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108화 (109/270)

#109. 어떤 일을 할 때는 끝까지 지켜봐라

거의 20일 만에 돌아온 홍콩은 후덥지근했다.

홍콩 날씨는 자카르타보다 더운 것 같았다.

기온을 확인해 보니 기온 자체는 비슷했다.

아마도 7월의 자카르타가 비가 내리지 않는 건기인 것에 비해 여름의 홍콩은 비가 많이 오기 때문일 것 같았다.

홍콩은 바닷가에 인접한 도시답게 습기가 많아 더 더운 느낌이었다.

7월과 8월은 한 달 중 반 이상이 비가 내렸다.

이런 부분에서 내가 대학원을 다녔던 영국과 비슷한 점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공항을 나오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곧장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차에 탄 순간 몸이 축 늘어졌다.

나도 자카르타에 머무는 동안 꽤 긴장했던 모양이었다.

당연했다.

아무리 와히드 대통령이 경찰과 군부의 지지를 잃고 힘이 빠졌다고는 하지만 인구 2억이 넘는 나라의 대통령을 교체하는 일이었다.

자칫 유혈 사태로 번질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유혈 사태가 일어났을 때는 나도 조금 위험해질 수가 있었다.

호텔에 있을 때 별일이 없겠지만 밖에 나갔을 때는 아니었다.

동남아에서 치안이 불안해질 때 가장 먼저 목표가 되는 것은 바로 중국인이었다.

화교가 동남아의 경제권을 장악한 것에 대한 다른 주민들의 반감을 동남아시아가 공유하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였다.

나는 중국인이 아니지만 흥분한 폭도들에게는 그런 말이 통할 리가 없었다.

어쨌든 일이 잘 마무리됐으니 다행이었다.

집에 도착해 샤워하고 그대로 잠들었다.

내가 잠에서 깼을 때는 이미 해가 진 다음이었다.

잠에서 깨고 얼마 지나지 않아 리안이 찾아왔다.

리안은 내가 없는 동안 팀의 수익률에 대한 보고서와 다른 자료들을 가지고 온 것이었다.

리안이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내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건 누구야? 한 달 만에 새까매져서 돌아왔네? 진짜 휴가라도 갔다 온 거야?”

“뭔 헛소리야, 조금 탄 정도인데······. 그리고 내가 원래 햇빛에 피부가 쉽게 타는 체질이야.”

새까맣게 탔다는 리안의 말은 당연히 과장이었다.

대부분 실내에 있었기 때문에 약간 그을린 정도였다.

그렇지만 리안에게 말한 것처럼 내가 쉽게 타는 체질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피부가 타기는 했다.

“누가 보면 야외에서 일하는 사람인 줄 알겠다. 선크림은 어디에 두고······?”

나도 선크림을 바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남들은 바쁘게 움직이는 상황에서 혼자만 선크림을 바르는 것은 눈치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멍청한 짓이었다.

“인도네시아 상황이 선크림 바르고 그럴 상황도 아니었고, 여유도 없었어.”

“그래, 말 좀 들어 보자. 도대체 인도네시아에서 했다는 일이 뭐야? 우리 팀에는 인도네시아에 투자한 게 없잖아? 직접 투자한 것은 필리핀과 태국이 전부 아니었어?”

리안이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리안이 이런 질문을 할 때를 대비해서 생각해 놓은 대답이 있었다.

“광산 투자를 알아보고 있어. 너도 관심 가지면 좋을 거야, 중국 경제가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중국 내 광물 수요가 많아질 테니까.”

“중국 내 광물 수요가 많아질 것이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인도네시아 광산은 정부 규제가 심하지 않아? 외국의 투자가 쉽지 않을 텐데?”

“그래서 내가 인도네시아에 머물렀던 거야. 그 쉽지 않은 일을 가능하게 하려면 권력이 필요하고, 그런 권력을 얻으려면 지금 인도네시아 같은 상황은 좋은 기회니까 말이야.”

내 말에 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쁜 생각은 아니네. 그래, 일은 어느 정도 진행된 거야?”

리안이 물었다.

“이제 막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는데 바로는 안 되지. 다음에 갈 때 확실해질 것 같아. 그때가 되면 내가 정확한 내용을 이야기해 줄게.”

“알았어. 네가 거의 3주나 가서 한 일인데 잘되겠지.”

리안이 말했다.

어떻게 잘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아무래도 인도네시아 광산에 진짜로 투자할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았다.

자카르타에 머물 때 조금 조사해 놓기는 했지만, CIA의 눈 때문에 직접 사람을 만나지는 못했다.

