 같은 분께서 사소한 일까지 처리해 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겠지만 저는 벼락부자라서 좀 그렇네요."
"네가 불편하다면서 왜 나를 물고 늘어져?"
리안이 내 말에 발끈했다.
나는 그를 무시하고 카이 황을 보며 말했다.
"사무처리를 전담해줄 사람을 구해 보세요. 구인광고를 내야 하나요?"
내 질문에 카이 황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런 일이라면 류오린 내에서도 사무직 직원이 있으니 별로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당장 내일부터라도 일할 사람을 데려올 수는 있습니다."
하긴 류오린이 투자회사이기는 하지만 직원 모두가 트레이더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무처리를 하는 직원들이 더 많았다.
"하긴 그렇기도 하겠네요."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브레이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경쟁이 치열하겠네요. 지금 류오린 내에서 우리 팀에 어떻게 들어올 수 없는지 방법을 찾는 사람이 많다던데···. 심지어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나에게도 어떻게 팀에 들어갔는지 묻더라니까요."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브레이크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우리 팀에 서로 들어오겠다고 방법을 찾는다니?"
"너 없는 동안 지난 연도 성과급이 지급됐어."
리안이 말했다.
성과급을 지급하는 방법은 같은 투자회사라도 회사에 따라서 혹은 계약에 따라서 달랐다.
나는 류오린과 계약을 할 때 내 거래로 발생하는 매매수수료의 20%를 받는 조건으로 계약했다.
처음에는 주급과 함께 받기도 했지만 얼마 전부터는 매달 받는 것으로 계약을 조정했다.
성과급이 들어오는 계좌를 마지막으로 확인해 본 지도 꽤 시간이 지났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류오린에 파견근무를 나오고 얼마 후에 CIA에서 받는 돈이 들어오는 계좌를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W&R의 투자금을 제외하고도 내가 가지고 있는 자산이 이천만 불이 넘었다.
나는 이제 연봉이 몇만 불에 불과한 CIA 계좌는 물론이고 매달 몇십만 불이 들어오는 계좌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의 부자였다.
지금 W&R의 2억 불이 넘는 투자금이 류오린에서 받은 성과급이 종잣돈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와는 달리 류오린의 경우는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회계연도에 맞춰서 지급하고 있었다.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까지의 성과급을 내가 없는 사이에 지급한 듯했다.
"그게 뭐? 우리 팀은 상관없는 일 아니야? 너와 나는 매달 받고 있잖아?"
내가 물었다.
"성과급을 받으면 명세를 확인하잖아. 이상한 말이 돌아서 나도 명세를 확인해 봤는데···. 네 거래를 통해서 우리 팀, 아니지···. 아시아팀 전체 팀원들이 받은 성과급이 상당하다고 하더라고···. 그나마 나는 1월부터는 너와 같은 조건으로 받고 있으니 2월과 3월 부분은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내가 받기로 한 성과급은 류오린이 받는 매매수수료의 20%였고 나머지 20%는 팀 몫이었다.
"저도 들어보니 꽤 되더군요. 경력에 따라서 차이가 있기는 한데 많은 사람은 5만 불 정도를 팀장님 거래 덕분에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브레이크가 말했다.
말을 마친 브레이크가 나를 말 그대로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봤다.
기분인지 지난번 봤을 때보다 훨씬 공손해진 모습이었다.
아마 기분이 맞는다면 그 이유는 바로 돈일 것이다.
계약에 따르면 그도 바로 이번 달 말부터 꽤 거액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 어째···. 사무직원을 구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상황이 어째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회의가 끝나면 그 문제를 말씀드릴 생각이었습니다. 이대로 가면 팀 독립이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카이 황이 말했다.
그의 말대로였다.
이제야 들어오면서 사람들이 나를 바라봤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나마 아시아팀이 받은 성과급은 AAM의 거래를 통해서 받은 성과급이었다.
나는 카이 황이 나눠준 보고서에서 오늘까지의 주간 수익률을 확인해 보았다.
이번 주 수익률은 매매수수료를 제외하고 1.4% 정도···.
최근 투자 중에서 가장 저조한 수익률이었다.
이런 수익률이 나온 이유는 가장 큰 금액을 투자하고 있는 나스닥이 지난주 0.5%밖에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우리 팀으로서는 낮은 수익률이라고 해도 1.4%의 수익률을 일 년 동안 계속 유지한다면 일 년 수익률은 200%가 넘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 내가 다루는 투자금이 커진 상태였다.
