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156화 (157/270)

(156)

#157. 이기기 위해서는 상대의 약점을 알아야 한다

1.

엘리어스의 능력이나 추진력은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났다.

나는 그에게 북한을 움직이기 위한 핵심은 식량이며, 북한을 길들이기 위해서는 북한의 식량 사정을 공격하자는 제안했다.

그리고 그런 제안을 한 지 며칠이 되지 않아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첫 번째는 유엔 세계식량계획에 북한에 지원했던 식량이 군대로 유용됐다는 보고서가 제출된 일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미국에서 막 출범한 북한인권위원회가 구호 식량이 군용으로 전용되는 것을 막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일본은 유엔 세계식량계획의 요구로 예정되었던 20만 톤의 북한에 대한 식량을 보류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유는 북한 납북자 문제와 식량의 군용 전용 가능성이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놀란 것은 북한 금강산 관광을 관리하는 대현 그룹의 계열사 대산이 북한에 정기적으로 보내고 있던 사용료 지급을 미룬 것이었다.

이건 나도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북한은 여전히 고난의 행군 시절 겪었던 식량난과 경제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식량난이라는 것도 계기가 대홍수였을 뿐 경제난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경제가 멀쩡한 상황에서 식량이 모자라면 식량을 외국에서 수입해 오면 그만이었다.

한국도 쌀이 남아돌아 농민들이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며 연일 집회를 열고 있지만 실제 식량 자급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쌀을 제외한 농산물을 수입하고 있었다.

북한의 식량난은 경제난의 한 부분일 뿐이었다.

경제난에 빠진 북한은 당연히 해외에서 물건을 수입해 올 외화가 부족했다.

대산이 북한에 정기적으로 보내는 사용료는 경제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외화를 얻을 수 있는 생명줄 중의 하나였다.

물론 대산이 아무런 명분 없이 사용료 지급을 미룬 것은 아니었다.

대산이 사용료 지급을 유예한다고 발표한 이유는 자금난이었다.

대산의 주력 사업은 금강산 관광사업이었고 이 사업은 현재 상황에서는 사업이 진행될수록 적자가 큰 사업이었다.

그러니 회사에 돈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대산은 한국에서 가장 큰 재벌인 대현의 자회사였다.

대산의 북한 금강산 관광사업은 이번 정부의 주요 국정 과제인 햇볕 정책의 대표적인 시범 사례이자 대산의 모회사 대현으로서는 몇 달 전 사망한 창업주의 숙원이었다.

북한에 보낼 자금을 마련하려면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내가 이 일에 놀란 것은 대산을 움직인 것이 다른 일과는 성격이 아주 달랐기 때문이었다.

다른 일은 미국 내 단체나 유엔 산하단체를 움직인 일이었다.

미국 내 단체는 말할 것도 없고 유엔 산하단체는 사실상 미국 국무부의 안마당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미국 대사관이라도 한국의 기업을 움직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심지어 대산은 태생 자체가 북한과의 교류를 위해서 만들어진 기업이었다.

자칫 북한을 자극했다가 금강산 사업이 무산되면 대산으로서는 존재 가치가 사라지는 일이었다.

엘리어스가 어떻게 이런 일을 했는지 궁금했다.

“어떻게 한 겁니까?”

나는 대놓고 엘리어스를 만나서 물었다.

“미국 정부의 방침을 한국 정부에 전달하고, 한국 정부는 다시 대산에 전달한 거죠.”

엘리어스가 대답했다.

별것 아니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대산이 순순히 지시를 따른 겁니까? 자칫 사업 자체가 무산될 위험도 있는데요?”

내 질문에 엘리어스가 미소를 지었다.

“대산의 숙원은 육로를 통한 관광입니다. 지금의 유람선을 통한 관광은 절차도 복잡하고 비용도 많이 들죠.”

“육로 관광을 약속한 겁니까?”

“겨우 사무관에 불과한 제가 어떻게 그런 약속을 하겠습니까?”

“그러면요?”

“지금까지 육로를 통한 금강산 관광은 한국 정부나 대산은 바라는 일이지만 북한이 여러 가지 이유로 반대해 왔습니다. 이번이 육로 관광을 밀어붙일 기회라고 설득했죠. 제가 진심이 통했는지 대산 관계자들도 제 뜻을 따라 주시더군요.”

