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몽
# 불에는 불로 싸워야만 한다.
카이 황을 통해 네팔에 사람을 보내고 며칠이 지났다.
그리고 투자 회의가 시작되었다.
일본에서 돌아온 이후 출국도 하지 않고 별다른 일이 없었다.
그런데도 굉장히 시간이 빨리 간 느낌이었다.
네팔 왕실 사건이 터지고는 그에 관한 기사만 찾아본 느낌이었다.
하지만···.
네팔 사건은 리안의 말대로 투자에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사건일 뿐이었다.
네팔 사건과는 별개로 세계는 돌아갔고 그건 주가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투자결과를 발표한 것은 리안이었다.
"지난주 나스닥은 팀장님의 예상대로 다른 좋지 않은 경제지표보다 그린스펀 연준 의장의 추가 금리 인하를 고려하고 있다는 말이 더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일본과 한국은 미국 부시 대통령에 철강 불공정 관행에 대한 조사 지시가 영향을 줬고요. 결과적으로 나스닥은 6.4% 올랐지만, 일본 닛케이 지수는 2.4%, 코스피는 4.9% 내렸습니다. 대만은 반대로 3.2% 올랐고요. 나스닥, 닛케이, 코스피는 전처럼 100% 정도의 레버리지를 사용한 선물투자였고 대만에 대한 투자는 레버리지 없는 투자였습니다. 결과적으로 한 주간 천칠백만 달러를 벌어드린 W&R의 투자수익률은 11%가 조금 넘습니다. 브레이크 씨가 담당하고 있는 러시아와 동유럽 투자는 이천만 달러를 투자한 러시아가 3.8% 오르고 천만 달러를 투자한 터키는 9.8% 올라서 8.3%의 수익률을 기록했습니다."
리안의 발표가 끝나자 나는 손뼉을 치며 말했다.
"지난 한 주 두 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시장 상황은 혼란스러웠지만, 우리 팀은 지난주에도 좋은 성과를 거뒀습니다."
"모두 대표님의 정확한 판단 때문 아니겠습니까? 우리 모두 대표님께 손뼉을 쳐 드리죠."
브레이크가 말했다.
나는 손을 들어 손뼉을 치려던 사람들을 막았다.
"잠시만요. 전 팀장이지 대표가 아닌데요?"
내가 브레이크를 보며 말했다.
"아···. 워낙 팀이 회사와 따로 돌아가서 제가 실수를 했네요. 팀장님이죠. 팀장님."
브레이크가 말했다.
말과는 달리 실수를 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태연한 표정이었다.
'뭐야? 나중에 자기도 꼭 데려가 달라는 말인가?'
이때 리안이 끼어들었다.
"어쨌든 팀장님의 판단이 정확하셨던 것은 사실이니 우리 손뼉은 치죠."
짝짝짝!
박수 소리가 뒤따랐다.
나는 이상하게 엎드려서 절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지난주 투자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카이 황이 투자한 홍콩 항셍지수 선물투자도 대박을 터트렸다.
지난주 홍콩 항센 지수는 3% 내렸다.
주가가 레버리지를 10배나 사용했으니 무려 30%의 수익률을 기록한 셈이었다.
아마 이번 주가 지나면 W&R에 대한 소문이 홍콩 금융가에 퍼지기 시작할 거라고 카이 황은 예상하였다.
"자자···. 그럼 다음 주 투자 계획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약간 산만해졌던 회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다시 고조되었다.
지난 투자결과는 어차피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아는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다음 투자를 어떻게 이어갈 것이냐였다.
"우선 미국의 경우 며칠 후 있을 연준 회의에서 4월과 5월 정기 경제 동향 보고서가 발표될 예정입니다. 아무래도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아무래도 이번 회의에서 금리 인하가 발표될 가능성은 적겠죠?"
리안이 물었다.
"예. 제 생각도 비슷합니다. 아무리 지난주에 그린스펀 의장이 추가 금리 인하를 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하기는 했지만, 지난번 금리 인하를 한 이후 시간이 별로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아무리 시장이 예상하지 못하는 금리 인하를 발표하는 그린스펀이라도 이번에 금리 인하를 발표할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합니다."
금리 인하는 미국 연방준비이사회를 비롯한 중앙은행이 가진 가장 강력한 정책수단이기는 하지만 마구 써먹을 수 있는 수단은 아니었다.
금리는 내리다 보면 언젠가는 더는 내릴 수 없는 수준이 오게 마련이었다.