4월에 투자한 이후로 러시아에 계속 묻어두고 있는 홍콩 부호들의 투자금을 제외하더라도···.
매주 우리가 매매하는 투자금은 2억 5천만 불이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매각하고 매수를 거의 반복적으로 하고 있으니 거래대금은 5억 불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매매수수료가 0.5%라고 해도 이백오십만 불이었다.
그중 예전의 내 몫이었던 우리 팀이 받는 성과급이 오십만 불, 현재도 공식적으로 소속된 아시아팀 전체 몫이 오십만 불이었다.
단순 계산으로도 일 년에 이천오백만 불이었다.
우리 팀을 제외하고 아시아팀원의 팀원 숫자라고 해봐야 서른 명 정도였다.
이대로라면 팀이 분리되지 않으면 내년에 한 사람당 많게는 백만 불 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이건 우리 팀 수익률이 0.5%여서 투자금이 전혀 늘지 않을 때 금액이었다.
이대로 아시아팀에서 독립하지 못한다면 아시아팀의 다른 팀원들은 말 그대로 돈벼락을 맞을 상황이었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그런 돈벼락을 안겨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직 그나마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이 적을 때 독립해야 했다.
나는 리안을 바라보았다.
"팀 분리 문제가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 알고 있어?"
내 말에 리안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다른 사람들은 찬성했는데 부사장인 한 지엔핑(Han Jianping, 韓建平)이 반대하고 있어."
한 지엔핑은 중국 본토 쪽 사람으로 아시아 투자팀의 부서장이었다.
중국의 어느 파벌이라기보다는 계파색은 조금 엷었다.
"이유가 뭔데? 한 지엔핑은 어차피 아시아팀 부사장이니 우리가 독립해도 본인 성과에는 차이가 없잖아?"
내가 물었다.
"뭐긴 뭐야···. 중국 쪽 사람이니 팀에 있는 웬 지하오 팀장이나 장샤오이 부팀장의 눈치를 보는 거지. 우리가 분리되면 당장 두 사람이 받는 거액이 날아가잖아. 지금 직책상 팀장과 부팀장이라서 다른 사람보다 배는 더 받을 텐데···. 그나마 예전에는 장샤오이 부팀장 눈치만 봤는데 지금은 웬 팀장이 저우정이라는 끈을 잡아서 눈치를 볼 사람이 늘었지."
"아니 부사장이라는 사람이 팀장이나 부팀장 눈치를 본다는 말이야?"
내 말에 리안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어울리지 않게 순진한 소리를 하고 있어. 직책이 무슨 상관이야. 권력과 얼마나 가까운지가 중요하지. 부사장보다는 당연히 태자당의 공주님이 더 강하고 상하이방 실세 측근이 당연히 더 강하지."
"그래서···. 팀 분리는 어렵다는 거야? 너 류오린 대주주라면서 그 정도도 못 해?"
"내가 대주주 중 하나지 유일한 대주주는 아니잖아. 그나마 회사 절반은 중국 본토 지분인데 그 지분을 관리하는 게 바로 한 지엔핑이야. 나보다 지분이 더 많다고 봐야지."
내가 웬 지하오를 피한 것은 그가 내 상사로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계속 내가 상사로 모셔야 한다면 단순히 피하는 것으로는 해결될 수 없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카이 황이 물었다.
"팀 분리가 안 되면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글쎄요···. 아무래도 AAM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W&R이나 러시아 투자회사는 팀에서 분리해야 하겠죠. 이대로 남 좋은 일 시킬 생각은 없으니까요."
AAM의 투자금은 제외한 팀의 투자금은 2억 5천만 불···.
이 정도 금액이라면 지금 류오린에 내는 0.5%보다 훨씬 낮은 0.25% 정도의 매매수수료로 받아줄 투자회사가 홍콩에는 널리고 널렸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내가 W&R을 류오린에서 관리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나가봐야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었다.
분리한 후에 0.5%의 매매수수료 중 내가 0.1%를 받고 나머지 0.1%도 팀 내에서 나눠 가지게 된다면 류오린에 내는 매매수수료는 0.3%로 다른 회사에 갔을 때의 0.25%와 별 차이가 없었다.
투자금을 류오린에서 빼내게 되면 투자나 지금 관리하는 것이 지금보다 훨씬 어려워질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방법을 찾으면 됐다.
잠시 내 눈치를 보던 카이 황이 입을 열었다.
"계획대로 팀 분리를 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방법이 있어요?"
나는 기대에 찬 눈으로 카이 황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