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몽
# 안전이 우선이다.
나는 팀원들을 보며 한번 둘러보고 지난주 투자실적이 나와 있는 보고서를 집어 들었다.
"우선···. 보고서를 보시면 지난주 W&R은 투자로 삼백만 달러로 약 1.45%의 수익률을 기록했습니다. 높은 수익률은 아니지만, 지난주 전반적으로 시장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수익률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지난주 투자결과는 빠르게 이야기하고 넘어갔다.
비교적 수익률도 크지 않지만, 브레이크를 배려한 진행이었다.
브레이크는 경우 크지는 않지만, 터키 투자에서 손해를 봤다.
이런 내 행동에 고마웠는지 브레이크가 살짝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현재 W&R의 총투자금은 앞서 말한 것처럼 삼백만 달러 늘어서 이억천만 달러입니다. 어제 연준의 금리 인하가 발표되어 시장 전망이 좋으므로 고정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나스닥, 닛케이, 코스피 모두 상승 포지션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투자금은 나스닥 선물에 일억 달러, 닛케이 선물과 코스피 선물에는 각각 이천이백만 달러씩 투자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천만 달러를 대만에 투자할까 합니다."
나는 말을 잠시 멈추고 리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리안 팀원께서는 예전에도 대만에 여러 번 투자하신 경험이 있으니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내 질문에 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대만에 투자하는 이유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선물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슨 이유로 투자하시는지 알아야 종목을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리안이 투자하는 이유를 물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일단 나스닥이 상승하면 대만의 기술주도 동반 상승할 가능성이 크고···. 이다음 주에 미국 정부에서 대만의 천슈비엔 총리와 티베트의 달라이라마를 백악관으로 초청해서 만찬을 벌일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까?"
"미국에 있을 때 확인한 내용입니다. 천슈비엔 총리를 초청하는 것은 미국이 중국에 대만을 건드리지 말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니 주가 상승에 꽤 도움이 될 것입니다."
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티베트나 대만 모두 중국이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지역이었다.
미국 정부는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느낌이었다.
이게 내가 홍콩에 머물러서 느끼는 기분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이난섬 사고 이후 중국의 고립이 부시 대통령의 중요한 외교정책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정치적인 문제를 제외하면 천슈비엔 총리의 백악관 방문은 나스닥 상승에 못지않게 대만 증시의 호재였다.
나는 브레이크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 투자금도 전보다 늘어났으니 러시아와 동유럽에 대한 투자금을 늘릴 생각입니다."
내 말에 브레이크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지난주에 터키 투자에서 손해가 있었지만, 손해도 크지 않고···. 무엇보다 러시아와 동유럽에 대한 지금까지 수익률은 닛케이나 코스닥을 능가합니다. 투자금을 육백만 달러 정도 늘여서 총투자금을 삼천만 달러로 늘리려고 하는데 브레이크 팀원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야 당연히 좋습니다. 지난주에는 터키에서 손해가 있었지만 다음 주 전망은 좋습니다. 특히 얼마 전 발표된 폴란드의 경제성장률이 점차 개선되고 있고 무엇보다 독일의 직접투자로 보유 외환이 인근의 체코나 헝가리의 두 배가 넘고 러시아보다 많습니다."
"그럼 삼천만 달러로 동유럽에 대한 투자금을 늘리도록 하겠습니다."
브레이크가 노골적으로 기쁜 표정을 지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는 반응이었다.
투자금이 늘어나는 것은 곧 거래금액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하고 그건 곧 류오린이 받는 매매수수료 증가와 함께 브레이크가 받는 성과급도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카이 황을 바라보았다.
"AAM 투자금은 절반씩 나눠서 닛케이와 코스피 선물에 투자해 주세요."
AAM의 투자금은 특별한 분석 없이 W&R 투자에 맞춰서 같이 투자하고 있었다.
새롭게 투자 대상을 늘리기에는 네 명이라는 팀원으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회의가 모두 끝났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리안의 진지했던 표정이 평상시로 돌아왔다.
"장 부팀장은 지금 만나러 갈 거야?"
"주말 정도에 오늘은 피곤해서···."
"장 부팀장이 네가 오기를 많이 기다릴 것 같은데?"
"나 오늘 뉴욕에서 16시간이나 비행기를 타고 막 도착했거든···."
나는 리안을 노려보았다.
리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하긴···. 미남계를 이용하려면 피곤한 모습보다는 생생한 모습으로 만나는 것이 낫지."
