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157화 (158/270)

(157)

#158. 항상 부족한 것이 있다

1.

최근에 리안과 나는 수요일 저녁에 모여서 투자 방향을 결정했다.

주가에 큰 영향을 주는 보고서가 수요일에 발표되는 경우가 많았고 목요일이 매달 혹은 3개월에 한 번씩 돌아오는 선물 옵션 만기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가만이 아니라 세계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미국 연준의 금리가 최근 목요일 회의에서 발표되었다.

하지만 오늘은 도착하자마자 리안을 집으로 불러들였다.

그는 내가 홍콩을 떠나 있던 사이에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굉장히 지친 모습이었다.

“너 요즘 잠은 자는 거야?”

내 질문에 리안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요즘 팀원들과 나스닥에 대해 분석을 해야 하는데 밤에 잠을 잘 시간이 어디 있어. 그렇다고 낮에 일을 쉴 수도 없고 말이야.”

명목상 팀장인 내가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는 리안이 내 역할까지 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우리 팀은 말이 팀원 다섯 명이지 W&R로 이사한 이후로는 사실상 각각의 팀원들이 리안처럼 별개의 팀을 이끌고 있었다.

리안이 결제하고 해야 할 일이 그만큼 많았다.

“이거 나 때문인 것 같아서 미안하네.”

“그러면 좀 홍콩에 붙어 있든가······.”

“그러게. 나도 그렇고 싶은데 내 맘처럼 안 되네.”

“됐어.”

리안이 손을 저어 내 말을 막으며 물었다.

“오늘은 왜 낮부터 부른 거야?”

“지난번 투자 회의는 전화로만 간단히 해서, 이번에는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려고 했지.”

“그럼 밤에 불러야지, 일하고 있는 낮에 왜 불러! 낮에 부르려면 네가 회사에 찾아오든가 해야지. 집으로 부르는 것은 도대체 뭐야?”

“그냥 결과만 확인하는 일이니 회의가 길어질 것 같지도 않고, 밤에는 네 팀원과 일을 할 것 같아서 일찍 부른 것뿐인데······.

내가 말을 하는 도중에 나는 말을 멈췄다.

리안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째 네 얼굴을 보니 내가 실수한 것 같네.”

“됐어, 이미 온 걸 어찌할 거야. 다만 하루 중에 이 시간이 내가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만 알아 두면 돼.”

“이런 미안······. 그런데 어째 나에게 부담 느끼라고 하는 말 같다. 내가 알면서 이 시간에 부른 것은 아니잖아.”

내 말에 리안이 코웃음을 지었다.

“지난번 네가 서울에서 전화를 걸었을 때 분명히 이 시간은 피해 달라고 말했는데 잊어버렸지? 이번에도 어째 소용없을 것 같네.”

리안이 말했다.

그의 말을 듣자 전화를 하면서 들은 말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엘리어스의 행동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느라 지금까지 잊고 있었다.

“다음부터는 명심할게.”

“됐으니 그냥 회의나 빨리 시작하지?”

리안이 재촉했다.

“알았어. 그럼 지난주 투자 결과부터 이야기하자.”

“지난주라고 해 봐야 겨우 4일인가? 4주 동안 계속 상승 포지션이었다가 목요일에 하락 포지션으로 바꾸고 다시 수요일부터 다시 상승 포지션으로 바꿨잖아. 일부 시장 빼고는 대체로 제때 바꿨고.”

“그랬지.”

“생각해 보니 그때도 화요일 이 시간에 나에게 전화를 했었네. 하루 먼저 포지션을 바꾸자고······.”

리안의 말에 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말했다.

“그랬나?”

“그랬어. 생각할수록 너무하네. 그때도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토요일 밤에 편안하게 전화했어도 됐는데 굳이 낮에 전화를 걸었었지. 너 밤에 약속이 있다면서 말이야.”

리안이 따지듯 말했다.

그의 말대로였다.

화요일.

나는 주가가 생각보다 많이 떨어지는 것과 유럽 중앙은행이 금리를 논의하기 위해 회의를 연다는 소식에 다른 때보다 하루 일찍 리안에게 전화를 걸었다.

밤에 했을 수도 있지만, 화요일 저녁에 엘리어스와 약속이 잡혀 있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전화를 했을 때 리안에게 분명히 이 시간을 피해서 전화해 달라는 말을 들었었다.

