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151화 (152/270)

(151)

#152. 그물에 들어오면 다 물고기다.

1.

“음식 맛있네요.”

“그러게요. 다른 곳에서 주방장을 데려왔다고 하더니 잘 데려온 것 같습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카이 황이 대답했다.

“알게 된 지 꽤 됐는데 이렇게 밖에서 만나는 것은 처음이죠.”

“그러게 말입니다.”

카이 황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먼저 연락을 해서 잡은 약속이지만 카이 황은 식사가 끝날 때까지 제대로 된 용건을 꺼내지 않고 있었다.

잠시 후 차가 들어왔다.

나는 곧바로 찻잔을 내려놓았다.

차에서 뭔가 텁텁한 느낌이 전해졌다.

“이 차는 제 입맛에는 맞지 않네요.”

문득 앞에 앉는 카이 황이 타 줬던 차가 생각났다.

내가 마셔 본 차 중에는 가장 맛있는 차 중의 하나였다.

카이 황이 차를 잘 타는 것도 있지만 찻잎 자체가 식사 후에 나오는 찻잎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고가였다.

“그렇습니까? 다른 차로 바꿔 달라고 할까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나는 차를 마시는 순간 느꼈던 생각을 속으로 삼켰다.

카이 황에서 대표로서 자각을 가지라고 한 것이 얼마 전이었다.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농담이라도 타 줬던 차를 언급하는 부적절했다.

그건 그를 회사의 대표가 아니라 리안 가문의 집사로 취급하는 일이었다.

나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파키스탄 투자는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아직 준비 단계입니다. 아마도 직접적인 투자는 조금 시간이 걸려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파키스탄에 투자하는 것에 부정적입니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요구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다만 직접 투자 비중은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주식 투자 위주와 자원 중심으로 투자할 생각입니다.”

“자금은 어떻게 조달할 생각입니까??”

내 질문에 카이 황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자금 조달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문제는 파키스탄에 투자하기 위해 드는 비용입니다. 최근 파키스탄 상황 때문에 여러 가지로 걸리는 부분이 많은 실정입니다. 예전이라면 하왈라(hawala)를 통해서 별다른 비용 없이도 바로 파키스탄에서 자금을 동원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아랍어로 하왈라는 신뢰를 의미했다.

그런 뜻을 가진 하왈라는 실크로드를 이용해서 교역했던 이슬람 상인들이 사막의 도적으로부터 재산을 보호할 목적으로 고안해 냈다고 알려진 이슬람권 전통의 송금 시스템이었다.

이용 방법도 간단했다.

비밀번호와 돈을 하왈라 업자에게 가져가서 해외 송금을 의뢰하면 하왈라 업자는 돈을 받을 나라의 하왈라 업자에게 돈을 지급하라고 연락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면 돈을 맡긴 사람은 돈을 받을 상대에게 비밀번호를 알려 주면 송금이 끝이었다.

돈을 받을 사람은 비밀번호로 하왈라 업자를 찾아가서 현지의 화폐로 찾으면 되는 것이다.

하왈라 방식의 장점은 간단함만이 아니었다.

송금과 환전이 동시에 이뤄지는데도 그 비용은 자국에서 환전하는 것보다 낮았다.

문제는 이런 하왈라가 자금 세탁과 재산 도피 그리고 불법 송금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부분이었다.

이런 이유로 많은 나라에서 하왈라를 불법 외환 거래인 ‘환치기’라고 부르며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다.

불법으로 규제하더라도 하왈라를 완전히 근절하기는 어려웠다.

무슬림으로서는 하왈라는 전통이었고 그런 전통적인 방법을 이용하는 데 죄책감을 가지는 무슬림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몇 주 사이에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있었다.

최근 미국 정부에서는 911 테러를 저지른 테러범들이 이 하왈라를 통해서 자금을 지원받았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곧이어 이번 기회에 하왈라를 뿌리 뽑겠다면서 대대적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하긴 지금은 하왈라를 이용하기가 조금 그렇겠군요. 미국의 감시도 심하고 그 대상도 파키스탄이니까요.”

무슬림 네트워크가 존재하는 이상 하왈라가 사라질 가능성은 없었다.

그렇지만 한동안 하왈라를 이용해서 자금을 이동시키는 것은 위험했다.

심지어 자금을 이동시키려고 하는 나라는 파키스탄이었다.

오사마 빈 라덴을 숨겨 주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은 파키스탄 정보부의 작품이었다.

