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121화 (122/270)

#122. 춤을 추려면 음악가에게 돈을 줘야 한다

1.

테러가 벌어지고 며칠 동안 상황을 지켜본 나는 토요일에 리안과 카이 황을 집으로 불렀다.

일종의 W&R의 주주총회라고 할 수 있었다.

“뭔 일이야?”

리안이 물었다.

“이번 일에 대한 둘의 생각과 대책을 들어 보기 위해서 불렀어. 아무래도 두 사람과도 상의해야 할 것 같아서.”

“이번 일?”

“목요일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폭탄 테러와 그 후 벌어진 이스라엘의 무력행사 말이야.”

리안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그게 우리가 모여서 이야기할 정도로 중요한 일이야? 그 지역에서는 흔한 일이잖아? 너 몇 달 전 네팔 왕실 학살 사건 때처럼 뭔가 꽂힌 것 아니야?”

“이번 일은 단순히 내 개인적인 관심이 아니야. 올해 들어서 일어난 일들 생각하면 이게 큰일이 일어날 전조일 수도 있어.”

“하인리히 법칙인가 하는 그런 부류의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하인리히 법칙은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작은 수십 번의 사고와 수백 번의 징후가 나타난다는 통계적 법칙이었다.

“맞아. 단지 사고만이 아니라 세상의 어떤 일도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어. 올해 들어서 이슬람 관련 사건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잖아, 심상치 않아. 얼마 전 필리핀에서 일어난 납치 사건도 이슬람 반군 짓이잖아.”

“이슬람 세력들이 그런 일을 벌인 일이 한두 번도 아닌데 그게 큰 문제가 될까?”

리안의 말대로 이슬람 세력에 의한 테러나 납치는 몇 년 사이 아주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번 일을 좀 더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흔한 일이지. 하지만 올해처럼 동시다발적으로 문제가 일어나는 일은 별로 없었어. 더구나 이런저런 사건이 중앙아시아부터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동남아시아까지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말이야.”

이슬람 반군에 의한 납치 사건은 필리핀에서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올해처럼 수십 명을 대상으로 한 납치를 몇 달 사이에 연속해서 벌이는 일은 거의 없었다.

“아저씨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리안이 카이 황을 보며 물었다.

“저도 그렇게 쉽게 넘어갈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카이 황이 말했다.

“아저씨도 큰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말씀이죠?”

“예.”

“내 생각은 이래. 조만간 큰 테러가 일어날 것 같아. 지금으로서는 작년처럼 해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이나 미국 대사관이 될 가능성이 커. 피해가 적으면 모르겠지만 만약 큰 피해가 생기면 지금 미국 대통령을 생각할 때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어.”

지금 미국 대통령은 90년대 초 이라크 전쟁을 벌였던 부시 대통령의 아들이었다.

지금 외교나 국방 분야 참모들은 90년대 초에도 백악관에 있었던 인물이었다.

이미 한 번 전쟁을 경험해서 대승을 이끈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지금 백악관은 전쟁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네 말대로 전쟁이 벌어지면 주가가 요동치겠군.”

“맞아, 그래서 두 사람을 오늘 부른 거야. 미리 이야기해 놔야 만약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 당황해서 실수하는 일을 막을 수 있잖아.”

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내 걱정이 지나친 생각이면 좋겠네. 그런 일이 없어도 우리 지금 잘되고 있잖아.”

리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급격한 주가 변화는 기회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 회사인 W&R과 팀은 그런 사건 없이도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나는 카이 황에게 고개를 돌렸다.

“일이 일어났을 때 혹시 저와 연락이 되지 않으면 대표님이 리안과 의논해서 투자 결정을 내려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미리미리 상황을 예상해서 투자 방향을 결정해 놓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위험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카이 황이 말했다.

그의 말은 이른바 위기 대응 시나리오를 만들자는 이야기였다.