엘리어스는 마치 대산 관계자들의 반응을 본 것처럼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한국 정부와는 별도로 엘리어스 쪽에서 대산을 설득한 듯했다.

그리고 대산, 아니 대현이 바보도 아닌 이상 단순한 설득에 저런 위험한 제안을 받아들였을 리가 없었다.

아마도 협박과 회유를 했을 것이다.

나는 새삼스럽게 엘리어스가 위험한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이 아무리 한국에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지만 엘리어스처럼 그런 영향력을 대놓고 휘두르는 사람은 적었다.

드러나면 강한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은 며칠 전 한국 재보선의 가장 큰 이슈였다.

야당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는 상황에서 저런 일을 벌인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본인에 대한 확신과 배경 그리고 문제가 될 경우 수습까지 모두 할 수 있다는 자신이 없으면 불가능했다.

이런 압박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곧바로 나왔다.

너무도 빠른 반응이라서 내가 다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북한 식량 사정의 어려움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직접적인 방법은 아니었다.

강원도 지역에서 발생한 홍수 피해 상황과 그로 인한 식량 부족에 대한 영국 BBC의 취재를 허락한 것이다.

참혹한 홍수 피해 상황은 BBC 방송을 통해 전 세계에 보도되었다.

뉴스 내용이 모두 진실은 아니었다.

올해 북한의 식량 생산량이 지난해에 비교하면 40% 가까이 늘어났다는 것을 생각하면 강원도 홍수는 올해 북한의 식량 부족과는 큰 영향이 없었다.

북한은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기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나라였다.

그런데도 저런 방송을 허락한 것은 그만큼 식량 상황이 다급하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 압박 계획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나는 엘리어스에게 귀국을 통보했다.

“그럼 이만 저는 홍콩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자주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그럼······.”

2.

나는 홍콩으로 돌아오는 비행시간 내내 엘리어스에 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를 않았다.

북한에 대한 압박을 추진하는 것을 보고 엘리어스에 대한 의심에 더욱 깊어졌다.

엘리어스가 했던 일 중에는 단 며칠 만에 할 수 없었던 일도 있었다.

내 예상이 맞는다면 나와 이야기를 하기 전부터 계획하고 추진하던 일임이 분명했다.

내가 전혀 도움이 안 된 것은 아닐 것이다.

나를 만나기 전부터 여러 가지 북한을 압박하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나를 통해 식량을 통한 압박에 집중하자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내 제안을 듣고 수정하거나 추가한 것이 분명한 부분도 있었다.

내 제안으로 북한을 조금 더 효과적으로 굴복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을 압박하는 데 굳이 내가 필요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아니다!’였다.

엘리어스가 미리 준비했던 일이나 추진력을 보면 내가 아니었어도 북한을 압박하는 데 성공했을 것이다.

미국의 의회와 유엔 산하 기구를 움직일 수 있는 인맥이라면 위기에 빠진 북한을 압박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엘리어스는 나를 끌어들였다.

도대체 내 뭘 보고 끌어들인 것일까?

그리고 목적은?

존 베비스는 마치 내가 유명 풋볼 스타인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정말 내가 대학 시절 유명한 쿼터백이었다면 내가 모습을 바꿨다고 하더라도 임무 중에 만났던 CIA 요원들에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아니, 모습을 감추지 않고 대놓고 내 이름을 쓰는 상태에서도 사람들은 내가 풋볼을 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홍콩이 미국보다 풋볼 인기가 없는 아시아이고 풋볼보다는 럭비와 크리켓이 더 인기 있는 영국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을 고려해도 나를 풋볼 스타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홍콩에 있는 동안 내가 풋볼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본 사람은 장샤오이 단 한 사람이었다.

그나마도 그녀가 내가 크림슨에서 쿼터백으로 활약하던 모습을 봤기 때문이지 다른 아시아인들처럼 그녀도 딱히 풋볼에 관심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미국 워싱턴에 있을 때는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꽤 있었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부동의 1위가 프로 풋볼이라면 미국 대학 리그 풋볼 경기도 세 번째로 인기 있는 스포츠인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그건 대학 리그 풋볼 이야기였다.

