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몽
# 적당함을 모르는 것만큼 해로운 것은 없다.
사람들의 시선에 카이 황에게 향했다.
"현재 아시아팀에서 문제가 되는 사람은 장샤오이 부팀장입니다."
카이 황이 말했다.
"웬 지하오 팀장은요?"
내가 물었다.
"글쎄요. 리안···팀원은 웬 지하오 팀장에 대한 배려도 한 지엔펑 부사장 결정에 영향을 줬다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카이 황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말은 돌려서 이야기했지만, 카이 황이 리안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한 셈이었다.
무엇보다 나도 리안과 비슷한 생각이었기 때문에 카이 황을 말은 뜻밖이었다.
"그래요? 내 생각에는 태자당 출신인 장샤오이 부팀장보다 웬 지하오 팀장이 더 내가 자신의 팀에 남기를 바랄 것 같은데요?"
"물론 장샤오이 부팀장보다는 웬 지하오 팀장이 팀 분리를 반대하고 있겠지만 한 지엔펑 부사장이 웬 팀장을 신경을 쓸 거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웬 팀장이 상하이의 저우정이 끈을 잡았다면서요? 저우정이 정도면 상하이방 핵심 중 하나 아닌가요?"
내 질문에 카이 황이 미소를 지었다.
"혈연으로 엮는 태자당을 제외하면 공청단이든 상하이방이든 공산당원이자 관료들입니다. 본토는 재력보다 권력이 더 우위에 있습니다. 당연히 정우정이는 상하이방의 핵심이 아닙니다. 상하이방에서 부리는 개라면 모를까요."
"개요?"
"정확하게는 주구(走狗), 즉 사냥개에 불과하죠. 쓸모가 없어지거나 필요에 따라서 언제든지 희생시킬 수 있는 그런 사냥개요. 설사 저우정이가 사냥개가 아니라고 해도 차이는 없습니다. 웬 지하오 팀장은 절대 이번 일을 저우정이에게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세요."
"예. 웬 지하오 팀장이 어떻게 저우정이라는 끈을 잡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우정이가 상하이방의 사냥개라면 웬 지하오 팀장도 저우정이에게는 사냥개에 불과합니다. 사냥개가 제대로 된 사냥도 하기 전에 주인에게 요구부터 하면 어떤 주인이 그런 사냥개를 부리겠습니까?"
"그래서 결국 팀 분리에 문제가 되는 사람은 장샤오이 부팀장이라는 말씀이군요."
내 말에 카이 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들으니 장샤오이 부팀장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알겠습니다. 그럼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요?"
내가 카이 황을 보며 물었다.
"그야···. 팀 분리에 대해서 장샤오이 부팀장의 허락을 받아야지요."
"그러니까 그 허락을 어떻게 받느냐고요?"
카이 황에게 되물었다.
장샤오이를 설득하는 일이 쉬워 보이지 않았다.
뭔가 아쉬워야 설득하기 쉬운데 장샤오이는 별로 그런 점이 없었다.
이 대화를 옆에서 보던 리안이 웃음을 참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뭐지 이 분위기는?'
조금 분위기가 묘했다.
"당연히 네가 가서 말해야지. 나도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장 부팀장이 네 팬이었다더라고···. 너에게 이미 말했다고 하던데?"
"···."
리안의 말에 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리안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내가 풋볼에 관해서 관심이 없어서 몰랐는데 너 대학교 때 쿼터백으로 유명했다면서? 장 부팀장이 기사 보여줬는데···. 너 드래프트에 참여하지 않는 게 기사도 났었더라. 에이전트라는 사람이 네가 부상으로 풋볼에서 은퇴하고 인터뷰 기사까지 있던데···. 너 에이전트까지 고용했었냐?"
부상은 없었다.
풋볼에서는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하고 잘해도 최고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서 그만둔 것뿐이었다.
대신 CIA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들였다.
CIA는 예전부터 외국에 연고가 있는 우수한 미국 시민권자 스카우트에 적극적이었다.
"에이전트는 드래프트 전후해서 일시적으로 고용했었던 거야."
"부상? 부상은 다 나은 거야?"
"일상생활에는 문제가 없어. 과격한 운동만 하지 않으면···."