“좋은 생각이기는 한데 그런 방향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지금 상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정확히 예상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렇기는 하죠. 그래서 제 생각에는 우리 셋이 모여서 예상되는 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면 위기가 발생했을 때 투자 방향을 착각하는 일이 없을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리안, 너도 내가 연락이 안 되면 카이 황 씨랑 우선 의논하도록 해.”

“알았어.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너와 연락이 안 되면 안 되는 것 아니야? 팀장이자 회사의 가장 지분이 많은 네가 먼저 나서야지.”

“당연하지. 하지만 혹시 모를 일이 생길 수도 있잖아.”

내가 연락이 안 될 때를 준비하는 것은 당연했다.

불안이 현실이 되면 내가 아무리 다른 임무 핑계를 대더라도 명령에 따라서 차출될 수도 있었다.

그렇게 차출됐을 때는 투자를 생각할 여유도 없겠지만 여유가 있다고 해도 투자에 참여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될 수가 있었다.

임무 중에 얻은 정보를 통해 투자하는 것은 미국의 공무원법 위반이었다.

자칫 나중에 문제가 될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2.

며칠 동안 우리 셋은 모여서 대응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서 미국이나 유럽을 상대로 한 대규모 테러가 일어나면 선물 하락 포지션이나 풋 옵션을 매수하자는 말이지?”

“맞아. 규모에 따라서 조금 차이가 있지만,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을 때는 1주 정도, 정말 큰 충격이 예상되는 테러일 때는 2주 정도 유지하면 될 것 같아.”

“그리고 상황을 봐서 한 주 정도 더 포지션을 연장할지를 결정하자는 이야기고 말이야.”

“그런 상황이 진짜로 발생한다면 한 주 정도는 더 계속 유지해도, 이익이 줄어드는 일은 있어도 손해를 보지 않을 테니까.”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던 카이 황이 입을 열었다.

“빠른 대응이 필요하겠습니다. 그런 상황이 오면 하락 포지션 선물을 사는 일도 쉽지 않겠지만 풋 옵션도 프리미엄을 상당히 줘야 구매할 수 있을 겁니다.”

“일단 며칠 동안 이야기한 것처럼 기준은 나스닥 12%, S&P 7%, FTSE 10%, DAX 20%, 러시아 5%, 닛케이 5%, 코스피 10%, 항셍 지수는 10%를 하락 마지노선으로 하겠습니다. 사건 발생하고 이 이상 떨어지면 기간 전이라도 선물이든 옵션이든 정리하세요.”

“알았어. 그런데 도대체 지수에 따라서 정리하는 기준이 다른 이유가 뭐야? 기준이 필요한 것은 알겠는데 기준을 그렇게 정한 이유는 잘 모르겠거든?”

리안이 물었다.

“며칠 동안 이야기했잖아. 올해 S&P500 지수보다 나스닥이 더 많이 떨어졌잖아. 영국 FTSE 100 지수보다 독일 DAX 지수가 더 떨어졌잖아. 러시아는 만약 내 예상처럼 이슬람에 의한 테러가 일어난다면 산유국인 러시아로서는 크게 나쁠 것이 없으니 처음에는 하락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빠르게 진정될 테고······. 닛케이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테러가 일어나면 엔화 강세가 될 테니 주가가 크게 떨어지지 않을 테고······. 한국의 코스피는 미국 주가 영향을 많이 받고, 여기 홍콩 항셍지수는 영국의 FTSE 지수 영향을 많이 받으니 10% 정도로 잡은 거야.”

내 긴 설명에도 리안은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내 말은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건 기준이 너무 주먹구구식 아니야?”

“다른 방법이 없잖아.”

“내 말은 리스크 분석을 제대로 계산해서 기준을 잡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지.”

“기준? 그냥 주가 상황을 보고 대충 정한 거지. 어차피 주가라는 게 심리적인 요인이 크잖아.”

며칠 동안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하던 나는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계산이나 분석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조민의 도움이라도 받자는 거야?”

내가 리안을 보며 물었다.

“꼭 그렇다기보다는 조민에게 한번 이야기를 들어 보자는 거지.”

예전과는 다른 태도였다.

