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97화 (98/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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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8. 편하고 쉬운 방법에는 함정이 있다

“세금이라······. 그 문제는 참 할 말이 없네요.”

세금에 관한 부분은 나로서는 아킬레스건이나 다름없었다.

올해 초에 나는 성과급으로 받았던 50만 달러로 시작한 선물과 옵션거래로 무려 8,5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문제는 그 거래를 거의 내 개인 계좌로 했다는 부분이었다.

미국의 조세법은 비록 국외 거주자라도 근로소득, 배당소득, 자산을 매각해서 얻은 소득에 세금을 부과한다.

주식거래도 당연히 과세 대상이었다.

그렇게 해서 내게 된 세금만 3,300만 달러였다.

개인 계좌로 이런 거래를 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었다.

50만 달러가 넘는 수익은 무조건 39.5% 이상의 세율을 적용받는다.

나는 성과급만으로도 50만 달러가 넘었기 때문에 무조건 최고 세율을 적용받는다.

하지만 나도 변명할 핑계가 있었다.

상식적으로 내가 그렇게 단기간에 8,500만 달러를 벌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아직 세금을 낸 것은 아니었다.

예전에 나는 3,300만 달러를 올해 세금으로 내야 하는 것으로 착각했었다.

그렇지만 올해 4월 15일에 신고해야 하는 것은 작년 수입이었다.

내가 올해 선물 옵션에 대한 세금을 내는 것은 내년이다.

올해 내야 하는 세금은 작년에 번 성과급에 대한 세금이었다.

내가 작년에 받은 성과급은 50만 달러가 되지 않았다.

50만 달러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세율도 비교적 낮은(?) 35%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내년에 막대한 세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팀장님께서 제게 세금 문제를 조사하라고 시킨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정확히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조민이 물었다.

이미지처럼 돌직구에 가까운 질문이었다.

“세금을 내야 하는, 특히 저처럼 최소 3천만 달러 이상 내야 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게 뭐겠습니까? 가장 최선은 세금을 안 내는 거죠.”

조민에게 이야기하지 못하지만, 거액의 세금도 세금이지만 현재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올해 번 소득을 내년 4월에 세금 신고를 하면, 그 사실은 그대로 CIA에 들어갈 가능성이 컸다.

이미 말한 것처럼 나는 CIA를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다.

지금은 최대한 류오린에서의 파견 기간이 끝나는 6월까지 세금 신고를 늦추는 것이 목표였다.

즉, 내가 걱정하는 것은 거액의 세금보다, 그런 거액의 세금을 내가 낸다는 사실을 CIA에서 알아내는 것이었다.

“좀 위험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올해는 물론이고 내년에 세금을 거의 내지 않을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조민이 말했다.

나로서는 솔깃한 이야기였다.

“그래요? 그 방법이 뭡니까?”

내가 물었다.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는 내가 홍콩에서 한 일을 완벽히 CIA에 숨길 수 있다는 의미였다.

잠시 후 조민이 나에게 방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이 방법의 핵심은 팀장님이 개인 계좌를 이용해서 한 선물과 옵션 투자를 AAM의 투자인 것으로 꾸미는 것입니다.”

선뜻 받아들이기에는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게 가능한가요? 제 개인 계좌로 거래해서 미국 조세 당국에 기록이 남아 있을 텐데요?”

조민이 서류를 꺼내 내 앞에 펼쳐 놓았다.

내려다보니 내 개인 계좌의 선물거래 명세였다.

“제가 확인해 보니, 선물 옵션거래에 사용한 시드머니 50만 달러가 류오린에서 받은 성과급이었더군요.”

“맞습니다.”

“그럼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방법이 있다니 한번 들어 보기로 했다.

“그래요? 무슨 방법입니까?”

내 질문에 조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시겠지만 법인 세율은 35%입니다. 하지만 그건 미국 법인의 경우죠. AAM의 경우는 홍콩 법인이기 때문에, 나스닥 선물과 옵션으로 번 수익에 대한 세금이 없습니다.”

조민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여기 보듯이 내 개인 계좌로 한 거래입니다. AAM의 계좌가 아니라요.”

