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103화 (104/270)

(103)

#104. 남자의 일을 하는데 소년을 보내지 마라

자카르타 날씨는 여전했다.

지난번 왔을 때는 홍콩과 기온 차가 있었지만 7월의 기온은 자카르타나 홍콩이나 별 차이가 없었다.

자카르타에 다시 올 일이 없었으면 했지만 그건 내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조직에 속한 이상 원하지 않더라도 해야만 할 때가 있었다.

필리핀에서 나는 CIA 본부와 아시아 지부의 요청을 거부하겠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에이전트 에스 팀의 임무를 명분 삼아서 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말이 나에게 준 여유는 잠시뿐이었다.

CIA 요원은 노예가 아니었다.

이유가 있을 때는 지시를 거부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다른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지시를 거부하는 것도 상황을 봐 가면서 해야 했다.

거절도 때가 있었다.

명령을 거부하기에는 시기가 좋지 않았다.

내가 다시 CIA의 지시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주 아시아 전체가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세계적인 주가 하락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이었다.

한국은 물론이고 대만 그리고 싱가포르 홍콩까지, 그나마 경제 근본이 튼튼하다는 국가들마저 주가가 폭락했다.

경제뿐이 아니었다.

아시아 곳곳에서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는 여전히 전투가 계속되고 있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카슈미르를 둘러싸고 전투를 계속하고 있었다.

홍콩 의회에서는 중국 정부가 홍콩의 행정장관을 해임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일본은 한국과 중국에 역사 교과서 수정 요구를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네팔에서는 경찰 40명이 마오주의자 반군을 사살했다.

CIA의 아시아 지부 전체가 이런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려온 지시를 거부하는 것은 어려웠다.

특히 현 CIA 국장까지 이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상황이라면 말이다.

현 CIA 국장 조지 테넷은 부시 대통령이 아니라 클린턴 전 대통령 쪽 인물이었다.

정권이 바뀌고도 조지 테넛이 자리를 유지했다.

집권당이 교체되는 상황에서 CIA 국장이 유임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런 이례적인 유임에는 이유가 있었다.

조지 테넛은 공화당 의원의 비서로 정치를 시작했고, CIA 국장이 되기 전까지 10년이 넘게 상원 정보위원회에서 일했다.

본래부터 공화당과 가까울 뿐 아니라 정치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오랫동안 정치인이었고 당연히 지시도 정치적일 수밖에 없었다.

시작은 미국에서 터진 대형 스캔들이었다.

“하여간 정치인 새끼들이란······. 발정이 난 개도 아니고······.”

캘리포니아의 하원 의원인 게리 콘티가 챈드리 라비라는 인턴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인정했다.

게리 콘티는 민주당 의원이기는 하지만 민주당 내에서 가장 보수적인 의원이었다.

그는 민주당 내 보수주의 의원들 모임인 이른바 ‘다섯 갱’을 이끌고 있었다.

‘다섯 갱’은 국회에서 민주당이 아니라 공화당 정책에 투표하고는 했다.

게리 콘티의 위기는 민주당의 위기가 아니라 공화당 그리고 백악관의 위기였다.

이런저런 스캔들에 휘말린 정치인은 개리 콘티가 처음은 아니었다.

미국은 기업들의 로비가 합법적인 나라였다.

의원들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들에 대한 기업들의 로비는 치열했다.

그리고 그 로비 중에는 여성이 포함된 경우도 많았다.

정치인 대부분이 고향에 가족을 두고 워싱턴에서 홀로 지내고는 한다.

돈과 권력이 있는 혼자인 남자들이 이성의 유혹에 빠지는 일은 흔했다.

선임 CIA 요원의 말에 따르면 워싱턴의 정치인들은 주변에 여성 농구 팀 하나를 이끌고 다닌다고 말할 정도였다.

워싱턴에는 젊은 콜걸이 아주 많았다.

아니, 굳이 콜걸이 아니더라도 권력을 가진 남자에게 몸을 던지는 정치 지망생들은 많았다.

