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130화 (131/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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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도둑은 어렸을 때 교수형에 처해야 늙어서도 훔치지 않는다

1.

제러미 하, 하성철에 대한 설득이 끝나고 나는 다음날 홍콩으로 전화를 걸었다.

“브레이크에게 하락 포지션으로 바꾸라고 이야기해 줘.”

-러시아도 주가가 내려가리라 생각하는 거야?

내가 한 주 동안 한국에서 나름 괜찮은 수익률을 얻는 동안 지난 한 주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의 주가가 하락했다.

주요국 중에서 거의 유일한 예외가 바로 러시아였다.

그리고 나는 리안의 말대로 이제 러시아도 하락할 것으로 생각했다.

“중동의 심상치 않은 상황이 아무리 러시아에 호재라고 해도 다른 나라 주가가 이렇게 내려가면 더는 버티기 어렵지.”

내가 러시아 주가가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이유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사이의 전쟁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스라엘의 공격에 팔레스타인이 테러로 대항하는 상황이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여전히 이스라엘 정부의 팔레스타인 주요 지도자에 대한 암살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에 대한 보복으로 예루살렘에서 자살 테러가 계속되고 있었다.

특히 이번에 암살된 무스타파 지브릴은 최근 암살된 인물 중에서 가장 거물 중 한 명이었다.

바로 현재 팔레스타인의 합법적인 정부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창립자 중 한 명이었다.

항상 이스라엘의 암살을 조심했던 그도 이스라엘 정부가 집무실을 미사일로 공격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독일과 유럽연합이 휴전협정을 중재하려 나섰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어 보였다.

불안한 중동 상황은 OPEC에 소속되지 않은 최대 산유국 중 하나인 러시아 경제에 분명 호재였다.

그렇지만 지금은 이런 호재를 전 세계적인 경제 불황이라는 악재가 압도하고 있었다.

-러시아까지 하락 포지션으로 바꾸면 투자 전부를 하락 포지션으로 잡는 거군.

“그렇지 뭐. 지금 상황은 말 그대로 대책이 없는 상황이잖아. 지난주에는 미국 연준이 금리를 인하했고 며칠 전에는 유럽 중앙은행도 금리를 인하했어. 심지어 지난 금요일에는 그동안 인위적인 경기 부양책은 없다던 일본 정부조차 140억 달러가 넘는 실업 대책을 발표했는데도 주가가 떨어졌잖아.”

지금 경제 상황은 말 그대로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었다.

전 세계 정부가 시장에 돈을 쏟아붓고 있었다.

지금처럼 경제가 나쁘지 않았더라면 연초 부시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천문학적인 감세안이 발표됐을 때 주가가 반등했을 것이다.

당내 반발을 무시하면서 밀어붙인 감세안이었지만 오히려 공화당 의원의 탈당으로 상원에서 다수당 지위를 잃은 역효과만 있었다.

“거기 홍콩 분위기는 어때?”

-여기야 항상 그렇지. 아! 나 텐진에 투자 좀 했어.

“갑자기 뭔 투자야?”

내가 물었다.

-얼마 전에 중국 정부에서 여행과 거주 제한을 풀었잖아.

중국이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공식적으로는 공산주의 국가였다.

중국은 얼마 전까지 주민들의 여행과 거주 이전에 대해 통제를 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도시에 사는 외지인들은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이런 제한이 상당 부분 풀렸다.

리안은 누가 부동산으로 돈을 벌었던 가문 출신이 아니랄까 봐 이 기회에 부동산이라도 사들인 듯했다.

이제 지방에서 상하이나 베이징, 텐진 같은 거점 도시에 사람이 모일 테니 그 전에 투자한 셈이었다.

베이징이나 상하이가 아니라 텐진에 투자한 것은 특이한 일이지만 그의 집안이 현재 중국을 장악하고 있는 상하이방과 껄끄러운 사이라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나저나 홍콩에는 언제 오는 거야?

리안이 물었다.

“왜? 가도 지금 상황에서는 특별히 할 일도 없잖아.”

이번에 러시아에 대한 투자 포지션을 상승에서 하락으로 바꾼 것을 제외하면 몇 주 전부터 투자 방향을 유지하고 있었다.

중간에 조금의 등락은 있었지만, 한동안 주가가 하락할 것이라는 내 생각은 확고했다.

-내 약혼녀께서 너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단다.

리안의 약혼녀라면 바로 조민이었다.

나는 순간 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부담스럽게 나를 바라보던 눈빛이 생생했다.

“아직도 그래?”

-여전해. 내가 말했잖아, 끈질기다고······. 별다른 할 일이 없어서 더 그런 것 같아.

“그럼 일을 만들어 줘야겠네. 조민 컴퓨터 프로그래밍 어느 정도 한다고 하지 않았나?

