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140화 (141/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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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십자가가 없으면 면류관도 없다

1.

호텔로 돌아와서 나는 단테 패트릭에게 받아온 자료를 검토해 보았다.

자료를 보면 볼수록 이번 일은 일본 내 여론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원 수로만 보면 이번 일은 큰 어려움이 없었다.

자민당은 보수 우익이었다.

자민당을 만든 설립한 인물 중에는 2차대전의 전범 출신도 많았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자민당 창립 멤버 중 하나인 기시 전 총리였다.

기시 전 총리는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보통 국가로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이런 주장을 하다가 총리에서 쫓겨난 이후 그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것이 당시 한일 국교 정상화였다.

일본이 전쟁할 수 있는 국가가 되려면 제국주의 시대에 피해를 준 주변 국가들의 여론이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현 자민당 의원 중에는 기시의 생각에 동조하는 인물이 상당히 많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기시의 외손자인 아베 신조 의원이었다.

공명당 같은 연립 여당이나 사민당과 공산당이 파병에 부정적이라고는 하지만 정작 최대 야당인 민주당은 좀 달랐다.

민주당은 일본의 군사 대국화에는 반대했지만, 역설적으로 일본이 국제적으로 경제력에 맞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오히려 자민당보다 해외파병에 적극적이었다.

파병에 호의적인 여당과 최대 야당의 의원 수만 보면 파병안을 일본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일본 국민 여론이었다.

일본은 지금 최악의 경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들에게 이익이 없는 해외파병에 돈을 쓰는 것을 쉽게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평화헌법을 지지하는 국민도 여전히 다수였다.

여론전이 필요한 이유였다.

문제는 여론전의 방향이었다.

단테 패트릭이 준 자료를 보니 이미 CIA와 CIA가 훈련한 특수부대가 아프가니스탄에 침투한 상태였다.

시간이 없었다.

제대로 된 전략이 필요했다.

여론이 잘못된 방향으로 형성되면 되돌릴 시간이 없었다.

나는 밤새 자료를 추가로 검토했다.

2.

내가 연락하기도 전에 단테 패트릭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나는 서둘러 서류를 들고 단테 패트릭을 만나러 가야만 했다.

서둘러 가다 보니 경호원들을 따돌릴 여유가 없었다.

“호텔에 대기해 주세요.”

구르카 경호원들은 나 혼자 외출하겠다는 말에 당황했다.

“하지만······.”

“아시겠지만 혼자서도 어지간한 상황은 넘길 수 있습니다.”

평소에 나는 경호원들과 가벼운 훈련을 함께 받았다.

내 실력의 전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그들을 이해시킬 정도는 보여 주었다.

나는 여전히 따라오려는 억지로 경호원들을 떼어 놓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서둘러 불러서 미안하네.”

단테 패트릭이 사과부터 했다.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시간이 없어. 탈레반이 최종적으로 빈 라덴 송환을 거부했고 군사작전 개시일은 다음 달 초로 결정되었네.”

“공격작전명이 ‘무한 정의 작전(Operation Infinite Justice)’이었죠.”

“맞네. 테러 세력을 완전히 퇴치할 때까지 정의로운 전쟁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작전명이지.”

빈 라덴을 잡는 데서 끝나지 않고 알 카에다와 그 배후 세력까지 섬멸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작전명이었다.

그만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미국 내에서는 이번 공격을 20세기 이후 미국이 당한 세 번의 참사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었다.

첫 번째가 대공황, 두 번째가 진주만 공격 그리고 마지막이 최근의 테러였다.

“어떤가, 방법이 있겠나?”

단테 패트릭이 물었다.

“어제 이야기한 것처럼 여론전밖에 답이 없습니다.”

“정확히 어떻게 여론전을 하자는 말인가?”

“이런 일은 주요 보수 언론을 이용해야죠. 주로 요미우리 신문이나 산케이 신문을 이용해야 합니다.”

“그래야겠지.”

단테 패트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국민 여론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의 생각을 한꺼번에 바꿀 수는 없었다.

결국, 이른바 여론 주도층이라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그들을 통해 국민의 여론을 바꾸는 것이 순서였다.

일본에서 여론을 형성하는 주요 창구는 신문이었다.

세계 발행 부수 6위까지가 모두 일본의 일간지일 정도였다. 특히 대표적인 것이 보수의 요미우리와 진보의 아사히였다.