리안은 조민과 함께 일을 하면서 생각이 많이 변한 듯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별로 도움이 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뭐라고 하려고? 테러가 일어날지도 모르니까 미리 준비하자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냥 내 예감이고? 너야 카이 황 씨야 그동안 쌓인 게 있으니까 내 말을 믿는 거지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 하면 미친놈 소리 듣거나 테러 공범으로 의심받지 않으면 다행이지.”

“내가 이야기하면 믿지 않을까? 우리가 하는 이야기가 무슨 큰일도 아니잖아. 테러가 일어나면 주가가 내려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에 대한 준비를 미리 하자는 것인데 크게 잘못된 것 없을 것 같은데?”

“조민이야 당연히 넌 믿겠지. 하지만 나를 믿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내가 예상하는 일이 정말 일어나면? 우리가 이런 논의를 하는 것 자체가 자칫 빌미가 될 수 있어. 조민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가 하는 말이 알려졌을 때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겠어?”

리안이 하는 말처럼, 우리가 하는 이야기는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정말 테러가 일어난다면 다르게 보일 수도 있었다.

테러가 일어난 직후에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도 일단 대중의 공황 상태와 다른 이야기가 하기는 어려웠다.

“그런가?”

“그래.”

내가 딱 잘라 말했다.

3.

리안이나 카이 황에게는 말하지 못했지만 내가 무엇보다 걱정하는 것은 우리가 이런 논의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그 와중에 내 정체가 드러나는 일이었다.

CIA 요원이 테러를 예상하고도 그 테러를 이용해서 돈을 벌 시나리오를 준비했다?

아니, 이런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기 전에 CIA에서 나를 가만둘 리가 없었다.

물론 테러가 일어나지 않으면 이런 걱정은 쓸데없는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나는 조만간 테러가 일어날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미국의 백악관이나 CIA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미국의 외교 정책의 변화였다.

미국의 외교 정책, 특히 중국에 대한 외교 정책이 한두 달 사이 변화했다.

미국 정부는 하이난섬 사태가 일어난 직후만 해도 무섭게 중국을 압박했다.

그랬던 미국 정부가 미국 내 반발에도 중국의 올림픽 유치를 허용했다.

지난달에 미국 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했고 며칠 전에는 미국 상원 외교 위원장인 바이든도 장쩌민 주석과 회담을 나눴다.

중국이 몸을 납작 엎드렸다고는 하지만 미국의 처지에서는 입장을 급변할 별다른 계기가 없었다.

중국에 대한 압박을 그만둔 것에 비해서 중동 정책은 어느 때보다 강경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상황을 악화시키는데도 별다른 논평조차 없었다.

저런 식으로 압박하면 이슬람 과격파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대규모 테러뿐이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조직이 바로 CIA였다.

왜냐하면, 알카에다 같은 이슬람 과격파를 훈련한 조직이 바로 미국과 CIA였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돌풍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파키스탄 정보부(ISI)를 통해 지원한 조직이 바로 최근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테러 단체인 알카에다의 전신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통해 훈련받은 알카에다는 작년에 미 해군 기지를 직접 공격할 정도로 체계적이었다.

더욱이 애초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휴전협정을 끌어낸 것 사람이 현 CIA 국장인 조지 테넛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미국 정책에 CIA 국장보다 더 큰 힘이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했다.

언제 어디서 일어나느냐 하는 문제일 뿐이었다.

언제 어디서 일어나느냐가 이번 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니 이런 생각 자체가 어리석은 말이었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욕을 할지 모르지만, 만약 정말 테러가 일어난다면 앞으로 한 달 안에 일어났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최근 발표되는 경제지표나 기업의 실적을 생각하면 앞으로 한 달 동안 세계 주가는 꾸준히 내림세일 가능성이 컸다.

어차피 하락 포지션과 풋 옵션 상태를 유지한 상태라면 테러가 일어나도 대응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이런 이야기는 당연히 리안이나 카이 황에게도 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테러에 대한 대응 시나리오는 어느 정도 준비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