“참, 그리고 앞으로는 투자 정책을 조금 바꿀 생각이야.”

내 말에 리안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투자 정책을 바꾸다니 그건 무슨 말이야?”

리안이 물었다.

“지금 우리 팀은 내가 지시하는 선물에만 투자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할 수는 없잖아.”

“왜? 지금 수익률도 높잖아.”

“그건 그런데······. 너나 브레이크가 무슨 내 지시를 받는 로봇도 아니고, 지금처럼 계속하는 것은 재능 낭비 아니야? 너도 나하고 같이 일을 하기 전에 꽤 성공적으로 투자를 했었고, 브레이크도 팀에 들어오기 전에 하던 투자가 있었잖아. 따로 관리하는 고객도 있었고 말이야.”

리안이나 브레이크나 내 팀에 합류하기 전에도 홍콩에서는 나름대로는 잘나가던 트레이더였다.

그들을 통해 거래하던 개인 고객과 펀드의 매니저들이 있었다.

그런데 내 팀에 합류하면서 사실상 그들과의 거래를 중지했다.

리안의 경우는 처음에는 기존 고객들의 거래 대행을 계속했었지만 관리하던 개인 고객 대부분이 러시아에 투자하는 자회사에 투자하면서 개인적으로는 고객을 더는 받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의 거래를 하지 않고 있었다.

브레이크는 회사를 옮기는 과정에서 이전 회사를 그만두면서 기존 고객과의 거래가 끊어졌다.

팀에 합류한 이후 예전 고객들의 거래 요구를 받기도 했지만 거절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거야? 팀에서 다른 고객의 거래도 받자는 거야?”

리안이 물었다.

리안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그건 아니고, 나는 우리 팀을 일종의 패밀리 오피스처럼 운영할 생각이야. AAM과 RAM 그리고 내가 지금 다른 사람들의 투자를 받지 않는 것은 내가 드러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었다.

“그건 잘 생각했네. 그렇지 않아도 지금도 RAM에 추가로 투자하려는 분들이 꽤 있어. RAM에 투자가 안 되면 우리에게 거래라도 맡기겠다고 하시는데······. 그분들 자금까지 받으면 우리는 아마 잘 시간도 없을걸.”

지금 나와 리안의 자금 외에 관리하는 투자금은 러시아 선물을 거래하는 RAM의 투자뿐이었다.

이건 예전 리안의 고객들도 개인적인 이유로 어쩔 수 없이 투자를 받은 것이었다.

지금은 죽은 왕웬준의 뻘짓 때문이었다.

“RAM의 총 투자수익률이 얼마나 되지?”

“내가 여기 오기 전에 확인한 RAM의 투자 규모가 9,900만 달러 조금 안 됐어. 수수료나 이런저런 비용을 제외해도 아마 9,800만 달러는 훌쩍 넘을 테니······. 한 97%에서 98% 정도?”

투자수익률을 이야기하던 리안이 몸을 부르르 떨더니 말을 이었다.

“그나마 RAM의 투자수익률이 알려지지 않았기에 지금은 부탁하는 정도인데 알려지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그나마 대인들도 그냥 투자수익률이 꽤 높다는 사실만 알고 계시는 정도지 정확한 수익률은 모르셔. 수익률 아시면 더 투자하시겠다고 나오시는 것 아닌지 모르겠네.”

나는 그런 리안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10월이면 투자 후 반년이 되잖아. 그때가 되면 RAM의 투자자분들에게 투자수익률을 알려야 하는데, 리안 너에게 부탁하는 정도가 아닐걸?”

내가 말했다.

“남의 말처럼 하네. 그때가 되면 너는 괜찮을 것 같아? 지금까지 다른 분들이 나만 괴롭히지 너에게 연락하지 않은 것은 대충 수익률이 20%에서 30% 사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이야. 러시아 증시가 그사이에 20% 정도 올랐으니까 그냥 시장을 잘 본다는 정도로 생각하시는 거지. 그런데 100%의 수익률이야. 그분들에게도 적은 돈은 아니지.”

리안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때가 되면 외국에 잠시 나가 있지 뭐.”

“뭐야! 너 혼자만 살겠다는 거야?”

나는 손을 들어 리안을 말렸다.

“어쨌든, 그때 일은 그때 생각하자. 하여간 나는 추가 투자를 받을 생각은 없어. 다른 사람의 투자를 받으면 회사 규모를 키울 수 있겠지만 그만큼 간섭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도 지금 같은 방식만으로 언제까지 투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내년이 되고 독립하면 어차피 다른 직원들 때문에라도 지금처럼 할 수는 없잖아.”

