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131화 (132/270)

(131)

#132. 최고의 영웅은 최고의 악당이 될 수도 있다

1.

메일을 받고 나는 곧장 홍콩으로 돌아왔다.

홍콩에 도착하자마자 집으로 리안과 카이 황을 불렀다.

회사에서 이야기하기에는 민감한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토요일.

리안과 카이 황 그리고 조민이 내 집에 모였다.

내가 조민을 바라보자 리안이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어쩔 수 없이 조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온 사람을 쫓아낼 수도 없었고, 지금은 그런 일에 신경 쓸 상황도 아니었다.

세 사람을 모아 놓고 나는 내가 받은 메일에 관해 설명했다.

물론 직접 받은 것이 아니라 아는 사람을 통해서 전해 들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너는 9월 12일에 뭔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는 말이지?”

리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는 사람을 통해서 금요일인 어제 전 세계 미국 대사관을 대상으로 테러 경보가 내려졌다는 정보를 들었어. 전 세계 미국 기관과 미국인이 모두 대상이 될 수 있으니 대비하라는 내용이야.”

옆에서 듣고 있던 카이 황이 끼어들었다.

“저도 여름에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리안이 고개를 돌려 카이 황을 보며 물었다.

“그런 말이 있었어요?”

“예. 알 카에다가 미국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준비한다는 내용이었죠.”

“그런 말씀 없었잖아요?”

“비슷한 이야기는 예전부터 있어서 그냥 넘겼습니다. 저희와는 상관없는 내용이기도 했고요.”

카이 황의 설명에 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다시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너는 이번은 다르다고 생각한다는 말이지?”

“맞아. 이번 정보와 별개로 나는 조만간 뭔가 일이 생길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

“그래? 뭔가 근거가 있는 이야기야?”

리안이 나를 보며 물었다.

“말하자면 긴데······.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대통령 경선에 나설 때부터 이른바 일극 현실주의(Unipolar Realism)를 외교정책의 대원칙, 즉 독트린으로 삼고 있어.”

“일극 현실주의?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라는 뜻이야?”

리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말이지. 그리고 그런 미국이 세계를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 지금 백악관의 생각이야.”

“그래서 일극 현실주의 외교정책이 이번 일과 관련이 있다는 말이야?”

“맞아. 예를 들어 하이난 사건을 계기로 중국을 압박한 것이나 교토 의정서에서 탈퇴한 것이나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의 행동을 묵인한 것은 모두 이런 원칙에 따른 거야. 하지만 이런 일방적인 외교정책은 다른 나라의 반발을 가져올 수밖에 없지.”

나는 세 사람에게 이런 외교정책이 가져온 반발에 관해 설명했다.

미국이 중국에 사실상 항복을 받아 내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중국의 장쩌민 주석이 2003년 퇴임을 앞두고 2008년 올림픽 유치와 WTO 가입을 마지막 치적으로 삼고 싶어 하기 때문이었다.

교토 의정서에서 미국이 탈퇴했지만 다른 나라 전부가 교토 의정서에 서명함으로써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미국 외교의 중심축인 영국과 일본조차 미국과 반대편에 섰다.

이탈리아에서 열린 G8 회의에서도 사실상 미국이 나 홀로 따돌림을 받는 상황에 부닥쳤다.

팔레스타인 사태에서 이스라엘의 행동을 묵인함으로써 아랍 전체의 반발을 사고 있었다.

“장기적으로는 좀 다르겠지만 이번 테러에 관련해서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에 대한 초법적인 암살과 군사행동이 전 세계적으로 이슬람의 반미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 문제야. 알 카에다 같은 이슬람 테러 단체들이 테러를 일으킬 명분을 주고 있는 상황이야.”

전쟁과 마찬가지로 테러도 고도의 정치적인 행동이었다.

테러는 겉으로 드러난 직접적인 목적이 무엇이든 궁극적으로는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알 카에다가 미국을 대상으로 테러를 벌이는 목적은 궁극적으로는 미국에 공포심을 심어 주고, 아랍 세계에서 자신들의 세력을 확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슬람 세계 전체에 반미 감정이 한창 고조된 지금은 테러를 일으키기에 가장 적절한 시점이었다.

2.

“9월 12일 전후해서 테러가 일어난다고 치고······. 우리가 뭘 하면 되는 거야?”

리안이 물었다.

“한 달 전에 만들어 놓은 시나리오대로 하면 되는 겁니까?”

카이 황이 한 달 전에 테러를 대비해서 만들어 놓았던 시나리오를 언급했다.

이미 한 달 전 나는 리안과 카이 황을 불러서 며칠 동안 대응 시나리오를 만들어 놓았었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단순히 테러가 일어날 것이라는 예상뿐 정확한 일자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었잖아요. 지금은 12일 전후라는 기준이 있으니 이날을 중심으로 준비를 해야죠.”

“정확히 어떻게 하자는 말이야?”

리안이 물었다.

“우선 아시아와 미국과 유럽을 두 개로 나눠서 생각할 필요가 있어.”

