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83화 (84/270)

서몽

# 사람들은 부자의 친구가 되고 싶어한다.

브레이크와 대화를 끝낸 직후 카렌이 보고서를 들고 왔다.

나는 회의를 시작하기 전 보고서를 확인해 보았다.

"회의시작하죠."

보고서를 다 확인하고 팀원들에게 회의 시작을 알렸다.

회의 탁자에 가보니 탁자 위에는 간단한 과자와 홍차가 놓여 있었다.

나는 팀원들이 자리에 앉자마자 곧바로 한 주간의 투자 결과를 점검했다.

"자세한 투자 내용은 보고서에 나와 있으니 회의는 간단히 진행하겠습니다. 우선 지난주 W&R이 위탁한 투자금의 수익률은 7.64%이고 AAM이 위탁한 투자 수익률은 11.42%입니다. 코스피가 지난 한 주 동안 8.8%나 급등해서 아시아 쪽의 수익률이 높았습니다. 결과적으로 W&R의 투자금은 이억이천육백만 달러로 늘었고 AAM의 투자금은 삼천사백육십오만 달러로 늘어났습니다."

갑자기 놀란 듯한 감탄사가 들렸다.

"아···."

나는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새로운 사무직원인 카렌이었다.

그녀는 우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투자 규모도 크고 수익률도 높아서···."

나는 그녀의 말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보고서를 준비할 때 이미 알고 있는 내용 아닌가요?"

내가 물었다.

"저는 그냥 출력만 했습니다. 보고서 내용은 읽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예, 그렇게 교육을 받아서···. 회의에 방해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나는 카렌을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아니요. 굳이 보고서 내용을 굳이 보지 않으려고 할 필요는 없어요. 사무직원도 같은 팀원인데 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아야죠. 다만···. 이미 비밀유지각서를 쓸 때 들었겠지만, 사무실에서 알거나 들은 정보는 밖으로 유출해서는 안 됩니다."

"알고 있습니다."

카렌이 고개를 끄떡이며 대답했다.

"사실 유출해도 되기는 해요."

"예?"

내 말에 카렌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유출 대가를 감당할 자신이 있으면요. 안 그래요?"

나는 카이 황을 바라보았다.

"괜한 말씀 하지 마십시오. 고용계약서에 정보를 유출한 것이 발각되면 아마 평생을 갚아도 감당하지 못할 배상규정이 포함되어있습니다."

나는 다시 시선을 카렌에 돌렸다.

"아까 내가 공이 있으면 보상이 확실한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한 가지 덧붙이죠. 나는 잘못이 있으면 그 잘못의 대가도 꼭 받아내는 사람이에요."

말을 마치고 나는 카렌을 바라보았다.

카렌이 내 시선에 고개를 숙였다.

"실수로라도 팀 내의 정보를 외부로 유출하는 일은 없기를 바래요. 저도 같은 팀원의 인생을 망치고 싶지는 않거든요."

카렌과 이야기를 하는 동안 사무실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내가 의도한 분위기였다.

오늘 회의는 나름대로 특별한 회의였다.

팀이 분리되고 정식으로 팀이 되고 난 후의 첫 회의였다.

그리고 카렌이라는 새로운 사무직원이 들어오고 준비한 첫 회의이기도 했다.

반면 카이 황이 팀에서 하는 마지막 회의였다.

이런 시기일수록 확실히 기강을 잡을 필요가 있었다.

카렌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이 투자정보를 유출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조금 전 나에게 잘 보이려고 하던 브레이크일 수도 있었다.

"이거 지난주 투자 성과도 나쁘지 않았는데 제가 너무 분위기를 어둡게 한 것 같네요."

"아닙니다."

앉아있던 리안이 입을 열었다.

"보안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죠."

"그렇게 이야기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나는 리안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이번 일로 카렌은 내 첫인상을 몹시 나쁘게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필요한 일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항상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가면 카렌은 이번 일에 대한 반감을 잊으리라 생각했다.

사람들은 부자의 친구가 되고 싶어 하니까.

"그럼 다음 한 주 투자 계획을 이야기하죠."

