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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친구란 같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다
1.
20일 늦은 밤.
리안의 집에 리안, 조민 그리고 카이 황이 모였다.
오늘 미국과 독일 선물과 옵션을 모두 매각하고 투자를 결산했다.
조민은 지난 반년간의 투자 명세를 리안에게 정리해 주었다.
그 내용을 본 리안이 두 사람을 자신의 집으로 부른 것이다.
“에드릭 팀장님은 내일 오전에 도착하신다고요?”
카이 황이 물었다.
“늦어도 10시에는 사무실에 도착할 겁니다.”
리안은 조민이 준 서류를 카이 황에게 건네주었다.
“8월 8일부터 어제인 9월 20일까지 투자 결과를 정리한 내용입니다. 총 수익은 92.5%, 수익금은 4억 8천5백만 달러입니다.”
카이 황은 투자 내용을 살펴보았다.
“막연하게 엄청난 금액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수익률 자체는 그렇게 높은 것이 아니네요.”
“맞습니다. 그렇더군요.”
리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6주 동안 4억 8천5백만 달러를 벌었다고 해서 저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주당 수익률을 따져보니 11%가 조금 넘는 정도밖에 안 되더군요.”
주당 11%의 수익률. 대단한 수익률이다.
하지만 이번 투자 전의 수익률은 더 대단해서 상대적으로 낮아 보였다.
“8월 8일 이전까지 거의 748%의 수익률을 올렸더군요. 평균적으로 나누면 매주 16~17% 수익률을 올렸다는 말이죠. 매주 투자할 때는 몰랐는데 이게 말이 되는 수익률인지?”
말을 마친 리안이 고개를 저었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수익률이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지나고 보니 이런 수익률이라니······.”
금액으로는 이번 투자로 지금까지 투자 중 가장 큰 이익을 얻었다.
4억 8천5백만 달러의 이익에는 RAM이 얻은 이익은 뺀 금액이었다.
W&R과 AAM의 수익만을 합한 금액이 4억 8천5백만 달러였다.
“처음 계산하고 어이가 없었다니까요. 제가 처음 계산해 본 것은 이번에 미국 정부에서 테러 전에 수상한 선물 옵션 거래를 조사한다는 뉴스를 보고 혹시나 해서 해 본 거예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오히려 이번에 예전보다 투자수익률이 낮았더라고요. 에드릭 팀장 그분 무슨 신기라도 있어요?”
조민이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투자 금액이 크기 때문에 이익이 많은 것일 뿐 지난 6주 동안의 수익률은 오히려 그 이전 수익률에 비해서 낮았다.
물론 이전의 수익률이 높았던 이유는 예전에는 레버리지를 지금보다 더 많이 썼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처음 카이 황이 홍콩 항셍 지수 선물에 투자할 때는 레버리지를 10배 이상 사용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고려해도 놀라운 수익률이었다.
“몇 번 거래에서 예측이 빗나간 적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매번 성공했습니다. 처음 제가 받았던 3%의 지분이 처음 받았을 때만 해도 900만 달러 정도였는데 2,760만 달러더군요. 세 배 이상 늘어난 것이죠. 이걸 받아도 될지······.”
카이 황은 부담스러운 표정이었다.
에드릭이 여전히 100% 소유하고 있는 AAM의 투자금을 제외하고 W&R의 투자금 규모는 약 9억 2천만 달러였다.
리안이 3천만 달러의 건물과 토지를 현물 투자하고 받은 지분이 10%였다.
그런데 지금은 현재 투자금의 가치로만 9,200만 달러였다.
하지만 이건 현재 순자산의 가치일 뿐이었다.
그동안 벌어들인 이익을 생각하면 그 10배 이상을 주고도 사기 어려울 것이다.
잠재적 가치를 생각하면 이미 리안이 따로 소유하고 있는 재산의 가치를 W&R의 지분 10%가 뛰어넘었다.
리안이 카이 황과 조민을 불러들인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먼저 이야기할 안건은 다른 이야기였다.
2.
“제가 오늘 모이자고 한 것은 에드릭이 RAM을 청산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 수익률이 200%가 넘어갈 때 청산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었는데 그걸 이번에 사용할 생각이라고 합니다.”
RAM은 예전 리안에게 거래를 맡기던 고객들의 투자를 받아 세운 회사였다.
투자자들은 예전 리안의 집안과 친분이 있는 홍콩의 부호들이었다.
RAM은 지금은 사망한 왕웬준 팀장에게서 에드릭과 리안의 투자수익률을 듣고 반쯤은 강제로 세워진 회사였다.
