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152화 (153/270)

(152)

#153. 때로는 바보의 충고가 도움이 될 때가 있다

1.

언제나처럼 투자 회의가 열리기 전날 밤 리안이 내 집을 찾아왔다.

우리는 맥주 한 잔을 마시고 곧바로 회의를 시작했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리안이었다.

“이제 주식을 팔 때가 된 것 같지?”

“됐지. 투자한 곳 대부분이 테러 전 주가 수준을 이미 회복했으니 말이야.”

“이런 것 보면 참 묘해. 테러 전보다 경제 상황은 더 나빠졌는데 테러 전 주가를 거의 회복했으니 말이야.”

“내가 말했잖아, 아무리 큰 사건이라도 일회성인 사건은 주가에 주는 영향이 단기적이라고 말이야.”

미국의 심장인 펜타곤과 뉴욕 월가를 겨냥한 테러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전대미문의 테러에 미국인은 물론이고 세계 거의 모든 사람이 큰 충격을 받았다.

충격은 곧바로 주가 폭락으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망각의 동물이었다.

미국 내에서 테러가 계속됐다면 상황이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 911 테러와 비슷한 규모의 테러는 고사하고 작은 규모의 테러라도 다시 발생할 가능성은 낮았다.

“그런 걸 보면 미국이 대단하기는 해. 테러로 발생한 혼란을 단기간에 전쟁 분위기로 바꿨으니 말이야.”

리안의 말처럼 테러가 발생한 직후에 그 충격을 빠져나오는 수단으로 전쟁을 선언한 시점은 시기적절했다.

아마 전쟁을 선언한 시점이 조금이라도 더 늦었으면 충격은 오래갔을 것이다.

“그런 선전을 미국보다 잘하는 나라가 없지. 그래도 4주 연속으로 주가가 올랐으면 이제 주가가 정상으로 돌아갈 때가 됐어. 이런 불경기에 주가가 한 달 내내 오르기만 한 게 이상한 일이지.”

“그래서 적어도 한 주 정도 쉬어 가자는 말이지.”

리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미국과 유럽 쪽은 바로 내일부터 금요일까지 롱 포지션이었던 선물을 다 처분하고 숏 포지션으로 전환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홍콩, 일본, 한국은 하루 정도 여유를 두고 금요일부터 다음 주 월요일까지 처분하는 것으로 하고 말이야.”

“알았어.”

리안이 대답했다.

“혹시 카이 황 씨에게서 미국의 에너지 거래 기업 엔론 주식을 공매도하자는 제안을 받고 허락했는데, 알고 있던 일이야?”

내가 물었다.

“아니.”

리안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나는 너에게 허락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알았어.”

리안의 표정을 보니 사실인 듯했다.

“그래, 그건 의외네.”

“아저씨에게 연락은 왔었는데 내가 요즘 바빠서······. 오늘도 회사 다시 들어가 봐야 해.”

리안이 말했다.

그의 말대로 리안은 요즘 아주 바빴다.

특별한 일이 있다기보다는 그가 책임지고 있는 투자금의 규모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커졌기 때문이다.

911 테러가 일어나기 전.

8월 리안이 관리하는 투자금은 3억 달러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7억 달러가 넘었다.

나스닥 파생 상품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는 있지만 7억 달러라면 움직일 때마다 시장 흐름의 영향을 줄 정도였다.

혼자서 관리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W&R로 옮긴 이후 W&R의 직원 중에서 다섯 명으로 된 소규모 팀이 리안과 함께하고 있었다.

리안은 지난주 동안 그들과 함께 시장을 분석하면서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하고 있었다.

“역시 그랬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왜? 허락했다고 해서 나는 너도 같은 생각인 줄 알았는데?”

리안이 물었다.

“제안 자체는 매력적이었어. 알아보니 이미 미국 정부에서 엔론의 회계 조작에 대한 조사가 들어간 상황이더라고 다만······.”

“다만? 왜, 마음에 걸리는 것이라도 있어?”

“솔직히 말하면 카이 황 씨의 제안에서 네 약혼자인 조민 씨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더라고.”