회의 분위기 어느 정도 전환되자 나는 계속 회의를 진행했다.

"우선 전체적으로 다음 한 주는 국제 금융 시장이 그리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최근 발표된 미국의 1분기 GDP 성장률도 1.3%로 낮아졌고 무엇보다 내구재 주문이 5% 이상 하락했다는 발표가 포함됐습니다. 금융시장에는 악재 중의 악재죠."

내구재란 일단 구매하면 3년 이상 오래 사용하는 제품을 말한다.

일반 소비자로서는 자동차,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같은 비교적 고가의 제품들이었다.

이런 제품들은 다른 상품에 비해서 가격이 비싸고 오래 사용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재산이나 수입을 신중하게 생각해 신중히 구매하는 경향이 있었다.

기업으로서는 내구재 주문이 줄어들면 생산설비에 대한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

결국, 내구재 주문이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은 미국의 기업이나 일반 소비자의 재정 상황이 좋지 않고 앞으로 경기 전망을 나쁘게 생각한다는 의미였다.

"다음 주 세계주가 전망이 나쁘겠군요."

리안이 말했다.

"맞습니다. 여기에 일본의 산업 생산성이 급락하고 반대로 실업률도 급증하고 있다더군요."

미국과 일본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 규모를 가진 국가 모두가 동시에 1분기에 경제 상황이 나쁘다는 통계를 발표했다.

증시전망이 좋을 리가 없었다.

"이런 정보들을 바탕으로 다음 주에는 나스닥 선물과 닛케이 선물 모두 하락 포지션에 잡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코스피는 생산성이 오히려 5% 이상 급등했다고 발표한 것을 고려해서 일단 투자를 상승 포지션에 잡았다가 시장 상황을 봐서 청산할지 유지할지를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가 지난주 동안 인도네시아에 갔다 온 것은 여러분 모두 아실 것입니다."

인도네시아라는 말에 리안이 표정이 어두워졌다.

"설마 인도네시아에 투자하실 생각입니까?"

리안이 물었다.

리안의 표정은 설마 하는 표정이었다.

"그렇습니다. 주요 기업 위주로 투자할 생각입니다."

내 말에 리안의 표정을 굳어졌다.

"텔레비전에서 폭도들이 서점을 돌아다니면서 책을 불태우는 곳에 투자하자고요?"

리안이 되물었다.

"지금 상황은 나쁘지만, 작년부터 인도네시아의 정치적 혼란의 중심이었던 와히드 대통령이 곧 자리에서 내려올 것 같습니다. 이런 분위기라면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입니다."

내 말에 리안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리안은 회의 중인 상황에서도 양손을 위로 들어 보였다.

말만 하지 않을 뿐 자신은 반대한다는 직접적인 의사표시였다.

"인도네시아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바꿀 생각 없습니다."

나는 딱 잘라 말했다.

"알겠습니다."

리안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리안 씨가 카이 황 씨가 지금까지 맡고 있던 AAM 투자를 함께 처리해주세요. 어차피 같은 곳에 투자하니 일은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 말에 리안이 나를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물론 AAM이 W&R이 투자하는 닛케이 지수 선물과 코스피 선물에 투자하는 것은 맞지만 분리된 계좌였다.

따로 매매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물론 전혀 다른 곳에 투자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일이 적다고 할 수는 없었다.

나는 리안의 눈을 피해 브레이크에게 시선을 돌렸다.

"지난주 투자 수익률이 10%가 넘더군요.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좀 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저는 숟가락만 얹은 것뿐입니다."

브레이크가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다.

"너무 자신의 실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좋지 않죠. 브레이크 씨는 충분히 실력을 보여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AAM의 자회사로 러시아에 투자하고 있는 RAM(Russia Asset Management)에 대해 아십니까?"

RAM은 리안의 고객이었던 홍콩 부호들에게 자금을 모아 만든 회사였다.

그들이 투자한 자금은 무려 오천만 달러였다.

나는 몇 달 전 그 자금을 관리하기 귀찮아서 모두 러시아 주가지수인 RTS ETF에 투자해 놓은 상태였다.

약간 억지로 맡게 된 투자금이다 보니 별 관심도 없었다.

