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160화 (161/270)

(160)

#161. 발사 명령을 내리다

1.

내 제안으로 생긴 일을 처리해야 했다.

토미 수하르토를 처리하고 돌아가야 했다.

나는 한동안 자카르타에 머물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홍콩으로 전화를 걸었다.

“나야, 에드릭!”

-내일 올 사람이 갑자기 무슨 전화야? 무슨 일 있어?

“아무래도 한동안 인도네시아에 더 있어야 할 것 같아.”

-인도네시아는 갑자기 왜?

리안이 물었다.

“채굴권을 얻는 문제가 생각보다 쉽지 않네.”

-하긴, 인도네시아에서 관공서와 일을 하는 것이 좀 그렇지. 돈 좀 많이 써.

인도네시아에서 해외 투자자들이 겪는 일은 악명이 높았다.

“알았어, 내가 알아서 해야지. 그리고 투자 이야기인데······.”

-말해 봐.

“다음 주에는 현재 포지션을 계속 유지해 줘.”

나는 지난주에 했던 투자를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

나로서는 데시스 엘레이의 암살이라는 충격적인 일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전 세계적 경제에는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는 일이었다.

전반적으로 이번 주에는 전 세계적으로 특별한 변동 사항이 없었다.

세계적으로 연준과 유럽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로 시장에 유동자금이 풍부한 것에 비해 여전히 기업들의 실적이나 경제는 좋지 않았다.

금리가 수십 년 만에 최저 수준이라는 사실에서 말해 주듯 채권 금리도 낮았다.

여기에 더해서 얼마 전 석유 수출 기구인 오펙 회의에서 감산에 합의하기는 했지만, 경제가 워낙 좋지 않아 감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감산 폭이 작다는 이유로 오펙 회의 이후 원유 가격은 폭락했다.

한마디로 주식 이외에는 마땅히 투자할 곳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서 W&R은 대체로 롱 포지션 투자를 유지하고 있었다.

-일본 닛케이 255지수 선물은? 여전히 숏 포지션을 유지해?

리안이 물었다.

지난주 다른 지수가 대체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 것에 비해 닛케이 255는 하락을 예상했고 그 예상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계속 유지해. 일본 정부는 이미 이전에 제로 금리라서 더 내릴 금리도 없고, 경제 상황도 좋아질 가능성이 없으니까.”

-알았어. 그런데 2팀장에게 전화 좀 걸어 줘.

리안이 2팀장인 장샤오이를 언급했다.

“2팀장은 갑자기 왜?”

-뭐, 한국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사과도 하고 타이완에 투자된 자금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 하더라고.

“사과? 무슨 사과?”

-주식 투자 관련해서 한국 사무소에 누가 찾아왔었다면서? 너 한국에 갔던 일이 그 일 때문이라면서 왜 말을 안 한 거야?

“아······. 큰일도 아니고 이미 어느 정도 해결됐어. 오늘 아침에 한국에 통화해 제러미 하에게 들으니 한국 증권사에서 찾아와서 사과했다고 하던데?”

제러미 하에게 어제 한국에서 거래하던 증권사 전무가 찾아와서 사과하며 보상을 해 주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제러미 하 말로는 홍콩에서 누군가 움직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혹시 2팀장이 뭔가 한 거야?”

-아니, 우리가 했어. 아니, 정확하게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지. 지금은 항의 정도야. 곧 조치가 있을 거야. 행동에는 대가가 따라야지. 그게 세상 사는 이치잖아.

“제러미 하는 증권사에서 보상을 주겠다면서 뭘 원하는지 계속 물어본다고 하던데······. 네 말대로라면 보상을 받으면 안 되겠네.”

-알아서 하라고 해. 그쪽은 그쪽이고 이쪽은 이쪽이잖아.

“아니야, 굳이 그럴 필요 없어. 제러미 하에게는 내가 적당한 보상을 할게, 뭐 하러 그런 것을 찜찜하게 받아. 괜히 받았다가 실수해도 보상만 해 주면 넘어간다는 인상을 주면 나중에 골치 아픈 일이 생길 수도 있잖아.”