내 말에 리안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조민이 왜?”

리안이 물었다.

그는 여전히 놀란 표정이었다.

“카이 황 씨는 회사 직원들의 제안이라고 이야기했지만, 믿을 수는 없더라고······. 지금까지 우리는 지수 선물이나 옵션을 거래했으면 했지 개별 기업의 공매도를 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잖아.”

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는 하지. 공매도가 자본주의 시장의 꽃이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그만큼 위험한 거래잖아.”

“무엇보다 카이 황 씨가 능력은 뛰어나지만, 집사라는 틀에 자신을 맞춰서 생각하는 부분이 있잖아.”

“아저씨가 그런 면이 있기는 하지.”

“그래서 내가 미리 알고 있었는지 물어본 거야. 혹시 결정을 내린 게 너인가 해서 말이야.”

“내가 아니니 다른 사람이 있고, 그게 조민이라는 말이야?”

“카이 황 씨가 제안했다기에는 공매도는 너무 모험적인 방법이잖아. 더구나 하필 공매도하려는 기업이 분식회계를 저질러서 조사를 받고 있는데 그 일을 도운 회계 법인이 아서앤더슨이잖아.”

“조민이 인턴으로 일하다가 얼마 전까지 다닌 기업이 아서앤더슨이기는 하지. 평소 조심스럽던 아저씨가 위험한 공매도를 제안했고, 그 공매도 제안한 기업과 조민이 관련이 있고. 네가 의심할 만하네.”

잠시 말을 멈췄던 리안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 의심을 하고 있는데도 공매도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뭐야?”

“말했잖아. 제안은 나쁘지 않았다니까.”

“저번 카지노 투자 건에서는 행동에 문제가 있다면서 화를 냈잖아.”

“그때는 대놓고 나를 속이려고 했고 절차를 건너뛰었으니까. 더구나 그때는 회사에 아무런 이익이 없지만, 이번은 아니잖아.”

내가 말했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조민이 카이 황 아저씨를 앞세워서 이런 일을 벌여도 그냥 두고 보겠다는 거야?”

“글쎄, 그건 나보다는 네가 해결해야 할 문제 같은데? 조민 씨가 무슨 명분으로 카이 황 씨를 움직이겠어. 네 약혼자라는 신분이잖아.”

내 말에 리안이 표정이 굳어졌다.

잠시 후 리안이 결의에 매서운 눈빛을 하며 입을 열었다.

“네 말이 맞네. 내가 해결할 문제가 맞아.”

2.

투자 회의를 리안에게 맡기고 나는 홍콩을 떠나 한국에 입국했다.

정윤호와 하성철이 나란히 나를 마중 나왔다.

“두 분 모두 오랜만에 뵙네요.”

“전화 통화만 하고 직접 뵌 것은 꽤 오랜만이네요.”

정윤호는 몰라도 하성철과는 이삼일에 한 번은 꾸준히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를 통해 한국 코스피나 코스피 주식 거래를 꾸준히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처음 구매한 빌딩 사무실에서 나는 두 사람에게 보고를 받았다.

“귀찮게 하는 사람이 있었다고요?”

하성철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예. 어떻게 알았는지 연락을 해 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류오린과 거래하는 한국 증권사에서 정보가 넘어갔나 보네요.”

한국에는 류오린의 지부가 없었다.

나와 하성철이 한국 주식 거래를 하는 방법은 홍콩 류오린과 제휴 관계가 있는 증권사를 통한 거래였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하성철이 빠르게 시장 상황에 대응하는 것이 불가능해서 지금은 한국 증권사에 하성철이 직접 연락해서 거래하고 있었다.

“한국 증권사가 보안 의식이 없다더니 사실인가 보네요.”

“그것도 그것이지만 우리 수익률이 너무 높다 보니 사람들의 시선을 끈 것 같습니다.”

나는 제러미 하에게서 어떻게 된 일인지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2천만 달러는 지금은 몇 배로 늘어나 있었다.

