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81화 (82/270)

서몽

# 바보를 시장에 보내면 돌아왔을 때도 여전히 바보일 뿐이다.

"진심이십니까?"

리안의 질문에 카이 황은 놀라서 되물었다.

옆을 보니 리안 도련님도 자신과 비슷하게 놀란 표정이었다.

이천이백육십만 달러에 지분 10%를 주겠다는 에드릭 팀장의 제안은 그 정도로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생각하면 상식을 벗어난 제안이었다.

단순 금액으로만 생각하면 이천이백육십만 달러가 W&R의 투자금 이억이천육백만 달러의 십 분의 일, 즉 10%인 것은 맞았다.

그렇지만 이억이천육백만 달러는 현금성 자산이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W&R의 투자금이었다.

이런 회사의 지분을 원가에 내준다는 의미였다.

카이 황이 생각하기에 W&R 지분 10%의 가치는 회계사 자격이 있는 그로서도 앞으로 어느 정도의 가치가 될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처음 리안 도련님에게 에드릭 팀장에 대해서 들었을 때는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안 도련님이 근무하는 곳이기는 했지만, 카이 황은 류오린에 대해 그렇게 좋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카이 황은 무슨 목적으로 만들어졌건 기본적으로 투자회사라면 냉정한 판단으로 금전적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류오린의 경영진들이나 주주들은 금전적 이익보다는 류오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중국본토의 인맥을 더 중요시했다.

유럽 투자은행계의 황제로 불리던 에디 미첼과의 거래로 사람을 채용하는 것까지야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그 거래 명세는 들을수록 한심했다.

리안 도련님의 말에 의하면 반년 동안 매번 거래할 때마다 투자금을 까먹기만 했다지 않은가?

이런 거래는 단기적으로는 회사 성과를 깎아 먹을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직원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었다.

알아보니 그럴만한 사정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변명은 되지 못했다.

더욱이 에디 미첼과의 거래가 없을 때는 근무 시간 내내 딴짓한다니···.

설상가상으로 그나마도 일주일에 적게는 하루 이틀에서 많게는 절반 이상 회사에 나오지도 않는다지 않는가?

말 그대로 조직의 썩은 사과라고 할 수 있었다.

리안 도련님의 말에 의하면 에드릭 팀장이 본격적인 투자를 시작한 것은 도이치뱅크의 에디 미첼이 사고로 죽은 이후였다.

지금은 죽은 왕웬준 전임 팀장의 실적압박으로 주식거래에 나섰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바보를 시장에 보내면 돌아왔을 때도 여전히 바보일 뿐이다.

그래서 옵션과 선물로 단기간에 팔천오백만 달러를 벌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에드릭이라는 사람을 높게 평가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에드릭이 생각보다는 나은 사람이라는 정도로 평가가 조금 올라갔다.

옵션과 선물 투자로 단기간에 팔천오백만 달러를 번 것은 단지 운이 좋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일이었다.

나스닥 선물과 옵션에서 그렇게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몇 달 동안 나스닥 지수 변동이 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변동성이 심한 장세에서 그런 높은 수익률과 거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에드릭이 선물과 옵션에서 거액을 벌어들인 만큼 누군가는 같은 금액을 잃었다는 의미였다.

그렇지만 이게 꼭 에드릭이라는 사람이 대단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만약 에드릭이라는 인물이 자신의 능력으로 그런 투자를 했고 뛰어난 투자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면 이런 일을 하기 위해 홍콩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당시에는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금융기관이나 투자은행가도 그런 실력을 갖춘 사람을 육 개월이나 허송세월하는 일에 투입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기본적인 소득세 조항조차 몰라서 막대한 세금을 내게 되는 상황을 보면서 굳어졌다.

그런 생각이 바뀌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카이 황이 에드릭이 뛰어난···

아니 옆에서 지켜 보고도 믿기 힘든 투자 감각을 지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W&R을 세운 다음이었다.

W&R을 처음 세울 때 투자금은 칠천만 달러였다.

그 칠천만 달러가 겨우 두 달이 지난 지금에 와서 이억이천육백만 달러가 되었다.

두 달 사이 3.23배가 늘어난 것이다.

지난 두 달간의 수익률은 223%였다.

믿기지 않는 수익률이었다.

