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147화 (148/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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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나무를 숨기려거든 숲에 숨겨라

1.

새로운 사무실에서 본격적으로 처음 연 투자 회의는 별것이 없었다.

리안과 카이 황과 함께한 이야기와 같았다.

예상대로 브레이크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회의가 끝난 후에 그가 나를 찾아왔을 때는 조금 긴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브레이크는 투자 방향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꺼내지 않았다.

대신 그는 독일 금융권, 정확하게는 은행권 움직임에 대해 나에게 물었다.

처음에는 갑자기 독일 은행에 관해 묻는 브레이크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면서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되었다.

브레이크가 나에 대해 알고 있는 내 시상에 관한 정보는 리안이 나에 대해 알던 정보였다.

브레이크를 영입하려고 할 때 리안이 알고 있는 나는 도이치뱅크의 에디 미첼이 홍콩에 보낸 낙하산이었다.

그리고 낙하산이 끓어지게 되자 그제야 살아남기 위해 투자에 뛰어들어 실력과 운이 겹쳐서 돈을 번 사람.

그게 당시의 나였다.

브레이크는 내가 도이치뱅크와 무슨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서 한 질문이겠지만 나는 독일 은행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서 홍콩으로 오기 전, 아니 내가 주식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인 작년 연말까지만 해도 미국 은행들에 대해서도 별로 알지 못했다.

내가 브레이크에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단편적인 정보들이었다.

현 도이치뱅크의 은행장이 작년 드레스너은행과의 합병 추진이 무산된 것 때문에 은행 이사회에서 신임을 잃고 있다는 정보 정도였다.

이런 정보를 내가 알고 있었던 이유는 내가 무슨 독일 은행권에 대해서 정보를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단지 나를 홍콩으로 보낸 에디 미첼이 도이치뱅크 투자은행 부분 최고 책임자였고 그를 조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된 정보였다.

내 대답에 브레이크는 내가 자신에게 뭔가를 숨긴다고 생각했는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모르는 것을 어쩌라는 말인가?

어쨌든 이렇게 투자 회의를 끝냈다.

이제 남은 것은 장샤오이와 만나서 적절한 보상에 관해 이야기해야 했다.

2.

나와 장샤오이가 만난 장소는 지난번에 만났던 찻집이었다.

“오랜만입니다.”

“그러게요. 전에는 그래도 사무실을 같이 써서 가끔이라도 뵙는데 이제는 따로 나가셔서 얼굴을 뵐 수가 없네요.”

장샤오이의 말에 나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호의를 계속해서 보였지만 나는 그녀의 호의에 답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나마 그녀가 홍콩에서 자리를 잡는 데 도움을 주는 정도였다.

“이미 전화로 말씀드렸지만, 이번 주에도 기존 투자를 계속 유지해서 3팀에 맡길 거래가 별로 없습니다.”

“어쩔 수 없죠. 우리 팀을 위해서 손해를 보면서 주식을 매매할 수는 없으니까요.”

장샤오이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받아들였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을 리가 없었다.

태자당 출신인 그녀가 성과급에 목을 매는 것은 아니겠지만 실적은 또 달랐다.

태자당 내에서도 경쟁이 치열했고 경쟁에서 이기려면 실적이 필요했다.

홍콩까지 왔을 때는 장샤오이도 단단히 결심하고 왔을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지난번 이야기했던 중국 자동차 부품 공장 자금과 제가 따로 관리하는 자금을 따로 3팀을 통해서 투자하려고 합니다.”

내 이야기에 장샤오이가 손을 저었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 한국에서 꾸준히 거래해서 실적을 올려 주시잖아요.”

나는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에도 한국에서 꾸준히 주식에 투자하고 있었다.

한국 거래는 전적으로 2팀이 맡고 있었다.

한국에 머물렀을 때는 거의 매일 주식을 사고팔아서 일주일에 70%가 넘는 이익을 얻었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 정도 수익은 내지 못했다.

거래하는 자금의 규모도 커지고 매일매일 주가에 신경 쓰기에는 하는 일이 너무 많았다.