내가 말을 돌렸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건데?”

리안이 물었다.

“일단 투자금 중 일부를 리안 너나 브레이크가 마음대로 투자할 수도 있도록 재량권을 주려고. 그 투자금으로 어떻게 투자하는지는 너나 브레이크가 결정하는 식으로 할 생각이야.”

“재량권이라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거야?”

“말 그대로 재량권이지. 주식만이 아니라 채권이나 다른 현물에도 투자해도 되고 말이야. 지금도 브레이크에게는 유 선물에 투자하거나 뭐 그런 식으로 말이야. 물론 베어링 증권 같은 일이 생기면 안 되니 감시는 철저히 해야겠지.”

한때 영국 금융기관의 대표적인 은행이었던 베어링은행은 직원 하나의 실수 때문에 파산했다.

투자에 대한 내부 감시가 부재로 생긴 참사였다.

내 말을 듣던 리안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잘 모르겠네. 그렇게 하는 게 지금보다 수익률이 높을 것 같지 않아서 말이야.”

“말한 것처럼 수익률만을 생각해서 바꾸려는 것은 아니야. 우리가 언제까지 나스닥과 아시아 그리고 러시아의 한정된 투자를 할 수는 없잖아. 어차피 독립하면 좀 더 다양한 곳에 투자해야 하고 그 준비를 하자는 거야. 그것을 위해서 팀원을 추가 채용할 생각이야. 그렇게 팀원들이 늘면 매매 자체는 그들에게 맡기는 방향으로 가고, 너도 좀 더 재량권을 가지면서 투자를 해야지.”

내 말에도 리안은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나는 별로야. 그런 투자는 내년에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해.”

조금은 의외의 반응이었다.

나는 리안이 자기 생각대로 투자하는 것을 반대할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더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회사에 가서 브레이크도 있는 자리에서 이야기하자.”

“알았어, 일단 가서 더 생각해 볼게.”

리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내일 보자.”

리안을 보내고 나는 거실 의자에 앉았다.

“휴······.”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역시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반응을 예상하지 일은 쉽지 않았다.

시장을 읽는 것이 훨씬 쉬었다.

주식시장과 같은 집단의 생각이나 움직임은 어느 정도 방향성이 있는데, 그 개개인은 예측하기 어려웠다.

이번 리안의 반응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잠시 의자에 앉아 있던 나는 리안이 가지고 온 보고서와 서류를 들고 서재로 향했다.

서재에서는 산 아래에 홍콩 센트럴의 야경과 그 앞의 바다가 내려다보였다.

조금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런 편안함은 어느 정도는 인도네시아에 머무는 동안 얻은 확신 때문이었다.

바로 미국의 아시아 정책이 변화하고 있다는 확신.

지난 정부 때부터 내려오던 아시아 정책 근간은 아시아 위기를 통해 집권한 포퓰리즘 정부를 무너트리는 일이었다.

와히드 제거로 이 목표는 대충 마무리되는 느낌이었다.

올 초부터 시작했던 일이 끝을 본 느낌이었다.

오랫동안 일당이 집권하고 있는 말레이시아 마히티르 정부나 최근에 선거를 통해 집권한 태국의 탁신 정부를 제외하면 대충 정리된 셈이다.

한 가지 변화를 더 느낄 수 있었는데 그건 바로 미국의 대중국 압박 정책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일본의 차기 수상 선거를 비롯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작전에 여러 건 참여했다.

하이난섬 사건을 시작으로 본격화된 이런 대중국 압박 정책에 꽤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중국 정부에 대해 호감이 있거나 내가 하는 행동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중국의 국가안전부(MSS)에 내 행동이 발각될 수도 있었다.

홍콩에 머무는 나는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 상태였다.

정체가 발각되면 체포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대중국 압박 외교 방침이 변화했다.

변화를 보여 주는 첫 사건은 하이난섬에 착륙했던 미군 정보 정찰기의 반환이었다.

그 후 미국 정부는 베이징 올림픽 유치를 반대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고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자카르타에 머물면서 본 뉴스를 보니 콜린 파월 미국 국무부 장관이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방문 목적은 부시 대통령이 10월에 중국 방문을 확정 지은 일 때문이었다.

국빈 방문 사전 준비를 위해서 방문한 것이다.

나를 더 기쁘게 한 것은 그의 방문 목적 중에 올 초에 스파이 혐의로 잡혔던 미국 국적 학자들에 대한 석방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체포된다고 해도 풀려날 가능성이 조금 높아진 셈이었다.

“최악은 벗어나고 있는 셈인가?”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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