“만약 에드릭 팀장님이 받은 성과급이, 성과급이 아니라 AAM에게 지급한 리베이트라면요? 그럼 팀장님 개인 계좌에 있더라도 자금의 주인은 팀장님이 아니라 AAM의 법인 자금이 됩니다. 애초에 AAM의 자금이니, 그 자금으로 낸 수익 8,500만 달러도 AAM에 귀속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맞습니다. AAM이 에드릭 팀장님에게 소송을 해서 이익을 환수해야죠.”

나는 조민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법률상으로는 맞는 말이었다.

조민의 말대로라면 세금은 줄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류오린과 맺은 계약서에 분명히 성과급을 내게 지급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올해 초에 계약서를 바꿔 나와 리안이 나눠 가지는 것으로 바꾸기는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받은 돈이 성과급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계약서를 바꾸려면 류오린과의 계약서를 바꿔야 하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류오린과 처음 맺은 계약서가 있는데 그게 가능한가요?”

내가 물었다.

세금 3,300만 달러를 줄이는 계약이었다.

류오린이 그냥 해 줄 리가 없지 않은가?

“만약 팀장님이 허락하시면, 제가 책임지고 류오린 측의 허락을 받아 내겠습니다. 별다른 어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조민이 대답했다.

차가웠지만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결론적으로 류오린과 처음 맺었던 계약서를 바꿔서, 내가 받은 성과급을 류오린에서 AAM에 지급한 리베이트로 바꾸게 되면, 내가 사용한 시드머니 50만 달러의 주인은 AAM이 된다.

내가 그 후에 벌어들인 이익도 AAM에 귀속된다는 이야기였다.

50만 달러 횡령이 중범죄였지만, AAM이 내 회사인 이상 합의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조민의 제안을 딱 잘라 거절했다.

“그 방법은 기각하죠. 별로 내키지 않네요.”

아마 처음 세금을 내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이런 방법을 들었다면, 별다른 고민 없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너무 많은 것이 변했다.

그 자금으로 홍콩섬 더 피크에 있는, 지금 내가 사는 집도 구매했다.

무엇보다 W&R을 세운 자금의 출처가 바로 그 수익이었다.

내가 AAM의 자금을 마음대로 이용해서 투자했다면 그건 횡령이 될 수도 있다.

아무리 AAM이 내가 소유한 회사를 통해서 100% 지분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범죄였다.

더 큰 문제는 내 횡령금이 50만 달러가 아닐 수도 있다는 부분이었다.

그 50만 달러를 통해 형성된 이익 전체가 될 수도 있었다.

지금은 W&R의 투자금은 3억 달러로 늘어 있었다.

자칫 내가 횡령한 자금이 3억 달러로 인정된다면, 나는 말 그대로 영원히 감옥에서 여생을 보내야 할 것이다.

물론 가능성은 낮지만 괜한 모험을 할 필요가 없었다.

처음 3,300만 달러의 세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는 미치도록 돈이 아까웠다.

하지만 지금은 AAM과 W&R의 투자금을 합하면 3억 3천만 달러다.

도이치뱅크에 2천만 달러를 갚아도 3억 1천만 달러가 내가 가진 자금이었다.

3,300만 달러에 연연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 내 수익률은 미친 듯한 레버리지를 사용할 때의 수익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았다.

그때는 말 그대로 옵션거래 중 하나로 몇십 배를 벌어들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자금 규모가 커지면 수익률은 낮아도 수익 자체는 커지는 법이다.

3,300만 달러는 이제는 몇 주면 벌어들이는 금액이다.

설사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해도, 그 정도 세금을 아끼기 위해서 류오린에 약점을 잡힐 일을 할 이유가 없었다.

“저도 이 방법을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인턴 때부터 일했던 아서앤더슨이 고객의 회계 부정에 협조했다가 파산 상태로 몰리고 있으니까요.”

아서앤더슨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형 회계 법인 중에서 최고에 있던 회사였다.

매출액만 93억 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아서앤더슨은 현재 위기에 몰려 있었다.

바로 아서앤더슨이 감사를 맡은 기업들에서 대규모의 회계 부정이 이뤄졌고, 그 회계 부정에 아서앤더슨이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시작은 작년 웨이스트 매니지먼트에서 발생한 회계 부정이었다.

진짜는 올해 3월에 발생한 엔론의 회계 부정에 대한 조사였다.

만약 엔론에서 진짜로 회계 부정이 이뤄졌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그 회계 부정에 아서앤더슨이 가담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그 여파는 작년의 웨이스트 매니지먼트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방법이 없다는 말입니까?”