-그런 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지만 너는 네가 알아서 해.

“그런데 파키스탄 투자는 어떻게 되고 있어?”

-진행 중이야.

리안이 대답했다.

그의 짧은 대답에서 어쩔 수 없이 투자하게 된 상황에 대한 짜증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파키스탄 경제, 최악인 것은 알고 있지?”

-알지.

“들어 보니 지금 파키스탄에 투자했던 외국 회사들 다 철수하고 난리더라고······. 수출이 몇 달 전에 비해서 절반으로 줄고 무역 적자도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는 발표가 났더라.”

-내가 그래서 요즘 아주 미치겠어. 투자하라고 해서 투자는 해야겠는데······. 뭘 투자해야 할지 모르겠어. 워낙 파키스탄 상황이 나빠서.

파키스탄은 그렇지 않아도 무역 적자가 심한 나라였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밀려온 대규모 난민과, 인접한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공격에 대한 불안감으로 경제는 말 그대로 바닥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이게 나름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리안이 물었다.

“내가 전에 이야기했잖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이 끝나지 않는 이상,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 전까지는 파키스탄이 필요해. 그런데 지금 이대로 두면 상황이 파키스탄이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 되잖아. 그럼 무라샤프 대통령도 흔들릴 테고 그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큰 차질이 생길 것 아니야. 그럼 미국이 어떻게 하겠어?”

내 질문에 리안이 잠시 말이 없었다.

-지난번에 말한 것처럼 미국이 파키스탄 경제를 지원할 거라는 말이야?

리안이 물었다.

“그래. 나는 내년까지는 파키스탄이 어떻게 견딜 줄 알았는데, 내 생각보다 상황이 빠르게 나빠지고 있네. 곧 미국이 뭔가 조치를 내놓을 거야.”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그래서 네 생각에는 파키스탄 어느 분야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야 당연히 자원 분야지. 파키스탄은 세계 7위의 석탄 매장량을 가진 국가잖아. 앞으로 중국 경제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석탄에 대한 필요성이 커질 거야.”

-파키스탄에 석유도 나지 않나?

“나기는 나지만 파키스탄 석유 매장량이나 생산량은 국내 소비를 감당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해. 매년 꽤 많은 석유를 수입하고 있으니 의미가 없어.”

-그러니까, 석탄 광산을 주로 알아보라는 말이지?

“그렇지.”

리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기 너머에 있는 리안이 볼 수는 없겠지만 자연스럽게 나온 반응이었다.

“광산을 확보해 놓으면 아마 나중에 큰 도움이 될 거야. 석탄 광산만 투자해서는 안 되니 다른 적당한 노동 집약 산업도 알아봐, 최근에 외국 기업들이 철수하느라 난리일 테니까. 어차피 중국 정부가 정보 수집을 위한 인력 파견을 위해서 너에게 투자를 강요하는 것이니 도시를 중심으로 한 회사나 공장도 필요할 거야.”

-알았어, 그렇게 알아볼게. 어제 찾아보니 외채만 380억 달러더라고. 이런 나라에 투자해야 한다니······. 당장 본토에 돈이 굴러다니고 있는데 이건 뭔 짓인지.

리안은 내 이야기에도 여전히 파키스탄에 투자하는 것이 썩 내키지 않는 듯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중국 경제가 발전하면 자원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서 파키스탄 광물 투자가 꽤 큰 도움이 된다?

내가 한 이야기를 리안이 몰라서 투자를 망설인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중국 경제가 발전할 것을 예상하고 파키스탄 광산에 투자하느니, 같은 금액을 중국에 투자하면 훨씬 큰 이익을 보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 기회를 놔두고 간접적으로 투자를 하게 생겼으니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리안은 공청단과의 관계에서는 발사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라 발사 명령을 따르는 사람이었다.

“어쨌든 내가 할 말은 여기까지야. 내가 따로 전화할게.”

-그럼 인도네시아 일 빨리 처리하고 와라. 넌 어떻게 홍콩에 붙어 있는 법이 없냐?

리안이 말했다.

나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리안의 말대로였다.