내가 그 말을 잊어버렸던 것은 바로 그날이 대산이 북한에 금강산 사용료 지불을 유예하겠다고 발표한 날이기 때문이었다.

나에게는 너무 충격적인 일이었고, 그 일에 엘리어스와 관여됐다는 생각에 온통 정신이 그 일에 가 있었다.

“내가 미안하다니까. 내가 미안은 한데 남의 약점을 계속 후벼 파는 것은 나쁜 버릇이야.”

나는 일단 철면피 작전으로 나갔다.

이런 내 모습에 리안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나를 가리키는 리안의 손을 잡아서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이런 내가 피곤한 사람 두고 쓸데없는 소리를 했네. 빨리 회의를 끝내야 너도 쉬고 나도 쉬지. 나도 여행을 갔다 왔더니 좀 피곤하네.”

“하······. 어째 점점 얼굴이 두꺼워지네. 내가 너에게 무슨 말을 하겠냐.”

리안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냥 네 말대로 회의나 하자. 네 제안대로 선물 포지션을 다 바꿨고 아직은 상승 중이야.”

“두 주 정도는 지금 포지션을 유지할 생각이야. 유럽 중앙은행만이 아니라 미국 연준도 금리를 인하했으니 그 약발이 한 주 이상은 가겠지.”

“뭐 그건 나도 마찬가지 생각이야. 참 너, 네가 관리하는 자금 이번에도 2팀에 맡겨서 타이완에 또 투자했다면서?”

“선거도 선거지만 나스닥이 오르면 기술주가 중심인 타이완도 오르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런데 그건 왜?”

“아니 뭐······. 조민도 타이완에 관심이 많더라고.”

조민은 한국과 일본에 투자를 책임지고 있었다.

리안이 미국, 브레이크가 유럽을 책임지고 있다면 조민이 팀에서 동아시아를 책임지고 있는 셈이었다.

“내 투자를 왜 신경 쓰는데?”

“네가 동아시아에 속하는 타이완에 투자하니 신경이 쓰이는 것 같아. 알다시피 최근 여러 가지로 너와 문제가 있었잖아. 어느 날 갑자기 네가 자신이 맡은 아시아 투자를 모두 가져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너 최근에 조민 굉장히 챙긴다. 예전에 조민이 들어온다는 이야기에 보였던 반응과는 전혀 다른데? 그동안 정이라도 든 거야?”

내 이야기에 리안이 정색을 하며 입을 열었다.

“약혼녀이기 이전에 조민은 내가 어릴 때부터 아꼈던 동생이나 마찬가지야. 당연히 신경 쓰이지.”

“내가 보기에는 아닌 것 같은데?”

“아니기는 뭘 아니야. 하긴 너 남동생만 있다고 했지. 여동생이 있어 봐야 알지. 여동생은 남동생과 아주 다르다고.”

리안이 말했다.

누가 봐도 되지도 않은 변명이었다.

“조민에게 신경 쓰지 말라고 해. 그리고 내가 타이완에 투자하는 것이 신경 쓰이면 관리하고 있는 자금 중에서 일부를 타이완에 투자해도 된다고 말이야. 어차피 나는 타이완에 계속 투자할 생각은 아니니까.”

리안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바로 전하지.”

리안이 하는 것을 보니 어째 결혼하면 꽉 잡혀 살 것 같은 분위기였다.

2.

낮에 자신이 쉬는 것을 방해했다면서 화를 냈던 리안은 바로 그날 저녁 나를 찾아왔다.

이번에는 반대로 자는 나를 억지로 깨웠다.

“파키스탄 투자 때문에 아주 골치 아프네. 네 생각 좀 들어 봤으면 하는데······.”

리안이 파키스탄 투자 건에 대해 도움을 요청해 왔다.

“자는 사람을 깨워서 겨우 그거야? 지난번에는 서두를 생각이 없다더니?”

“그게······.”

리안이 말을 하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렸다.

“뭔데 곤란한 일이야?”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너 없을 때 아저씨가 유럽에 갔었거든.”

카이 황은 내가 홍콩에 있을 때만 해도 홍콩을 떠날 예정이 없었다. 그렇다고 회사 일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W&R의 운영을 내가 카이 황에게 맡겨 놓고 있기는 대표가 갑자기 유럽까지 갈 일을 내가 모를 수는 없었다.

회사 일이 아니면 리안 집안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에는 갑자기 왜? 집안에 무슨 일이라도 있어?”