만약 그렇게 내렸음에도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연준으로서는 가장 효과적 수단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그 자체로 경제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사실상 제로금리인 일본의 중앙은행이 바로 그런 최악의 상황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그럼 다음 한 주는 나스닥이 다시 하락할 가능성이 크겠군요."
리안이 말했다.
경제지표가 나쁜 데도 지난주 나스닥이 급등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린스펀의 말에 대한 믿음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린스펀이라도 말만으로 나쁜 경제지표를 한순간에 바꿀 수는 없었다.
"맞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스닥은 하락 포지션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일본인데···. 냉정하게 말해서 일본 경제는 한동안 마땅한 반등할 요인이 없습니다."
"중의원 선거가 한 달 뒤인데 일본 고이즈미 총리가 뭔가 정책을 발표할 가능성은 없습니까?"
이번에는 브레이크였다.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경제 활성화 정책을 발표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브레이크의 질문도 그런 생각에서 나온 질문인 것 같았다.
"모르죠. 고이즈미 총리가 그런 발표를 준비하고 있을지···. 그렇지만 그렇다고 선거가 한 달 이상 남은 상황에서 정책을 발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더구나 일본 국민도 고이즈미 총리에게 그런 부분을 기대하지 않고 있을 것입니다. 국민이 고이즈미 총리에게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이유는 경제보다는 정치개혁에 관한 부분이니까요."
경기 활성화 정책을 발표해도 조금 선거 직전에 발표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 일본 증시 전망도 하락 포지션을 잡을 생각입니까?"
리안이 물었다.
나는 그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일본은 하락 포지션을 잡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한국인데······. 곧 있으면 아시아 국가의 무역수지 발표가 있습니다. 지난 분기 상황을 생각하면 이번에도 한국이나 대만 같은 아시아 신흥국가들이 대규모 무역흑자를 기록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한국 코스피는 상승 포지션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같은 선상에서 이번에도 대만 가권지수 상승을 예상해서 투자하도록 하겠습니다. 리안 씨가 그렇게 준비해주세요."
투자 계획을 이야기하고 나는 브레이크를 바라보았다.
"그럼 저도 팀의 투자 계획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 러시아 지수 하락 포지션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브레이크가 투자 방향을 이야기하고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였다.
한국과 대만과 같은 아시아 신흥국가가 대규모 무역흑자를 기록한다는 것은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그 액수만큼 무역적자를 기록한다는 의미였다.
러시아 주가지수는 미국 그리고 유럽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이렇게 투자 회의를 끝내죠."
나는 회의를 끝내고 자리로 돌아왔다.
카이 황에게 전화를 걸었다.
홍콩에 대한 투자 방향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에드릭입니다."
-회의는 끝난 것입니까?
"예."
나는 카이 황에게 회의결과와 함께 투자 방향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럼 홍콩은 어떻게 투자 방향을 정할까요?
카이 황이 물었다.
미국과 일본 유럽 주가가 하락하고 아시아 신흥국 시장이 상승할 것을 예상하는 상황에서 홍콩의 투자 방향을 잡기는 쉽지 않았다.
내가 미국 일본과 한국 대만에 대한 투자 방향을 정한 것은 꽤 오래되었다.
하지만 유독 홍콩에 대한 투자 방향만은 어려웠다.
"사실 홍콩의 투자 방향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습니다. 홍콩에 아시아에 속해 있기는 하지만 아시아 신흥국가들보다는 미국이나 유럽 그리고 최근에는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으니까요."
-그렇기는 하죠. 아시아 신흥국 증시가 오른다고 홍콩증시가 오르는 것은 아니니까요.
"무엇보다 지금은 W&R의 홍콩 투자가 실패해서는 안 되는 시점입니다. 지난주에 육백만 달러라는 큰 이익을 얻기는 했지만, 이번 주에 조금만 손해를 봐도 타격이 있을 것입니다."
W&R의 홍콩 투자가 가진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점이었다.
적어도 한동안 투자에 실패하면 안 된다는 것···.
-에드릭 팀장님은 작년 연말부터 투자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후 잘못된 투자를 한 적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그 판단을 믿고 투자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투자에서 대부분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투자하는 시점에 투자하는 국가에 특정 이슈가 있어서 실패하지 않을 방향으로 투자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홍콩은···."
-하긴 홍콩증시는 홍콩 내부 요인을 기반으로 투자하기에 적당한 곳은 아니죠.