홍콩에서 편안히 쉰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지난번 한나절 동안의 요트 여행이 내가 홍콩에서 여유롭게 쉰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나마도 요트에서 꽤 많은 서류를 읽었다.

“그러게 말이야. 다음에 다시 전화할게.”

2.

나는 전화를 끊고 이번에는 장샤오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3팀장입니다.”

-전화 연락이 됐네요. 몇 번 전화를 걸었는데 계속 연락을 받지 않으시더라고요.

“죄송합니다, 제가 일을 할 때는 전화를 꺼 두는 습관이 있어서요. 바쁜 일이 있으시면 다음부터는 메시지를 남겨 두시면 확인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알겠어요. 한국에서의 일은 죄송해요. 거래처 관리를 못 해서 번거로운 일에 휘말리셨더라고요.

“신경 쓰지 마십시오. 2팀 실수라고만 할 수는 없는데요. 그리고 이미 그쪽에서 사과는 받았다고 합니다. 리안이나 카이 황 대표는 따로 준비하는 것이 있는 것 같고요.”

나는 리안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그쪽에서 이야기는 들었어요. 제가 먼저 알았으면 먼저 처리했을 텐데······. 어쨌든 이번 일은 나중에 제대로 만나서 사과할게요.

“그런 이야기는 그만하고 일 이야기나 하죠.”

-예······. 말씀하세요.

장샤오이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아시겠지만 이번 주에 중국과 타이완이 WTO에 가입했습니다. 그래서 타이완에 투자된 자금을 잠시 다른 곳에 옮기려고 하는데요.”

WTO 가입이나 대만 선거 이슈로 인한 호재는 어느 정도 반영이 되었다.

앞으로 상승하더라도 타이완 증시는 잠시 쉬어 갈 때였다.

이제 다른 곳에 투자할 때였다.

-어디에 투자하시려고요?

“한국 지수 옵션에 투자해 볼까 합니다.”

-코스피 지수 옵션요?

장샤오이가 물었다.

“예.”

-한국에는 이미 지수 선물이나 개별 주식 모두 상당한 액수를 투자하시고 계시잖아요? 옵션에는 최근에 투자하시지 않았지만······ 중복 투자가 아닌지?

장샤오이가 말을 흐렸다.

“한국에 투자하고 있는 것은 W&R이죠. 제가 2팀장님을 통해 직접 거래하고 있는 것은 AAM이라는 회사 자금이고요.”

-아, 예. 알겠어요. 한국 코스피 지수 옵션 롱 포지션으로 투자하신다는 말이죠?

장샤오이가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그렇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한국에 투자하려고 하는 이유는 엘리어스에게 들은 정보가 있기 때문이었다.

국제사회, 정확히는 미국이 주도한 압박에 결국 북한은 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내년 세계 구호 식량의 주요 수혜국이 아프가니스탄이 될 것이라는 전망과 일본의 식량 지원을 막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북한으로서는 현재로서 자신들에게 유일하게 식량을 지원해 줄 수 있는 한국과의 협상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

엘리어스는 곧 남북이 전격적으로 회담 재개에 합의하고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할 것이라는 발표를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투자를 망설이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남북 관계였다.

당연히 한국 주식시장에는 호재였다.

-분산해서 매수하면 별문제 없을 거예요. 911 테러 이후에 한국의 파생 상품 시장이 매일 엄청난 규모로 성장하고 있으니까요.

911 테러 직후 주가 폭락은 많은 사람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운 좋은 선물이나 옵션 투자자들을 양산해 냈다.

수백 배를 벌어 들었다는 소문은 투자자를 끌어들이며 한국의 파생 상품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었다.

“대충 5%에서 8% 지수가 상승한다는 가정하에 롱 포지션에 투자해 주십시오.”

-알겠어요. 홍콩에는 언제 돌아오실 생각인가요?

“아무래도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홍콩에 돌아가면 다시 뵙죠.”

-예. 그럼 다음에 홍콩에 돌아오시면 연락해 주세요.

장샤오이가 전화를 끊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종료 버튼을 눌렀다.

대충 투자는 마무리가 됐다.

이제 본격적으로 토미 수하르토를 정리할 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