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상황마다 대응도 달라져야 한다
1.
팀원들이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라고 해도 리안, 브레이크, 조민 세 명이었지만 말이다.
“이렇게 투자 회의에 참석하는 것도 오랜만이네요.”
내가 말했다.
예전에는 매주 참석했던 팀의 투자 회의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말하는 일 자체가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꽤 오랫동안 리안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해 투자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투자 회의에 참석한 것은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워 내 존재를 보여 줄 필요도 있을 뿐만 아니라 특별히 할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팀원들도 내가 참석하는 일이 어색한지 별다른 말이 없었다.
“여러분이 아무 말이 없어 조금 민망하네요. 그렇지 않아도 어색하게 느껴지는데 제가 회의에 잘못 참석했나 하는 생각이 들고요. 혹시 제게 불만이 있나요?”
“불만이라니요. 그냥 별로 할 말이 없어서······.”
브레이크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리안이나 조민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농담 한번 해 봤습니다.”
분위기를 바꾸려고 농담을 한 나는 쑥스러운 생각에 얼른 화제를 바꿨다.
“회의 시작하죠.”
나는 미리 나눠 준 보고서의 페이지를 넘겼다.
“보고서를 보니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도 모두 훌륭한 성과를 내셨더군요. 지난주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일 때문에 해외에서 고생하신 팀장님이 고생을 많이 하셨죠. 다른 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리안의 말에 브레이크가 얼른 덧붙였다.
“그렇습니다. 어차피 투자 방향을 결정하는 분도 팀장님과 부팀장님이셨으니 두 분이 가장 수고하셨죠.”
조민은 언제나 그렇듯 말이 없었다.
“제가 오늘 회의에 참석한 것은 중요한 할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팀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쏠렸다.
“어제 부팀장님과 의논을 해 본 결과 이제부터는 선물만이 아니라 옵션에도 투자해야 할 때가 됐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유가 뭐죠?”
조민이 물었다.
“아시겠지만 팀의 투자금 규모가 늘어났습니다. 제가 확인해 보니 일부 시장에서는 우리의 투자가 주가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생기고 있더군요. 이러다 보니 선물을 살 때나 선물을 팔 때 손해를 보기도 하고요.”
이미 어제 나에게 이야기를 들은 리안은 물론이고 브레이크도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 참석한 팀원 중 내 말에 가장 공감하는 사람이 바로 브레이크일 것이다.
시장이 큰 미국이나 일본 홍콩에서는 괜찮지만, 시장이 비교적 작은 코스피나 러시아 시장에서는 투자금 규모가 늘어난 것이 조금씩 문제가 되고 있었다.
브레이크가 러시아 선물 시장에 투자하고 있는 규모는 1억 5천만 달러가 넘었다.
이 정도 규모는 러시아 선물 시장에서는 엄청난 규모였다.
한국의 파생 상품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빠르고 거래 규모가 늘고 있지만, 옵션 시장의 성장이 상대적으로 빨랐다. 한국의 선물 시장은 옵션 시장에 비하면 작은 규모였다.
선물 시장에서 우리 팀의 투자 규모는 작지 않았다.
현재 한국 파생 상품 시장, 특히 선물거래에서 외국인의 비중은 10% 정도였다.
이런 상황을 생각하면 가장 많은 선물거래를 하는 해외 투자자가 바로 우리 팀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나마 지금은 여러 증권사를 통해서 나눠서 하므로 드러나지 않아서 큰 논란이 되지 않을 뿐이었다.
“물론 우리 팀 인원으로 콜 옵션이든 풋 옵션이든 매도는 어렵고, 일단 옵션을 매도하는 것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내가 덧붙였다.
옵션은 그게 콜 옵션이든 풋 옵션이든 매도자는 말 그대로 손실이 무한대로 늘어날 수 있었다.
옵션을 만들어도 매도하려면 위험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정교한 계산이 필요했다.
아직 우리 팀의 역량으로 옵션 매도는 불가능했다.
“그다음 안건은 투자 담당자 재조정에 관한 부분입니다. 조민 씨.”
나는 조민을 바라보았다.
“예, 말씀하십시오.”
“조민 씨가 이번 주부터 AAM의 투자를 모두 맡아 주십시오.”
내 이야기에 무표정했던 조민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제가 말입니까?”
조민이 되물었다.
