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158화 (159/270)

(158)

#159. 빈 부대는 똑바로 서지 못한다

1.

리안은 에드릭과 이야기를 나누고 회사로 들어왔다.

회사로 들어온 리안을 카이 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요?”

리안은 카이 황이 나와 있자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혹시 에드릭 팀장님께 무슨 이야기 들으신 것 없습니까?”

카이 황이 물었다.

그는 어딘지 모르게 안절부절못하며 불안해 보였다.

“아무 말도 듣지 못했는데요? 무슨 일요?”

“한국에서 좀 문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문제라니요?”

리안이 물었다.

“류오린과 거래하는 한국 쪽 증권사에서 거래 정보가 유출됐다고 합니다.”

“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증권사에서 거래 정보가 유출되다니요? 무슨 정보가요?”

리안의 추궁에 카이 황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에드릭 팀장님께서 개인적으로 거래하는 한국 주식 거래 정보가 한국 사채시장의 거물들에게 유출됐다고 합니다.”

“그래요? 뭐 그런······. 그래서요?”

“W&R의 한국 파견 직원인 제러미 하에게 접근한 것 같습니다.”

“에드릭도 그걸 알고 있고요?”

리안의 질문에 카이 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번에 한국에 갔다 오신 용무 중에 그게 포함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탕!

리안이 책상을 손으로 내리쳤다.

“도대체 류오린은 거래사 관계를 어떻게 한 겁니까? 도대체 감히 류오린과 거래 내용을 유출한 직원이 있는 회사가 어딥니까?”

리안은 W&R의 주주이기 이전에 류오린의 주주이기도 했다.

이번 일은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자신들의 실수 때문에 에드릭이 한국에 간 이유도 한참 동안 모르고 있었다.

에드릭에게 미안할 뿐 아니라 체면이 상하는 일이었다.

“그게 아무래도 류오린이 상대적으로 한국에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 않다 보니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아니, 도대체 어디와 거래를 했기에 류오린이 어떤 회사인지 모른다는 겁니까? 한국의 어지간한 회사들은 류오린이 어떤 회사인지 알 텐데요?”

류오린은 겉으로는 순수한 홍콩의 금융회사였지만 실제로는 중국 고위층의 자금이 투자된 기업이었다.

거래 내용을 정확하기 알아보기 어려운 불투명성이 기본이었다.

일반인들은 모르지만 이런 소문은 쉽게 퍼지는 법이었다.

“제가 알아보니 여러 가지 우연이 겹쳐서 생긴 일이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우연이 겹치면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겁니까?”

“첫 번째는 W&R의 투자는 기존 류오린의 투자나 거래와는 달리 되도록 투명성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게 문제가 된 것 같습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투명성이 문제가 된다는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투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2팀에서 W&R의 한국 증시 거래를 다른 한국 증권사를 이용했다가 사고가 난 것 같습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데요? 그래도 류오린이 어느 곳인지 몰라도 다른 나라를 통해서 하는 거래에서 그럴 수가 있나요?”

리안도 몇 년 동안 해외 주식을 거래했다.

그중에는 류오린의 지사가 나간 곳도 있지만, 아닌 곳이 더 많았다.

지사가 없는 곳은 해당 국가에 지부가 있는 국제적인 투자은행이나 현지 증권사를 이용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고객 정보가 유출된 것도 모자라서 직접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찾아왔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

이런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개인 고객이나 당하는 일이었지 이렇게 협력 업체를 통해서 거래하는 고객이 당하는 일은 없었다.

“그게 보통 이런 경우 미리 어떤 식으로든 상대에게 사전에 경고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그런 것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왜 그런 거죠?”

“한국에 투자된 처음 투자됐던 2천만 달러는 명목상 W&R의 자금이지만 사실상 에드릭 팀장님의 개인 자금입니다. 전에 말씀하셨던 그 일과 관련된 자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되도록 저희가 관여를 하지 않으려다 보니······.”

“어이가 없네요.”