“기준이 뭔데? 알 카에다가 정말로 대규모 테러를 일으킨다면 지금으로서는 유럽에 있는 미군 기지나 대사관을 목표로 할 가능성이 크지만, 아닐 수도 있잖아. 일본이나 한국도 그 목표가 될 수 있는 것 아니야? 몇 년 전에 실제로 아시아 국가를 대상으로 비행기 납치를 통한 테러가 사전에 발각된 적도 있고 말이야.”

리안의 말대로 아시아도 알 카에다 테러에서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1993년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 주범인 알 카에다의 수석 요원인 람지 유세프는 이미 필리핀과 태국에서 비행기 폭탄 테러를 두 번이나 계획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미국 유럽과 아시아를 나눠서 생각하자고 한 이유는 테러가 일어난 장소와는 상관이 없었다.

“우리가 미국이나 유럽의 정보기관도 아닌데 테러가 어디에서 일어나는 것이 무슨 상관이야?”

“그럼 기준이 뭐라는 거야?”

리안이 물었다.

“우리는 투자금 대부분을 선물 옵션에 투자했잖아. 그러면 기준이야 당연히 선물 옵션이지. 우리가 투자한 일본, 홍콩, 한국은 다 선물 옵션 만기일이 다음 주인 두 번째 주 목요일이잖아. 미국이나 유럽은 다음다음 주인 세 번째 금요일이고 말이야.”

리안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 물었다.

“선물 옵션 만기일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바로 이해가 안 되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카이 황이 입을 열었다.

“대규모 테러가 일어나도 선물 옵션 만기일이 지나면 시장이 다시 상승할 것으로 생각하시는 겁니까?”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카이 황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지금 시장 상황이 좋다면 대규모 테러가 일어나면 큰 충격을 받겠죠. 하지만 지금은 세계 거의 모든 증시가 바닥입니다. 이 상황에서 당장은 큰 충격을 받겠죠. 하지만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과 일본의 중앙은행 모두 대규모로 시장에 돈을 풀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돌발적인 사건으로 주가가 폭락한 경우를 모두 찾아보니 대부분 선물

옵션 만기일을 기준으로 곧 회복했더군요.”

카이 황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선물 옵션을 만기일까지 모두 가지고 있거나 직전에 청산하고, 만기일이 지나면 바로 상승 포지션으로 바꿔 타자는 말씀이군요.”

“예. 주가 일시적으로 폭락하더라도 선물 옵션 만기일이 지나면 테러가 발생하기 직전 수준까지는 곧바로 회복할 거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런데 정말 그런 테러가 일어나면 큰일 아니야? 지난번 네 말대로라면 미국을 상대로 테러가 일어나면 미국에서 전쟁을 벌일 거라면서?”

리안이 물었다.

“맞아. 아까 말했지만, 부시 행정부의 외교 원칙은 일극 현실주의라고 할 수 있어. 그리고 그 외교정책은 지금까지는 거의 실패작이야. 더구나 미국 국내에서도 부시 행정부는 임기 초반인데도 국정 장악력을 잃고 있고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테러가 발생하면 백악관으로서는 다시 전쟁으로 주도권을 쥐려고 할 거야.”

3.

현재 부시 대통령은 국내에서 말 그대로 위기에 처해 있었다.

부시 대통령의 감세 정책을 비롯한 경제정책에 반발해 공화당 상원 의원 한 명이 민주당으로 당적을 바꿨다.

그 결과는 단순히 상원 의원 한 명을 잃는 것이 아니라 상원에서 공화당이 다수당 지위를 잃는 결과를 가져왔다.

여기에 민주당 내에서 공화당 정책에 동조하던 의원 중 한 명이 실종된 인턴과의 부적절한 관계가 드러나면서 정치적 사망 선고를 받은 상태였다.

그렇지 않아도 부시 대통령은 임기 초반부터 부정투표로 당선되었다는 의혹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대통령으로서의 정당성에 의문을 받는 상태였다.

단지 선거인단 수에서는 이겼지만, 득표율에서는 앨 고어와 비교하면 뒤졌기 때문이 아니었다.

부시 대통령의 동생이 주지사로 있는 플로리다에서는 여러 가지로 측면에서 부정투표로 의심될 만한 정황이 발견되었다.

앨 고어가 재개표를 포기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이런 논란은 부시 행정부에 여전히 꽤 큰 부담이 되고 있었다.

“내부 불만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외부와의 분쟁, 즉 전쟁이라는 건가?”

“맞아. 그리고 전쟁 대상은 아프가니스탄이 될 가능성이 크지. 알 카에다의 지도부를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부가 숨겨 주고 있으니까 말이야. 빈 라덴을 탈레반 정부가 잡아서 미국에 보내지 않는 이상 전쟁은 필연적이야.”

내가 말했다.

“아프가니스탄이면 뭐 그나마 낫네. 중동이 아닌 게 어디야.”

“그렇지 뭐. 아프가니스탄 국민을 위해서도 탈레반 정권은 사라지는 게 낫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은 현재 이슬람 국가 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모습을 보였다.

올 초에 있었던 바미안 석불 파괴 같은 미친 짓을 태연히 하고 있었다.