내 이야기가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예. 지금까지 리안 부팀장님께서 AAM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까지 맡아 주셨는데 더는 무리라고 판단했습니다. 선물거래만도 시간이 모자라는데 옵션까지 거래하자면 두 시장을 혼자서 커버하는 것은 어렵죠.”
옆에서 듣고 있던 리안이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도 무리였어요. 팀장이 밖으로 돌아서 상황을 이야기할 기회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맡아서 한 거지······.”
나는 리안의 불평을 무시한 채 조민을 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닛케이와 코스피 파생 시장에 대한 투자를 맡아 주실 분이 필요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조민 씨밖에 없더군요. 지난주 가이닉스 거래를 하는 것을 보니 실력도 나쁘지 않아 보이고요. 해 보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한번 해 보겠습니다.”
조민이 대답했다.
그녀는 평소와는 다르게 의욕 넘치는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AAM의 투자금 규모는 약 4,900만 달러 정도였다.
5억 달러 이상으로 늘어난 W&R의 투자금 규모에 비하면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작년 연말 투자금의 규모가 900만 달러까지 쪼그라들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거의 5.5배 정도 늘어난 금액이었다.
조민은 팀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 사원에 불과했다.
아마 어느 투자회사도 신입 사원에게 이런 투자금을 맡기는 회사는 없을 것이다.
조민의 능력을 믿는 것도 있지만 리안과 카이 황과의 인연을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신입 사원인 조민에게도 이런 투자금을 맡길 정도로 인원이 부족했다.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마지막으로 리안 씨는 어제 이야기를 나눈 것처럼 이제 나스닥뿐만이 아니라 S&P 지수에도 분산해서 투자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리안이 대답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브레이크를 바라보았다.
“RAM의 투자금이 1억 3백만 달러 정도던가요?”
“그렇습니다.”
브레이크가 대답했다.
나는 리안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 정도면 투자하신 분들도 만족하실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미 수익률이 100%를 넘었다.
5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올린 수익률로는 차고 넘칠 정도였다.
RAM의 투자자는 리안의 지인인 홍콩 부호들이었다.
아마 그들도 단기간에 이 정도 수익률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야 그렇지만 올해 러시아 주식시장이 이미 40% 정도 오른 것을 생각하면 그 정도로 만족하실지는 잘 모르겠네요.”
리안이 말했다.
“하긴 이 정도에 만족하신 분들이면 처음부터 투자하시겠다고 나서지도 않으셨겠죠.”
내 말에 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욕심이 좀 많으시죠.”
돈에 대한 욕심은 부자가 더했다.
특히 지금 홍콩의 부호들 상당수는 무일푼으로 홍콩에 와서 지금의 부를 이룬 1세대나 그들과 함께 재산을 일군 2세대들이었다.
욕심이 있으므로 지금처럼 부자가 된 사람들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 상황에서 RAM의 자금 1억 달러 이상이 들어간 러시아에 우리 자금까지 투자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브레이크 씨.”
“예, 말씀하십시오.”
“RAM의 자금은 계약상 어쩔 수 없으니 한동안 러시아 지수에 그대로 투자를 유지하고 대신 W&R의 투자금을 다른 곳에 투자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다른 곳이라면 어디에?”
“영국의 런던 주식시장이나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주식시장요. 정확하게는 영국의 FTSE 지수나 DAX 지수 파생 금융 시장에 투자했으면 하는데요.”
브레이크의 안색이 굳었다.
긴장한 표정이었다.
러시아가 유럽 금융 시장 중 변방이라면 영국과 독일은 유럽 금융 시장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번 주부터 당장 말입니까?”
브레이크가 물었다.
“되도록요. 어차피 브레이크 씨도 언제까지 러시아 시장에만 머물 생각은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내가 브레이크를 영입한 것은 그가 러시아 동유럽 전문가였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브레이크라고 해서 조금 더 큰 시장으로 나갈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런 시장에서 브레이크에게 믿고 맡길 고객이 없었을 뿐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막말로 브레이크가 정말 러시아나 동유럽 시장에 뼈를 묻을 생각이었다면 홍콩이 아니라 진작에 러시아로 근무지를 옮겼을 것이다.
브레이크는 선뜩 대답하지 못했다.
망설이는 모습이었다.
“아시겠지만 저는 단기간의 수익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영국이나 독일 시장에서의 수익이 러시아에 투자할 때보다 떨어져도 브레이크 씨가 경험을 쌓을 수 있다면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브레이크를 바라보다가 덧붙였다.
