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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잠자는 개는 자게 놔두어라
1.
나는 미국에 있는 존 베비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에드릭입니다.”
-오랜만이야. 어디야?
“홍콩입니다. 말씀대로 오랜만이네요. 한 달 반 만이던가요?”
내가 지난번 911 테러 직후에 전화를 건 적이 있었다.
-벌써 그렇게 됐나? 벌써 그 일이 있고 한 달 반이나 지났군.
그 일이란 당연히 911 테러였다.
“그러게요. 정말 시간이 빠르네요.”
-그런데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은요. 요즘 워싱턴이 뒤숭숭하다고 해서 안부 전화 드렸죠. 오늘 뉴스를 보니 워싱턴 우체국 직원 두 명이 사망했다면서요.”
톰 대슐 상원 의원에게 전달된 편지를 취급한 워싱턴 우체국 직원 두 명이 사망했다.
탄저균 테러의 추가 사망자가 나온 것이다.
-그러게. 어떤 놈인지 간도 크네. 감히 야당 상원 원내대표를 노리다니······. 톰 대슐 그 양반 나도 잘 아는 분인데 전화를 걸었더니 이번 일로 꽤 충격을 받으신 것 같더라고.
존 베비스는 톰 대슐 의원을 잘 아는 분위기였다.
비록 톰 대슐 의원이 보건복지 전문가로 CIA와 직접 관련된 분야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존 베비스는 정치적 야망이 있었고 톰 대슐은 상원의 민주당 원내대표로 워싱턴의 거물 중 하나였다.
친분이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혹시 회사에서는 이번 일과 관련된 말이 없어요?”
-글쎄, 나도 알아봤는데 아직 배후가 누군지는 알아내지 못한 것 같아.
“뉴스를 보니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라고 하던데요?”
내가 넌지시 물었다.
-글쎄, 누가 그런 소리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담 후세인이 이런 상황에서 일을 벌이겠어?
내 생각도 비슷했다.
한창 미국이 독이 올라 있는 상황에서 탄저균 테러를 벌이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그렇다고 한창 미국의 공격을 받는 알 카에다와 탈레반이라고 벌였다고 하기에도 이상했다.
그렇게 보기에는 탄저균 테러 피해자 중에서 이번 전쟁에 직접 관련된 사람이 없었다.
“들은 소식 없으세요?”
-아직은 없어. 지금 한창 탄저균의 출처를 알아내기 위해서 분석하고 있는데 별다른 정보가 없나 봐.
이미 알아냈는데 존 베비스가 모를 수도 있겠지만 가능성은 낮았다.
만약 탄저균 테러가 미국 적대 국가의 짓이라면 CIA 간부였던 존 베비스도 그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더구나 그는 버지니아주에 살기는 하지만 일주일에 절반 이상을 워싱턴에서 보내는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존 베비스가 탄저균 테러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존 베비스를 통해서 탄저균 테러에 관한 정보를 얻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나는 화제를 전환하기로 했다.
2.
“재촉하는 것 같아서 이런 말 그렇지만···.”
나는 조심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제 퇴직이 어떻게 진행되고 가고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아도 자네 문제 때문에 요즘 내가 머리가 다 빠지고 있어.
“제 문제요?”
순간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지금 회사 위기에 몰렸지 않나. 그래서 베테랑 정보 분석 요원들을 본부로 모으는 중이야. 그 명단에 자네 이름도 올라왔다고 하더군. 내가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제 이름이요?”
존 베비스의 말에 나는 가슴이 털컥 내려앉았다.
지금 상황에서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말 그대로 최악이었다.
돌아가면 투자는 고사하고 다른 일을 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래.
“베테랑 정보 분석 요원이라고 하기에는 제 경력이 짧지 않나요?”
-워싱턴에서 일할 때 자네를 눈여겨봤던 헨더슨이 자네를 추천한 것 같아.
헨더슨은 본부에서 분석 요원으로 일하던 시절 팀장이었다.
능력도 좋고 우리에게도 상대적으로 인간적으로 대해서 존경하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나를 추천했다는 말을 들으니 존경했던 마음이 단숨에 사라졌다.
“그래서요? 제가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겁니까?”
-당연히 내가 그 소식을 듣고 사람을 통해서 막았지. ‘중국의 중요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중국 전문가로 키우던 인물을 데려와 봐야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라고 설득하라고 했지.
