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148화 (149/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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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신은 이빨이 빠진 노인에게 딱딱한 열매를 보낸다

1.

꽤 오랜만에 홍콩에서 보내는 주말이었다.

나는 낚시를 하기 위해 미리 리안에게 요트를 빌려 놓았다.

특별히 낚시를 좋아한다기보다는 도심과 떨어진 곳에서 휴식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도심과 떨어져 휴식하려고 하다니,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미국에 살 때 나는 외진 산속의 산장에서 쉰다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내가 바뀐 것이냐고?

전혀 아니었다.

나는 사람이 변한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단지 상황이 바뀌면서 전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면이 드러난 것뿐이었다.

결혼하고 사람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연애할 때는 보지 못했던 면을 보게 되는 것이다.

성공하고 사람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성공하기 전에는 참았던 욕구를 참을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실패하고 사람이 못 쓰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정상에 있을 때는 드러나지 않던 약점이 드러나는 것이다.

잃기 전에는 소중함을 모르다가 깨닫는 것이지 사람이 바뀌는 경우는 적었다.

주변 사람이 보기에는 내가 에디 미첼이 죽고 나서 달라진 것으로 볼지도 모르지만, 예전이나 나는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홍콩에 온 반년 동안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내가 인생을 낭비한 것으로 볼지도 모르지만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

투자에 관심이 없었을 뿐이지 보고서는 열심히 읽었고 동남아시아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조사하고 보고서를 작성했었다.

그때 동남아시아 각국의 정치 경제 상황을 조사하고 국민의 생각을 살펴볼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 나도 없었을 것이다.

투자로 큰돈을 벌지도 못했을 테고 에이전트 에스 팀 소속이라는 거짓말로 CIA 요원들을 속이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그나마 사람이 바뀔 수도 있다는 인정하는 부분이 좋은 물건을 소비하다가 나쁜 물건을 쓰기는 어렵다는 부분이었다.

사람은 참 나약한 존재였다.

예를 들어 비행기로 어딘가를 갈 때 1등석을 이용하다 보면 다른 좌석으로 여행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1등석을 타지 않을 때는 모르겠는데 일단 한 번 1등석을 타기 시작하면 이코노미석을 타는 것이 엄청나게 불편하다.

CIA 일을 할 때는 비즈니스도 아니고 이코노미석을 타야 했다.

홍콩에서 마닐라나 자카르타 서울 도쿄로 가는 시간은 몇 시간에 불과했는데도 이코노미석에 앉아서 가는 시간이 길게만 느껴진다.

쉬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도시가 얼마나 좋고 편한데 불편한 산속에 가서 쉰다는 말인가?

쉬려면 차라리 호텔에서 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스파이 생활을 하면서, 특히 올해 들어서 생각이 조금 바뀌고 있었다.

다른 CIA 요원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머물고 방문하는 곳은 홍콩이나 다른 나라의 대도시들이었다.

모두 복잡하기로 유명한 도시들이었다.

한 번 요트를 타고 사람들과 떨어져 혼자 있어 보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내가 전에 도시에서 편안함을 느꼈던 것은 다른 사람이 나를 귀찮게 하지 않고 정말 상류층이 누리는 여유를 느껴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실을 깨달은 이후 쉴 때는 가끔 리안에게 요트를 빌리고는 했다.

당연하지만 요트에는 나를 도와줄,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2.

요트 정박장에 도착했을 때 불청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이 황이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 옆에는 조민이 함께 있었다.

“여기는 웬일이세요?”

내 말투는 약간 퉁명스러웠다.

의도적인 말투였다.

내가 쉬려고 하는 장소에 찾아온 것에 대한 일종의 경고였다.

실제로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리안 소유의 요트를 빌리는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웃기지만······.

내 영역을 침범당한 기분이랄까?

쉬는 날은 쉬게 해 줘야 할 것 아닌가?

나로서는 진짜 거의 몇 달 만에 쉬는 날이었다.

“의논드릴 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나는 카이 황과 조민을 바라보았다.

회사 일만 생각하면 나보다는 카이 황이나 조민이 하는 일이 더 많았다.

나야 CIA 일과 W&R 투자 방향을 결정하기 위한 조사와 매일 한국 투자까지 꼼꼼히 살피느라 바쁜 것이었다.

W&R를 위해 일하는 시간만 따지면 카이 황이나 조민이 훨씬 많았다.