요미우리와 아사히는 발행 부수가 둘 다 천만 부가 넘어서 1,400만 부와 1,200만 부였다.

일본의 발행 부수가 실제 구독자 수보다 부풀려졌다는 평가를 받고는 있지만, 이 정도 발행 부수는 말 그대로 신문이 여론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선 몇 단계로 나눠서 진행할 생각입니다.”

“몇 단계?”

“예. 우선 첫 번째 단계로는 1991년 걸프전 당시 일본이 막대한 전비를 부담하고도 실제로는 그 대가로 아무런 대가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국제적인 비난을 당한 일을 부각할 생각입니다.”

단테 패트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의견은 이미 일본 내에서도 지적되고 있는 부분이네. 십자가가 없으면 면류관도 없는 것이 당연한데 일본인은 그 점을 종종 잊는 것 같아.”

“사람들이 익숙한 부분부터 공략하기 위한 단계입니다. 일단 보수 인사들을 동원해서 방송에서 이와 관련된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할 생각입니다. 다과만으로는 피를 대신할 수 없다고요.”

십자가가 없으면 면류관이 없다는 말이나 다과만으로 피를 대신할 수 없다는 말은 모두 전쟁에는 사람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걸프전 당시 일본이 비난받은 이유도 그거지. 전쟁터에서 함께해야 동맹이지 뒤에 숨어서 돈만 주는 게 무슨 동맹이겠나.”

단테 패트릭은 말했다.

그의 표정에서 경멸이 그대로 드러났다.

3.

“그럼 다음 단계는 뭔가?”

단테 패트릭이 물었다.

“다음 단계는 알 카에다 테러 대상이 미군 기지였다는 이야기로 일본 내에 공포감을 퍼트리는 것입니다.”

순간 단테 패트릭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건 좀······.”

“큰 목표를 위한 작은 희생입니다.”

단테 패드릭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알겠네, 어쩔 수 없지. 정확히 어떻게 소문을 퍼트리자는 말인가?”

“전해 주신 정보를 보니 알 카에다 소속으로 의심되는 인물들이 올해 초에 일본을 입국한 정황이 있더군요, 추방된 인물도 있고요. 그들에 대한 정보를 요미우리를 통해 보도할 생각입니다. 이왕이면 익명의 미국 대사관 직원이 알 카에다가 일본 내 테러를 모의한 정황이 있다는 의견을 덧붙이면 좋겠죠.”

내 말에 단테 패트릭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어쩔 수 없지. 내가 적당한 직원을 알아보겠네.”

나는 되도록 단테 패트릭이 해 줬으면 하는 생각에서 써낸 말이지만 직접 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이번 테러가 일어나기 전 나는 테러 대상이 일본 내 미군 기지일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한 적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단테 패트릭이 전해 준 정보를 보니 알 카에다 조직원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이 일본과 한국에 잠입한 정황이 있었다.

진짜 그들이 한국이나 일본에서 테러를 모의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테러가 일어난 상황에서 이런 정보를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일본 국민이 테러에 대한 공포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다음으로 미국의 적당한 언론을 통해서 내년에 한국과 일본에서 열리는 월드컵도 목표라는 기사를 내보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기사를 다시 요미우리가 인용해서 특집 기사를 내보내는 겁니다.”

“실제로도 많이 쓰는 방법이군.”

“그렇죠.”

동아시아 국민은 신문 기사에 큰 영향을 받으면서도 정작 자국의 신문 기사를 완전히 믿지 않았다.

하지만 외국, 특히 미국 영국과 프랑스 독일의 신문에 난 기사는 굉장히 신뢰했다.

실제로는 미국이나 유럽에는 작은 도시마다 몇 개의 언론사가 있었다.

더구나 머독 제국으로 상징되는 황색 저널리즘이 신문 시장을 장악한 이후 검증되지 않은 흥미 위주의 기사가 쏟아지고 있었다.

현재의 미국과 유럽의 신문 시장의 현실이었다.

전통적인 유명 일간지를 제외한 나머지 언론들의 기사 신뢰도는 동아시아 주요국 유력 신문의 신뢰도보다 높지 않았다.

그런데도 동아시아의 신문 독자들은 외국 신문사에 나온 기사를 더 신뢰하고는 했다.