"너···."
"아! 대만 주식을 사려면 서둘러야겠네."
리안이 몸을 피하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리안을 보며 고개를 젓고는 바로 옆 카이 황의 자리로 걸어갔다.
카이 황은 컴퓨터로 이력서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이야기했던 사무직 직원 추천 명단을 정리하는 듯했다.
카이 황이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나를 바라보았다.
"내일까지 팀에 추천할 만한 류오린의 사무직 직원 명단을 정리해서 보고하겠습니다."
"그건 알아서 해주시고요···."
"추가로 지시하실 것이 있으십니까?"
"예."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주말에 한 지엔펑 부사장을 만나서 그쪽이 뭘 원하는지 알아봐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직접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그게 나을 것 같아서요."
카이 황이 단순히 류오린의 말단 직원이었다면 내 지시는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부사장을 만나서 요구조건을 알아 오라니···.
그렇지만 우리 팀 내에서는 물론이고 류오린 내에서도 아무도 카이 황을 말단 직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건 리안이 단순한 팀원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였다.
몇 주 전에는 다른 팀의 팀장급이 카이 황에게 먼저 인사를 하는 것도 본 적이 있었다.
카이 황도 그 인사를 자연스럽게 받았다.
카이 황이 자세를 낮추는 것은 리안과 같이 있을 때뿐이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카이 황도 굳이 거절하지는 않았다.
그도 이번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돈을 요구한다면 적당한 금액까지는 알아서 처리하고 저에게 이야기해주세요."
지금 상황에서 가장 깔끔한 것은 한 지엔펑 부사장이 돈을 요구하고 그 돈을 주는 것이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일을 하면서 느끼는 점 중 하나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가장 간단하고 깔끔하다는 사실이었다.
만약 명예니 체면이니 혹은 신념 같은 것이 문제가 되면 일은 아주 복잡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알겠습니다."
"팀 분리가 무산되면 W&R 자금을 다른 회사로 옮길 생각입니다. 오늘부터 그 투자금을 맡아줄 투자회사를 조용히 알아봐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아시겠지만 2억 불이라는 거액이라면 금방 소문이 날 것입니다."
은밀히 알아본다고 해도 2억 불이었다.
아무리 홍콩이 아시아 투자의 중심이라고 해도 이 정도 거액을 맡기려고 한다는 사실이 비밀이 될 수는 없었다.
"상관없습니다."
내가 말했다.
여유가 있는 내 표정에 옆에서 듣고 있던 리안이 입을 열었다.
"비밀을 지킬 필요는 없다는 말이군. 한 부사장을 압박하려는 거야?"
"겸사겸사···."
예전 왕 웬준을 압박할 때도 사용했던 방법이었다.
그날 저녁 장샤오이에게 전화해서 토요일에 약속을 잡았다.
***
토요일 내가 장샤오이를 만다는 것은 란콰이퐁에서 유명한 레스토랑 겸 클럽인 드래곤 아이였다.
드래곤 아이는 점심때는 딤섬 뷔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곳을 약속 장소로 정한 것은 장샤오이였다.
가게에 도착했을 때 장샤오이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어서 오세요!"
장샤오이가 나를 반갑게 맞았다.
장샤오이는 정장이었던 회사에서와는 달리 가벼운 옷차림이었다.
날씨를 생각하면 이해가 가는 복장이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조금 의외였다.
"아, 예."
나는 어색하게 손을 들었다.
가벼운 장샤오이와는 달리 나는 협상을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입고 있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장샤오이는 물론이고 손님 대부분이 가벼운 옷을 입고 있었다.
뻘쭘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장샤오이는 마치 메뉴에 있는 모든 딤섬을 먹어보겠다는 듯 여러 종류의 딤섬을 주문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여러 종류의 딤섬을 주문했다.
어느 사이에 우리 둘은 대화 없이 딤섬을 먹는 데 집중했다.
홍콩에 머물면서 나도 딤섬을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메뉴판에 있는 거의 일 년 동안 홍콩에 머문 나도 모르는 딤섬이 많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내가 먼저 용건을 꺼냈다.
"제가 오늘 만나자고 한 것은 회사 일로 장샤오이 부팀장님께 양해를 구할 것이 있어서입니다."
"부팀장이라고 부르니 제가 나이가 많은 것처럼 느껴지네요. 회사 밖이기도 하고 제가 후배이기도 하니 편안하게 부르세요."
