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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수영하는 법을 배우기 전에는 물가로 가지 마라
1.
카이 황이 배후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현재 홍콩에서 마약을 유통하는 자들은 대부분이 중국에서 넘어온 스트리트 갱들입니다. 조직이 그리 크지 않죠. 회사를 찾아온 자들은 그런 자들보다는 조금은 제대로 자리를 잡은 자들이기는 하지만 그래 봐야 소규모 조직입니다. 언제 경찰에게 잡힐지 모르는 자들이 투자라니요! 처음부터 배후가 있다고 생
각했습니다.”
“그럼 저에게도 그때 배후가 있다고 이야기해 주시지 그랬습니까.”
내가 말했다.
내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런 사정이 있으면 당연히 나에게도 알려 주는 것이 당연했다.
“바로 말씀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때는 배후가 있는지 확실하지 않아서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배후를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배후가 누군지 알아내면 당연히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사정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다음부터는 바로바로 이야기를 해 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어. 너는 홍콩에서 다른 사람들하고 엮이는 것 싫어하잖아.”
리안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네가 이야기해 달라니 다음부터는 꼭 이야기할게.”
“그렇게 해 줘.”
나는 다시 카이 황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그 배후가 누굽니까?”
내 질문에 카이 황이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에는 다른 가문이나 홍콩 항센 지수 선물에 투자해서 손해를 본 홍콩의 다른 투자 기업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질이 나쁜 놈들을 움직인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알고 보니 삼합회 신의안 쪽의 일개 용곤이더군요.”
“삼합회 신의안요?”
내가 되물었다.
어느 정도 예상하면서도 설마 하며 아니라고 생각했던 이름이었다.
영화나 소설 속에서야 삼합회가 엄청난 조직인 것처럼 나오고 실제로 엄청난 조직인 것도 맞지만······.
삼합회는 기본적으로 일반인은 거의 건드리지 않는다.
심지어 리안 가문처럼 인맥이 있어서 공권력을 동원할 수 있는 개인이나 가문을 건드리지는 않는다.
나는 홍콩의 삼합회에 대해서도 조사한 적이 있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신의안은 홍콩의 대표적인 삼합회 조직 중 하나였다.
그리고 삼합회에서 홍곤(紅棍)은 단원을 이끌고 활동하는 지부의 행동대장이었다.
예전 삼합회 조직들은 용두(龍頭)라고 불리는 수장이 조직을 일사불란하게 이끌었다.
하지만 80년대 이후 홍콩 경찰의 단속으로 조직이 큰 타격을 입고 조직력이 많이 약화한 상태였다.
지금은 행동대장이었던 홍곤이 사실상 독립된 상태로 조직을 운영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여전히 신의안이니 조방이나 14K니 하는 조직명을 대고 활동해서 이런 상황을 일반인들이 잘 모를 뿐이었다.
“조사를 해 보니 저희를 찾아온 조직들 뒤에 있는 자는 신의안에서 꽤 큰 세력을 가진 류밍호라는 자였습니다. 사채업으로 큰돈을 벌어서 최근에는 주식 시장에 투자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911 테러로 큰돈을 잃었다는 소문이더군요.”
“그런 자가 무엇 때문에 뜨내기들을 움직여서 회사에 협박한 거야? 돈이야?”
내가 물었다.
“알아보니 마카오 카지노에 투자를 준비 중이었다고 하더라고. 그러다가 주가 폭락으로 돈을 잃어버리니 돈이 필요해진 거지.”
리안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면 돈을 도대체 얼마나 뜯어낼 생각이었던 거야?”
카지노에 투자할 돈이라면 꽤 큰 금액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협박을 한다고 해서 그 정도 돈을 뜯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중에 나타나서 뜨내기들을 정리해 주면서 투자를 요구할 생각이었겠지. 그 사실을 알고 어이가 없더라고. 우리 가문을 뭐로 보고······.”
리안은 몹시 화가 난 표정이었다.
가문에 대해 자부심이 강한 리안으로서는 지금 상황이 참기 힘든 듯했다.
내가 보니 중국 공청단에 대한 분노까지 류밍호라는 자가 함께 받을 상황인 것 같았다.