탈레반의 지도자 모하메드 오마르는 다른 제3세계 많은 국가 지도자들이 그렇듯 한 때는 아프가니스탄의 독립 영웅이었다.

독립 영웅이었다가 독재자가 되는 경우는 아주 흔했다.

심지어 알 카에다의 지도자 빈 라덴도 한때는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 인물 중 하나였다.

한때는 미국으로서는 냉전시대 소련에 대항해서 함께 싸우는 영웅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한때의 동지이자 영웅은 지금은 미국 수배자 명단 최상위에 올라 있었다.

하지만 모하메드 오마르가 다른 독재자들과 다른 점은 그가 이슬람 극단주의라고도 하기 어려운 변형된 신념을 믿고, 그 신념을 국민에게 강요한다는 점이었다.

그런 지도자나 정권이 사라지면 나쁠 것이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에드릭, 네 생각은 어때? 알 카에다가 예상대로 12일 전후해서 대규모 테러를 일으킨다면 그 대상이 어디가 될 것 같아?”

리안이 물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래도 대충이라도 짐작이 가는 곳은 없어?”

“내 예상은 유럽이면 독일의 미군 기지? 아니면 일본의 미군 기지? 한국도 미군 기지가 있기는 한데 거기는 가 보니 북한 때문에 경계가 만만치 않더라고······. 나 있을 때 북한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했다는 소식에 난리가 났어.”

내가 말했다.

“어쨌든 12일 전후로 정신로 바짝 차리고 있어야겠네.”

나는 세 사람을 보며 말했다.

“여기서 내가 한 이야기는 밖에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마.”

“우리를 바보로 알고 있어.”

리안이 대답했다.

나는 아까부터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던 조민을 바라보았다.

“알았어요. 집에도 아무 말 하지 않을게요.”

조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4.

세 사람은 에드릭의 집을 나왔다.

“저는 그만 준비를 위해서 일찍 집에 가 보겠습니다.”

카이 황이 차를 타고 떠난 후 리안과 조민은 바로 옆에 있는 리안의 집으로 들어갔다.

“항상 이런 식이에요?”

집에 들어가자 앉자마자 조민이 물었다.

그녀는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이런 식이라니?”

“제 생각과는 조금 달라서요.”

“뭐가 다른데?”

리안이 물었다.

“좀 뜬구름 잡는 것처럼 보여서요. 저는 에드릭 씨가 투자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특별한 방법이 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특별한 정보망이 있다거나 아니면 투자를 성공시키는 특별한 공식이나 프로그램이 있다거나요. 방법은 전혀 다르지만, LTCM이나 르네상스펀드처럼요.”

“그런데 아니다?”

“예, 너무 주먹구구식이라는 생각이 들이요. 아니, 며칠 후에 미국을 향한 대규모 테러가 일어나고, 테러가 일어나면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할 거라고요? 그 근거라는 것이 겨우 미국 정부에서 대사관에 보낸 테러 경보라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조민이 말했다.

“나도 비슷한 생각한 적이 있어. 이야기를 바로 들을 때는 그럴듯한데 나중에 혼자 생각해 보면 에드릭의 추측으로 이뤄진 부분이 많지.”

리안이 말했다.

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제 말이 그 말이에요.”

“그런데 말이야. 내가 에드릭이 투자하는 것을 지켜본 것이 9개월째야. 아니, 달수로는 10개월이지. 그런데 에드릭의 말이 빗나간 적이 거의 없어. 그동안 에드릭은 거의 수십 번의 투자 결정을 내렸는데도 말이야. 겨우 한두 번 정도 빗나갔을까? 이 정도 정확성이면 설사 에드릭이 점을 보거나 주사위를 던져서 투자한다고 해도 믿을 수밖에 없지 않겠어? 안

그래?”

“그건······.”

조민이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정말 에드릭이 하는 말이 다 전부일까?”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에드릭이 진짜 어디서 정보를 얻는다고 해도 그걸 우리에게 그 정보를 전부 다 말하겠어?”

“안 하겠죠.”

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릭이 어디서 정보를 얻으면서도 출처를 숨기든 아니면 진짜로 자신의 예측으로 투자하는 것이든 무슨 상관이야? 투자로 지금처럼 이익을 낸다면 나에게는 피해 주는 것도 아니잖아? 내가 처음 W&R에 투자할 때 투자금이 3억 달러였어. 지금은 이것저것 다 합치면 7억 달러가 넘지. 나는 가문을 일으키는 것이 최우선이야. 지금 투자금 전부를 주가 하

락 포지션에 투자했는데 이번에도 에드릭의 예상이 맞기를 바라고 있어. 예상이 맞는다면 한 번에 정말 거액을 벌 기회잖아?”

“그렇기는 하죠.”

며칠 후.

에드릭에 대한 리안의 믿음은 빗나갔다.

에드릭은 독일이나 일본의 미군 기지가 테러 대상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했다.

하지만 테러의 대상이 된 것은 미국 본토.

그것도 미국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건물인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였다.

리안은 11일 오후 9시 세계무역센터 빌딩과 충돌하는 여객기의 모습을 뉴스로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다.

세계의 오늘은 더는 어제와 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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