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149화 (150/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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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불행은 한 번에 세 가지가 함께 온다

1.

원래 휴일 계획은 홍콩에서 요트 여행을 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빅토리아만에서 야경을 보면서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저녁이 되기 전에 집으로 돌아왔다.

요트를 타고 있는 내내 마음이 무거워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았다.

시작부터 카이 황과 조민이 찾아온 일로 흔히 말하는 것처럼 김이 새 버린 것이다.

집에 돌아와 저녁 식사를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리안이 집을 찾아왔다.

보트 승무원들에게 내가 예정과는 달리 일찍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 듯했다.

“오늘 일은 미안해.”

리안은 나를 보자마자 사과부터 했다.

“카이 황 아저씨와 조민이 카지노 투자 건으로 찾아갔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리안의 사과에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좀 놀라기는 했지만 뭐······. 오히려 조민이 카지노를 하겠다고 나온 것에 더 놀랐지. 카지노하고 조금 어울리지 않아 보이잖아.”

“대학 다닐 때 카지노에 다니면서 용돈을 번 것 같아.”

“그래? 하긴 수학을 잘하면 카드 카운팅을 쉽게 할 수 있으니······.”

MIT 학생들이 라스베이거스에서 카드 카운팅으로 블랙잭에서 거액을 벌었던 이야기는 유명했다.

지금은 카지노에서는 카드 카운팅하다가 걸린 이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카지노 출입 자체를 막고 있었다.

“이번 일은 내가 나중에 보상할게. 어쨌든 W&R 회사에 넘어온 이권을 조민이 가져간 셈이니까.”

리안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신경 쓰지 마.”

나는 리안을 보며 말을 이었다.

“카지노 이권은 삼합회에서 너를 보고 넘겨준 거잖아. 그럼 회사가 아닌 네 몫이고, 그걸 네 약혼녀가 가져간 셈이니 어떤 면에서는 주인을 찾아간 셈이지.”

카지노 이권이 허공에 뜬 이유는 류밍호가 중국 공안에 잡혀가고 류밍호가 이끌던 조직이 공중분해 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공안이나 홍콩 경찰을 움직인 것은 리안과 카이 황이었다.

나는 W&R의 대표가 카이 황이고 그가 리안 집안의 집사이기 때문에 W&R에 넘긴 것이지 회사를 보고 넘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깨끗이 카지노 이권을 포기하고 조민의 무리하다면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인 이유였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카지노 이권을 이용할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카지노에 투자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돈이 될 것이 분명한 카지노 이권을 이용할 방법은 많았다.

“이번은 아저씨가 잘못한 거야. 어쨌든 명목상은 W&R에 넘어온 이권이야. 그걸 회사의 직원에 불과한 조민이 가져간 거고······. 배임으로 몰려도 할 말이 없는 행동을 한 셈이지.”

“빡빡하기는. 그런데 집안에서 조민이 카지노 이권에 뛰어든 것을 허락한 거야? 카지노 사업이 수익은 높지만 그렇게 깨끗한 사업은 아니잖아?”

내가 이상하게 생각한 부분이었다.

중국인들은 도박을 아주 좋아했다.

현재 도박 형태의 상당수는 그 기원이 중국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회적으로 도박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알기로는 리안도 그렇지만 조민의 집안도 중국 강남 일대에서 유서 깊은 가문의 후예였다.

카지노 사업에 뛰어드는 것을 좋게 볼 리가 없었다.

마카오 밤의 황제라고 불리는 스탠리 호만 봐도 그건 분명했다.

스탠리 호도 광동성에서 꽤 유서 깊은 상인 가문의 후예였다.

하지만 그의 집안이 몰락해서 몰락한 과거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카지노업에 뛰어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탠리 호는 엄청난 돈을 벌기는 했지만, 화교 사회에서 존경을 받는 것은 아니었다.

“조민도 본인이 직접 하려는 것은 아니야.”

“그래? 나에게는 직접 할 것처럼 말하던데?”

“조민이 카지노 사업에 신경 쓸 시간이 어디 있겠어.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나중에 라스베이거스 쪽 업체와 손을 계획이라고 알고 있어. 몇 년 후에 합작 사업으로 마카오에 카지노를 직접 건설할 생각인가 봐.”

“장기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네. 모르겠다, 내 손을 떠난 사업이니 알아서 하겠지.”

몇 년 후라면 내가 이미 홍콩을 떠난 후였다.

당장 뭔가를 해서 문제를 만들면 모르겠지만 몇 년 후라면 그때 조민이 뭘 하건 내가 알 바가 아니었다.

리안이 감당할 부분이었다.

