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98화 (99/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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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 가치 있는 것은 가까운 곳에 있다

홍콩으로 돌아온 이후 나는 오랜만에 여유를 즐겼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

아무런 일이 없으니 오히려 불안할 정도였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을 해 왔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조민 때문에 일어난 일련의 소동이 없었다면 오히려 심심했을 정도였다.

내가 엘만 지부장에게 한 말이 본부에 들어갔는지 별다른 지시도 없었다.

하긴 지금 상황에서 추가 지시를 내린다면 CIA 본부가 너무한 것이었다.

오히려 약간 따분할 정도였다.

CIA의 임무에서 오는 긴장감이 즐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순간 소름이 끼쳤다.

나는 고개를 돌려 정신을 바로 잡았다.

꽃길을 두고 가시밭길을 갈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여유를 즐기는 동안에도 세상은 흘러갔다.

그린스펀 연준 의장은 금리를 인하했다.

시장의 기대와는 달리 인하율 0.25%에 그쳤다.

하지만 금리 인하 자체는 호재였다.

우리 팀의 투자와는 관련이 없지만, 미국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중국 정부의 2008년 올림픽 유치를 반대하지 않겠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내 예상대로였다.

중국 상하이 증시, 특히 건축기업이 특히 많이 올랐다.

리안과 카이 황에게 감사 인사를 받았다.

하지만 완벽함이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영역일까?

리안과 나는 수요일 오전 투자 회의를 위한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한 가지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예상과는 달리 한국 코스피가 계속 안 좋네.”

나와 함께 보고서를 작성하던 리안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뭘 그걸 신경을 써. 미국 나스닥이나 일본 닛케이, 러시아, 심지어 홍콩까지 팀이 투자한 거의 모든 증시가 올랐잖아. 한국의 코스피만은 지난주에 이어서 하락을 이어 갔지만, 하락 폭이 큰 것도 아니고 말이야.”

“하락 폭은 ?1.8%에 불과하지만, 코스피 선물에 투자한 금액만 5천만 달러야. 코스피 선물에서 손해 본 금액만 180만 달러나 된다고. 적은 금액은 아니잖아.”

“다시 말하지만 1억 달러나 투자한 나스닥이 2.1%나 올랐고, 일본 닛케이 지수도 1.2%가 올라서 손해를 본 것은 아니잖아. 오히려 세 투자만 합치면 360만 달러나 벌었다고. 조금 손해 본 것으로 너무 신경 쓸 필요 없어.”

리안이 나를 위로했다.

그의 말대로였다.

전체적으로 보면 실패한 투자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내가 본격적으로 투자에 나선 후로 손해를 본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심지어 이번 경우는 코스피가 왜 떨어졌는지 이유도 알 수 없었다.

한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는 것이 없었다.

경기 때문인지, 아니면 전반적인 주가가 내림세인지······.

자세히 조사해 보면 이유를 알았겠지만, 오르겠거니 하면서 넘어갔다.

내가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올라가겠지 하면서 결정을 미뤘지만, 코스피는 올라가지 않았다.

이런 결과를 받아보니 내가 너무 안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 6개월 정도 투자한 주제에, 너무 투자를 쉽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게 코스피여서 다행이지, 만약 나스닥 선물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큰 손해를 봤을 것이다.

심지어 이번 투자는 리안이 코스피 지수가 심상치 않다고 청산하자고 했는데도 내가 밀어붙인 결과였다.

주가가 계속 내려가는 이유를 조사도 하지 않으면서, 그냥 짐작만으로 내 주장을 우긴 셈이었다.

“네가 팔자고 했을 때 팔았어야 했나?”

내 말에 리안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네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해.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경제구조를 생각하면, 세계 다른 증시가 다 오르는데 한국 코스피만 떨어지는 지금 상황이 이상한 거지.”

리안의 말이 맞았다.

현재 코스피의 주가 흐름은 지금까지의 코스피와 다르기는 했다.

연준의 금리 인하 정도의 호재라면 코스피도 오르는 것이 당연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지금이라도 포지션 청산하는 게 좋을까?”

“개인적으로 손해를 보고 파는 것은 반대야.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손해 보는 투자는 하지 않았다는 지금까지의 기록을 지키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 이왕 이렇게 된 거, 손해를 보고 팔 수야 없지.”

리안은 나에게 했던 말과는 다른 말을 했다.

나에게는 코스피 하락으로 선물에서 피해를 본 것을 신경 쓰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손해를 보고 선물 매수 포지션을 청산하는 데는 반대했다.

손해를 본 투자 기록을 남기기 싫은 표정이었다.