내가 알기로는 둘 다 하루에 12시간에서 16시간 정도 일하고 있었다.

“바쁘신 두 분이 무슨 일로 여기까지? 제 보트는 아니지만 일단 요트에 들어가서 이야기하죠.”

나는 일단 두 사람과 함께 요트 안에 있는 응접실로 향했다.

응접실 소파에 앉자마자 카이 황이 이야기를 꺼냈다.

“신의안의 류밍호가 어제 광저우에서 공안에 체포되었다고 합니다.”

류밍호는 W&R에 투자를 받아 달라며 협박을 한 놈들의 배후였다.

카이 황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잘됐네요.”

류밍호라는 자가 한 일은 짜증이 나기는 했지만 언젠가는 닥칠 일이었다.

한국에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그게 인간이었다.

다른 사람이 큰 이익을 얻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자신도 그 이익을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법이었다.

나와 리안은 이미 올 초에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적은 돈을 벌었음에도 리안의 고객들은 사실상 투자를 강요해 왔다.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RAM이었다.

아마 RAM도 마찬가지로 큰돈을 벌지 않았다면 이번에도 리안이 말하는 이른바 대인 어르신들은 W&R에 숟가락을 얹으려고 했을 것이다.

RAM을 강제로 만든 것은 당시에는 짜증 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미리 예방주사를 맞고 일종의 보험을 들어 놓은 셈이었다.

하지만 홍콩의 부호들이 RAM에 투자한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 기회에 류밍호를 통해 단단히 본보기를 보여 주면 장기적으로는 다른 자들에게 경고가 될 수도 있었다.

그 경고가 효력을 잃었을 때쯤에는 우리는 우리만의 성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 일을 보고하기 위해서 일요일 아침부터 오신 겁니까?”

내 말에 카이 황을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예상했던 답이었다.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습관처럼 한 질문이었다.

이때 옆에 서 있던 조민이 끼어들었다.

“그 일로 팀장님께 상의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서 제가 집사 아저씨를 졸랐어요.”

“할 말이라니요?”

내가 물었다.

일요일 아침부터 조민과 카이 황이 찾아온 이유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류밍호가 중국 마약상들을 W&R에 보낸 이유는 아시죠?”

“마카오 카지노 사업에 투자할 자금을 위해서 우리에게 투자를 받기 위해서라고 하지 않았나요?”

나는 확인하기 위해 카이 황에게 고개를 돌렸다.

“맞습니다.”

카이 황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홍콩에서 류밍호가 가지고 있던 이권은 다른 조직들이 나눠 가지기로 했어요.”

조민이 말했다.

그녀는 말을 마치고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슨 할 말이 있는 표정이었다.

“그런데요?”

내가 되물었다.

대답을 기다리는 표정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

“조직들이 다른 이권은 다 나눠 가지고 마카오 카지노에 투자 건이 남았어요.”

3.

카지노 투자가 남았다니 조금 의외였다.

물론 많은 돈이 들기는 하지만 카지노 투자는 꽤 돈이 되는 이권이었다.

류밍호가 리안 가문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찔러볼 만큼 큰 이권이었다.

“우리가 투자했으면 어떤가 해서요.”

잠시 침묵을 지키던 조민이 말을 이었다.

“카지노에 투자하자고요?”

내가 되물었다.

“예.”

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별로 끌리지 않네요.”

나는 고개를 카이 황에게 돌렸다.

“그때 듣기로는 류밍호가 투자하기로 한 것이 정킷방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카이 황이 대답했다.

“정킷방은 돈을 버는지 모르지만 제대로 된 카지노 사업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런 사업에까지 굳이 끼어들 필요가 있나 싶네요.”

마카오 카지노는 스탠리 호가 1962년부터 40년간 독점하고 있는 사업이었다.

그를 제외한 다른 사람은 마카오에서 제대로 된 카지노를 운영할 수 없었다.

스탠리 호가 내는 세금은 많을 때는 마카오 세수의 60%에서 70%였고 적을 때도 50%가 넘었다.

말 그대로 마카오는 스탠리 호의 왕국이나 다름없었다.

류밍호가 투자한다는 정킷방이라는 것은 그런 스탠리 호가 생각해 낸 영업 방식이었다.

자신이 독점하고 있는 마카오 카지노의 VVIP실을 1년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고 수익을 반반으로 나누는 것이었다.