하지만 처음 RAM을 세울 당시만 해도 리안이나 리안의 고객들 모두 에드릭의 투자 실력에 대해서 완전한 확신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몇 가지 옵션 조항을 집어넣었다.
수익률에 따라서 인센티브가 달라진다거나 어느 정도 수익률이 넘어가면 청산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었다.
예를 들어 투자수익률이 100%가 넘어가면 인센티브로 수익의 50%를 RAM에게 지급한다거나 수익 배분에 관한 조항도 있지만, 청산에 관한 조항도 있었다.
투자 원금이 50% 이하로 떨어지거나 수익률이 200%가 넘는 경우 청산할 수 있다는 조항이었다.
당시만 해도 의미가 없는 조항이라고 리안은 생각했었다.
자신이 나선다면 투자 원금이 절반으로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었고 반대로 계약 기간 1년 안에 200%의 수익률을 기록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확인해 보니 이미 투자수익률이 300%가 넘어섰다.
에드릭은 이 조항을 이용해서 RAM을 정리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RAM을 정리한다고요? 이유가 뭡니까?”
카이 황이 물었다.
“현재 인원으로 RAM을 관리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이야기하더군요. 브레이크에게는 러시아 대신 얼마 전 새롭게 시작한 독일 투자를 맡기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내년에 류오린에서 독립하고 W&R을 운영하게 되면 다시 투자금을 받든지 하겠다더군요.”
에드릭은 독립 이후에 다시 투자금을 받든지 하겠다고 하지만 리안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에드릭은 누군가 자신의 투자 결정에 간섭을 받는 것을 싫어했다.
지금도 전체 투자금을 다 합치면 10억 달러가 훌쩍 넘었다.
투자금이 몇천만 달러였을 때도 RAM의 투자를 받기를 꺼린 에드릭이었다.
내년에 독립할 때 투자금이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따로 투자를 받을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했다.
리안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던 카이 황은 고개를 저었다.
“어르신들이 받아들일 리가 없습니다. 그분들이라도 200%의 수익률은 무시할 수 없는 금액입니다. 이익만 무려 1억 달러가 아닙니까!”
옆에서 듣고 있던 조민이 끼어들었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차라리 911 테러 전이라면 가능했을 수도 있어요. 그때는 러시아 지수 자체가 올해 초 대비 50% 상승한 상태였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저희가 처음 투자했을 때에 비해서 겨우 2%, 연초보다는 25% 정도 오른 상태예요. 이런 상황에서 300%가 넘는 수익률을 올렸는데 누가 그런 투자를 중간에 청산하려고 하겠어요?”
러시아 주가지수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올해 들어 꾸준히 상승했다.
주가가 상승하는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 수익을 냈다고 해도 그 성과가 과소평가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주가가 폭락하고 보니 에드릭이 얼마나 정확한 투자 판단을 내렸는지 드러난 셈이었다.
두 사람의 말을 들은 리안의 표정이 굳어졌다.
처음 RAM을 세울 때도 그랬지만 자신이 마치 에드릭의 발목을 잡는 듯한 모양새였기 때문이었다.
RAM의 투자자들은 리안의 예전 고객들이자 가문의 오랜 지인들이었다.
홍콩의 주민 중 많은 수가 광둥성이나 푸젠성 출신들인 것과는 달리 이들은 대부분이 지금의 장쑤성과 안후이성 절강성이라고 불리는 전통적 의미의 강남 출신이었다.
출신도 대부분이 전통적인 명문 사족 가문 출신이었다.
이런 공통점 때문에 홍콩에서 서로 긴밀히 협조했고 리안의 가문은 그들을 이끄는 위치였다.
상하이방과 알력이 생기자 리안의 아버지는 모든 책임을 혼자서 지고 홍콩을 떠났다.
그들이 리안에게 투자금을 맡겼던 이유는 리안의 아버지에 대한 이런 미안함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사람이란 상황이 달라지면 태도도 달라지는 법이었다.
그들이 올 초에 리안과 에드릭에게 투자를 강요한 이면에는 리안이 가문을 일으키기 전에 그에 대한 길들이기라는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투자한 RAM이었다.
그런데 그런 투자에서 반년 동안 수익률이 300%, 수익만 따지면 두 배 이상을 번 셈이었다.
나머지 반년 동안 같은 수익률을 올린다고 가정했을 때 이익은 4억 달러가 넘는다.
홍콩 달러로는 31억 2천만 홍콩달러.
어떤 의도로 투자를 시작했든 욕심이 생길 이익이었다.
투자자이 홍콩의 부호들이기는 했지만 리안의 가문이 가지고 있는 재산보다는 적었다.
아니 31억 2천만 홍콩달러라면 리안이라고 해도 포기하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에드릭이 RAM을 청산하기를 원하면 말릴 방법이 사실상 없어.”