“제가 알아보니 무엇보다 너무 갑자기 높은 수익률로 투자금이 불어나다 보니 회사에 파다하게 소문이 나서 발생한 사고였습니다.”

저렇게 소문이 퍼졌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었다.

한국의 증권사에서는 고객 정보가 유출됐을 때 받을 불이익 때문에라도 조심했겠지만 모든 직원이 정직할 수는 없었다.

각자의 성격이나 도덕성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거래 정보를 유출할 수 있는 것이 증권사의 직원들이었다.

물론 그런 일을 막기 위해서 회사가 규정을 명확히 해야 할 책임이 회사에 있었다.

“하긴 에드릭이 작정하고 개별 주식에 투자했으면 수익률이 높았겠죠. 도대체 얼마나 벌었답니까?”

“지금 7천만 달러 정도, 한국 원화로는 900억이 넘는다고 합니다.”

“많기는 하네요. 에드릭이 처음 한국 주식을 시작한 것이 8월 정도 아니었나요? 4개월 만에 거의 3.5배로 늘렸네요.”

“거래 명세를 보니 에드릭 팀장님이 한국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시는 것 같습니다.”

“그건 제 생각도 비슷합니다. 언젠가 미국에 가겠지만 그 전에 한국에서의 일을 정리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 주식에 투자하는 자금은 그 일을 위해 준비하는 거겠죠.”

“도대체 정리할 일이 뭐기에 그런 큰 자금을······.”

“그건 에드릭이 신경을 쓸 일이고,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아무리 우연이 겹쳤다고 해도 류오린의 거래 회사에서 정보가 넘어가서 에드릭이 곤란해진 상황인데요. 가만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이미 사람을 보내 놓았습니다. 사람을 보낸 쪽에는 적당히 경고해 놓았습니다.”

“상대 회사와 유출한 당사자는요?”

“둘 다 책임을 져야죠. 이미 유출한 당사자는 한국에 있는 조직을 통해서 신병을 확보해 놓았습니다.”

“그게 끝인가요?”

“적당한 시점에 회사에 상응한 대가를 치르게 할 생각입니다. 아마 부도를 겨우 면하더라도 충분한 교훈이 될 겁니다. 그런 다음 필리핀에 있는 저희 쪽 회사에서 일하면서 빚을 갚게 해야죠.”

“괜찮네요, 그 정도로 하죠. 아마 그 정도면 잘 넘어갈 것 같네요.”

“에드릭 팀장님은 별 신경을 쓰시지 않는 것 같던데요?”

“그 친구는 괜찮은데 이 일에 관련된 다른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카이 황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어느 분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카이 황이 물었다.

“2팀장요. 에드릭의 한국 거래는 2팀을 통해서 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마 2팀장이 자신이 한 거래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을 알게 되면 난리가 날 겁니다. 아시겠지만 2팀장이 자신의 자존심이 걸린 일에는 조금 과격한 면이 있지 않습니까.”

“그쪽 분들이 대부분 그렇죠. 도덕 기준도 조금 다르시고요.”

“어쨌든 먼저 처리한 다음에 양해를 구하면 될 겁니다. 자존심이 강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처리한 일에 관여할 정도로 막나가는 성격은 아니니까요.”

2.

“그나저나 가신 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에드릭도 어쩔 수 없다고 하더군요.”

“아······. 에드릭 팀장님도 그렇게 이야기하셨다고요?”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이미 짐작했던 대답이잖아요.”

“그렇기는 합니다만 에드릭 팀장님이라면 좋은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카이 황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에드릭이라고 무슨 방법이 있겠어요. 에드릭은 중국에는 아무런 꽌시도 없는데요.”

“그렇기는 합니다만 에드릭 팀장님이라면 무슨 수를 낼 수도 있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아쉽네요.”

리안은 카이 황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래요? 에드릭이 상황 판단이 정확하지만, 계략을 짜내고 그런 타입은 아니지 않아요?”

리안이 본 에드릭은 뭔가를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정확한 상황 판단을 하고 그런 상황 판단에서 나온 대세를 따른 편이었다.