당장 전직 대통령 클린턴을 탄핵 직전까지 몰고 간 르윈스키도 백악관 인턴이었다.

클린턴 대통령은 주지사 시절부터 비슷한 소문이 많았다.

클린턴이 이런저런 소문과 르윈스키 스캔들에도 살아남았다.

단순한 인턴과의 스캔들이라면 게리 콘티도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챈드라 라비가 몇 주 전에 실종됐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게리 콘티 사무실에 간다면서 나간 이후 사라졌다.

챈드라 라비의 실종 이후 그녀의 지인들을 통해서 게리 콘티의 관계가 알려졌다.

처음 게리 콘티는 둘의 관계를 부인했다.

둘의 관계를 증명하는 증거가 나오자 게리 콘티는 어쩔 수 없이 둘의 관계를 인정했다.

하지만 곧이어 게리 콘티가 여성 접대부를 비서로 고용해서 월급을 지급했다는 폭로가 이어졌다.

그는 목사의 아들로 미국 내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의원으로 손꼽히던 의원이었다.

민주당 내에서 가장 강력하게 부시 행정부의 정책을 지지하던 의원의 몰락이었다.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두 달 전 상원 의원 짐 제포드의 탈당으로 상원 다수당 위치를 잃은 것에 이어진 타격이었다.

짐 제포드는 부시 대통령의 주요 정책인 감세 정책과 복지 정책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탈당했었다.

그렇지 않아도 부시 대통령에게는 정치적으로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이겼지만, 그 투표인단을 뽑는 투표수에는 민주당 후보인 앨 고어보다 적었다.

국내에서 정치적으로 흔들리다 보니 외교에서도 G8 회의에서도 은연중에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대통령이 외교적으로 흔들리는 데는 당연히 CIA의 책임도 있었다.

이런 책임을 피하고자 조지 테넷은 본인이 직접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휴전에 중재자로 나섰다.

CIA도 긴장 상태였다.

이게 내가 자카르타에 다시 온 이유였다.

지난번에 했던 작전을 끝까지 마무리하라는 지시를 어길 수가 없었다.

“상황이 안 좋다고요?”

내 말에 이반 부카드가 입을 열었다.

“와히드 대통령이 이렇게 버틸 줄 몰랐네. 지난번에 자네가 왔을 때만 해도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말이야. 탄핵 투표가 시작되기 전에 물러날 줄 알았는데············.”

“긴급 계엄령을 선포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맞아. 안보 장관인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가 계엄령을 시행하기를 거부하자 해임했어. 어쩌려고 저러는 것인지······.”

이반 부카드가 한숨을 내쉬었다.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는 군 출신으로 와히드가 대통령이 된 초기에 인도네시아군 개혁 작업을 시행한 인물이었다.

그가 한 일 중에는 와히드의 명령을 받아 수하르토 전 대통령 일가가 부정 축재한 재산을 환수하는 작업 설득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일에서 보듯이 나름 와히드의 최측근 중 하나로 분류되던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마저 와히드 대통령의 지시를 거부할 정도로 긴급 계엄령은 정당성이 없는 지시였다.

국회에서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은 인도네시아 헌법과 법률상 합법적인 과정이었다.

와히드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역사상 최초로 민주적인 과정을 통해 선출된 대통령이었다.

그런 그가 이런 일을 벌이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앞으로 일이 어떻게 진행될 것 같습니까? 상황을 보니 계엄령 선포를 밀어붙일 것 같던데요?”

이반 부카드가 고개를 저었다.

“어림도 없는 소리지, 계엄령을 선포하려면 군과 경찰을 확실히 장악해야 하는데······. 인도네시아군은 본래부터 와히드 대통령과는 사이가 좋지 않네. 더구나 인도네시아 경찰의 수장인 비만토요는 군 장성 출신이네. 지금은 공개적으로 와히드 대통령의 지시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야.”