옵션 시장에서 운이 좋아 몇십 배에서 몇백 배의 대박을 터트리는 사람은 항상 나온다.

처음 W&R을 세운 투자금을 대부분을 벌었던 옵션 투자는 운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난 리안처럼 몇 달 동안 지속해서 투자에 성공하는 것은 더는 운이 아니었다.

진짜 카이 황이 놀란 것은 AAM의 거래를 맡게 되면서부터였다.

자주 자리를 비우는 에드릭과 W&R의 거래를 전담하는 리안 도련님을 대신해서 맡은 것이었다.

그리고 리안이 W&R을 세우기 전부터···.

정확하게는 작년 연말 본격적으로 투자를 시작했다는 말을 리안 도련님에게 들었을 때부터 꾸준히 성공시켰다는 부분이었다.

수십 번의 거래를 꾸준히 성공시켰다면 그건 더는 운이 아니었다.

실력이었다.

물론 이런 투자 성공이나 수익률이 계속될 수는 없었다.

언젠가는 에드릭의 투자 그 자체가 시장의 영향을 줄 정도로 투자금이 커지게 되면 일주일에 1%의 수익률을 얻는 것도 힘들어질 때가 올 것이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이천이백육십만 달러가 이십억 달러의 가치를 될지 이백억 달러의 가치가 될지 몰랐다.

또는 언젠가 잘못된 판단으로 투자에서 손해를 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에드릭은 이제는 옵션에 투자하지도 않고 선물 투자에서 레버리지를 그렇게 많이 쓰지 않는다.

투자금이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한두 번의 투자 실수로 무너지지 않는다.

아니 설사 W&R의 운이 나빠서 투자금을 모두 날리더라도 에드릭이라는 사람 자체가 투자할 충분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에드릭 팀장은 시장에 간 바보 따위가 아니었다.

카이 황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에드릭이 입을 열었다.

"같이 일을 한다고 말을 하려면 10%는 줘야 하지 않겠어요? 이거 제가 엄청난 손해를 보면서 하는 제안이라는 사실 아시죠?"

에드릭의 말을 듣지 않더라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카이 황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리안 도련님에게 고개를 돌렸다.

리안 도련님에게는 일생의 기회라고 할 수 있었다.

아니 홍콩의 중국반환 이후 몰락해가던 가문의 기회였다.

숨을 죽이면서 힘을 키운다고는 하지만 지난 몇 년 사이 실제 가문의 영향력은 많이 줄어들었다.

2003년 중국 지도부의 교체 시기를 가문 재도약의 기회로 삼을 생각이었지만 다시 오기 어려운 기회였다.

"받아들이시죠."

리안 도련님을 보며 말했다.

"당연히 그래야겠지?"

당연히 리안 도련님도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에드릭 팀장을 말없이 바라보던 리안 도련님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다시 열었다.

"그런데 W&R의 투자를 실제로 한 것은 난데 그에 대한 인센티브 같은 것은 없는 거야? 카이 아저씨는 단지 사장만 맡으면 3%나 되는 지분을 주면서 말이야···. 나는 이천이백육십만 달러나 출자해야 10%의 지분을 준다니···. 에드릭, 너···. 실제 거래한 내 공으로 일 년 가까이 옆자리에서 함께 지낸 정으로 보나 이러면 안 되지."

리안 도련님이 웃으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물론 농담이었다.

리안 도련님도 에드릭 팀장이 큰 양보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곧바로 받아들이기에는 염치가 없었기 때문에 저런 말을 늘어놓는 것이다.

"그럼 너도 팀을 나가서 W&R로 지금 당장 이직하든가. 그럼 5% 지분을 주지. 그런데 그러면 내가 굳이 10% 지분 투자를 받을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어차피 네가 W&R에 가면 카이 황 씨도 거기서 일할 텐데 말이야."

에드릭 팀장이 미소가 짙어지더니 말을 이었다.

"생각해보니 그게 좋겠네. 나는 지분을 아끼고, 너는 한 푼도 투자하지 않고도 지분도 받고 말이야."

에드릭 팀장이 말을 마치고 나와 리안 도련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가 바보인 줄 알아. 알았어. 나와 카이 아저씨 모두 네 제안을 받아들일게."