그리고 최근에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탈레반 지도부와 오사마 빈 라덴을 비롯한 알카에다 지도부가 이미 파키스탄으로 탈출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파키스탄에 투자하는 것 자체가 미국 정부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상황에서 파키스탄에 투자하기 위해 하왈라를 이용하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도련님이나 저나 무리할 생각은 없습니다. 공청단도 지금 당장 파키스탄에 진출하라는 의미는 아니니까요.”

카이 황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리만 하지 않으면 파키스탄 진출 자체가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어차피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이 완전히 정리되기 전까지는 파키스탄을 지원할 밖에 없었다.

그런 지원이 파키스탄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투자를 해도 손해는 보지는 않을 정도는 될 것이다.

공청단도 적절한 시기에 리안의 ‘충성’에 대한 대가를 보상해 줄 것이다.

“무리만 하지 마십시오.”

내 말에 카이 황의 표정이 굳어졌다.

2.

그는 잠시 후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짐작하시겠지만 제가 오늘 찾은 것은 드릴 말씀이 있어서입니다.”

카이 황이 드디어 기다렸던 말을 꺼냈다.

“말씀하세요.”

“아시겠지만 최근 신규 직원의 채용이 있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1년 이상 투자은행의 실적 악화는 911 테러로 그 절정에 달했다.

말 그대로 3/4분기 투자은행들의 실적은 최악이었다.

그리고 투자은행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인원 감축을 본격화했다.

홍콩에서 해고된 투자은행 직원들에게 W&R은 매력적인 회사였다.

설립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기록적인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카이 황은 구직자 중에서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선별해서 채용했다.

예전에는 구하기 어려운 인재들이었다.

“새롭게 뽑은 직원이 유능하기는 한데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요?”

“직원은 구했는데 현재로서는 그 직원들이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조사 업무만 시키고 있는데, 알다시피······.”

“아······. 하긴 투자은행 프런트 오피스에서 일을 하던 직원들이라면 지금 하는 일에 불만을 느낄 수도 있겠네요.”

투자은행의 핵심 부서라고 할 수 있는 프런트 오피스는 고객을 끌어오고 시장을 분석해서 투자하고 주식거래를 하고 채권을 분석하는 등 여러 가지 일을 수행했다.

그런데 W&R은 일단 다른 고객의 돈을 받지 않으니 고객을 유치할 필요가 없었다.

여기에 W&R의 투자 결정도 사실상 나 혼자서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W&R의 직원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저에게 각종 분석 보고서를 보내는 일이 전부입니다. 조사 업무를 하는 것치고는 많은 보수를 주고 있기는 하지만······.”

카이 황이 말을 흐렸다.

카이 황에게 전해진 보고서는 내가 투자를 하는 데 참고하기는 했지만, 직원들이 실제로 그 결과를 느끼기는 어려웠다.

W&R이 직접 투자하는 부분은 홍콩 항셍 지수 선물이 고작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투자은행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직원이라면 불만을 가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전망이 좋을 것 같아서 신생 투자 기업에 들어왔는데 정작 하는 일이 생각과는 다르니 속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내년 전반기까지는 어떻게든 지금의 체제를 유지하고 싶었는데 그건 힘들겠죠?”

“야심이 큰 직원들은 그 전에 회사를 떠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수한 직원을 채용한 것은 좋았는데 그 직원들 때문에 문제가 생긴 셈이다.

“뭔가 일을 주기는 해야겠네요. 현재 W&R 투자금 중에서 W&R이 직접 관리하는 자금이 얼마나 되죠?”

내가 투자 상황을 물었다.

다른 시장에 투자한 자금은 지금 당장 빼기가 어려우니 카이 황이 직접 관리하는 투자금을 이용해야 했다.

“한국지부에서 관리하는 투자금은 뺀 홍콩 항셍 지수 선물에 투자한 투자금을 말씀하시는 거죠?”

“그렇죠. 한국 투자는 한동안 제가 직접 관리할 생각입니다.”

“오늘 나오기 전에 확인해 보니 2억 5천3백만 달러가 조금 넘습니다.”

카이 황이 대답했다.

나오기 전에 투자금을 확인했다는 것을 보니 단단히 작정하고 나온 듯싶었다.

“금액까지 확인하셨다면 미리 생각하신 투자처가 있을 것 같은데요. 새롭게 들어온 그 직원들은 어디에 투자하자고 합니까?”

내가 물었다.

내 질문에 카이 황이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3.

그는 잠시 망설이는 듯싶더니 입을 열었다.

“어제 직원들을 모아 놓고 회의를 진행했었습니다.”

“그래서요?”

“거기서 가장 많은 찬성이 나온 의견이 엔론 주식을 공매도하자는 계획이었습니다.”

“엔론 주식을 공매도하자고요?”

놀란 내가 되물었다.