“감사하기는 하지만, 제가 중국 전문가로 키워지고 있는 건가요?”
당장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게 된 것은 다행이지만 중국 전문가라는 말은 마음에 걸렸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내가 듣기로는 자네는 예전에도 중국에 대한 보고서는 올린 적이 없다면서? 그나마 최근 들어서는 제대로 된 보고서가 없고 말이야. 그 일도 내가 무마하고 있다는 것만 알아둬.
나는 올해 들어서도 에이전트 에스 팀 이름으로 보고서를 꽤 자주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보고서를 올린 적이 없다니?
본부에서 보고서 분류에 착오가 있었던 것 같았다.
그렇다고 존 베비스에게 알아봐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내 전출을 막았다는 것을 보니 존 베비스는 지금도 여전히 CIA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예전 부하와 동료 들을 통해 나에 대한 부분을 점검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영향력이 남았다고 해도 퇴직한 직원이었다.
퇴직한 존 베비스가 보고서 분류 같은 세세한 부분까지 알아보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았다.
그리고 알아보는 것도 곤란했다.
존 베비스가 내 재산 규모를 알게 되면 내가 약속했던 금액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었다.
정치는 돈이 드는 일이었다.
“그래서요.”
-뭘 그래서야. 내가 자네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말이지.
“제가 미국에 돌아가면 사무실로 찾아뵙겠습니다.”
지난번 버지니아 존 베비스의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나는 그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약속했다.
사무실을 찾아가겠다는 말은 자금을 추가로 주겠다는 우회적인 표현이었다.
-나도 자네를 미국에서 다시 보면 많이 반가울 것 같기는 하군.
“이왕이면 사무실을 방문하기 전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돈을 받기 전에 퇴직을 확실히 처리해 달라는 요구였다.
-그게 좋겠지.
“그럼 몸조심하십시오. 편지 같은 것 직접 뜯어보시지 마시고요.”
-살아서 자네와의 약속을 꼭 지키라는 말이지?
“너무 저를 나쁜 놈으로 보시네요.”
-농담이네. 종종 연락하세.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내 퇴직을 위한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았다.
존 베비스와의 통화를 통해 내 퇴직을 위한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기쁜 일이었다.
그렇지만 탄저균에 대한 수사가 별 진전이 없다는 소식에는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탄저균 관련된 뉴스를 보면 마치 무언가를 위한 명분을 쌓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누군가 이번 탄저균 테러의 배후로 사담 후세인을 몰고 가는 분위기였다.
이 분위기는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이 별다른 희생 없이 진행되고 있는 뉴스와 맞물려 있었다.
특히 마음이 걸리는 부분은 탄저균 테러의 목표가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라는 부분이었다.
백악관이 반테러법이 발의할 때만 해도 인권 침해적인 부분이 있다는 지적과 야당인 민주당과 언론의 비판이 있었다.
그런데 우연인지 탄저균 테러로 지금까지 사망자는 거의 전부가 언론사와 민주당에 배달된 편지에서 나왔다.
여전히 반테러법에 대한 비판은 있었지만 이미 하원에서는 통과되었고 이제 상원에서의 표결만 남아 있었다.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상원에서도 통과가 거의 확실히되었다.
현재 톰 대슐 상원 의원으로서는 반대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차라리 자신이 탄저균에 노출됐다면 그나마 반대할 명분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신념을 꺾지 않았다는 그런 명분 말이다.
그런데 탄저균에 노출된 사람은 톰 대슐 상원 의원이 아니라 그의 비서관과 우체국 직원이었고 그중에서 현재까지 사망한 사람도 우체국 직원들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톰 대슐 상원 의원이 미치지 않고서야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조금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나는 곧 고개를 저었다.
자는 개는 그냥 놔두는 것이 좋았다.
그렇지 않아도 존 베비스와 통화하는 내내 비유로 말을 하는 처지였다.
이 이상은 위험했다.
3.
탄저균 테러 외에 갑자기 발생한 다른 악재인 리하밤 지비의 암살은 이스라엘의 군사 보복으로 이어졌다.
이스라엘은 탱크를 동원해서 전격적으로 다시 팔레스타인의 여섯 개 도시를 공격했고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지도자인 아라파트를 정치청사에 사실상 연금했다.