“오면서 뉴스를 보니 와히드 대통령이 비만토요 청장을 해임 발표했던데요. 차기 청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쉽지 않을 거야. 안보 장관과 경찰청장은 다르네. 안보 장관의 임명권은 와히드 대통령에게 있지만, 경찰청장을 임명하거나 해임하려면 국회의 동의가 있어야 하네.”

“그렇습니까?”

이반 부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른 때라면 대통령이 해임하면 물러나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비만토요 청장이 순순히 물러날 가능성은 없어. 국회에서 그냥 두고 볼 리가 없고 말이야. 지금 국회에서 와히드를 따르는 의원 수는 10% 정도밖에 안 되네.”

들을수록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의회 의석 수만 보면 와히드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군과 경찰이 거부하는 상황에서 계엄령을 설사 선포했다고 해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난번에 왔을 때 마하티르 부통령이 탄핵 예비 투표를 했었다.

그때 와히드 대통령의 임기는 사실상 끝났다고 봐야 했다.

“도대체 와히드 대통령은 뭘 믿고 버티는 겁니까? 정치권, 군, 경찰까지 다 등을 돌린 상황인데요. 심지어 그는 수하르토 대통령의 독재에 대항해서 싸웠던 인물 아닙니까? 그런 인물이 정당한 탄핵을 무산시키기 위해서 계엄령을 선포하려고 하다니요?”

현재 와히드의 상황은 올해 초 쫓겨난 필리핀의 에스트라다가 처했던 상황보다 나빴다.

필리핀에서도 경찰이 몰래 사회 혼란을 부추기기는 했지만 대놓고 군과 경찰이 대통령에게 항명하는 일은 없었다.

“뭐긴 뭐겠나, 욕심이지. 아프리카와 아시아 독재자들 대부분이 한때는 외세에 대항해서 독립운동을 했던 자들이야. 그리고 자네도 알겠지만, 와히드에게는 NU(Nahdlatul Ulama)라는 막강한 단체가 있지 않은가. 지금이야 상대적으로 조용하지만, 와히드의 지시가 떨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네.”

NU는 인도네시아, 아니 세계 최대의 이슬람 종교 단체였다.

소속된 인원만 4천만이 넘었다.

인도네시아가 인구 2억 명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인도네시아 사람 중 다섯 명 중 한 명은 NU에 소속되어 있었다.

NU는 와히드의 집안이 설립하고 와히드가 이끌던 단체였다.

NU가 와히드 개인의 단체는 아니지만, 단체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와히드는 자신이 쫓겨나면 NU가 가져올 인도네시아의 혼란으로 협박을 하는 셈이었다.

나를 쫓아내면 인도네시아가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는 협박이었다.

극단적인 벼랑 끝 전술이라고 할 수 있었다.

대통령으로서는 무책임한 일이지만 정치인 와히드로서는 쓸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제가 뭘 하면 되는 겁니까?”

“버티고 있는 와히드를 포기시킬 방법이 필요하네. 지난번처럼 판을 바꿀 작전이면 더 좋고 말이야.”

“메가와티 부통령 쪽 반응은 어떻습니까?”

메가와티 부통령은 인도네시아에서 와히드 대통령에 상대할 만한 유일한 정치인이었다.

수카르노 전 대통령의 딸이자 인도네시아 의회 최대 의석 수를 가진 정당의 대표였다.

무엇보다 와히드 대통령이 탄핵을 당해 물러나면 대통령이 될 사람이었다.

지난번 인도네시아에서 내가 실행한 작전의 핵심이 바로 메가와티가 탄핵에 나설 명분을 만들어 주는 일이었다.

“그쪽은 몸을 사리는 분위기야. 와히드가 탄핵당할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굳이 자기 손에 피를 묻히기 싫다는 것이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와히드가 몰락하기는 했지만, NU를 중심으로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많았다.

“그럼 이번에는 메가와티 쪽을 이용할 수는 없다는 말이군요.”