2.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생기기는 했지만, 한동안은 모든 것이 계획대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15일에는 내가 일본에 있을 때 알고 있던 그대로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가 한국을 방문해서 한국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서대문을 방문해서 모호한 사과까지 했다.

어차피 모든 것이 형식적인 절차였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은 예정대로 착착 진행되었다.

제공권을 장악한 미군은 ‘죽음의 천사(angel of death)’라고 불리는 록히드 마틴의 AC ?130 중무장 지상 폭격기를 이용해서 탈레반군이 조금이라도 모이면 인정사정없이 공격하고 있었다.

분대 단위만 모여도 어디선가 나타나서 지상을 초토화하는 AC -130의 공격에 탈레반군은 말 그대로 괴멸되고 있었다.

탈레반군이 괴멸됐다고 판단했는지 파이브 아이즈의 일원으로 미국의 혈맹 중 하나인 호주는 1,550명의 지상 병력을 아프가니스탄에 파병했다.

독일 본에서는 벌써 아프가니스탄에 이해관계가 걸린 국가와 아프가니스탄의 군벌들이 모여서 다음 정부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공격으로 얻은 외교 군사적 이익은 착착 나타나고 있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냉전 시대부터 유지해 온 카리브해의 스파이 기지를 일방적으로 폐쇄했다.

카리브해에서 러시아와 협조하고 있던 쿠바가 반발했지만, 당연히 푸틴 대통령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대신 미국과 핵미사일 감축을 논의하고 미국이 미사일 방어 체계를 개발하는 것을 묵인하고 있었다.

물론 전 세계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예상했던 그대로 아랍권에서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규탄하는 시위가 열렸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반미 시위가 격화되었다.

예전 수하르토가 대통령일 때야 강압적인 수단을 써서 이슬람 교도를 통제했지만, 인도네시아는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었다.

인도네시아는 더는 독재국가가 아니었다.

그리고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는 노골적으로 재선을 노리고 있었다.

간선제였던 지난 대선과는 달리 다음 대선은 국민이 직접 뽑는 직선제였다.

무슬림 인구가 90% 이상인 인도네시아에서 무슬림을 적대하는 것은 정치적 자살행위였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대통령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옹호했던 것은 2004년 대선까지는 3년이나 남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인기를 조금 잃더라고 미국의 지원을 받아 경제를 살리는 것이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대통령의 목표였었다.

이미 미국에서 지원을 약속받은 상황이고 정작 미국 CIA도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대통령이 인도네시아의 무슬림을 자극하지 않기를 바라는 상황이었다.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대통령이 미국 협조 발언 수위를 낮추는 일은 당연한 절차였다.

토미 수하르토는 기대했던 대로 좌충우돌하며 망나니짓을 하면서 대통령 측과 이슬람 정당 모두에게 골치 아픈 존재가 되어 가고 있었다.

3.

문제가 생긴 것은 17일이었다.

낮에만 해도 별문제가 없었다.

W&R의 투자는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투자한 시장에서 상승 포지션을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

3주 연속이었다.

경제는 여전히 나빴지만, 미국과 유럽의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췄고 일본은 경제 침체로 말 그대로 시장에 돈을 쏟아 내고 있었다.

아무리 경제가 나빠도 이 정도로 시장에 돈이 풀리면 주가가 오르게 마련이었다.

불황이 끝나고 주가가 바닥을 쳤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었다.

타이완의 주식 시장도 5.5%가 올랐다.

장샤오이와 만나서 타이완 투자를 정리하고 중국에 투자하기로 의논도 끝냈다.

그렇게 하루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저녁.

CNN에 뉴스에서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리하밤 지비(Rehavam Zeevi) 반테러 장관이 호텔에서 팔레스타인 과격파에 암살당했다는 뉴스였다.

그리고 리하밤 자비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한 정보가 자막으로 나오고 있었다.

자막에 따르면 리하밤 지비는 전직 장성 출신으로 이스라엘 내 극우파의 중요 인물이었다.

반테러 장관이라는 이름대로 지난 몇 주간 팔레스타인 지도급 인물에 대한 암살을 주도한 인물이었다.

이번 암살은 그에 대한 보복이었다.

미국은 지난 몇 주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휴전 협상에 꽤 공을 들였다.

아랍권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한 일이었다.

CNN에서는 이번 암살로 체결 직전까지 갔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휴전 협상이 결렬될 것이라는 예상을 보도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스라엘 장관의 암살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다음날 진짜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 민주당 상원 지도자인 톰 대슐을 노린 탄저균 테러가 발생한 것이다.