물론 이런 현상은 동아시아 신문들이 자초한 측면이 있었다.

정치적, 경제적 목적을 위해 왜곡 기사를 내다가 걸리는 일이 잊을 만하면 나오고는 했다.

동아시아의 주요 일간지들은 독자들의 이런 성향을 이용하고 있었다.

외국 신문의 검증되지 않은 기사를 외신 보도라는 이름으로 소개함으로써 다시 독자들의 여론을 조종하는 것이다.

“아마 내년 월드컵을 겨냥한 테러가 계획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요미우리를 통해서 나오면 일본 국민 중에서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일본 자위대가 약한 것은 아니지만 일본 본토에 대한 테러 대비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니까요.”

“그렇겠지. 일본 국민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더군. 얼마 전 일본 만화를 보니 테러범 몇 명이 도쿄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장면이 나오더군.”

단테 패트릭이 일본 만화를 본다니 의외였다.

생긴 것을 봐서는 마블이나 디시의 만화만 좋아할 것 같은 얼굴이었다.

“일본 만화도 보십니까?”

“일본 사회를 이해하려면 그들의 문화를 알아야지. 미국에서 보던 만화와는 아주 다르지만 나름 볼만하네.”

단테 패트릭이 대답했다.

“어쨌든 자네 말은 결국 이번에도 자금만 지원하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일본이 테러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조성하자는 말 아닌가?”

단테 패트릭이 내 말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정확합니다. 아 그리고······. 민주당의 대표인 하토야마 유키오는 어떻습니까? 국회에서 파병안을 논의하자면 그의 동의가 꼭 필요한데요.”

“그건 별 어려움이 없네. 하토야마 유키오는 자민당 초대 총재로 세 번이나 총리를 지낸 하토아먀 이치로의 손자지. 하토야마 이치로는 프리메이슨의 회원이었고 그건 하토야마 유키오도 마찬가지네. 현 민주당의 강령 중에 우애가 있는 것이 우연이 아니지.”

단테 패트릭이 대답했다.

프리메이슨과 이번 일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단테 패트릭이 자신한다니 더 묻지 않았다.

4.

“그럼 이제 남은 문제는 주변국의 반발입니다. 일본이 인도양으로 함대를 파견해서 군수 지원에 나선다면 중국과 러시아, 한국 그리고 북한이 반발할 가능성이 큽니다.”

단테 패트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하긴 그렇겠군. 이번 군수 지원은 결국에는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하려는 목적이니 말이야.”

“특히 중국과 한국이 크게 반발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건 문제군······. 자네는 중국과 한국의 반발을 어떻게 해결했으면 좋겠나?”

단테 패트릭이 물었다.

“아무래도 중국을 설득하려면 백악관에서 직접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직 WTO 가입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거의 합의가 끝난 상태에서 다시 그 문제를 직접 제기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일본의 파병만 성공시키면, CIA 일본 지부만 생각하면 중국과 한국의 반발은 내가 신경을 쓸 필요가 없기는 한데 말이야. 내가 CIA 직원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주일 미국 대사관 직원이기도 하다는 말이야.”

말을 마치고 단테 패트릭이 내 얼굴을 다시 바라보았다.

여전히 거저먹으려고 하는 것은 변하지 않은 듯했다.

지금 보니 단테 패트릭의 머리숱이 전보다 적어 보였다.

문득 한국에 방문했을 때 들었던 공짜를 좋아하면 대머리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농담이 떠올랐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단테 패트릭이 나만 보면 너무 거저먹으려고 하는 것을 보니 그 정도 벌은 받아도 될 것 같았다.

“제가 알기로는 다음 달에 중국과 한국 방문이 예정되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방문 취소가 거의 확실한 상황이지.”

“한국은 모르지만, 중국은 방문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대통령께서 직접 중국을 방문해서 위신을 세워 주면 중국도 한동안 크게 반발하지 않을 겁니다.”

“알겠네, 그렇게 건의해 보겠네. 그럼 이제 일을 시작해 볼까!”

계획은 세워졌지만 이제 시작이었다.

자민당 의원들과 민주당 의원들을 일사불란하게 동원하려면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야 하고 요미우리를 통해 발표할 기사도 작성해야 했다.

일본 정치인들은 단테 패트릭이 전담하겠지만 이번에도 기자들을 만나서 설득하는 것은 내 몫일 가능성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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