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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어둠을 욕하느니 촛불 하나를 켜는 것이 낫다
1.
내가 단테 패트릭을 만난 것은 도쿄의 식당이었다.
우리는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눴다.
“오랜만입니다.”
“그러네요. 직접 보는 것은 반년 만인가?”
“그 정도 되지? 메일로 연락을 주고받기는 했지만 말이야.”
직접 본 것은 오랜만이지만 단테 패트릭과는 메일로 서로 도움을 주고받았다.
지금 한국에서 내 일을 하고 있은 전 국정원 직원 정윤호는 단테 패트릭이 전해 준 명단 중에서 선택해서 영입한 인물이었다.
내가 자리에 앉고 얼마 후 종업원이 주문을 받기 위해 메뉴판을 들고 찾아왔다.
“여기 스테······.”
“잠시만!”
단테 패트릭이 주문을 하려는 나를 막았다.
“여기 생선 요리가 먹을 만하네.”
단테 패트릭은 내가 식당에서 볼 때마다 항상 스테이크를 먹고는 했다.
그랬던 그가 지금 보니 이번에는 웬일인지 생선 요리를 먹고 있었다.
나는 종업원에게 적당한 생선 요리를 주문했다.
종업원이 주문을 받고 돌아간 이후 단테 패트릭이 입을 열었다.
“자네, 정신이 없기는 없나 보군.”
“예? 무슨 말씀이신지?”
“얼마 전에 여기 일본에서 소에 광우병이 발견되었다는 소식도 듣지 못했나?”
“광우병요?”
“그래, 이번 달 초에 치바현에서 광우병이 의심되는 소가 발견되었다는 정부 발표가 있었네. 며칠 전에 광우병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고 말이야. 도쿄 식당 중 상당수가 바로 치바현에서 소를 가져오고 있지.”
스테이크를 즐겨 먹던 단테 패트릭이 생선 요리를 먹고 있는 것이 이해가 갔다.
광우병은 유럽 축산 농가에 엄청난 피해를 준 질병이었다.
더 나아가 광우병 소를 식용하는 사람 중에서 소의 광우병과 비슷한 증상이 발견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광우병이든 인간 광우병이든 치료할 약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걸리면 죽는다.
그게 소가 되었든 인간이 되었든······.
“그나저나 얼마 전까지 필리핀에서 있었다고?”
“예. 그쪽이 요즘 한창 시끄럽지 않습니까?”
“하필 일본 방문 중에 아로요 대통령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여기도 꽤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
“뭐 어쩔 수 없죠. 이런 일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일이니까요. 러시아 푸틴이나 인도네시아 메가와티도 이번 일을 이용하고 있더군요.”
“들었네. 우리의 불행을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이용하고 있더군.”
현재 러시아 내부의 가장 큰 문제는 체첸 자치공화국이었다.
체첸 공화국의 반군과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의 공통점은 둘 다 이슬람 수니교 원리주의인 와하비즘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었다.
체첸 공화국에서 큰 활약을 해서 체첸의 빈 라덴이라고 불리는 이븐 알 하타브는 바로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자헤딘으로 활약한 인물이었다.
이븐 알 하타브는 빈 라덴과 마찬가지로 사우디아라비아의 부유한 가문 출신이었다.
체첸 공화국은 무자헤딘의 도움으로 러시아의 전쟁에서 승리했었다.
러시아 내에서 정치적으로 무명이었던 푸틴은 제2차 체첸 사태 당시 총리로 강한 지도력을 보여 줌으로써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푸틴으로서는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체첸이니만큼 지속해서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인도네시아의 메가와티도 와히드 전 대통령이 인도네시아 최대 이슬람 단체의 수장이었던 만큼 이번 사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듣자니 인도네시아에서도 자네들에게 요청이 갔다면서?”
단테 패트릭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메가와티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해서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해 주는 것까지는 좋은데, 조금 지나쳐서 오히려 문제를 만들고 있다더군요.”
인도네시아에서는 계속해서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며칠 전 미국을 방문한 메가와티 대통령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대한 빈 라덴에 대한 송환 요구를 지지하는 강경 발언을 쏟아 냈다.