“조사해 보니 마카오 카지노 투자는 꽤 전망이 괜찮더군요. 그래서 투자하겠다는 사람이나 기업은 많은데 조건이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큰돈을 벌었다는 사실을 알고 유리한 조건으로 투자를 받을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카이 황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좋은 조건으로 투자를 받으려고 그런 일을 벌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CIA에 들어가서 많은 일을 겪기는 했지만 역시 세상에는 내가 상상하는 일 이상의 일들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무슨 목적이든 가문을 건드린 이상 가만둘 수가 없어. 그랬다가는 온갖 놈들이 우리를 건드리려고 할 테니까. 확실한 본보기를 보여야지.”
리안이 말했다.
“다음 주 내로 처리할 생각입니다.”
카이 황의 말이 말했다.
감히 내가 투자한 회사를 건드린 자였다.
자업자득이었다.
“처리하는 데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겠지?”
내가 물었다.
쓰레기를 처리하는 일이야 나로서는 말릴 생각이 없지만, 홍콩 정부와 문제가 생기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스파이가 가장 피해야 할 일이 바로 머무는 국가의 치안 당국과의 문제가 생기는 것이었다.
나는 예전 왕웬준을 처리했을 때도 경찰을 상대하는 일이 굉장히 신경이 쓰였었다.
그때는 리안의 도움으로 잘 넘어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수도 있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직접 손을 쓸 생각이 아니니까요. 손을 써도 뒤탈은 없겠지만 조직까지 뿌리 뽑을 생각입니다.”
“무슨 방법이 있는 겁니까?”
“아시겠지만 지금 중국이나 홍콩 정부는 모두 신경이 곤두서 있습니다. 열흘 후면 중국 상하이에서 에이펙 정상회의가 열리는 시점 아닙니까.”
카이 황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렇겠네요. 에이펙(APEC) 정상회의면 수십 년 동안 중국에서 열리는 국제회의로는 가장 큰 규모이니······.”
“그렇죠. 정확하게는 현대에 들어와서 중국에서 열리는 회의로는 최대 규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 정부 특히 장쩌민 주석은 이번 에이펙 회의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는 소문입니다. 올림픽 유치와 WTO 가입 확정이 된 상태에서 자신의 정치적 거점인 상하이에서 열리는 회의니 만큼 큰 기대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카이 황에 이어서 리안이 입을 열었다.
“그런 회의 직전에 중국의 일부인 홍콩이 마약, 그중에서도 헤로인 중계 거점이라는 발표가 나왔으니 큰 문제가 생긴 거지. 너도 알다시피 헤로인은 또 다른 마약과는 다르잖아.”
“헤로인의 원료가 되는 양귀비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최대 수입원이라서 미국 정부가 굉장히 신경을 쓰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나는 내 보고서가 전격적으로 월드 팩트북에 반영된 데는 헤로인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가지는 정치적인 배경도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CIA 동아시아 지부에서 내 의견에 동조해 준 영향만으로는 보고서가 너무 빨리 반영되었다.
“다음 주에 류밍호가 중국 본토에 투자 상담을 위해서 들어가면 그 즉시 헤로인 거래를 했다는 죄명으로 체포될 겁니다. 그 정도 죄명이면 중국에서는 사형이죠. 그리고 그 후 곧바로 홍콩 경찰이 류밍호가 이끌던 조직을 일망타진할 예정입니다.”
“신의안 내 다른 조직의 반발은 없습니까?”
내 질문에 카이 황이 미소를 지었다.
“지금 삼합회는 돈을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아마 류밍호가 잡혀가면 그가 가지고 있던 돈과 이권을 서로 가지려고 난리일 겁니다.”
카이 황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류밍호는 욕심 부렸다가 모든 것을 잃겠군.”
“수영하는 법을 배우기 전에 물가에 다가가면 목숨을 잃는 법이지. 투자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섣불리 투자에 뛰어든 대가지.”
리안이 말했다.
2.
대화는 투자 이야기로 넘어갔다.
“다음 주 투자는 별것 없지 않아? 지난주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이 세계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인 한 주였잖아.”
리안이 말했다.
“굳이 찾자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야. 도하에서 이슬람 연맹 56개국이 모여 긴급회의를 열었잖아. 별다른 결론이 나올 수 없는 회의였지만 말이야. 그 외에도 이슬람 국가 여러 곳에서 반미 시위가 있기도 했어.”
이미 미국의 럼즈펠드 장관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를 비롯한 주요 아랍 국가에 방문해서 테러와의 전쟁에 협조를 구한 상황이었다.