그래도 꾸준히 매매해서 수익률이나 매매대금 모두 적지 않았다.

“그 건과 이번 건은 별개죠.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AAM의 투자금을 제가 전부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1억 달러 정도를 타이완 지수 선물 시장에 투자하려고 합니다.”

“타이완요?”

“예. 아시겠지만 타이완 의회 선거가 다음 달 초에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여당인 민진당이 유리하다고 하더군요. 국민당은 지난 총통 선거의 분열을 아직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민진당의 승리가 타이완 주가에 유리하게 작용하리라 생각하시는 건가요?”

“아무래도······.”

나는 말을 흐렸다.

타이완 총통 선거에 이어서 민진당이 이번 선거에서 유리한 이유는 민진당이 대만의 독립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홍콩이 중국 일부가 된 이후 타이완 사람들은 자신들도 중국 일부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올 초 있었던 하이난섬 사태 이후 이어진 남중국해에서 군사적 긴장에 불안해하는 타이완인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장샤오이에게 하기는 어려웠다.

그녀는 중국의 태자당 출신이었고 그녀에게 타이완은 당연히 중국의 일부였다.

중국인들에게 타이완인들 반 이상이 중국 본토인과는 다른 민족이라거나 타이완이 중국 일부가 된 지 몇백 년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들은 타이완이 독립할 명분이 되지 못했다.

“알겠어요. 그런 생각으로 투자하신다면 굳이 사양하지 않겠어요.”

“타이완에 투자하고 거기서 아는 분들을 통해서 타이완 자금으로 명의를 바꾸고 다시 상하이 주식시장에 투자할 생각입니다.”

“상하이 주식시장에요?”

“예. 아무래도 에이펙 회의 기간에는 상하이 주식시장도 오르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장샤오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상하이 쪽 인간들이라면 그런 짓을 하고도 남죠.”

원래 내 계획은 싱가포르에 투자하고 자금 출처를 세탁해서 그 자금을 다시 다음 주에 중국에 투자하려는 것이었다.

싱가포르에 투자하려는 이유는 다른 것이 없었다.

싱가포르는 다음 달인 11월 3일 선거가 있었다.

싱가포르는 건국 이후 계속해서 집권 여당이 집권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싱가포르 여당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90년대 초중반에는 싱가포르 여당의 득표율이 50%대까지 떨어진 적이 있었다.

올해도 많은 전문가가 여당이 고전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경제는 나빴고 빈부 격차에 대한 반발도 지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여기에 말레이시아에서 식수를 가져오는 문제도 있었다.

그렇다고 세계적인 침체로 인한 싱가포르 경제 침체를 싱가포르 정부가 혼자서 살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국민에게 경제가 살아난다는 착각을 하게 하는 것은 가능했다.

바로 주가를 인위적으로 상승시키는 것이었다.

싱가포르 정부는 각종 공공 연금을 통해서 싱가포르 주식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발휘하고 있었다.

내가 싱가포르에 투자하려고 했던 이유였다.

하지만 이 계획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조민을 통해서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되었다.

싱가포르의 화교들이 중국에 많은 투자를 하고는 있지만 1억 달러 정도의 거금을 투자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지적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타이완이었다.

타이완도 다음 달 초에 선거가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고 정부에 대한 지지율도 좋았다.

무엇보다 중국 투자 자금을 숨기기가 쉬웠다.

올해 들어서 타이완에서 중국에 직접 투자한 금액은 500억 달러였고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타이완인들의 숫자는 5만 명이 넘었다.

나무를 숨기려거든 숲에 숨기라고 하지 않던가?

중국에 대한 타이완의 500억 달러 투자에 1억 달러 정도를 포함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3.

결론적으로 말하면 미국과 영국 그리고 독일의 주식시장이 오르기는 했다.

하지만 그 상승 폭은 나는 물론이고 다른 팀원들에게도 실망스러웠다.

독일은 겨우 0.7 올랐고 그나마 많이 오른 미국 나스닥도 1.2%가 고작이었다.

