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100화 (101/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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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슈퍼리치 되다 5권

#101. 이름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가족을 데려오기 위해 네팔에 갔던 랄 바하두르가 돌아왔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가족만이 아니라 혹을 달고 온 것이다.

랄 바하두르는 회사로 가는 차 안에서 내게 양해를 구했다.

“죄송합니다, 네팔 상황이 아주 좋지 않아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곧 머물 곳을 구해 내보내겠습니다. 둘 다 나이도 젊으니 곧 일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랄 바하두르는 내가 그에게 얻어 준 아파트에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함께 머무는 것에 대해 사과했다.

“네팔 상황이 많이 안 좋은가요?”

“예, 새로운 국왕께서 마오주의자 반군과의 휴전 협정을 일방적으로 중지시켰습니다. 그래서 마오주의자 반란군이 내전을 시작할 분위기입니다.”

랄 바하두르가 대답했다.

그는 내가 네팔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네팔로 보내서 왕실 비극을 조사했으니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마오주의자 반군이라······.”

네팔의 마오주의자 반군은 중국 마오쩌둥의 공산주의 이론을 추종하고 있었다.

네팔에는 마오주의자 반군 외에도 소련의 영향을 받은 좌파 정당도 존재했다.

하지만 좌파 정당은 어느 정도 제도권으로 들어와 있었다.

왕실 비극에 CIA가 개입됐다는 이유는 죽은 국왕이 마오주의자 반군과 휴전을 하고 하나의 정당으로 받아들이려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마오주의자 반군과의 내전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마오주의자 반군은 단지 마오쩌둥의 교리만을 추종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게릴라전도 따라 하고 있었다.

미국의 지원이 있겠지만 지원이 있다고 쉽게 물리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심지어 중국이 대놓고 마오주의자 반군을 지원하지는 않겠지만 은밀히 지원할 방법은 많았다.

무엇보다 중국과 국경이 맞닿아 있었다.

인접한 인도라면 모르지만, 미국이 네팔의 정부를 돕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네팔의 왕실과 정부에 불리한 내전이었다.

여기에 이번에 취임한 국왕에 대한 평가까지 생각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일은 CIA의 실수가 분명했다.

“이번에 함께 온 사람 둘 다 20대라고요?”

“예. 어릴 때 저와 함께 훈련을 받았습니다. 홍콩으로 온 저와는 달리 네팔군에 들어갔었는데······.”

구르카족이 영연방의 용병을 가장 선호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영국군이나 싱가포르 정부에 고용되는 것은 보수는 높지만, 자유가 제약된다.

싱가포르의 경우 고용한 구르카 용병이 싱가포르 여성과 결혼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다.

당연히 실력이 있는데도 랄 바하두르처럼 개인적인 고용주를 찾거나 고향인 네팔에 남는 사람도 있었다.

“실력이 쓸 만하면 제가 고용하죠. 어차피 바하두르 씨 혼자서 저를 경호할 수는 없으니까요.”

한 명이 경호를 전담하는 것은 효율성도 떨어진다.

더구나, 랄 바하두르는 가족을 데려왔다.

24시간 경호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3교대라고 해도 세 명이 필요했다.

“실력은 두 사람 모두 쓸 만합니다.”

“그럼 제가 고용하죠. 결혼하지 않았으니 두 사람에게 각자 개인 아파트를 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둘이 함께 머물 수 있는 아파트 정도는 마련해 주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랄 바하두르가 백미러를 보며 고개를 연신 숙였다.

눈치를 보니 내가 자신의 친구 둘을 고용할 것을 어느 정도는 기대한 표정이었다.

카이 황의 말에 따르면 랄 바하두르는 지난 몇 년간 홍콩에서 부호들 경호를 했다고 한다.

어쩌면 친구 둘을 데려온 것도 그들과 함께 경호하기 위해서 온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고 해도 나는 별로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로서도 서로 손발이 맞는 구르카 용병 세 명을 고용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었다.

물론 구르카 용병에게 내 모든 경호를 맡길 생각은 없었다.

지금처럼 계속 따로 경호업체를 고용할 생각이었다.

나는 흔히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전혀 구르카 용병이 다른 용병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예전에야 어땠는지 모르지만, 지금의 구르카족은 그냥 고산지대에 살다 보니 보통 사람보다 체력이 좋은 사람들일 뿐이었다.