“그럼 이익이 날 때까지 계속 포지션 청산하지 말고 기다리자고?”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만, 지난주에 우리가 코스피 선물에서 매수 포지션을 잡았을 때 지수가 595였어. 적어도 그 지수를 회복할 때까지는 기다려 보자. 코스피의 경우 한 주 정도 기간을 두고 미국 증시를 따라가는 경우가 많으니 곧 만회할 거야.”

리안이 말했다.

어차피 우리 팀 투자의 중심이자 주력은 나스닥 지수였다.

리안이 저렇게 말하는데 나도 굳이 반대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 기록을 남기는 것은 나도 별로 내키지 않았다.

코스피 차트를 보니 지수는 한동안은 하락할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지난주에 전 세계 주가가 올랐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한주나 두 주 안에 지난주 주가 수준을 회복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코스피는 청산하는 것을 좀 보류하자. 코스피는 일단 지금 매수 포지션을 유지하는 것으로 하고······. 다음 주 투자 계획은 이렇게 하려고 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나는 작성한 투자 계획을 리안에게 보여 주었다.

“미국 증시만 상승 포지션을 잡고 나머지는 하락 포지션을 잡는다는 말이지?”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 대부분은 다음 한 주 증시 전망이 괜찮을 것 같아. 하지만 그중에서 우리 팀이 투자하는 증시가 미국의 나스닥밖에 없는 거지. 일본도 선진국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답이 없는 수준이잖아. 고이즈미 총리는 아예 대놓고 지금은 구조 조정을 할 때라고 이야기하면서, 단기 경기 활성화 대책을 내지 않겠다고

이야기하고 있고 말이야. 그 밖에 우리가 투자하는 한국을 제외하면 러시아 그리고 홍콩 같은 국가 신흥 시장이나 개발도상국 증시 전망은 나쁘고 말이야.”

“다음 한 주 미국 증시 전망을 좋게 보는 정확한 이유는 뭐야?”

“곧 있으면 미국 산업 생산 지수가 발표되는데, 내가 알아보니 예상이 의외로 나쁘지 않더라고. 이해했어?”

“알았어.”

고개를 끄덕이던 리안이 나를 보며 물었다.

“그건 그렇고······. 정말 앞으로 회의 진행을 나에게 다 맡길 생각이야?”

리안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나도 회의에 참석은 할 생각인데, 투자 회의 진행은 이제 너에게 다 맡길 생각이야. 그래서 회의 시작 전에 이렇게 너하고 먼저 이야기를 한 것이고.”

내가 보고서를 보여 주며 투자 방향과 이유를 리안에게 설명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에게 회의 진행을 전부 맡기기 위해서였다.

나는 리안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잘할 수 있지?”

리안이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뭐, 투자 계획이라고 해 봐야 네가 다 설명해 준 것이니 어려울 것은 없기는 한데······.”

“그럼 잘해 봐.”

이건 내 실수로 조민이 팀에 합류하게 된 것에 대한 일종의 사과였다.

조민은 능력은 뛰어나 보였지만 자기주장이 강해 보였다.

반면 리안도 능력 자체는 뛰어났지만, 조민과는 달리 자기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는 편은 아니었다.

그게 원래 성격인지, 아니면 몇 년 사이 은인자중하면서 성격이 바뀐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이대로라면 결혼 후에도 리안이 조민에게 잡혀 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리안의 기를 살려 줄 생각이다.

기를 살려 주는 방법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투자 회의에서 리안이 좀 더 주도적인 모습을 보여 줄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완성된 보고서를 카렌에게 준비시켰다.

1시간 후 회의가 시작되었다.

카렌이 자리마다 커피와 보고서를 올려놓자 회의가 시작되었다.

“우선 지난 한 주 투자 결과를 이야기하겠습니다.”

내 오른편에 앉은 리안이 회의를 시작했다.

“우선 지난주 W&R의 미국과 아시아 투자 부분에서는 총 2억 달러를 투자해서 360만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수익률은 1.8%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나쁘지도 않은 결과입니다. 하지만 이 중에서 코스피는 포지션 청산을 유보한 상태입니다. 포지션을 청산한 나스닥과 닛케이 지수 선물만을 생각했을 때는 3.6%의 수익률, 즉 540만 달러를 벌어들였습니

다. AAM의 경우는 역시 포지션을 청산한 닛케이 지수만을 생각했을 때는 2.4%의 수익률을 얻었습니다.”

자신의 투자 결과를 발표한 리안이, 맞은편에 있는 브레이크와 조민을 둘러보았다.

브레이크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지만, 조민은 약간 놀란 표정이었다.

물론 그녀도 우리 팀의 투자 수익률이 높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미 조민에게 작년부터 지난주까지, 나와 팀의 투자 명세를 넘겨서 세금 문제를 맡긴 상태였다.