“그래서 자네를 부른 거네. ‘성인 남자가 해야 하는 일에 소년을 보내지 마라.’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뭐든 잘하는 사람에게 맡겨야지. 자네가 이런 일에 전문가 아닌가.”

“전문가라니요. 지나친 말씀입니다.”

“자네 정도면 전문가지. 지난번 일도 여기서 한 일도 그렇고 필리핀이나 일본에서 한 일에 대해서 알고 있네. 이번 일은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일이야. 와히드 대통령을 쫓아내는 일이야 그리 어렵지 않겠지만, 되도록 혼란을 최소화하라는 것이 회사의 방침이네. 자네도 느끼고 있겠지만 최근 중동이나 중앙아시아 쪽이 심상치 않아.”

인도네시아는 가장 많은 이슬람 신도를 가진 나라였다.

인구 2억 명 중 90%가 이슬람 신도였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아랍어를 사용하는 인구를 다 합쳐도 3억 명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숫자였다.

CIA가 우려하는 것은 이런 인도네시아의 이슬람 신도들이 와히드 탄핵으로 이슬람 테러 세력의 영향을 받는 것이었다.

나는 이반 부카드가 건네준 자료를 꼼꼼히 읽었다.

자료를 다 읽고 난 후 자료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메가와티 부통령 쪽이 안 되면 판을 새로 짜야겠군요.”

“어때, 방법이 있겠나?”

이반 부카드가 물었다.

나는 자료 중에서 세 사람을 골라냈다.

현 인도네시아 국회의장인 아민 라이스, 해임당한 안보 장관인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찰청장인 비만토요 장군이었다.

“이 세 명을 중심으로 판을 짜 보죠.”

이반 부카드가 내가 골라낸 세 명의 서류를 살폈다.

“우선 아민 라이스는 국회의장일 뿐 아니라 몇 년 전까지 NU와 버금가는 회원수를 보유한 이슬람단체인 무하마리야( Muhammadiyah)의 지도자였습니다. 메가와티 부통령이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국회에서 탄핵을 처리하고 탄핵 이후 이슬람의 반발을 무마하려면 아민 라이스의 협조가 필수적입니다.”

“아민 라이스는 나도 이해가 가네. 경찰청장인 비만토요의 협조가 필요한 것도 이해가 가고 말이야. 그런데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군. 그는 이미 해임된 사람이 아닌가?”

이반 부카드가 물었다.

“자료에 나와 있듯이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는 정권 초기에 군 개혁 작업을 주도했습니다. 그 때문에 군 내에서 반감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를 따르는 장성들도 존재합니다.”

순간 이반 부카드의 표정이 굳어졌다.

“자네 설마 인도네시아군을 움직이자는 말인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와히드 대통령에게 더는 권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증거를 보여 주기에 그것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없습니다.”

“그건 너무 위험한 방법이네. 쿠데타로 보일 수도 있네.”

이반 부카드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국회의 지지와 국민의 지지가 있다면 다르지요. 인도네시아군이 움직일 명분을 주면 됩니다.”

“어떻게 말인가?”

“그래서 세 번째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바로 이 사람입니다.”

내가 손가락으로 지목한 사람은 경찰청장 비만토요였다.

“비만토요를 이용해서 경찰을 장악하자는 말이 아니었나?”

이반 부카드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중국의 병법인 삼십육계에서 이대도강(李代桃畺)이라는 계략이 있습니다. ‘복숭아나무를 대신해서 오얏나무가 말라 죽는다.’라는 의미죠. 이번 일은 어느 정도의 희생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작은 손해를 무릅쓰고 큰 이익을 얻어야 합니다.”

“비만토요를 희생시키자는 말인가?”

“맞습니다. 어차피 비만토요는 여기까지입니다. 메가와티 부통령이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대통령의 지시를 거부하는 경찰청장을 유임시킬 리가 없으니까요. 비만토요도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자신을 비싸게 팔아넘기기를 원할 것입니다.”

“쉽지는 않을 텐데······.”

“제가 자리는 마련해 보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