다행히 톰 대슐은 무사했지만, 우체국 직원과 톰 대슐 비서가 탄저균 테러로 병원에 입원했다.

그렇지 않아도 탄저균 테러 공포에 휩싸여 있던 미국은 말 그대로 공황 상태에 빠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탄저균 테러의 배후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지목했다.

미국은 물론이고 홍콩 신문에서 온통 탄저균 테러가 발생하면 수십에서 수백만 명이 죽을 수 있다는 분석기사가 나오고 있었다.

홍콩 의원들은 홍콩 정부에 탄저균 백신을 수입하라는 요구를 하고 나왔다.

하지만 탄저균 백신을 만들 수 있는 곳은 오직 하나, 바이엘뿐이었다.

바이엘이 아무리 공장을 늘여도 한계가 있었다.

미국과 독일 그리고 영국, 프랑스······.

홍콩이 백신을 수입할 수 있는 우선순위는 낮았다.

내가 보기에는 다 헛짓거리였다.

홍콩에 대규모 탄저균 테러를 할 가능성은 낮았다.

탄저균을 만들어 내기도 어렵지만 그렇게 만들어 낸 탄저균을 이번처럼 테러에 이용하는 것은 더 어렵다.

전문적인 지식과 시설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만들어 낸 탄저균을 뭐 하러 홍콩에 사용한다는 말인가?

이번 일로 내가 걱정하는 것은 탄저균 테러에 대한 걱정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탄저균 테러의 배후로 이라크를 지목하는 분위기를 보아하니 전쟁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최근 의회에서 정보 분석 요원에 대한 배치와 증원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내가 CIA를 그만두기 어려워지는 분위기였다.

4.

이렇게 내 관심이 중동과 미국에 가 있을 때 장샤오이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나는 전화를 받고서야 중국 투자에 대한 건이 떠올랐다.

“먼저 연락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투자할 상하이 상장 기업의 리스트를 보내려고 했습니다.”

나는 전화기를 든 채 책상 한쪽에 있던 서류를 집어 들었다.

리안과 조민이 가져온 중국 투자 리스트가 적혀 있는 보고서였다.

-아무래도 지금 타이완 시장에서 빼낸 자금으로 중국에 투자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가 들려왔다.

“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내가 되물었다.

또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악재는 세 가지가 함께 온다지만 하루 사이에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또 생겼다는 말인가?

-말 그대로예요. 지금 중국에 투자했다가는 타이완 정부와 중국 정부 모두의 눈을 끌게 될 것 같아요.

“하······.”

이번 투자는 중국 정부의 눈에 띄는 일은 절대로 피해야 했다.

왜냐하면, 이번 투자금은 대부분이 AAM의 자금이었기 때문이다.

AAM의 자금은 시작부터 문제가 있는 자금이었다.

에디 미첼이 도이치뱅크의 자금을 빼돌려서 만든 자금이 원천이었고 CIA와 연관되어 있었다.

더구나 나는 내년에 도이치뱅크에 2천만 달러의 차입금을 상황하고 나면 적당히 연결 고리를 끊인 이후에 이 자금을 이용해서 겉으로 드러나서는 안 되는 자금으로 이용할 생각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중국 정부에서 에이펙 타이완 대표 단장인 리웬주 타이완 부통령의 방한을 불허했어요. 타이완 정부에서는 만약 중국 정부가 불허하면 에이펙 회담을 참가 거부하겠다고 선언했어요.

“······.”

내가 투자금을 타이완 자금으로 세탁하려던 이유는 나무를 숲에 숨긴다는 전략을 따른 것이었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숲에서는 산불이 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중국 투자는 그럼 포기하죠.”

-그래도 되겠어요?

“예.”

내가 대답했다.

주객이 전도된 부분이 있지만, 중국 투자는 2팀에 거래를 맡기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중국에 투자할 수는 없었다.

-그럼 투자금은 어떻게 할까요?

“타이완 선거가 끝날 때까지는 일단 타이완 시장에 투자를 유지하죠.”

다음 주 최선의 투자처는 중국이지만 최선이 불가능하면 차선이라도 선택해야 하는 법이었다.

-그렇게 할게요.

장샤오이가 대답했다.

“고생하십시오. 이번 일로 발생한 비용은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타이완 주식 시장도 투자를 유지하는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번은 달랐다.

이미 타이완 자금으로 세탁하기 위해 비용을 지불한 상태였다.

그 비용이 그대로 날아가게 생긴 것이다.

단순히 비용은 문제도 아니었다.

이번에 거래 무산으로 상대방에게 위약금까지 줘야 했다.

무려 1억 달러였다.

수백만 달러가 날아간 셈이다.

투자는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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