-잘하지. 수학을 잘하는데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못할 리가 있겠어.

수학은 논리와 증명에 관한 학문이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라는 것도 단순 코딩이 아닌 이상 결국 누가 논리적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일이 많았다.

수학자 중에 프로그램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많았다.

“그럼 자동으로 주식이나 선물 옵션을 거래하는 시스템 좀 짜 보라고 해 줘. 지금 있는 프로그램들은 변수를 지정하기도 어렵고 판단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

-그런 일은 안 하려고 할 것 같은데?

“내가 아주 관심이 있다고 이야기해. 그리고 만약 한다고 하면 혼자 할 수는 없으니 남아 있는 자금 중에서 지원해 주고.”

-알았어, 말은 해 볼게. 그런데 진짜 언제 올 건데? 조민만이 아니라 아저씨도 너 언제 오느냐고 묻던데?

“다음 주말 정도에 갈게.”

내가 말했다.

2.

리안과의 전화를 끝내고 나는 남은 일주일 동안 한국에 온 목적을 끝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성철을 설득하는 일은 성공했지만 그게 내가 한국에 온 이유는 아니었다.

그를 한국에 불러들인 것은 나 혼자서 한국 주식을 거래하는 일이 불편하고 한국에서 일을 맡아 줄 사람이 필요해서였다.

내가 한국에 온 이유는 아버지의 복수.

정확하게는 본격적인 복수를 하기 전에 아버지의 차를 운전했던 배승윤에게 당시 상황에 대한 일을 듣기 위해서였다.

나는 일을 끝내기 위해 정윤호를 호텔 방으로 불렀다.

“지난번에 조사하라고 시킨 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지시를 내리고 시간이 꽤 지났는데 아직 보고가 없네요?”

배성윤에 대해 조사를 지시한 후 열흘이 넘도록 별다른 보고가 없었다.

정윤호가 무능하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투자 정보를 모으는 것을 봐서는 아니었다.

“그게 좀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정윤호가 대답했다.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다.

“아직 조사할 일이 남았다고요?”

내가 다시 물었다.

지방의 건설업자 하나 조사하는 일이었다.

국정원 출신인 정윤호라면 일주일이면 말 그대로 사돈의 팔촌은 물론이고 내연녀가 있다면 그 내연녀가 만나는 남자까지 조사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대상이 생각보다 거물이더군요. 관련된 인물들도 만만치 않고요.”

내가 배승윤을 첫 목표로 선정한 이유는 그가 단순히 아버지의 운전기사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CIA에 있을 때 사람을 보내 명단의 이름을 다시 확인해 본 적이 있었다.

그때 알아낸 정보를 보면 가장 만만한 사람이 배승윤이었다. 당시 배승윤은 경기도 일대에서 작은 빌라나 짓는 건설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정윤호는 그 배승윤이 거물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럴 리가요? 제가 알아봤을 때는 건설 회사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는데요?”

“몇 년 전에는 그랬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1999년부터 성남 일대에서 대규모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를 계획해서 지금 건설을 하고 있습니다. 무려 1조 원대 대형 사업입니다.”

정윤호의 말에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내가 물었다.

나도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 건설 회사가 단기간에 갑자기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정도의 문제였다.

지역에서 작은 주택이나 짓던 사람이 갑자기 1조 원대 대형 사업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 큰 변화였다.

심지어 1999년이라면 내가 그를 조사하고 그리 오랜 세월이 지나지도 않은 시점이었다.

“현재로서는 권력형 비리로 보입니다. 돈을 빌려서 아파트 허가가 날 수 없는 지역의 땅을 샀고 그 직후에 아파트를 지을 수 있도록 용도 변경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사 대금 거의 전부를 금융기관에서 대출받았고요.”

“어지간한 권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겠군요.”

작은 건설 회사를 운영하던 사람이 1조 원대 공사를 진행시킨다?

보통 권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성남시는 물론이고 경기도, 검찰, 국정원 그리고 청와대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정권이 바뀌기 전에는 그자를 잡는 것은 어렵겠군요.”

내 말에 정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황상 운전사였던 배승윤이 아버지를 팔아넘긴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제 1조 원대 권력형 비리의 중심 인물이라고 한다.

옛날이 딱 맞았다.

한국 속담으로 하면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된 셈이었다.

영국에서 유학할 때 교수 중 한 분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도둑은 어렸을 때 교수형에 처해야 늙어서도 훔치지 않는다.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면서 해 준 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배승윤은 제대로 큰 도둑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정권이 바뀌고도 한동안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정권이 바뀐다면 바로 조사가 시작되겠지만 그러면 또 몇 년간은······.”

가장 만만하게 생각했던 자가 전혀 만만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 잡아 오는 것도 안 되겠죠?”