내가 질문에 리안이 고개를 저었다.

“지난주에 후진타오 부주석이 유럽을 방문했었거든······.”

카이 황이 유럽을 방문한 이유를 묻는 내 질문에 대한 리안의 대답은 후진타오 부주석의 유럽 방문으로 시작했다.

후진타오 부주석은 공청단의 리더로 2003년이면 중국 주석 자리가 예정된 권력자였다.

“카이 황 대표의 유럽 방문과 후진타오 부주석의 유럽 방문이 관련이 있는 거야?”

“맞아. 유럽을 방문한 후진타오 부주석 본인은 아니지만, 부주석을 수행한 공청단 간부 중 하나가 아저씨를 유럽으로 불렀어.”

“그래서? 설마 유럽으로 불러서 파키스탄 진출을 재촉한 거야?”

내 질문에 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진타오가 유럽을 방문한 것은 부주석에 오른 이후 이번이 처음이야. 정확하게는 1992년 차기 지도자로 예정된 이후 처음이지. 그런 자리에 불러서 요청한 일이야.”

리안의 말대로 후진타오 부주석이 이번에 유럽을 방문한 것이 거의 10년 만에 처음이라면, 이번 유럽 방문은 말 그대로 차기 지도자로 세계 무대에 데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만큼 중요한 자리였다.

직접 부른 것은 아니라지만 카이 황을 유럽으로까지 불렀다면 후진타오 부주석의 의사가 포함되어 있다고 봐야 했다.

“거절하기 어렵겠군.”

“맞아. 파키스탄 진출이 후진타오 부주석까지 관심을 가진 일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야 한다는 말이야.”

“그렇지만 지금 파키스탄 상황에 외국 기업이 진출한다고 들어가는 것이 말이 안 되잖아.”

리안이 아니더라도 누가 나에게 지금 파키스탄에 새로 진출한다고 한다면 말렸을 것이다.

그만큼 지금 파키스탄은 최악이었다.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국경 지대에서는 계속해서 난민이 몰려오고 있었다.

파키스탄 공군기지에서는 매일 아프가니스탄을 향해 폭격기와 건십이 뜨고 있었다.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 지상군이 파키스탄에 모여들고 있었다.

파키스탄을 경유해서 아프가니스탄으로 진군하기 위해서였다.

당연히 파키스탄 국민의 반발도 거셌다.

파키스탄에서는 대규모 반미 시위가 이어지고 있었고 소수인 기독교인들에 대한 폭력이 이어지고 있었다.

파키스탄의 문제는 이런 내부 문제만이 아니었다.

“남부 국경 카슈미르에서는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지. 지난주 발생한 인도군 사망자만 50명이 넘은 상태야.”

“그런 희생에도 인도는 전투를 그만둘 생각이 없지?”

“당연하지. 인도는 파키스탄과의 카슈미르 분쟁에서 져 본 적이 없어. 이번에도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이상 물러나지 않을 거야.”

“너는 인도가 원하는 게 뭐라고 생각하는데?”

“인도가 우려하는 것은 파키스탄에 대한 지원으로 파키스탄이 이익을 보는 거잖아.”

“그렇지.”

“이런 정황을 생각하면 인도는 전투를 이어 가는 명목으로 여러 가지 이유를 대고 있지만 진짜 원하는 것은 하나지. 파키스탄을 이용하기 위해서 지원을 하려면 우리 입에도 뭔가 먹을 떡을 줘야 하지 않느냐?······.”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확산방지조약을 어기고 핵을 개발했을 때 두 나라 모두 미국과 유럽의 경제제재를 받았다.

파키스탄이 받은 제재는 이번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협조하면서 해제됐지만, 인도에 대한 제재 중 일부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인도는 그 남아 있는 제재 중 일부를 해제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번에도 미국은 인도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의논할 필요도 없는 문제 아니야? 답은 결정된 거잖아. 내가 듣기로는 후진타오 부주석은 기억력이 뛰어나서 노트에 적는 법조차 없다면서? 그럼 잊고 넘어갈 수도 없을 텐데 어쩌겠어. 권력자가 원하는데 억지로 투자해야지.”

“그렇겠지.”

리안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답을 원해서 나를 찾아온 것은 아닐 것이다.

그냥 어쩔 수 없는 현실을 한탄하러 온 것일 뿐······.

돈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부자는 항상 권력자에 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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