문제는 그게 너무 지나쳐서 오히려 인도네시아 무슬림의 반발을 사고 있다는 부분이었다.
인도네시아의 무슬림이 다른 나라에 비해 세속적이고 온건한 성향이었다.
그렇지만 인도네시아의 무슬림은 무려 1억 8천만 명이 넘었다.
그중에는 당연히 극단적인 사상을 가진 무슬림도 있었다.
인도네시아의 무슬림 인구를 생각하면 일부라고 해도 어지간한 나라 인구보다 오히려 많았다.
그런데 메가와티 대통령이 강경 발언을 쏟아 내면서 이런 강경한 무슬림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었다.
심지어 아프가니스탄을 도와주러 가야 한다며 속속 출국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테러 초반 인도네시아의 이슬람 단체들이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지하드, 즉 성전을 하자는 주장을 일축했던 것을 생각하면 메가와티는 오히려 상태를 악화시키고 있었다.
이반 부카드를 생각하면 어지간하면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종교 문제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론전에도 한계가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는 이번에도 인도네시아 지부의 요청을 거부하고 일본으로 온 것이었다.
2.
단테 패트릭이 본격적으로 도움을 요청한 이유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메일을 확인했으면 알겠지만 지금 일본 정부는 군수 지원을 하는 데 주저하고 있네. 여당인 자민당 당내 반발도 만만치 않고 말이야.”
미국은 현재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일본이 인도양에 전함을 파견해서 군수 지원을 해 주기를 원하고 있었다.
911 테러 직후에 미국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로 했던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는 정작 직접적인 군수 지원에는 주저하고 있었다.
“평화헌법이 문제군요.”
“그렇지.”
“아이러니하군요. 미국이 주도적으로 만든 평화헌법이 미국의 군수 지원 요청을 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으니 말이죠.”
“시대가 달라졌지 않았나.”
현재 일본의 이른바 ‘평화헌법’은 2차대전이 끝나고 미국이 일본을 군정으로 지배하고 있던 시절인 1947년에 만든 헌법이었다.
이 헌법의 핵심은 일본은 군사적 역할은 국토방위, 즉 자위에 국한된다는 것이었다.
이 헌법 때문에 일본의 ‘자위대’는 막강한 예산과 군사력을 가지고 있지만, 정식 ‘군대’는 아니었다.
“평화헌법을 재해석할 필요가 있겠군요.”
“맞네. 현재 미국과 일본은 1960년 체결한 안보 조약이 유지되고 있네. 문제는 그 안보 조약에 일본이 침략을 당할 때 미국이 군대를 파견하는 조항은 있는데 미국이 침략을 당했을 때 일본이 어떻게 해야 한다는 조항이 없다는 거야.”
냉전 시대에 미국은 공산주의 팽창을 막기 위해 동맹국들과 안보 조약을 맺었다.
이런 안보 조약은 일반적으로 상호방위조약의 형태를 가지는 경우가 보통이었다.
미국은 이번 테러를 미국에 대한 전쟁 행위로 분류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평화헌법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군대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군대를 파견할 조항이 없었다.
“하지만 1991년 걸프전 이후에 일본 헌법의 ‘자위’ 범위에 대한 재해석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맞네. 1999년에 ‘자위’ 개념에 동맹국에 대한 군수 지원이 포함됐지. 문제는 그때 인접국이라는 표현이 들어갔네. 이것 때문에 현 방위상인 젠 나가토미가 조항 수정을 주장하고 나섰네.”
방어상이 반대하고 있다면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젠 나카토미 방어상이 파병을 반대하는 겁니까?”
내 질문에 단테 패트릭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좀 다르네. 젠 나카토미는 아무래도 이번 기회에 인접국의 범위를 넓히려고 하는 것 같아. 아예 해외 평화유지군 파견까지를 가능하게 하려고 하는 거지.”
“그 점은 본국의 입장과 비슷한 것 아닙니까?”
“맞아. 자네도 알겠지만 이번에 굳이 백악관에서 일본 정부에 인도양으로 함대를 파견해서 군수 지원을 요청한 것은 이번 전쟁만을 위한 것이 아니지 않나.”