“예. 제가 알아본 바로는 이미 국정원에서 감시가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검찰에서도 정보를 모으고 있다는 소문이고요.”

정윤호는 소문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일 것이다.

정윤호의 말대로라면 대형 스캔들이었다.

정권이 바뀐다면 다음 정권으로서는 정권 초반에 써먹을 수 있는 좋은 패였다.

권력자가 바뀌면 바로 갈아타는 권력기관이 정보를 모으지 않을 리가 없었다.

“배승윤은 건드리지 못하겠네요.”

“지금으로서는 그렇습니다.”

말을 마친 정윤호가 내 눈치를 보았다.

“알겠습니다. 일단 보류하세요.”

아무래도 배승윤에 대한 복수는 잠시 미뤄야 할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나는 다른 이름을 말하려다가 멈췄다.

아버지의 명단에는 국정원 간부도 있었다.

지금은 국정원 최고위직으로 있는 사람이었다.

정윤호가 그 간부와 어떤 관계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그 이름을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정치인이나 기업인을 말하는 것은 더 어려웠다.

정치인은 이미 은퇴한 이후였고 기업인은 이미 사망했다.

이 중 기업의 경우는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그 기업이 가진 재산 중에 우리 집안에서 강탈한 재산이 있다면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다만 기업의 경우는 한국에서 재벌 기업이라고 불릴 정도로 성장했기 때문에 지금 건드리기는 어려웠다.

복수하기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3.

복수가 난관에 빠진 것과는 달리 한국에서의 투자는 그렇지 않았다.

월요일에도 주가가 내려가는 와중에도 지난주에 사들였던 건설 회사의 주식은 꾸준히 올랐다.

지난주에 얻은 이익까지 합치면 건설주에서만 10% 이상의 이익을 얻었다.

화요일.

정부가 대규모 임대주택 건설을 한다는 소식에 그동안 오르지 않았던 건설 회사까지 오르기 시작했다.

“인제 그만 건설 회사 주식은 다 팔죠.”

“알겠습니다.”

하성철도 건설 회사 주식이 오를 만큼 올랐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물론 더 오를 여력은 충분했지만 한 번 수익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었다.

건설주에 대한 매수세가 여전히 강하다 보니 처분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오전 장이 지나기 전에 우리는 건설주를 모두 처분했다.

“건설주에서만 15% 정도 이익을 얻었네요.”

“싸게 내놓아서 그렇지 욕심을 부렸으면 20% 이상도 가능했습니다.”

하성철은 조금 아쉬운 표정이었다.

“빨리 팔고 다른 주식을 통해 이익을 얻는 것이 더 낫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는 어떤 주식을 사들일까요? 전날 휴렛팩커드가 컴팩을 인수했다는 소식에 컴퓨터 관련 주가가 오르는데 우리도 컴퓨터 관련 주식을 사들일까요?”

“휴렛팩커드나 컴팩이나 둘 다 시장점유율을 잃어서 합치는 것인데 우리가 그게 어떻게 호재가 됩니까? 아마 밤에 미국 증시가 열리면 휴렛팩커드는 적게는 15%에서 20%는 떨어질 겁니다. 아무래도 칼리 피오리나가 사퇴 압박을 받으니 무리를 하는 것 같네요.”

칼리 피오리나는 미국의 대표적인 여성 CEO였지만 실적이 좋지 않아서 사퇴 압박을 받고 있었다.

지난달에 이사회의 재신임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이번에 그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무리를 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어차피 계속 컴퓨터 관련 회사 주식을 가지고 있을 것도 아니고 장 마감 전에 팔면 꽤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겁니다.”

한국은 유행에 따라 주식을 사 주는 고마운 존재가 있었다.

바로 개미라고 불리는 개인 투자자들이었다.

“그런 회사는 사들였다고 해도 자칫 팔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그보다는 가이닉스를 사죠. 최근 이 회사 주식이 장중 거래 주식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주식을 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파는 것이었다.

아무리 주식이 오르면 뭐 하겠냐? 가격이 오른 주식을 사 줄 사람이 있어야 그제야 수익이 나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가이닉스 주식은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아주 좋은 주식이었다.

가이닉스 주식은 그날 이후 며칠 동안 매일 오르기 시작했다.

월요일에 산 주식이 금요일이 되자 무려 75%나 올랐다.

이렇게 기분 좋게 한 주를 마친 나는 호텔로 돌아와 습관적으로 CIA에서 온 메일을 확인했다.

임무 지시가 내려와도 따르지는 못하겠지만 변명을 하자면 읽기는 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메일을 읽는 순간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일은 알 카에다가 미국 시설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내용이었다.

CIA가 예상한 날짜는 몇 년 전 미국 대사관 공격에 대한 빈 라덴에 대한 궐석재판 선고가 내려지는 9월 12일 전후였다.

겨우 5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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