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162화 (163/270)

(162)

#163. 신은 음식을 보내고 악마는 요리사를 보낸다

1.

홍콩으로 돌아왔다.

어느 때보다 복잡한 기분이었다.

생각이 복잡했지만, 회사에는 출근해야 했다.

사무실에 혼자서 앉아서 인도네시아의 일에 대해 생각했다.

억울한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신은 음식을 보내고 악마는 요리사를 보낸다라는 말이 있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모든 일은 처음 시작할 때 계획했던 의도와는 달리 상황이 달라지면서 처음 계획했던 의도로 끝나는 법은 없다는 의미였다.

그렇지만 최근 한 1년간 거의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됐던 나로서는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복잡한 마음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내가 출근했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리안이 내 사무실을 찾아왔다.

“빨리 돌아왔네? 지난번 이야기할 때는 꽤 오래 있을 것 같더니?”

리안이 가벼운 인사를 건넸다.

“일이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아서 돌아왔어.”

내가 대답했다.

내 대답에 리안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의외네, 네가 일에 실패할 때도 있고. 지금 하던 일은 인도네시아에서 먼저 제안이 왔던 것 아니야?”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리안의 말대로였다.

애초에 도움을 요청한 것은 이반 부카드 본인이었다.

그것도 내가 거절할 수 없는 본부를 통해 한 요청이었다.

“뭐, 일이 생각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니까.”

“그래도 지금까지 인도네시아에 꽤 공을 들였잖아? 네가 혼자만 일방적으로 일을 끌고 가는 스타일도 아니고 왜 그런 거야? 어쩌다 일이 어긋난 거야?”

리안이 물었다.

이반 부카드는 내 도움을 지금까지 톡톡히 받았다.

내가 혼자서 와히드 전 대통령을 몰아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었다.

그 외에도 내가 한 일들은 미국에 도움이 되도록 인도네시아 상황을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내가 무슨 슈퍼맨이야. 실패할 수도 있지.”

“나는 일에 관한 한 그런 줄 알았지. 이번에 인도네시아에 급히 간 게 지난번에 처리한 일이 조금 문제가 생겨서라며? 대충이라도 말해 봐.”

내가 제안한 토미 수하르토가 문제를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내 책임인가?

아니, 내 책임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어쨌든 내 제안으로 자유의 몸이 된 토미 수하르토가 암살이라는 미친 짓을 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나는 조언을 한 것일 뿐 결정을 내린 것은 이반 부카드 본인이었다.

“내가 조금 실수를 하기는 했어. 그런데 말이야. 내가 미친놈의 미친 짓까지 예상할 수는 없잖아. 더구나 나는 조언을 했을 뿐 결정을 내린 것은 상대였고 말이야.”

“그야 당연하지. 그래서······? 이번에 가서도 생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거야?”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파트너가 내 계획이 마음에 안 드신다네.”

“그것 더 신기하네. 뭐가 마음에 안 든다는데?”

리안이 말했다.

그는 어느 때보다 흥미진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 계획이 너무 과격하다나 뭐라나.”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내 방법은 지금의 문제는 해결할 수 있지만, 자칫 더 큰 문제를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하더라고······.”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나야 당연히 별 영향이 없다고 생각하지.”

나는 여전히 내 제안이 그렇게 이반 부카드가 화를 낼 일인지도 의문이었다.

바티칸과 이스라엘을 끌어들여 인도네시아 정부가 토미 수하르토를 처리할 수밖에 없게 하는 일이 조금 지나친 면이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화를 낼 일인가?

내 생각에는 아니었다.

어차피 인도네시아는 무슬림이 절대다수인 국가였다.

무엇보다 바티칸과 이스라엘을 끌어들인다고 해도 그 영향은 제한적이었다.

당장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 전쟁을 수행 중이었다.

인도네시아에서 뭔가를 하려고 해도 여력이 없었다.

바티칸도 마찬가지였다.

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종교 간의 화합을 강조하는 인물이었다.

자신에 대한 암살을 시도한 무슬림을 용서한 인물이었다.

내가 하려는 것은 단지 일시적으로 인도네시아 정부가 압력을 받는 정도였다.

생각할수록 억울했다.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는지 리안의 눈빛이 더욱 강해졌다.

“때려치워. 도대체 인도네시아가 뭐기에 그렇게 신경을 써.”