그들이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면 그건 건장한 구르카 남자들이 어릴 때부터 용병이 되기 위해 훈련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의 네팔 사람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거액을 받을 수 있는 용병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다른 비싼 용병에 비해서 비교적 싸게 쓸 수 있는, 이른바 가성비가 좋은 용병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일단 이름이 알려지면 그 이름은 자체적으로 힘을 가지게 된다.

진실이 무엇이든 구르카 용병은 세계 최강의 용병 민족이라는 이름값이 있었다.

구르카라는 이름은 영연방과 아시아에서는 범죄를 예방하는 데 꽤 효과가 있었다.

나는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조민을 불렀다.

“경호 회사를 설립하려고 하는데 필요한 서류 좀 준비해 주세요.”

“경호 회사요?”

조민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예.”

“갑자기 경호 회사는 왜······?”

조민이 물었다.

“네팔에서 온 랄 바하두르와 그의 동료 두 명을 경호원으로 채용할 생각입니다. 그런데 랄 바하두르는 홍콩 거주권이 있지만, 나머지 두 명은 없는 것 같습니다. 홍콩 체류 허가를 위해 경호 회사를 만들고 채용하는 형식을 취할 생각입니다.”

“그런 이유라면 기존에 있는 회사에 채용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AAM이나 W&R에요. 굳이 새로운 회사를 차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지금 당장은 외부에 경호를 맡기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습니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팀에서 다루는 자금 규모가 커질 테고 내년에 독립하면 보안도 더 중요해질 테고요.”

내가 말했다.

“보안 부서를 따로 두는 것이 나을 것 같지만······.”

조민이 대답했다.

그녀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알겠습니다. 관련 서류를 준비하겠습니다.”

하지만 내 지시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팀이든 나중에 독립된 회사든······.

투자회사는 투자회사였다.

공장이나 따로 지킬 시설물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체적으로 보안 활동을 해도 충분했다.

하지만 내가 굳이 경호 회사를 설립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히 경호를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네팔 왕실의 일과 필리핀에서 미행을 당하면서, 지켜 줄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필리핀에서야 경찰이었던 리코가 있었지만 다른 곳은 그렇게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태국 내 정보원이라고 할 수 있는 리레이는 인맥이 좋아 정보 수집에는 쓸 만했다.

그렇지만 리코처럼 누군가를 따돌리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없었다.

CIA를 그만둔 다음에도 도움이 되려면 전문가가 필요했다.

내가 생각해 낸 것이 경호 회사를 만들고 확장해서 그 회사에 전문가를 채용하는 일이었다.

랄 바하두르의 동료 두 명을 채용하겠다는 것은 그냥 명분일 뿐이었다.

영입할 전문가의 명단은 일본 CIA 지부의 단테 패트릭에게 부탁해 놓았다.

바로 클린턴 정부 시절 시행된 조직 개편 과정에서 CIA를 그만둔 요원들이었다.

다른 명단도 부탁했지만 다른 명단은 내가 좀 더 힘을 키운 다음에 필요해서 부탁한 것이었다.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나는 곧바로 집으로 갔다.

내일이면 다시 투자 회의가 열리고 새로운 투자 방향을 정해야 했다.

할 일이 많았다.

미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홍콩과 한국 그리고 유럽의 주식시장은 물론이고 주요 뉴스까지 다 검토해야만 했다.

여기에 정부에서 발표하는 각종 통계와 발표도 검토해야 했다.

이렇게 서재에서 책상에 서류를 쌓아 놓고 투자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 리안이 집으로 찾아왔다.

그는 약간 술에 취해 있었다.

“여전히 바쁘네.”

리안이 말했다.

“뭐······ 매주 이맘때면 그렇지.”

리안은 내가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에 가장 바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찾아온 것을 보니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했다.

그는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내 눈치를 봤다.

“무슨 일인데?”

“부동산을 팔까 하는 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리안이 물었다.

“부동산을 판다고? 갑자기 왜? 너도 앞으로 중국의 경제가 성장하면 홍콩 부동산이 오른다고 생각하고 있잖아.”

“오르겠지. 하지만 과연 그 상승률이 지금 우리 투자 수익률보다 높을까?”

뭐라고 대답하기 어려웠다.

홍콩의 부동산은 최악이었던 1997년의 폭락에서 빠르게 회복하고 있었다. 당장 몇 달 사이에 20% 이상 급등했다.

하지만 우리 팀의 투자 수익률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다.

재산 대부분을 부동산으로 가지고 있는 리안으로서는 생각이 복잡할 수도 있었다.