리안이 말했다.
“그래도 막아야 해요. 오빠도 아시잖아요. 그분들이 적이 되면 내년 독립 이후에 어려워질 수가 있어요. 에드릭 팀장님이야 미국인이니 미국으로 돌아가면 되지만 오빠는 그러실 수가 없잖아요. 가족이 캐나다로 떠난 이후에도 남으신 이유가 뭔데요?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지요. 이제 몇 년 안 남았어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관리할 사람이 없으면 사람을 더 뽑더라도 지금 RAM을 청산하면 안 됩니다. 막대한 이익을 안겨 주고도 적을 만들 뿐입니다.”
두 사람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리안의 손이 저절로 관자놀이로 향했다.
머리가 아팠다.
통화했을 때 RAM을 청산하겠다는 에드릭의 생각은 꽤 확고했다.
리안의 생각으로는 단순히 사람이 모자라서 RAM을 정리하려고 하는 것 같지 않았다.
분명 자신에게 말하지 않는 RAM을 정리하려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 문제는 제가 다시 에드릭에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리안을 결국 두 사람의 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생각에도 RAM을 청산하는 것보다는 유지하는 것이 나았다.
3.
“이건 다른 문제인데요. 에드릭이 오면 사무실을 옮기는 것을 제안할 생각입니다.”
리안이 다른 안건를 이야기했다.
“사무실을 옮겨요? 어디로요?”
조민이 물었다.
“RAM을 제외하고도 투자금이 10억 달러를 넘었잖아. 이 정도 투자금을 운용하는데 일개 팀으로 있는 것도 이상한 일 아니야?”
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는 하죠.”
리안이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더구나 팀 이름은 아시아 3팀인데 실제 우리 투자 비중은 아시아보다 미국과 독일 그리고 러시아가 훨씬 높아. 태스크 포스라는 형식으로 따로 독립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리고 독립과 겸해서 사무실을 옮기려는 것이고 말이야.”
“좋은 생각입니다. 아예 지금 W&R이 있는 건물로 옮기시죠. 지금 제 사무실이 있는 층에 빈 사무실이 꽤 많이 있습니다. 내년 독립할 때를 대비해서 비워 놓은 공간이죠.”
“그렇지 않아도 그곳으로 옮길 생각입니다. 보안이나 나중에 독립할 때를 생각했을 때도 그 건물에 있는 사무실을 옮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잘됐네요. 그렇지 않아도 사무실에 드나들 때마다 굉장히 신경이 쓰였어요. 특히 카렌은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더라고요.”
조민이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3팀이 쓰고 있는 사무실은 1팀과 2팀 사무실과 바로 붙어 있었다.
특히 지금 쓰고 있는 사무실에 본래는 2팀이 사용하던 회의실을 개조한 것이다 보니 2팀과는 사실상 같은 공간에 있었다.
문제는 2팀과 3팀이 받는 인센티브가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따로 거래해서 2팀이 3팀의 운용하는 투자 규모나 인센티브에 대해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3팀의 지시를 내리면 2팀이 그 지시를 받아 매매하는 경우가 많았다.
덕분에 2팀도 3팀 덕분에 막대한 인센티브를 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아무리 많이 벌어도 바로 옆에 있는 동료가 자신보다 몇 배나 되는 돈을 번다면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가지는 것이 인간이었다.
3팀의 팀원들은 사무실을 드나들 때마다 2팀 팀원들이 자신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에 굉장히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리안도 신경이 쓰이는데, 일개 직원인 카렌이 받는 압박 역시 짐작할 수 있었다.
“내일 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카이 황의 말에 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세요. 회사에는 제가 출근해서 말하죠.”
앞으로 많은 것이 변할 것이다.
사무실을 옮긴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을 옮긴다는 의미만이 아니었다.
류오린에서 사실상 독립한다는 의미이자 에드릭과 자신의 관계도 변화된다는 의미였다.
류오린은 리안에게 족쇄이자,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숨을 은신처이지만, 보호막이기도 했다.
리안이 에드릭과 그나마 대등하게 설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이 류오린의 대주주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사무실을 옮기게 되면 그런 이점을 상당수 잃게 된다.
하지만 어차피 내년에 독립한 이후에 맞을 예정된 일이었다.
숨어서는 성장할 수 없었다.
친구가 친구로 남기 위해서는 뒤처져서는 안 된다.
친구가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혼자 멈춰 서 있을 수는 없었다.
리안은 그리고 뒤처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에드릭이 가지고 있는 통찰력은 없지만 자신에게는 카이 황이나 조민 같은 도와줄 사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