“나도 그러고 싶지. 뭐, 그런데 인도네시아에서의 일은 거절하기 곤란한 분이 연결해 준 것이라서······. 뭐 그리고 아주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고 말이야.”

이반 부카드의 반응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인도네시아 잠깐 왔다가 가는 나와 이반 부카드는 달랐다.

이반 부카드는 계속 인도네시아에 머물면서 상황을 관리해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인도네시아에서 높아지는 반미 감정과 반미 시위로 골치가 아픈 상황에서 잠시라도 종교 갈등이 격화되는 상황은 원하는 바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당연히 인도네시아에서의 일은 한동안 되도록 미룰 생각이야. 연락도 어지간하면 받지 않고 말이야. 투자할 곳이 인도네시아밖에 없는 것도 아니니까.”

이반 부카드의 처지를 이해한다고 해도 그런 식으로 나를 대접하는 것은 기분이 나쁠 뿐 아니라 그냥 넘어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스파이 세계는 뒷골목이나 다름없었다.

약하게 보이면 바로 그 약점을 파고드는······.

“하여간 은근히 속이 좁다니까.”

“나야 그러거나 말거나.”

2.

리안이 돌아가고 난 조민을 사무실로 불렀다.

“찾으셨습니까?”

조민은 굉장히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아무래도 예전 카지노 관련 일도 그렇고 엔론 공매도도 그렇고 내게 제대로 묻지도 않고 일을 진행한 것 때문에 긴장하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조민에게 그 일에 대해서 뭐라고 이야기를 할 생각이 없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더 그녀에게 압박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엔론 공매도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불렀습니다.”

엔론 공매도는 겉으로는 류오린이나 조민과는 관련 없이 W&R에서 진행하는 거래였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공매도를 이끄는 것은 조민이었다.

직접적인 관련성만 외부에서 알지 못한다면 숫자에 밝고 엔론의 회계 법인인 아서앤더슨에서 근무한 조민이 가장 적임자이기는 했다.

내 말에 조민이 잠시 머뭇거렸다.

“지금 정확히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내가 다시 물었다.

“현재 2억 달러 정도를 공매도로 걸어 놓은 상태예요.”

조민이 대답했다.

“꽤 많이 늘어났네요.”

처음 공매도 금액은 1억 달러였다.

그사이에 1억 달러가 늘어난 셈이었다.

“예.”

“늘어난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내가 말했다.

“2주 전부터 엔론이 경쟁 기업인 다이너즈와 인수 합병 협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알고 있어요. 엔론의 케네스 레이 회장이 직접 나섰다고 하더군요.”

엔론의 회장인 케네스 레이는 기업인이기는 하지만 엔론 경영보다는 정치인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정치인들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그들과 어울리는 데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다.

그가 다시 경영에 복귀한 것은 제프리 스킬링 대표가 사임하고 난 몇 달 전이었다.

“인수 합병 협상이 알려지고 꽤 많은 투자자가 공매도를 청산했어요. 그때 저희는 추가로 공매도 금액을 늘렸고요.”

“회계 부정 때문입니까?”

지난주 거의 모든 경제 뉴스는 엔론이 대규모 회계 부정을 저질렀다는 소문이 사실로 밝혀졌다는 기사가 메인을 장식했다.

“맞아요.”

“인수 협상이 진행되는데도 공매도 금액을 늘렸다면 엔론이 회생할 가능성도 없고 인수 협상도 실패할 거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맞나요?”

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이너지 정도로는 엔론의 손해를 감당할 수 없어요. 아마 한두 주 안에 인수 협상은 실패할 거예요.”

조민이 대답했다.

그녀의 대답은 확신에 차 있었다.

“뭔가 믿는 부분이 있는 것 같네요?”

“예. 아서앤더슨에 있을 때 인맥을 통해서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이미 공매도를 밀어붙이고 있는 투자회사들이 다이너지에 관련 정보를 전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엔론에 대한 공매도 잔액은 이미 수십억 달러에 달했다.

그중에는 올해 초부터 꾸준히 엔론 주식을 공매도한 투자회사들도 있었다.

그들에게 엔론이 다이너지와 합병하는 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제가 들은 정보에 의하면 엔론은 다음 달을 견딜 수 있는 자금이 없어요. 다음 달 초에 파산 보호 신청을 할 것이 거의 확실해요.”

조민이 덧붙였다.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좀처럼 믿기지 않은 일이었다.