나는 말을 멈추고 리안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풋볼에 관심도 없다면서 그 이야기는 그만하자."
"왜 그래. 나도 영국에 있을 때 럭비는 해봐서 미국 풋볼에도 관심을 가지는 것뿐인데···."
"좀 그만···!"
나는 리안의 말을 끊고는 카이 황에게 고개를 돌렸다.
"장 부팀장이 돈에 대한 욕심을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예전 팬이라는 이유만으로 거액을 포기할 것 같지는 않은데요?"
장샤오이는 이전에도 나에게 몇 번 접근했었다.
팬이었다고 말하며 노골적으로 호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나는 장샤오이가 나에 대한 호감 때문만으로 접근한다고 믿지 않았다.
태자당이 물론 중국의 기득권층의 기득권층이지만 내부에서도 경쟁이 치열했다.
장샤오이가 그렇게 단순한 사람이라면 태자당을 대표해서 홍콩으로 나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물론 그렇습니다."
카이 황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계속 말했다.
"그래도 제가 아는 장 부팀장이라면 적당한 조건에 거래에 응할 것입니다. 태자당 중에서도 이른바 혁명원로들의 후예라는 홍이대(紅二代)의 사고방식은 '강산사유(江山思維)'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선대가 싸워 얻은 강산은 후대가 차지하는 것이 마땅하다(老子打江山 兒子坐天下).'라는 생각이지요. 본인들이 중국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단기적인 이익보다는 좀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장 내년에 받을 수 있는 돈보다는 적당한 조건으로 거래를 통해 팀장님과의 관계를 더 중요시할 것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일이지만 무슨 개인기업도 아니고 혁명원로의 자식이라고 중국이 자신들의 것으로 생각한다는 홍이대의 생각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이게 꼭 중국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미국도 미국 독립전쟁에 관여하고 미국 독립선언서에 참여한 정치인들을 뜻하는 이른바 '미국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 of the United States)'이 미국인에게 가장 존경을 받는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이백 년도 훨씬 지난 지금도 이들의 후손들은 미국 내에서 이런저런 우대를 받고 있었다.
물론 시간이 흐른 만큼 중국의 홍이대처럼 대놓고 이권에 개입하거나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비교적 근대가 늦은 아시아나 아프리카 유력 정치인들 상당수가 홍이대와 비슷하게 부모들에게 재산과 인맥 그리고 권력을 물려받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죠. 장 부팀장의 반대만 없으면 되는 것입니까?"
카이 황이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진짜로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사람이 한 사람 남았죠."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또 있다는 말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리안이나 카이 황은 한 지엔펑 부사장이 예정된 팀 분리를 미루고 있는 이유가 장샤오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리안의 말이 아니더라도 나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애초에 팀 분리를 처음 계획하고 추진했던 사람이 바로 한 지엔펑 부사장이었다.
그런데 그 장샤오이를 설득한 이후에도 이야기를 나눠야 할 사람이 또 있다니?
"다른 사람이 또 있다는 말입니까?"
"당사자가 남았죠. 한 지엔펑 부사장과도 이야기해야 합니다."
"한 지엔펑 부사장도요? 팀이 분리되더라도 여전히 한 지엔펑 부사장 소속인데 도대체 왜···?"
골치가 아팠다.
무슨 산 넘어 산도 아니고 팀 분리가 이렇게 어렵다는 말인가?
내가 팀을 억지로 분리하는 것도 아니고 팀 분리는 원래부터 예정되어 있던 일이었다.
리안을 통해서 내가 한 일이라고는 팀을 분리할 때 따로 팀을 만든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 계획된 팀 분리를 위해서 이렇게 사람들과 협상을 하고 거래를 해야 한다니···.
"단순 계산으로도 팀이 독립하면 우리 팀이 추가로 얻게 되는 이익이 몇천만 달러입니다. 이런 거대한 이권을 단 두 사람과 협상과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지금뿐입니다. 이대로 한 달만 지나면 설득해야 할 사람이 두 손으로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날 겁니다."
카이 황의 말을 듣고 보니 그 말이 맞았다.
수천만 달러가 걸린 일이었다.
이 정도면 해결할 수 있다면 오히려 다행이었다.
카이 황의 말이 이어졌다.