단테 패트릭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이번 기회에 아프가니스탄과 전쟁을 하는 동안 동아시아에서 일본이 군사적 역할을 해 주기를 바라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네. 특히 러시아의 북태평양 함대는 견제는 물론이고 중국이 남중국해로 진출하는 것을 일본을 이용해 견제하는 것이 본국의 전략이네.”
3.
이번 전쟁터는 다른 곳도 아니고 아프가니스탄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은 강대국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지상군이 파견이 필수적이었다.
지상군이 어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결국에는 본토는 물론이고 주일 미군과 주한 미군도 일부는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되어야 한다.
미국 정부는 그렇게 빈 안보 공백을 일본이 메워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예전 냉전 시대야 핵우산 같은 군사적 보호를 통해 경제에만 집중할 수 있게 했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이미 미국은 세계 유일의 최강국이었고 동맹국들이 경제적 위상에 걸맞은 군사적인 역할을 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동아시아에서는 그 구상의 중심이 바로 일본이었다.
“일본 함대를 인도양까지 끌고 와 군수 지원을 하게 함으로써 일본 자위대의 군사작전 범위를 획기적으로 넓히려는 것이군요.”
“맞네. 그 사실을 일본 정부도 알고 있으므로 고이즈미 총리가 주저하고 있는 것이네.”
“고이즈미는 본래 국내 문제에만 관심이 있는 인물 아닙니까?”
고이즈미 총리는 처음 총리에 출마할 때부터 일본 정치와 경제구조에 대한 개혁을 주장했다.
상대적으로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맡아야 할 역할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이면 한창 개혁을 해야 할 시점에 국력을 낭비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자민당 내 다른 의원들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자민당 의원 중에는 이번이 일본이 가져야 할 국제적인 위상을 가질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사람들이 다수네. 특히 아베 신조 같은 경우에는 평화헌법을 바꿀 계기로 생각하는 것 같아. 이번을 평화헌법 개헌의 시작으로 삼으려고 하는 것이지. 문제는 현 관방장관인 후쿠다 야스오네.”
“후쿠다 야스오라······. 사실상 이번 내각의 실세 아닙니까? 그자가 반대하는 겁니까?”
“맞네.”
고이즈미가 돌풍을 일으켜 총리가 되기는 했지만 아웃사이더라는 사실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약점을 보완해 주는 인물이 현 관방장관인 후쿠다 야스오였다.
일본의 관방장관은 총리의 비서실장이었다.
후쿠다 야스오는 고이즈미 내각의 실세이자 설계자라고 불리고 있는 인물이었다.
이런 인물이 반대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그 외에 현재 연정 상대인 공명당도 문제야. 공명당은 창가학회라는 종교 단체가 기반인 정당이네. 이 정당은 중도 우익이기는 하지만 종교 단체가 기반이다 보니 평화주의를 주장하고 있네. 당연히 해외파병에도 반대하고 있지. 야당 중에서 사민당이나 공산당은 당연히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고 말이야.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평화헌법 그 자체지.”
“여론전이군요.”
평화헌법을 단기간에 바꾸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했다.
헌법 개정이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헌법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많은 절차가 필요했다.
그런데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격은 이제 바로 코앞이었다.
어둠을 욕하느니 촛불 하나를 켜는 것이 낫다.
남은 방법은 평화헌법에 대한 재해석하는 편법을 통해서 함대 파견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다.
평화헌법이 어둠이라면 평화헌법에 대한 재해석은 촛불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재해석은 당연히 국민 여론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자네를 다시 부른 거네. 자네 팀이 가장 잘하는 것이 바로 여론전 아닌가?”
“그렇기는 하죠.”
“어때, 방법이 있겠나?”
단테 패트릭이 물었다.
“CIA는 물론이고 지금 주일 미국 대사관도 이 일 때문에 난리네. 당장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기 직전인데 군수 지원이 결정되지 않았으니 말이야.”
말을 마친 단테 패트릭이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엄청나게 부담이 되는 표정이었다.
“자료를 주시면 돌아가서 팀원들에게 연락을 해 보겠습니다.”
내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