카이 황이 고개를 망설임 없이 끄덕였다.

“예.”

뜬금없이 공매도라니······.

그것도 홍콩이나 아시아 회사도 아닌 미국에 있는 엔론 주식을 공매도하자는 의견은 너무나 의외였다.

“그런데 엔론이라면 이미 주가가 많이 내려가지 않았습니까?”

엔론은 월가에서 가장 논란에 휩싸인 회사 중 하나였다.

내가 알기로는 여러 가지 문제로 주가가 많이 내려간 것으로 알고 있었다.

공매도라는 간단하게 말하면 주가가 내려갈 것을 예상하고 미리 주식을 파는 것이었다.

이미 많이 주가가 많이 내린 회사를 대상으로 공매도하는 것은 위험과 비교하면 수익이 너무 낮은 것인 일반적이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분석에 의하면 아직도 주가가 더 내려갈 것 같다는 것이 직원들의 분석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라면 자료를 가져오셨겠죠?”

카이 황이 기다렸다는 듯이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건넸다.

“여기 있습니다.”

나는 카이 황이 준 자료를 살폈다.

자료를 본 내가 처음 든 생각은 황당하다는 것이었다.

엔론은 작년 말에만 해도 주가가 90달러가 넘었던 회사였다. 그리고 지금 주가는 18달러······.

이미 80%나 떨어진 상태였다.

심지어 바로 지난주에 20%나 떨어졌다.

만약 올 초에 공매도했다면 엄청난 금액을 벌어들였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미 대규모 공매도를 하는 세력들이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짐 채노스라는 투자자였다.

그는 작년부터 엔론의 부실을 지적하면 대규모 공매도를 이어 오고 있었다.

자료를 읽던 나는 고개를 들어 카이 황을 바라보았다.

황당한 감정을 담아 물었다.

“지난주라면 모르지만, 지금은 공매도를 들어가기에는 이미 많이 늦은 것 아닙니까?”

“직원들은 아직도 공매도로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 물었다.

“정말요? 지금 공매도를 들어가서 이익을 얻으려면 엔론이 파산이라도 해야 합니다. 엔론은 얼마 전 발표한 지난 분기 수익이 많이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자산 규모만 300억 달러 넘는 기업입니다. 이런 기업이 파산하기를 바라고 공매도를 하는 것은 기적을 바라는 일입니다.”

엔론은 미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이었다.

아무리 실적이 나쁘더라도 이런 거대 기업은 단숨에 무너지지 않는 것이 상식이었다.

“자료를 계속 읽어 보시면 직원들이 왜 그런 생각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카이 황이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따라 자료를 다시 집어 들어 읽기 시작했다.

“엔론의 인터넷 사업이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을 회계 조작으로 감추고 있을 뿐 아니라 911 테러로 파생 상품에서 대규모 손해를 봤다고요?”

내 질문에 카이 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합니다.”

에너지 거래 기업인 엔론이 얼마 전까지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것은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거래와 함께 파생 상품에 대한 투자로 회사의 수익 모델을 확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보고서 내용대로라면 그 두 가지 모두 발표한 자료와는 달리 큰 손해를 입었다는 이야기였다.

“확실한 겁니까?”

내가 다시 물었다.

자료대로라면 엔론은 회계 규정을 유리하게 적용하는 정도가 아니라 대규모 회계 부정을 저지르고 있다는 의미였다.

이건 범죄였다.

“이미 확인을 마친 부분입니다.”

카이 황이 대답했다.

그의 얼굴은 확신에 차 있었다.

“사실이라면 내부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일 텐데······.”

순간적으로 내 머릿속에 이런 사실을 알 수 있는 사람이 떠올랐다.

엔론의 회계를 담당하고 있는 아서 앤더슨에서 몇 달 전까지 근무한 사람······.

“이건······.”

내가 말을 하기 전에 카이 황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부분입니다. 이미 몇 달 전 해당 법인을 퇴직했고 W&R과 거래 관계에 있는 회사의 직원이기는 하지만 직접적인 관련은 없으니까요.”

아무래도 카이 황이 이미 조민을 통해 확인을 마친 것 같았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일이 잘못됐을 때 몰랐다는 변명이라도 하자면 더 묻지 않는 것이 좋았다.

“W&R의 이름으로 공매도하는 것은 허가하지 않겠습니다.”

“공매도에 반대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카이 황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차명으로 가지고 있는 회사 하나를 빌려드리죠. 혹시 모르니 류오린이 아닌 다른 증권사를 통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떻게 정보를 얻었든 법에만 저촉되지 않는다면 돈을 벌 기회를 놓칠 생각은 없었다.

그물에 들어오면 다 고기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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