"진작에 이야기를 해두어야 하는데 기회를 놓쳤습니다. 변명하자면 처음에는 운용하는 투자금의 규모나 계약 조건을 제가 잘 몰랐습니다. 더구나 팀장님이 자주 자리를 비우는 일이 많아서 조언할 기회도 놓쳤고요. 무엇보다 이런 수익률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은···."
카이 황의 사과에 나는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조금 전에 하신 말씀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이러다가 일 년 후에 계약을 해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지금 상황은 나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반년을 에디 미첼과 주식매매를 하면서 내가 투자자로서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더구나 급격히 투자금이 커진 것은 선물과 옵션 투자에서 대박이 난 이후였다.
문제는 점점 더 내 투자가 류오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부분이었다.
내가 내는 매매수수료가 류오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금도 상당했다.
일 년 후에 류오린이 나를 깨끗하게 보내줄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그건 걱정할 것 없을 거야."
리안이 말했다.
"그렇게 생각해?"
"당연하지. 너 류오린이 뭐 하는 회사인지 잊었나 본데···. 이 회사는 회사 자체로 이익을 내려고 만든 회사가 아니야. 류오린은 동남아 화교와 중국 본토의 권력자들이 홍콩 유력자들을 매개로 인맥을 나누기 위한 통로일 뿐이야. 이익도 많이 나면 좋지만, 보안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회사지. 네가 홍콩의 수많은 투자회사 중에서 하필 류오린으로 온 이유도 그런 이유 때문 아니야?"
"아!"
내 입술에서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류오린은 기본적으로 해외 화교 자본을 중국 본토에 투자하는 회사이지만 그 과정에서 중국 유력 정치 세력들과 깊숙이 연관된 회사였다.
매출액이나 거래가 상당히 불투명했다.
류오린의 거래 중 상당수는 몇 단계 유령회사를 거쳐서 이뤄진다.
에디 미첼이 류오린으로 나를 보낸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였다.
류오린에서 나와의 거래를 미국이나 유럽의 증권감독 기관의 눈을 피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류오린이 홍콩 금융회사 중에서 가장 잘하는 것이 바로 그런 일들이야. 지금도 류오린 내 한쪽에서는 네가 거두는 수익률을 외부에 숨기느라 열심히 작업하고 있을 걸···. 너를 엄청나게 욕하면서 말이야. 지금은 그나마 회사 역량으로 감당할 수 있고 막대한 이익이 나는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지만···. 글쎄 내가 보기에는 내년에는 한계에 부딪힐 가능성이 커. 그 후에도 너를 잡아놓으려고 하면 그건 욕심이지. 족함을 모르는 것만 한 해로움도 없다잖아."
족함을 모르는 것만 한 해로움도 없고 탐욕만 한 죄악도 없다(禍莫大於不足咎莫大於欲得).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말이었다.
좋은 말이지만 썩 공감이 가는 말은 아니었다.
나는 세상을 움직이고 세상을 발전시키는 것은 탐욕, 즉 욕심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를 이긴 이유라고 생각했다.
"리안 네가 그런 생각하는 줄 몰랐네. 내년에 류오린에서 같이 독립하자고 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내 말에 리안이 발끈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뭔 소리야! 나를 떼어놓고 너 혼자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욕심을 죄악이라면서?"
"너 모르나 보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은 다 죄인이야. 그리고 이왕 죄인이라면 돈 많은 죄인이 낫지."
나는 리안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류오린을 나갈 때 리안은 당연히 같이 나갈 생각이었다.
돈이 관계된 문제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적었다.
리안을 알게 된 것을 일 년이 안 됐지만 아직은 믿을 수 있었다.
더욱이 내년에 류오린을 나간 이후에 투자자를 계속하려면 회사를 앞에서 끌고 갈 사람이 필요했다.
나는 계획대로 CIA를 그만두게 된다고 해도 나는 한동안 전면에 나설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간판으로 리안은 완벽한 사람 중 하나였다.
"자자, 부서 독립 문제는 그 정도로 정리하고 이제 진짜 회의를 시작하죠."
나는 손뼉을 쳐서 팀원들의 생각을 투자에 관한 주제로 환기했다.
약간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던 리안을 비롯해 팀원들의 표정이 진지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