카지노 전체 수입에서 소수의 거물 고객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게는 60%에서 80% 사이라는 통계를 통해 도입한 방식이다.

이런 고액 고객만을 상대하는 정킷방을 1년 동안 빌리는 비용은 미화 400만 달러에서 1,000만 달러 사이였다.

스탠리 호는 별다른 비용이나 노력 없이 고정적으로 돈을 벌고 추가 이익까지 얻는 방법이었다.

정킷방 운영 방식은 스탠리 호에게만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정킷방을 운영하는 것이 돈이 되지 않으면 누가 거액을 투자해서 정킷방을 임대하겠는가?

“정킷방 운영은 큰돈이 되고 꾸준히 현금 수입이 있어서 여러 가지로 쓸모가 많은 사업입니다.”

조민이 열정적으로 나를 설득했다.

하지만 나는 조민의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저었다.

“별로 내키지 않네요. 정킷방을 운영하는 것이 돈이 될지는 모르지만, 장래성이 있나요? 1년 정도 수익을 위해서 굳이 익숙하지 않은 일에 뛰어들 생각은 없습니다.”

내 거절에 조민이 급하게 입을 열었다.

“스탠리 호의 카지노 사업 독점이 내년에 끝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그래요?”

“예전 포르투갈 정부는 스탠리 호에게 독점권을 인정해 줬지만, 중국 정부가 스탠리 호에게 독점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요? 그게 정킷방을 운영하는 것과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네요.”

“카지노에서 돈이 되는 고객은 거물 고객, 흔히 말하는 고래들이죠. 정킷방을 운영하면서 카지노를 운영하는 노하우도 얻고 거물 고객 명단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카지노 사업에 진출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조민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정킷방을 운영하자는 말이 아니었다.

“정킷방을 운영해서 경험을 쌓고 카지노 사업에 진출하자는 말인가요?”

“맞습니다.”

조민이 대답했다.

“카지노 사업은 좋은 산업이죠. 중국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상황을 생각하면 전망은 더 밝고요. 중국인은 예나 지금이나 도박을 좋아하니까요.”

“그럼 정킷방 투자에 팀장님도 동의하시는 겁니까?”

“아니요.”

나는 딱 잘라 거절했다.

“좋은 사업이라고 그게 카지노 사업에 뛰어들 이유는 될 수 없죠. 아시겠지만 지금 하는 일만으로도 사람이 모자라는 상황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사업에 진출할 생각은 없습니다.”

아무리 카지노 사업이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지금 우리의 수익률보다 높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 거절에 조민의 얼굴에는 뜻밖에도 엷은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순간적으로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4.

이런 내 의문은 이어진 조민의 제안에 바로 해소되었다.

“그럼 류밍호의 카지노 투자를 제가 따로 맡아서 해도 되겠습니까?”

“조민 씨가 투자하신다고요?”

“예, 제가 따로 사람과 자금을 구해서 해 봤으면 합니다.”

“마음대로 하세요. 제 허락이 필요한 일이 아닌 것 같네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옆에 있던 카이 황이 입을 열었다.

“삼합회 조직들이 카지노 투자권을 넘긴 것은 류밍호의 행동에 대한 사과의 의미입니다. W&R에 넘긴 것이죠.”

카이 황의 말을 듣고서야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었다.

어쩐지 카지노 투자권 같은 이권이 남아 있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류밍호가 중국 정부에 잡혀가고 조직이 순식간에 공중분해 되자 삼합회 조직들이 겁을 먹은 듯했다.

아니, 어쩌면 먼저 카지노 투자권을 요구했을지도 모른다.

“알아서 하세요.”

내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조민이 대답했다.

이미 내 인생은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도박을 사업으로 할 생각은 없었다.

조민이 먼저 내린 후 나는 카이 황을 잠시 요트에 잡아 두었다.

“카이 황 씨는 W&R의 대표입니다. 제가 카이 황 씨에게 대표직은 맡긴 것은 리안과의 관계도 관계지만 그럴 만한 자격이나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이번은 상당히 실망스럽네요.”

“죄송합니다. 조민 아가씨가 워낙 강하게 주장하셔서······.”

카이 황이 사과했다.

“이전의 관계를 완전히 무시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W&R의 대표일 때는 대표라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합니다. 다음에도 이런 식이면 곤란합니다.”

카이 황에게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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