심지어 홍콩은 중국 경제성장률이 작년보다 낮다는 뉴스의 영향으로 떨어지기까지 했다.

그나마 내 체면을 차리게 해 준 곳은 일본과 한국이었다.

가장 많이 오른 곳은 일본 닛케이 225였는데 아무래도 자위대 해외 파병안 설득을 위해 중국과 한국을 방문해서 정상회담을 한 덕분인 것 같았다.

나로서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브레이크에게 도이치뱅크 현 회장이 이사회에서 신임을 잃었다는 말을 한 지 이틀 후 도이치뱅크 회장이 전격적으로 물러나겠다는 발표를 했다.

그날 이후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브레이크의 시선이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결과론적으로 말하면 내가 미국과 유럽의 주식시장이 상승할 것이라고 했던 장담은 결과적으로 빗나갔다.

전반적인 상승 기조였다는 내 생각은 맞았지만, 한 가지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지금은 미국과 유럽 경제는 불황이었다.

그리고 10월 두 번째 주에서 세 번째 주는 미국 기업들의 3/4분기 경영 실적을 발표하는 시기였다.

지난주 전 세계 주식시장이 상승한 것은 경제가 바닥을 찍었다는 심리적인 요인이 컸다.

그런데 지난 3/4분기 경제 상황은 좋지 않았다.

실물경제도 여전히 좋지 않았다.

3/4분기 기업 실적이 좋게 나올 리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며칠 후 미국 2위의 철강 업체인 베들레헴철강이 파산 보호 신청을 했고, 바로 다음 날 즉석 사진기로 유명한 폴라로이드도 파산 보호 신청을 했다.

바로 며칠 후에 독일 지멘스, 미국 AT&T, GM, IBM, INTEL과 같은 정보통신의 대표적인 기업들이 3/4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당연히 영업이익의 폭락이나 심지어 영업이익이 적자가 났다는 발표가 이어졌다.

뒤이어 미국의 시티 그룹, 모건스탠리, 메릴린치,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물론이고 독일 코메르츠은행마저 영업이익에 대한 경고를 보내왔다.

매일 기업 실적이 나쁘다는 발표가 나오자 리안이 나를 찾아왔다.

“오늘 나오는 기업 실적 봤지. 우리도 포지션을 바꾸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 건 아닌 것 같아. 지난 분기 기업 실적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다 알고 있었잖아.”

“9월 11일에는 테러도 있었지.”

“맞아,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악재는 악재가 아니지. 지금 나오는 기업 실적 발표는 이미 주가가 다 반영됐다고 봐야지.”

“그럴까?”

“설사 실적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해도 지금 팔면? 다음 주에는 주가가 어떨 것 같은데?”

“글쎄? 아마도 오르지 않을까?”

리안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오르겠지. 지금 팔아도 며칠 후에 다시 사야 하잖아. 그럼 비용이 이중으로 나가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어?”

“하긴, 그렇기도 하겠네.”

리안이 말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이미 주가에 발표되는 기업 실적이 반영됐다는 내 말은 빗나갔다.

수익률이 마이너스가 될 정도로 미국과 독일의 지수가 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상승률은 다른 나라에 비해 낮았다.

독일의 DAX 지수는 0.7% 상승했고 미국 나스닥도 상승률이 1.2%에 불과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기업 실적 발표 영향권에서 벗어난 일본 닛케이는 7.9% 한국 코스닥은 4.9% 그리고 러시아는 7.4%나 올랐다.

투자한 시장 중 유일하게 떨어져서 손해를 본 곳은 홍콩 항셍지수였다.

중국 주식시장이 중국 경제성장률이 떨어졌다는 소식에 하락했고 홍콩도 그 영향을 받아 0.7%가 떨어졌다.

0.7% 하락으로는 별다른 타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홍콩 항셍지수도 오를 것으로 생각한 나로서는 조금은 충격이었다.

이번 항셍지수 하락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홍콩이 중국 경제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는 간접증거였다.

홍콩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중국에 점점 예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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