내가 모든 거래를 지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전화할 때마다 한두 개 종목을 내가 선택하면 나머지는 제러미 하가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제러미 하의 투자 판단 기준은 내가 투자한 종목이었다.

브레이크가 러시아에 투자할 때 사용했던 방법과 상당히 비슷한 면이 있었다.

제러미 하의 능력도 나쁘지는 않았기 때문에 전체적인 투자 수익률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우리가 운용하는 투자금의 규모를 생각하면 높은 편이었다.

그리고 한국 같은 작은 시장에서 이런 수익률은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제러미 하에 대한 정보가 한국 증권사를 통해서 외부로 넘어간 일이었다.

금발의 외국인이었다면 설사 신상이 노출되었더라도 문제가 없을 수도 있었겠지만, 제러미 하는 하성철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이었다.

한국에 뿌리가 있었고 혈연도 남아 있었고 예전 한국 페레그린증권에 있는 직원들과의 인맥도 있었다.

“그럼 지금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제러미 하가 정윤호를 보며 말했다.

“전에 있던 사무실에서 나와서 지금은 여기 있는 정윤호 씨에게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조처하고 있습니다. 곧 접근하는 사람은 사라질 겁니다.”

정윤호가 말했다.

그는 국정원 요원으로 아직도 인맥이 있었고 일을 시작하면서 정보 경찰 쪽 인맥도 넓힌 상태였다.

“그래요? 어떤 놈들입니까?”

“작전하는 놈들이나 명동 쪽에서 사람을 보낸 놈들인데 기관과 경찰 쪽 인맥을 통해 이야기해 놓았습니다.”

“혹시 모르니 경호를 철저히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한국에 진출한 지 겨우 몇 달 만에 이런 일이 생겼다.

말을 들을수록 홍콩에서 리안과 손은 잡은 것은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단기간에 버는데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홍콩에서는 문제가 생기기 전에 리안의 배경을 보고 접근을 포기하거나 리안과 카이 황이 사전에 처리해서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홍콩에서 돈을 버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는 류오린 회사 내에서 상사들과 다툼이나 리안의 지인들 그리고 얼마 전 삼합회 정도가 전부였다.

돈을 번 속도나 규모를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특히 나는 홍콩에서는 철저한 외부인이었다.

리안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큰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제러미 하가 문제가 된 것도 그에게 특별한 배경이 없다고 사람들이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부동산 투자 쪽은 어떻습니까? 대출 규모가 너무 큰 것 아닌가요?”

“이자 부담이 있지는 하지만 지금 정부가 부동산 대출 규제를 풀어서 큰 부담은 아닙니다. 매입한 아파트와 토지가 꾸준히 상승하고 있어서 대출 여력은 충분합니다.”

정윤호가 대답했다.

그는 부동산을 구매하고 다시 그 부동산을 담보로 해서 추가 대출을 받는 방식으로 투자 규모를 빠르게 늘리고 있었다.

한 번 삐끗하면 와르르 무너질 수 있는 위험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부동산 대출 규제를 풀어서 부동산이 빠르게 상승하는 상황에서는 손해 볼 가능성이 낮았다.

나도 대출 규모가 큰 것 아니냐고 이야기는 했지만 크게 걱정은 하지 않고 있었다.

“방향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작년 세계적으로 주식시장이 붕괴한 이후 전 세계적인 투자 방향은 미래에 대한 전망에서 실물경제로 옮겨 가고 있습니다. 실물경제라고 불리지만 실제로는 부동산이죠. 특히 홍콩이나 뉴욕, 런던처럼 공간이 한정된 대도시의 부동산 전망은 아주 밝습니다.”

내 말에 정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한국도 그건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한국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할 요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도 대출 규모를 적절히 관리할 필요는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주의하겠습니다.”

나는 시선을 제러미 하에게 돌렸다.

“문제가 해결되면 인수할 적당한 회사를 찾아보세요.”

“회사요?”

“울타리가 되어 줄 회사가 있으면 어지간한 하루살이들은 쫓아 버릴 수 있을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적당한 회사를 찾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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