“그렇다고 투자금을 다 날려도 된다는 뜻은 아니고요.”
마침내 브레이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독일부터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각 시장의 투자 방향에 대한 저와 부팀장의 생각은 보고서에 나와 있는 그대로입니다. 거기 나온 예상을 참고하셔서 각자 투자 계획을 부팀장에게 제출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내 지시에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럼 회의를 마칩니다.”
2.
회의를 마치고 나는 카이 황 씨에게도 보고서를 메일로 보내고 전화도 걸어서 투자 방침 변화를 설명해 주었다.
카이 황 씨도 내 방침 변화에 공감했다.
내가 다음에 찾아간 사람은 장샤오이 2팀장이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선물뿐만 아니라 옵션까지 투자하고, 투자하는 시장도 나스닥뿐만 아니라 뉴욕 증시 그리고 영국, 독일까지 넓힌다는 말이네요?”
“그럴 생각입니다.”
내가 말했다.
장샤오이 팀장이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되면 우리 팀 중 일부가 그쪽 팀 일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 출근 시간을 변경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으시죠?”
장샤오이 팀장이 되물었다.
장샤오이가 팀장으로 있는 2팀은 나와 리안을 제외하면 본래는 아시아, 정확하게는 중국에 대한 직간접 투자를 위해 만들어진 팀이었다.
당연히 출근 시간도 중국 표준 시간에 맞춰져 있었다.
그런데 우리 팀의 지시를 받아 거래하자면 밤에도 출근해야 했다.
당연히 24시간 근무할 수 없으니 팀원 중 일부의 출근 시간을 변경해야만 했다.
지금 장샤오이는 팀원 중 일부를 리안과 브레이크의 지시를 따라서 선물거래에 교대로 투입했다.
그렇지만 시장이 늘어나고 선물뿐 아니라 옵션까지 거래하자면 그렇게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2팀 일부가 아예 우리 팀 전담으로 배정되고 출근 시간도 변경해야만 한다.
“알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미리 말씀해 주셔야지요. 당장 오늘이나 내일부터 거래를 받아서 해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바로 말씀 주시면 곤란합니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일은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팀도 급하게 내린 결정입니다.”
내가 말했다.
“3팀의 요구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계시겠죠?”
“예.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장샤오이가 팀원 중 일부를 우리에게 전담시켜서 출근 시간을 변경한다는 것은 겉보기처럼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장샤오이에게는 누구를 우리 팀에 전담으로 배정하느냐에 따른 팀원 관리 문제뿐 아니라 그녀의 2팀과 우리 3팀 사이의 주도권 문제도 걸려 있었다.
“제안을 받아들이기 어려우시면 거래 중 일부를 다른 팀에 넘길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그게 더 자연스러울 수도 있고요.”
류오린에는 그녀와 내가 속한 아시아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예전 리안이 있었던 해외시장팀, 즉 미국과 유럽에 투자하는 팀도 있었다.
“그럴 수는 없죠. 3팀이 우리에게 거래를 위임하는 것은 우리 사이의 거래였어요. 자존심이 상하고 관리가 어렵다고 큰 이익이 될 거래를 포기할 수는 없죠. 받아들이겠어요. 내일까지 팀원 중에서 미국과 유럽 거래를 전담할 팀원들을 알려 줄게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알겠습니다.”
바뀐 투자 방침에 대해 2팀장에게 협조 요청이 끝났다.
2팀에서 어떻게 전담 팀원을 뽑고 관리할 것인지는 이제 장샤오이의 몫이었다.
물론 가장 일이 많이 늘어난 사람은 바로 나였다.
리안이 두 개, 브레이크가 세 개, 조민이 두 개 그리고 카이 황이 한 개 시장에서 맡고 있었다.
이 모든 여덟 개 시장의 기본 투자 방향을 정해야 하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나는 투자금을 각자에게 배정하면서 2천만 달러를 따로 빼놓았다.
직접 한국 주식시장에 투자하기 위해 빼놓은 투자금이었다.
지금 바라는 건 되도록 특별한 일이 없어서 CIA에서 나를 찾는 일이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음 날 뉴스를 보며 이건 헛된 희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루살렘에서 9명이 죽고 90명이 부상당한 대규모 폭탄 테러에 대한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지난주 있었던 이스라엘의 하마스 지도부에 대한 폭격에 대한 보복이었다.
며칠이 지나도록 CIA에서는 아무런 지시도 내려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이대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