RAM이라는 이름도 AAM(Asia Asset Management)의 자회사로 러시아에 투자한다는 의미로 별 생각없이 지은 것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저를 채용하게 된 계기라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그 RAM 투자금을 브레이크 씨에게 맡기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투자금 전액 전부 말입니까?"

"예."

브레이크의 눈이 커졌다.

그가 놀란 표정을 지을 정도로 RAM 투자금은 거액이었다.

RAM의 투자금을 브레이크에게 맡기려고 계좌를 확인하던 나는 깜짝 놀랐다.

처음 투자할 때만 해도 오천만 달러였던 RAM의 투자금은 몇 달 사이 약 육천삼백 달러로 늘어나 있었다.

수익률은 26%로 브레이크가 매주 열심히 밤도 자지 않으면서 거래해서 낸 수익률과 3~4%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나마도 저 26%는 수수료를 뺀 금액으로 실제 수익률 차이는 2% 이하였다.

심지어 브레이크는 많지는 않지만 레버리지를 사용한 수익률이었다.

나는 그 숫자를 보고서야 브레이크가 왜 이직을 거절했는지 이해가 갔다.

브레이크가 무능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높은 수익률은 그의 능력보다는 러시아 주식시장이 몇 달 동안 많이 오른 영향이었다.

그렇다고 브레이크가 능력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직접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면 류오린이나 홍콩부호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브레이크에게 RAM의 투자금을 맡기는 생각은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무슨 이유든 나에게 충성심을 보인 사람에게 보상해줄 필요가 있었다.

"지금 관리하는 투자금 삼천삼백만 달러와 RAM의 투자금을 육천삼백만 달러를 합치면 구천육백만 달러가 넘습니다. 하실 수 있겠습니까?"

"해보겠습니다!"

브레이크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 투자 회의를 마칩니다. 카이 황 씨를 제외한 다른 분들은 이제 가서 일 해주세요."

나는 마지막으로 카이 황에게 시선을 향했다.

"카이 황 씨는 저랑 이야기 좀 나누시죠."

카이 황이 일어나 내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제가 또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분 문제는 갔다 와서 변호사를 통해서 정식으로 처리하죠."

돌아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필리핀에서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CIA 본부가 아니라 예전 필리핀에서 같이 일을 했던 조엘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무슨 일인지는 정확히 알리지 않았지만 급하게 내 도움을 요청했다.

"지분 문제는 천천히 해주셔도 됩니다."

카이 황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로서는 대표가 되는 상황에서 굳이 서둘 필요가 없었다.

"W&R에 가시면 이 문제를 먼저 처리해주세요."

나는 책상에서 서류를 꺼내 카이 황에게 건네주었다.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만든 회사들의 명단과 계좌정보 중 일부였다.

"제 명의로 된 W&R의 지분 전체를 이 회사들로 분산해주세요. 회사 주주 명부와 저와의 연관성을 찾기 어렵게요."

내가 말했다.

지금은 W&R의 지분 전체가 내 명의로 되어 있었다.

본격적으로 W&R이 투자에 나서기 전에 그것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

"이미 사람을 보내 처리하는 중입니다. 늦어도 내일쯤에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카이 황이 말했다.

내 예상대로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을 거느리고 있는 듯했다.

리안의 재산을 감추는 일을 한 사람들일 것이다.

"좋네요. 그리고 제가 생각해 봤는데 W&R을 실체가 있는 회사로 만들려면 무엇보다 홍콩 증시에 먼저 투자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홍콩 증시에 대한 투자는 세금 문제 때문에 피하고 있었다.

홍콩 세법은 해외 증시에 투자해서 얻은 이익에 대해서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았다.

하지만 W&R을 통해 홍콩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홍콩 증시나 부동산에 대한 투자가 필수적이었다.

이미 지분 참여 형식으로 부동산에 투자하는 상황에서 증시에도 투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W&R의 이름이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반대로 나를 숨길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W&R의 대표는 카이 황이고 그가 리안 가문의 집사라는 사실은 홍콩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W&R은 내가 아니라 리안 가문의 회사로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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