직접 정부청사에 병력을 진입하지는 않았지만, 사방을 포위해서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미국 정부는 당연히 탱크를 철수시킬 것을 요구했지만 이스라엘은 거부했다.
하지만 탄저균 테러와는 달리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탄저균 테러는 근무하던 워싱턴에서 벌어진 일이라서 지인들이 피해를 볼 우려도 있었고 CIA와도 연관이 있었다.
내가 CIA가 퇴직하는 데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에서 벌어진 일은 아니었다.
이미 작년부터 휴전을 어떻게든 끌어내려던 CIA 국장은 휴전 협상에서 완전히 발을 뺀 상태였다.
테러전에 전념하느라 팔레스타인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에 비해서 중국이 타이완의 에이펙 회의 대표 단장인 부통령 입국을 거부한 것은 현재 진행형이었고 나에게도 영향을 주는 일이었다.
그 일을 의논하기 위해 장샤오이와 홍콩 시내 음식점에서 만났다.
“대만의 천수이볜 총통은 중국의 입국 거부를 이유로 에이펙 참가를 거부했더군요.”
“예.”
장샤오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이미 이야기한 것처럼 중국 투자는 완전히 물 건너간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죠. 두 나라 사이가 최악인 상황에서 1억 달러나 되는 돈을 중국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타이완 투자자는 누가 봐도 수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장샤오이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제 정부에서 공기업의 주식 매각을 금지하는 조치를 발표했더라고요. 투자하기 정말 좋은 기회였는데······.”
중국 정부의 증시 부양책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노골적이었다.
정국 정부가 공기업이 가지고 있는 주식 매각을 당분간 금지하는 지시를 공개적으로 내린 것이다.
중국 경제에서 공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주식시장에 엄청난 호재였다.
더욱이 주식 매각을 연기한 것은 공기업만이 아니었다.
민간 기업도 마찬가지였다.
정부가 공기업에 당분간 매각하지 말라고 지시하는 상황에서 주식을 매각할 간 큰 기업인은 찾기 어려웠다.
“그나마 타이완 주식시장도 나쁘지 않으니 다행이에요.”
장샤오이가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어쩔 수 없이 투자한 타이완 주식시장은 며칠 사이에 4% 이상 올랐다.
지난주 5% 중반대의 상승률을 기록한 것을 생각하면 열흘 사이에 10% 이상 오른 셈이었다.
이번 주 미국 투자은행에서 이번 불황에 싱가포르, 타이완, 말레이시아, 홍콩, 태국과 필리핀이 큰 타격을 입고 있고 앞으로도 입을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한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동남아시아 경제 상황을 어둡게 본 이 보고서의 영향으로 싱가포르는 지수가 6% 이상 폭락했고 홍콩 항셍 지수도 급격히 내림세를 보였다.
아직 손해를 보지는 않았지만, 홍콩 투자에서 큰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런데 타이완 증시는 정부가 강제적으로 증시를 부양하는 정책을 발표한 중국과 비슷한 추세로 오르고 있었다.
장샤오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이러니하네요. 중국 투자를 막은 타이완 정부의 에이펙 정상회담 불참이 투자한 타이완 증시에서 높은 이익을 얻고 있는 이유라니······.”
장샤오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타이완 집권당인 민진당이 중국의 입국 거부를 명분으로 11월 초 선거를 반중국 정서를 부추기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유리했던 타이완의 의회 선거는 민진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여당인 민진당이 의회에서 의석을 많이 얻으면 얻을수록 타이완 정국 안정에는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정국 안정에 대한 기대감이 다시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에드릭 팀장님의 혜안에 이번에 다시 놀랐어요. 전화위복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돌발 사태에서도 큰 손해는 보지 않았네요.”
장샤오이의 칭찬에 나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이번 주까지는 타이완 시장이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중국 시장과 비슷한 수준까지 오를 줄은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
내 투자 방법은 경제 상황은 물론이고 각국의 정치 외교를 통해 투자 방향을 예상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911 테러 이후 국제 관계는 너무 많은 일이 단시간에 일어나고 있어서 점점 예측이 어려워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운이 좋았지만, 언제까지 이런 운이 계속될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지금은 봄에 날아갔던 새가 비바람과 함께 돌아온다는 10월이었다.
당장 내일 날씨도 예측하기 어려운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