“엔론 같은 기업이 한순간에 파산하다니······. 믿기지 않네요.”

“엔론에서 회계 부정이 있기는 했지만, 엔론은 여전히 부채보다 가지고 있는 자산이 많은 기업이기는 해요. 하지만 911 테러 이후 파생 상품에서 엄청난 손해를 본 것으로 알고 있어요, 현금이 부족한 상태예요. 여기에 예전부터 있던 공매도가 규모가 커지면서 견디지 못한 거죠.”

조민이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엔론은 911 테러의 희생양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대로 진행하세요. 다만 여기까지입니다. 더는 공매도 금액을 늘리는 것은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조민의 말대로라면 공매도 금액을 늘리면 늘일수록 이익은 늘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만약의 일도 대비해야 했다.

2억 달러 정도의 공매도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만약 투자에 실패한다면 엄청난 손해를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W&R의 규모를 봤을 때 2억 달러 정도의 공매도 실패로 인한 손해는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었다.

“아······. 알겠습니다.”

조민이 대답했다.

그녀는 조금 아쉬운 표정이었다.

3.

리안이 술 한 병을 들고 집을 찾아왔다.

“표정이 왜 그렇게 어두워? 무슨 일 있어?”

내가 물었다.

“내가 투자한 중국 기업 중에서 인터넷 카페를 설치 운영하는 기업이 있거든······.”

“그런데?”

“오늘 파키스탄 투자 때문에 중국에서 온 사람을 만났는데······. 곧 중국 정부에서 대규모로 인터넷 카페를 폐쇄할 예정이래.”

“인터넷 카페를?”

리안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응. 하루아침에 전국에 있는 인터넷 카페 중에서 17,500개를 완전히 폐쇄하고 나머지 28,000개도 엄격히 감시하신단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냐.”

“어차피 어느 정도 예상한 일 아니야? 보름 전에 상품 평가 사이트도 폐쇄했잖아. 외국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사이트였는데 말이야.”

올 초에 중국 정부는 중국에서 소비자들의 영웅이라고 불렸던 상품 평가 사이트 하나를 일방적으로 폐쇄했다.

“알고 있어. 뭐, WTO 가입도 됐고 에이펙 회의도 끝났으니 이제 인터넷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거겠지. 그래도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빠르고 폐쇄하는 카페 수도 많아.”

리안은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얼마나 투자했는데 그렇게 아쉬워해?”

“이 회사가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다른 중국 정보 통신 기업에도 투자하고 있는데 완전히 계획이 틀어졌어.”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중국도 컴퓨터와 인터넷이 모든 가정에 보급된 것은 아니었다.

나라가 넓고 기간 시설이 노후화됐기 때문에 정부의 막대한 투자에도 아직은 대도시만이 그나마 인터넷을 원활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이런 부족한 인프라에 대한 인터넷 카페였다.

“아쉽기는 하겠네. 그래도 중국의 정보 통신 분야는 전망이 밝으니까 투자하는 것은 나쁘지 않을 거야.”

“나도 그렇게는 생각해. 문제는 앞으로 이런 식으로 어이가 없는 이유로 사업을 방해할 것을 생각하면 속이 답답하네······.”

“인터넷 카페를 폐쇄하는 이유가 뭐라는데? 내세운 명분이 있을 거잖아?”

“인터넷 카페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이 게임을 하고 포르노에 노출된단다······.”

진짜 이유도 아니고 미국이나 유럽에서 들으면 어이가 없는 소리겠지만 동아시아에서는 먹힐 만한 주장이기는 했다.

“어쩌겠냐. 중국에 투자하려면 적응해야지.”

“네 일 아니라고 너무 쉽게 한다.”

“쉽게 하기는 무슨. 그래도 이번에 카페 폐쇄를 미리 알려 준 것을 보면 너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나은 것 아니야? 네 재산에 비하면 인터넷 카페 설치 운영 기업에 투자한 돈이 큰돈도 아닐 테고 말이야. 어느 날 갑자기 멀쩡히 잘 운영하던 인터넷 카페가 폐쇄될 사람들을 생각해 봐라. 그 사람 중에 그게 거의 전 재산인 사람이 얼마나 많겠냐.”

리안과 이야기를 하면서 중국이 공산당 일당 독재국가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역시 내가 알고 있던 상식이 통하지 않는 나라였다.

다음 날 필리핀에서 연락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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