리안 도련님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카이 황은 에드릭 팀장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처음부터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죄송합니다만···. 다음 주에 당장 이천이백육십만 달러를 현금으로 내는 것은 어렵습니다. 현금성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쓸 데가 있는 것이라서···."

카이 황이 지분 인수 대금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에드릭 팀장은 지분 10%를 기준으로 이천이백육십만 불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W&R의 투자 수익률을 생각하면 인수 대금을 늦게 내면 낼수록 내야 하는 대금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홍콩에 있는 리안 도련님 가문 재산은 상당수가 부동산에 묶여 있었다.

홍콩 부동산 경기가 회복되는 속도를 생각하면 급하게 처분하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무리하면 단기간에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큰 수익이 기대된다고 해도 현금성 자산을 모두 최대 지분 13%만을 가지게 될 W&R에 투자할 수는 없었다.

에드릭이 보여준 호의를 생각하면 인수 대금을 늦게 낸다고 해서 크게 문제 삼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계약은 정확히 하는 것이 좋았다.

카이 황의 말을 들은 에드릭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분 인수 대금은 현금이 아니라 부동산이어도 상관없어요.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 투자금 이천만 달러 정도 늘어난다고 해도 큰 영향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에드릭 팀장이 말했다.

그는 별 것 아니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고마워."

리안 도련님이 말했다.

고마워할 만한 일이었다.

W&R의 수익률을 생각하면 이천만 달러는 연말쯤에는 그 몇 배로 늘어나 있을 것이다.

반면에 홍콩 부동산 가격이 빠르게 회복된다고 해도 연말까지 몇 배로 오를 가능성은 작았다.

@@@

다음날.

에드릭은 류오린에 출근했다.

어제 홍콩에 도착해 카이 황에게 W&R의 대표를 맡기고 리안에게 지분 10%를 매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런지 마음이 가벼웠다.

카이 황과 리안이라면 홍콩에서 자신을 감추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부동산으로 출자해도 되냐는 카이 황의 제안은 오히려 리안으로서는 기다리던 제안이었다.

홍콩에서 부동산은 단순히 재산의 의미가 아니었다.

홍콩에서의 영향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홍콩 개항 이후 오랫동안 홍콩경제를 지배한 것은 자딘매디슨(Jardine Matheson)과 덴트앤드컴퍼니(Dent & Company), 허치슨왐포아(Hutchison Whampoa), 스와이어그룹(The Swire Group)같은 4대 영국계 무역상사였다.

하지만 중국본토의 경제가 성장하면서 중국본토에서 홍콩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점점 부동산이 홍콩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그리고 홍콩경제의 주도권은 4대 가문은 부동산개발사 청쿵부동산을 소유한 리카싱 일가와 부동산기업 헨더슨랜드(Henderson Land)의 리샤우키 일가, 순훙카이부동산(新鴻基)의 궈더성 일가, 신세계개발(New World Development)의 정위퉁 일가로 넘어갔다.

지금까지 W&R은 돈은 많이 벌었지만, 홍콩에서 직접적인 영향력은 전혀 없었다.

고용효과도 없었고 세금이 면제되는 해외투자가 대부분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적었다.

리안과 카이 황, 그리고 러시아에 투자한 홍콩 유지들을 통한 간접적인 영향력뿐이었다.

하지만 리안이 부동산을 투자하면 그 부동산을 생활 근거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영향력을 가지게 되는 셈이다.

이런 생각에 들뜬 기분으로 나는 류오린에 들어섰다.

그리고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팀 사무실로 가면서 사람들이 바라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지난번의 시선이 호의적이었다면 지금은 대부분이 적대적인 시선이었다.

저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볼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팀이 분리되어 성과급을 이제 받을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저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인가?'

사실이라면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내 덕분에 자신들이 받은 것이 그리 오래전이 아니었다.

그런데 내 덕분에 받는 돈을 받지 못하게 됐다고 저런 눈으로 바라보다니···.

문득 예전에 들은 성경 구절이 생각났다.

'떠나는 많은 사람은 은혜를 모른다. 그들은 오랫동안 자신들이 받은 것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사람 대부분은 그들이 받은 것에 감사하지 않는다.'

(잠언 17:13)

나는 그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내 팀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사무실에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내 팀원들이 나를 반갑게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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