내가 뛰던 아이비리그는 대학 프로 리그 소속도 아니었다.

까놓고 이야기해서, 내가 하버드 크림슨의 쿼터백 기록을 갈아치우고 무패 우승의 주역이라고는 하지만 엄청나게 높은 평가를 받는 쿼터백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내가 아무리 부상이라고 이야기했더라도 나를 드래프트에서 픽하는 팀이 있었을 것이다.

부상이 없이 드래프트에 참여했더라도 기껏해야 5라운드나 6라운드에 선발되는 것이 고작이었을 것이다.

워싱턴에 있을 때 사람들이 나를 알아본 것은 워싱턴에서 내가 만나는 사람 중에 아이비리그 출신이 많았기 때문이지 다른 곳이라면 여기 홍콩과 비슷했을 것이다.

차라리 풋볼 선수로는 내가 유명했던 때는 대학교 때가 아니라 주 올스타에 뽑히기도 했던 고등학교 때였다.

대학에 들어와서 내가 상대한 아이비리그 팀들이었고 아이비리그 팀은 체육 특기생이 없었다.

우리 팀뿐만 아니라 상대하는 상대 팀 선수들도 체육 특기생이 아니라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 과정을 통해 입학한 학생들이었다.

아무래도 실력이 다른 팀들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풋볼은 미국이 열광하는 스포츠이기는 하지만 하버드 학생들도 풋볼 팀에 다른 학교처럼 열광적인 응원을 보내지 않았다.

아이비리그가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은 매번 빈자리가 상당히 많았다.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인 경기는 마지막 리그 경기였다.

언제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하버드 운동장에서 열린 무패로 우승을 결정지은 마지막 경기에 모인 학생들은 우리의 무패 우승보다 경기가 끝난 후에 열리는 바비큐 파티에 관심이 더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하버드 크림슨 아이비리그 무패 우승 쿼터백이었다는 사실이 아주 필요가 없는 경력은 아니었다.

나이가 들어서 이민 온 아시아계에게 하버드라는 이름이 치트 키라면···.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시아계 젊은이들에게 아시아계 풋볼 선수가 미국에서도 백인들의 전유물이라고 불리는 쿼터백을 한다는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아마 내가 다른 스포츠를 했다면 장샤오이가 지금처럼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사실이 엘리어스에게 도움이 될까는 조금 의문이었다.

만약 엘리어스가 정치에 나선다면 미국 국무부에서 성공한 동양계 입양아라는 사실을 강조할 것이다.

나와는 이미지가 겹치기 때문에 굳이 내가 필요 없었다.

기존 가지고 있던 표에 아시아계를 추가로 얻기 위해 나를 이용하려는 존 베비스와는 처지가 다른 것이다.

그런데도 나에게 접근하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다고 봐야 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홍콩에서 내가 큰돈을 번 것을 보고 접근했다는 것이었다.

정치는 항상 돈이 필요한 법이니까.

내가 돈을 많이 번 사실을 숨길 수는 없었다.

홍콩에서 가장 부자들이 사는 동네에 살고 가장 비싼 주택에 살면서 숨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만약 다른 이유가 있다면 그걸 알아내야 했다.

나는 홍콩으로 돌아오자마자 법률 회사를 통해 엘리어스에 대한 조사를 의뢰했다.

“조사 대상은 엘리어스 본인과 그의 양아버지입니다.”

“주한 미국 대사관 사무관과 그의 양아버지라. 한국은 사설탐정이 불법입니다. 더구나 양아버지는 미국 백악관에도 초청될 정도의 공화당 후원자라······. 쉽지는 않겠군요.”

법률사무소는 대상에 대해 듣고는 처음에는 약간 꺼리는 듯했다.

“돈은 얼마나 쓰셔도 됩니다.”

“홍콩에는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조사 기관이 꽤 많습니다.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였고 영국은 셜록 홈스가 태어난 나라죠. 세계에서 가장 큰 조사 기관 중 하나가 바로 홍콩 경찰에서 퇴직한 영국인이 세운 회사입니다.”

돈 이야기가 나오자 바로 법률사무소의 말이 달라졌다.

“믿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었다.

이제 다시 일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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