장샤오이가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그럼 장 소저(小姐)라고 부르겠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후배이기도 하고 나이도 어리고 매매(妹妹)라고 불러주셨으면 좋겠는데···."
"다음에 밖에서 다시 만날 일이 있으면 그때 장 매매···라고 부르죠. 오늘까지는 그냥 장 소저라고 부르겠습니다. 일 때문에 만난 것이기도 하니까요."
"저는 아닌데···. 그렇게 말씀하시니 다음 만남이 기대되네요."
장샤오이가 미소를 지었다.
매력적인 미소였다.
그 미소를 보며 이렇게 밖에서 둘만 만나는 일은 피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빠져들 것 같은 미소였다.
장샤오이의 외모가 내 이상형이었다.
그렇지만 배경을 생각하면 사적으로 가까워지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나는 서둘러 일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오늘 장 소저를 밖에서 만나자고 한 것은···."
내가 이야기를 다 꺼내기도 전에 장샤오이가 입을 열었다.
"예정됐던 팀 분리가 늦어지는 것에 대한 일을 의논하자는 것 아닌가요?"
"맞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장샤오이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실 줄 알았어요.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성과급 때문에 저도 고민이 좀 있었어요."
"그렇습니까?"
"예. 저는 분리되기를 바라고 있지만 제 소속이 될 팀원들은 좀 생각이 다르더라고요. 아시겠지만 분리 후 제 팀에 들어올 직원들은 예전부터 팀에 있던 예전에는 여기 있는 에드릭 선배님이나 리안 팀원의 동료였던 분들이에요. 팀장이 될 저로서는 대놓고 성과급이 지급된 것 때문에 타격이 좀 있어요. 부하가 될 팀원들이 분리를 원하지 않는 상황이 된 셈이니까요."
장샤오이가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녀의 말은 내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였다.
생각해보니 분리 후에 웬 지하오 팀에 들어갈 사람들은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본토에서 온 직원들이었다.
이번 성과급 지급 대상이 아니었다.
물론 그들도 성과급이 지급됐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직접 돈을 받은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온도 차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나서서 팀 분리를 추진할 수는 없었어요."
"본의 아니게 폐를 끼친 셈이네요."
내 말에 장샤오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한 일도 없이 돈만 받으려고 하는 생각이 잘못된 거죠. 그렇지만 워낙 큰돈이 걸린 일이니 이해가 가는 일이죠."
잠시 나를 바라보았던 장샤오이가 말을 이었다.
"시간이 더 지나서 만약 지금 그 팀이 받는 성과급 규모가 알려진다면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거에요. 이번 달이 되기 전에 팀을 분리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웬 팀장의 팀원들이나 제 팀원들 모두 에드릭 선배님의 눈치만 보게 될 거에요. 자신에게 수십 수백만 달러를 벌어줄 사람이니까요. 이대로라면 웬 팀장이나 저는 팀장이고 부팀장이지 허수아비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예요."
나는 장샤오이의 말에 당황했다.
팀 분리에 대한 그녀의 동의를 얻기 위해 나온 자리에서 오히려 팀 분리를 상대가 먼저 주장하고 나오는 상황이었다.
"그럼 팀 분리를 서둘러 하자는 말씀이시죠?"
내가 혹시나 해서 되물었다.
"당연하죠. 이미 한 지엔펑 부사장님께도 비공식적으로 말씀드린 상태에요. 그게 선배님도 원하시는 것 아닌가요?"
말을 마친 장샤오이가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미소는 이전과는 달랐다.
마치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다 알고 있었다는 듯한 의미를 담고 있는 듯했다.
지금까지 내게 한 말에는 어느 정도 진실도 들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나에 대한 배려인 듯했다.
"그렇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카이 황이 만나고 온 한 지엔펑의 요구는 본토에 있는 자기 아들 취업 청탁이었다.
그리고 카이 황이 리안이 소유한 빌딩 관리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으로 해결했다.
다음 주 아시아를 총괄하는 한 지엔펑 부사장은 전격적으로 팀 분리를 발표했다.
하지만 나는 발표를 직접 보지 못했다.
발표된 시간 나는 인도네시아에 있었다.
지난 일본과 필리핀에서의 성과를 높게 평가한 CIA 본부에서 에이전트 에스팀에 인도네시아에 파견 지시를 내린 것이다.
이번에는 목표는 인도네시아의 와히드 대통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