그렇지만 과거의 투자 수익률을 글자로 보는 것과, 지난 한 주 동안의 투자 결과를 직접 자신의 약혼자인 리안의 입을 통해 듣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는 내 계획대로 회의가 잘 진행되고 있었다.

리안이 브레이크를 보며 말했다.

“러시아와 동유럽의 투자 결과는 지금까지처럼 투자를 진행한 브레이크 씨가 발표하시죠.”

리안의 말에 브레이크가 입을 열었다.

“며칠 동안 같이 일한 상황에서 새삼스럽게 다시 인사하는 것이 그렇지만, 새로운 팀원이 들어오고 첫 회의니 인사부터 하겠습니다. 러시아와 동유럽의 투자를 맡은 브레이크라고 합니다. 제가 맡은 투자금은 크게 두 회사의 자금입니다. W&R의 자금 중에서 러시아와 동유럽 포트폴리오에 속한 4천만 달러와 AAM의 자회사로 러시아 투자 목적으로 설립

된 RAM의 투자금 7,700만 달러입니다. 우선 지난 중에는 동유럽 증시가 불안정해서 모든 자금을 일단 그나마 안정적인 러시아 RTS 선물에 투자했습니다. 팀의 다른 선물거래와 마찬가지로 두 배의 수익률을 얻기 위해 레버리지는 100%로 사용했습니다.”

브레이크가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로서는 나름대로 조민을 배려해서 하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미 말했지만 쓸데없는 일이었다.

조민은 브레이크가 모르는 내 과거 거래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

당연히 지난주까지 팀의 투자 내용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회의 중에 브레이크에게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하기도 난처했다.

브레이크는 다른 사람의 말이나 시선에 예민했고, 언젠가부터 내 말을 굉장히 신경 쓰고 있었다.

그렇다고 계속 설명을 들을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내가 입을 열었다.

“지난주 투자 성과는 어땠습니까?”

내 말에 브레이크가 잠시 당황하는 표정을 짓더니 나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리고 곧바로 투자 결과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W&R에서는 96만 달러, RAM에서는 185만 달러의 이익을 얻었습니다. 둘 다 수익률은 2.4%입니다.”

장황한 상황 설명과는 달리 결과 발표는 간단했다.

아마 내가 중간에 끼어든 이유를 깨달은 듯했다.

브레이크는 가끔 눈치가 조금 없기는 하지만, 능력 자체는 뛰어난 사람이었다.

나는 다시 시선을 돌려 리안을 바라보았다.

리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지난주 우리 팀은 세계 증시 상황을 생각하면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럼 다음 주 계획을 발표하겠습니다. 우선 나스닥은 1억 달러를 상승 포지션으로 투자할 생각입니다. 전반적으로 미국 경기가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고, 금리 인하 영향이 지속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한 결정입니다. 그리고 이미 말한 것처럼 코스피 선물에 투자한

5천만 달러는 지난주의 포지션을 계속 유지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닛케이는 전반적인 일본 경기를 고려해서 하락 포지션을 잡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팀장님과 저는 미국과 서유럽 선진국을 제외한 신흥 시장과 개발도상국의 주가가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말을 마치고 리안은 브레이크에게 시선을 돌렸다.

“브레이크 씨도 이런 팀의 투자를 고려해서 투자 방향을 잡아 주십시오.”

브레이크가 리안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러시아도 하락 포지션을 잡으라는 말씀입니까?”

브레이크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조금 날카로웠다.

리안이 자신의 투자에 간섭하는 것으로 느낀 듯했다.

“강요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처럼 어디까지나 러시아 투자에 대한 전권은 브레이크 씨에게 있습니다. 다만 이번의 경우 러시아 증시에 영향을 주는 유럽의 주가와 러시아 증시가 다른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리안이 말했다.

돌려서 말했지만 사실상 풋 포지션을 선택하라는 이야기였다.

브레이크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브레이크의 시선을 무시했다.

리안이 하는 행동은 내가 그에게 먼저 제안한 것이었다.

리안이 회의를 떠나서 팀을 이끌어 가자면 어느 정도는 브레이크의 투자에 간섭할 필요가 있었다.

브레이크가 잠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팀의 방침을 투자 결정을 할 때 참고하겠습니다.”

이렇게 회의가 끝나고 새로운 투자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한 주가 지나면서 나에게도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CIA 본부에서의 연락은 없었다.

하지만 내 메일 주소를 아는 것은 CIA 본부 말고 다른 사람도 있었다.

바로 외부적으로는 주일 미국 대사관의 사무관이자 일본 CIA 지부 간부인 단테 패트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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