내가 물었다.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조민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팀장님 상황에서 가장 쉽고 간편한 방법은, 선물 옵션으로 번 8,500만 달러를 다시 투자로 잃은 것처럼 꾸미는 것입니다. 반년이나 남은 상황이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요. 제게 맡겨 주시면 넉넉잡고 두 달 안에 처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쉽고 간편한 방법이 있다면 조민이 처음에 이야기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모든 쉽고 간편한 방법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 법이죠.”

내 말에 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세금을 줄이려는 목적이라면 이 방법에는 단점이 없습니다. 자랑하는 것 같지만 제가 숫자에는 자신이 있습니다. 장담하지만 미국 연방 국세청이라도 ‘당장’은 제가 한 거래를 추적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조민이 말했다.

나는 조민의 말에서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당장은?”

“예. 당장은 미국 연방 국세청도 속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게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이유는요?”

“지금 추세대로라면 아무리 숨기고 다른 사람을 내세워도, 팀장님의 이름은 언젠가는 알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팀장님의 재산 규모가 더는 숨겨도 숨길 수 없는 규모가 될 테니까요. 연방 국세청의 누군가는 팀장님이 재산을 모은 과정을 수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장부 조작이 완벽하더라도 의심을 피할 수는 없죠. 설사 속일 수 있다고 해도 그 후부터는

투자를 할 때마다 연방 국세청의 감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겨우 3,300만 달러를 내지 않으려고 그런 모험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조민의 말대로였다.

내가 원하는 것도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세금을 탈세하는 것은 CIA에게 빌미를 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 부정한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리안과 카이 황 씨에게 들어서 알겠지만, 류오린과의 AAM의 계약은 내년 6월까지입니다. 물론 더 연장할 생각은 없습니다. 7월에 일시적으로 미국에 귀국할 생각입니다. 그때까지 제가 내는 세금 규모를 본국 세무 당국에 숨기고 싶습니다. 세금 규모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게 더 중요합니다.”

내가 말했다.

조민이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런 정도라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우선 올해처럼 내년에도 10월까지 신고를 늦출 수 있습니다. 그리고 투자를 통해서 세금을 유예할 수도 있고, 세금 분할 납부를 통해서 규모를 줄일 수 있습니다.”

조민이 말했다.

별다른 방법은 아니었다.

나도 생각해 봤던 방법이었다.

“역시 그게 최선이군요. 알겠습니다.”

내가 약간 실망한 표정을 짓자 조민이 다른 서류를 내밀었다.

“이건 제가 팀장님이 내야 할 세금에 대해서 합법적으로 줄일 방법을 찾아본 것입니다.”

나는 별생각 없이 조민이 내민 서류를 읽어 보다가 깜짝 놀랐다.

그것에는 내가 내야 할 세금이 2,400만 달러로 줄어 있었다.

“세금을 1천만 달러 가까이 줄일 수 있다고요?”

“예. 주택 구매 비용과 출장 때마다 팀장님이 개인적으로 소비한 비용, 그리고 차량 구매비를 고려하면 세금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습니다. 여기에 W&R에 투자한 7,500만 달러 중에서 상당 부분을 투자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당연히 투자에 대한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홍콩의 세법을 이용하면 미국에서도 공제받을 수 있는 조항이 꽤 많더

군요.”

조민의 서류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비용으로 처리되어 있었다.

예전 다른 회계사보다 훨씬 나았다.

“이게 다 가능하다는 말이죠. 설마 여기도 불법적인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니겠죠?”

내 질문에 조민이 고개를 저었다.

“100% 합법적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건 급히 조사해서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시간을 두고 비용을 계산하면 많게는 1천만 달러 이상 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단하네요.”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이건 단순히 숫자에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조민의 성격이 굉장히 꼼꼼하다는 의미였다.

“W&R과 AAM의 비용 처리는 내일 보고하겠습니다.”

조민이 말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리안을 바라보았다.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는 리안과 시선이 마주쳤다.

둘이 결혼하면 누가 주도권을 가지게 될지 충분히 예상되었다.

리안에게 저절로 동정심이 생겼다.

배우자가 꼼꼼할 때 그 상대는 굉장히 피곤한 경우가 많았다.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라는데, 리안에게는 그 무덤이 조금 더 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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