공청단의 지시, 그것도 차기 중국의 지도자인 후진타오가 관심이 있는 일을 바꿀 정도의 계획을 내놓을 지략가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도련님은 역사 속에서 지략가들이라는 자들이 내놓는 절묘한 계략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카이 황이 지금 상황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질문을 했다.

“절묘한 계략요? 상대가 예상하지 못한 허를 찌르는 것 아닌가요?”

리안의 대답에 카이 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하지만 상대가 예상하지 못한 것일 뿐 계략을 내는 사람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방법을 쓰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계략을 낼 수 있는 이유는 자신과 상대가 처한 상황을 정확히 꿰뚫어 보기 때문이고요. 빈 부대가 설 수 없는 것처럼 지략이라는 것은 정확한 판단에서 나오는 표현 방법일 뿐입니다.”

카이 황이 말했다.

리안은 잠시 카이 황이 한 말을 생각해보았다.

“그 말씀은 에드릭도 상황 판단이 빠르니 절묘한 계략을 낼 능력이 있다는 말씀인가요?”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에드릭 팀장님이 정치경제 상황을 꿰뚫어 보는 눈은 무서울 정도입니다. 그런 사람이 그런 상황의 허점을 찌를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할 리가 없지요.”

“그런데 왜 저는 그런 모습을 보지 못한 거죠?”

리안이 말했다.

그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아버지가 홍콩을 떠나 사실상 은퇴한 상태인 지금 집안을 이끌어 갈 사람은 리안이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이 1년 동안 보아 온 사람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은 큰 문제였다.

심지어 에드릭은 리안이 올해 들어서 가장 가깝게 지낸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럴 필요가 없다니요?”

리안이 되물었다.

“계략으로 허를 찌르는 것은 적이 있어야 필요한 일이죠. 그런데 지난 시간 동안 에드릭 팀장님에게 홍콩에 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나 단체가 있었던가요?”

카이 황의 질문에 리안은 잠시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에드릭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은 딱히 없었다.

물론 예전 팀장들과 사이가 나쁘기는 했지만, 지금은 한 사람은 죽었고 다른 한 사람은 이미 격차가 벌어졌다.

1팀장이 뭔가 하고는 있지만 그래 봐야 3팀은 고사하고 3팀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2팀 성과와도 큰 차이가 있었다.

“딱히 없었네요.”

“홍콩에는 그렇죠.”

카이 황이 말했다.

리안은 카이 황의 말에서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홍콩에는 없다는 말은 다른 곳에서는 뭔가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

카이 황이 리안의 말에 잠시 멈칫하더니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에드릭 팀장은 계략을 몰라서 안 쓴다기보다는 지금은 쓸 필요가 없어서 안 쓰고 있다는 말입니다.”

“아저씨 말이 맞는다면 홍콩을 떠나서 뉴욕으로 가야 에드릭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이겠네요. 지금처럼 지수 선물을 주로 투자하는 상황에서는 홍콩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테니까요.”

지금 팀과 W&R가 미국과 아시아 그리고 유럽까지 여러 곳에 투자하고는 있지만, 투자의 중심은 미국 지수 선물이었다.

에드릭이 설사 여러 가지 계략을 쓴다고 해도 이런 미국 선물 지수에 영향을 주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선물 지수는 선물거래만이 아니라 주가지수 그 자체에 영향을 받았다.

개인으로 미국의 주가지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앨런 그린스펀 연준의장이나 미국 대통령 정도의 극소수였다.

하지만 에드릭도 미국에 가면 언제까지 선물 지수에만 투자할 수는 없었다.

선물은 리스크가 큰 투자 방법이었고 금액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리스크도 높아진다.

에드릭이 미국에 진출하고 투자금이 지금보다 훨씬 커진 다음에도 높은 수익률을 얻으려면 워런 버핏처럼 개별 기업 주식에 투자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아마 카이 황이 말한 계략이라는 것이 진짜 있다면 그때나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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