“그건 모르지. 우리는 투자 방향을 몇 번만 잘못 잡아도 순식간에 투자 수익률이 떨어질 수도 있잖아. 그에 비해 홍콩 부동산은 가지고만 있으면 오르는 확실한 재산이지. 내가 장담하는데 10년 안에 지금보다 몇 배는 오를걸.”

내가 말했다.

고위험 고수익.

투자의 원칙 중 하나였다.

하지만 홍콩의 부동산은 객관적으로는 떨어질 위험은 적은 데 비해서 몇 배나 오를 것이 확실한 재산이었다.

“너 지금 카이 황 아저씨가 W&R에서 관리하는 자금이 얼마인지 알지?”

“알기야 하지.”

카이 황은 W&R의 사장이 된 이후 홍콩 항센 지수 선물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었다.

오늘 전화로 확인해 보니 이미 5천만 달러가 넘었다.

처음 투자한 원금이 2천만 달러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미 250%의 수익률이었다.

모두 선물에서 1,000%나 되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미쳤다고 할 수밖에 없는 레버리지를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몇 주가 되지도 않았는데 이제 투자하는 순간 선물 지수에 영향을 줄 정도로 규모가 무섭게 늘어나고 있었다.

“그럼 RAM의 투자 규모는?”

“그것도 알지.”

RAM은 리안에게 자금을 맡겼던 홍콩 부호들의 자금을 러시아에 투자하는 회사였다.

지금은 브레이크가 관리하고 있었다.

그 RAM 자금 규모는 8천만 달러가 넘었다.

3월 말에 투자를 시작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다섯 달도 되지 않아서 수익률이 60%가 넘었다.

브레이크가 들어오기 전까지 그냥 지수 ETF에 투자되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무서운 상승률이었다.

“널 만나기 전까지 나는 류오린에서 일하면서 내년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어. 중국의 총리가 바뀌고 권력이 교체되면 내가 가지고 있는 부동산을 통해서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그런데 요즘은 내가 지난 4년 동안 뭘 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널 보면 사람은 불공평하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야.”

나는 리안의 말에 순간 울컥했다.

“너 한 대 때려도 되냐?”

“불쌍한 나에게 폭력이라도 행사하겠다는 거야?”

리안의 말에 나는 어이가 없었다.

“네가 불쌍하기는 뭘 불쌍해! 너 어디서 그런 소리 하면 진짜 길 가다가 차에 치여 죽을 수가 있어. 재수 없다고 말이야.”

가난은 어떤 사람에게는 상대적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리안이 저런 말을 하는 것은 재수가 없을 정도였다.

가문과 재산 그리고 외모······.

심지어 거기에다가 성격도 좋고 정직하고 착하기까지 했다.

“가라! 나 바쁘다!”

지금은 부잣집 도련님의 술주정을 들어 줄 여유가 없었다.

나는 리안을 집에서 내쫓고 옆집에 전화했다.

창문을 통해서 보니 옆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리안을 데리고 돌아갔다.

리안이 시야에서 사라진 후 나는 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리안이 술을 좀 마신 것 같던데 혹시 무슨 일 있습니까?”

-오늘 투자 때문에 시내에 나갔다가 이런저런 말을 들은 것 같습니다.

카이 황이 말했다.

“이런저런 말이라니요?”

-예전 도련님과 친구였던 사람인데 이번에 W&R의 홍콩 선물 투자로 손해를 본 모양입니다. 제가 리안 도련님 가문의 사람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으니······.

선물은 누군가 이익을 보면 반대로 손해를 보는 사람이 존재했다.

아마 그렇게 손해를 본 사람 중 한 명을 만난 듯했다.

리안이 새삼스럽게 욕을 먹었다고 기분이 나빴을 리가 없었다.

기분이 나빠진 것은 정작 돈을 번 것이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일 것이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알겠습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잘 이겨 내실 겁니다.

내가 리안 가문 뒤에 숨으려고 하는 것은 그가 내 방패가 되어 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리안은 자신이 허울뿐인 허수아비라는 생각을 하는 듯했다.

리안은 은근히 자존심이 강한 성격이었다.

나로서는 나름 신경을 많이 썼지만······ 받아들이는 상대는 다를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이제 방패로 다른 사람을 선택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든 다독여서 갈 수밖에 없었다.

리안이 이름이 그 자체로 힘을 가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할 수밖에 없었다.

‘손이 많이 가는 친구네. 내가 아무나, 그게 방패든 허수아비든 선택할 사람으로 보이나.’

상대는 CIA였다.

내가 리안을 선택한 것은 그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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