그 외에도 얼마 전 텔아비브에서 러시아로 향하던 여객기가 추락해서 알카에다 혹은 체첸 반군이 의심을 받았지만, 인근에서 훈련하던 우크라이나 군사훈련 중 벌어진 사고 가능성이 커진 상태였다.
비행기 추락이 테러였다면 증시에 영향을 줄 수 있었겠지만, 사고라면 증시에 영향을 줄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다음 주에도 상승 포지션을 계속 유지해야 할 것 같아.”
내 투자 방향에 리안과 카이 황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주가가 상승하는 상황에서 굳이 선물 포지션을 바꿀 필요가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던 리안이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우리야 포지션을 계속 유지하면 수수료도 나가지 않고 좋은데······. 브레이크는 좀 그렇겠네. 거래가 없으면 받을 보너스도 없잖아.”
거래 수수료가 나가지 않으면 나나 리안도 받을 수 있는 성과급이 없었다.
하지만 나나 리안 그리고 카이 황은 W&R의 주주였다.
비용이 줄어들어서 이익이 늘어났다.
조민도 리안과 결혼할 사이니 별다른 불만이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우리와는 달리 브레이크는 직원이었다.
거래하지 않으면 회사 수수료를 통해 받을 보너스도 없었다.
“지금까지 브레이크가 반년 동안 받은 성과급이 어지간한 투자회사 임원보다 많았는데 불만을 가지면 미친 거지.”
내가 말했다.
아무리 홍콩 금융회사 직원들이 고액 연봉을 받는다고 해도 매주 10만 불 이상 버는 직원이 우리 팀 외에 있을 리 없었다.
브레이크가 정말로 불만을 품는다면 해고하면 그만이었다.
예전이야 실적이 없어서 리안을 통해 사람을 구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직원을 뽑는다면 홍콩 투자회사 직원 대부분이 다니던 곳을 그만두고 달려올 것이다.
지금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능력도 능력이지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지금까지 브레이크는 믿을만했다.
“브레이크는 그렇다고 해도······. 2팀은 어찌할 거야? 너 없는 사이에 우리를 도와줄 팀원도 따로 배정했던데?”
“아······.”
나는 리안의 말을 듣고서야 2팀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난번에도 팀 개편을 하라는 이야기를 해놓고 정작 911 이전까지 한 달 내내 거래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팀 개편을 이야기해 놓고 말을 어기게 생긴 셈이다.
“2팀이 문제네. 거래를 이번에도 맡기지 않으면 2팀장이 팀 내에서 신뢰를 잃게 될 텐데······.”
나는 곰곰이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장소혜 팀장이 2팀을 쉽게 장악할 수 있었던 데는 그녀가 태자당이라는 소문과 우리 팀이 거래를 맡긴 덕분이었다.
2팀장은 우리 거래를 자신에게 충성하는 팀원에게 맡겨 금전적 보상을 해 줬다.
돈을 중요시하는 금융회사에서 이것은 엄청난 권력이었다.
장소혜 팀장이 그저 그런 인물이고 같이할 일이 없다면 그냥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둘 중의 갑은 거래를 맡기는 우리였다.
그렇지만 장소혜 팀장은 태자당 출신, 그것도 핵심은 고위 원로의 일가였고 사업적으로도 태국 자동차 부품 회사 중국 공장 투자를 같이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투자를 안 할 수는 없으니 임시로 자금을 돌릴 수밖에······.”
“방법이 있는 거야?”
“자동차 공장에 투자하려던 자금을 일시적으로 돌려서 상하이 증시에 투자하려고.”
리안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상하이 증시? 최근 중국 증시 안 좋잖아?”
“다음 주는 그렇지 하지만 어차피 투자하려면 바로 투자는 못 해. 다음 주에는 일단 싱가포르에 투자해서 화교 자금으로 세탁한 후에 다음다음 주에 중국 상하이 증시에 투자할 생각이야. 다음다음 주는 상하이 증시가 오를 테니까.”
“다음다음 주에는 중국 상하이 증시가 오른다는 거야?”
리안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다음 주에 상하이에서 뭐가 열리는지 생각해 봐.”
“에이펙 회의가 열리지.”
리안이 대답했다.
“맞아. 장쩌민 주석이 어떤 사람인데······. 자기 안마당에서 세계 정상이 모이는 회의에서 상하이 증시가 내려가는 것을 그냥 두고 보겠어. 은행들을 동원하든 뭐든 어떻게든 다다음 주 상하이 증시는 오를 테니 두고 보라고.”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