"그렇습니다. 결국, 홍콩이 중국에 대한 투자창구이자 아시아 금융중심지라는 특징을 생각해서 투자해야만 하는데···. 이렇게 각국의 증시 전망이 엇갈리는 시점에서는 홍콩증시를 예상하는 것이 아직은 어렵습니다."
나는 지난주까지 홍콩증시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아직 홍콩증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조사가 부족했다.
-그럼 이번은 그냥 쉬죠. 때로는 투자를 쉬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않겠습니까?
카이 황이 말했다.
"아···."
그의 말대로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느 방향으로 투자해도 큰 이익이나 손해를 볼 가능성은 작았다.
그런데도 항상 이긴다는 평판을 유지하려면 쉬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죠."
나는 카이 황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회사를 새로 세우는 것이나 다름없어서 바쁜데 잘됐네요.
"참, 그리고 혹시 네팔에서 연락이 왔습니까?"
나는 네팔에 대해 조사를 지시한 일에 관해 물었다.
-조사를 지시한 것이 겨우 며칠 전입니다. 아무리 수도에서 벌어졌다고 해도 네팔의 교통 통신 상황이라면 이제 막 조사를 시작했을 시간입니다.
"제가 마음이 급했네요."
-이 사건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예. 뭐···. 그냥 그만큼 충격적이 사건이고 궁금한 것은 되도록 알아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서요.
사실은 아니었다.
어떤 일에 흥미를 느끼면 거기에 집중하는 성격이기는 했다.
그렇지만 포기도 빨랐다.
굳이 알 필요가 없는 일에 굳이 돈과 시간을 들여서 조사하는 일은 없었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네팔 왕가 사건에 CIA가 연관됐다는 의심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관심을 끊었을 것이다.
리안의 말대로 돈도 되지 않고 국제 정세에 영향도 줄 수 없는 네팔 사건에 관심을 가지느니···.
차라리 필리핀 인질 사건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아···! 그런 성격이라서 분석도 정확하신가 보네요. 제가 한 번 연락을 다시 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알아낸 내용만이라도 보고하라고요.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재촉하면 자칫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네팔에서는 가장 큰 문제일 텐데···. 조사하는 사람의 신상에 위험이 생길 수도 있고요.
-그도 그렇겠군요.
"여유를 두고 조사하라고 이야기해주세요. 조사하는데 필요한 경비는 충분히 지원해주시고요."
-알겠습니다. 그럼 보고가 올라오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생각난 김에 필리핀 인질 상황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필리핀 인질 사건은 내가 처음 듣고 예상한 거의 그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인질구출을 위해 투입된 필리핀군은 어설픈 작전으로 엄청난 인명피해를 입었다.
섣불리 접근하다가 저격수에게 필리핀군은 지휘관을 포함한 12명이 사살당하기도 했다.
이런 작전에 투입될 정도라면 나름 필리핀군에서 정예라는 것을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그나마 필리핀군의 물량 공세로 인질 중에서 8명이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물론 탈출한 8명 중에는 미국인이 없었다.
8명의 인질이 탈출했지만, 성공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문제는 그렇게 필리핀군의 구출 작전 과정에서 인질 8명을 놓친 이슬람 반군이 그다음 날부터 미친 듯이 날뛰고 있다는 부분이었다.
마을과 병원을 습격해서 새롭게 납치해간 인원이 수십 명이었다.
이슬람 반군은 자신들이 납치해 간 인원이 100명이 넘는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필리핀군은 30명이 안 된다고 발표였지만 속수무책으로 납치를 당한 것은 필리핀군의 치욕이었다.
사태가 이 정도까지 진행되면 이슬람 반군은 물론이고 필리핀의 아로요대통령 또한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협상이 시작되기까지는 최소 몇 개월은 걸릴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슬람 반군으로서는 또다시 인질구출 작전을 막을 필요가 있었다.
이런 내 예감은 며칠 후 그대로 사실로 드러났다.
바로 이슬람 반군이 납치한 미국인이 목이 잘린 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당연히 필리핀군에 대한 경고였다.
다시 한번 CIA 필리핀 지부의 조엘이 한 제안을 거절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지금쯤 조엘은 가슴이 타들어 가는 심정일 것이다.
그래 봐야 답은 정해져 있었다.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납치 사건에 대응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비 협상과 응징······.
그게 추가 납치를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미국이 테러리스트와 협상을 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불을 끄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다른 불로 불이 번질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며칠 후···.
CIA에서 정식으로 필리핀에 대한 임무 지시가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