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167화 (168/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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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8. 모든 물건에는 가격이 따로 있다

1.

홍콩에 도착한 나를 가장 먼저 찾은 것은 조민이었다.

“엔론이 곧 파산 보호 신청을 한다는 정보예요. 어떻게 할까요?”

조민이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들떠 있었다.

리안의 말대로 재미있어서 어찌할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주식 투자는 마약에 비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중독이 강했다.

특히 지금 조민처럼 거액을 단기간에 벌어들였는데 흥분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 엔론 주가가 얼마죠?”

나는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제 종가 기준으로 85센트 정도예요.”

“우리가 얼마에 공매도했었죠?”

“조금씩 다르기는 한데, 대략 18달러에서 17달러 사이에요.”

“우리가 공매도한 금액은 대략 2억 달러이니, 17달러라고 해도 11,764,000주 정도네요? 주당 16달러 차익이면 얼마죠?”

“1억 8천8백만 달러 정도입니다.”

내가 차분한 말투로 묻자 조민도 흥분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 정도 수익이면 굳이 파산 보호 신청까지 기다릴 필요 있을까요? 오늘 저녁에 공매도 청산하죠.”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지난번처럼 내 지시에 조민은 조금은 실망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지금 서로 엔론 주식을 팔지 못해서 난리니, 청산하는 데는 별문제 없을 겁니다.”

“공매도가 청산되면, 수익에 따른 인센티브는 만족할 정도로 지급할 생각입니다.”

내 이야기에 조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인센티브도 좋지만 이번에 얻은 이익금은 어디에 투자하실 생각이신지?”

“그 자금을 조민 씨가 맡고 싶으신가 보네요?”

“꼭 그렇다기보다는 제가 들으니 지금까지 팀의 관행상 각자 팀원이 얻은 이익은 팀원이 계속 관리했다고······.”

“죄송합니다만 그렇게는 안 되겠습니다.”

“예?”

조민이 크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이번에 공매도로 얻은 이익을 자신이 맡게 될 것으로 확신했었던 것 같았다.

“물론 이번 공매도를 조민 씨가 제안하고 주도하신 공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조민 씨는 팀원 중에서 가장 나중에 들어오신 분입니다. 지금 맡은 자금만 해도 다른 회사라면 조민 씨 경력에 비해 많은 금액이죠. 그건 조민 씨도 인정하시죠?”

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브레이크 씨가 관리하는 독일 투자 금액이 2억 5백만 달러인 것에 비해 조민 씨가 투자하는 일본과 한국 투자를 합치면 2억 천만 달러입니다. 여기에 이번에 얻은 이익을 합치면 브레이크 씨와 차이가 너무 벌어집니다. 자칫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물론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은 없었다.

팀원이라고 해 봐야 실제로는 나와 리안 그리고 브레이크, 조민이 전부였다.

그중 조민은 홍콩 명문가 출신으로, 리안의 약혼녀였다.

브레이크가 형평성을 문제로 삼을 가능성은 적었다.

형평성을 이야기한 것은 내가 조민에게 이익금을 맡기지 않을 명분에 불과했다.

“······.”

“이번에 얻은 이익금을 어디에 투자할지는 회의를 통해 결정할 테니, 그렇게 알고 있으세요.”

“알겠습니다.”

조민이 고개를 숙였다.

“그럼 나가 보세요.”

2.

그날 저녁 리안이 나를 찾아왔다.

“넌 또 뭐야? 왜 찾아온 건데?”

“설마 몰라서 묻는 거냐?”

“설마 왜 내 약혼녀 괴롭혔냐고 따지러 온 거야?”

내 말에 리안이 쑥스러운 듯 턱을 긁적였다.

“나도 미치겠다. 내 방에 찾아와서 아무 말 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는데, 아주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 나는 걔가 그렇게 우는 모습 본 것이 십 년도 넘어.”

“너 도대체 왜 이렇게 됐냐? 조민 회사에 입사시켰다고 나에게 뭐라고 한 게 몇 달 전이야. 자유를 사랑한다던 리안 어디 갔어?”

“그 사나이는 너하고 아저씨가 조민을 입사시키고 네가 홍콩을 비웠을 때 죽었지. 그러게 왜 그랬냐?”

“이게 네가 나에게 찾아올 일이냐?”

“나도 그냥 찾아와 본 거야. 네가 왜 그랬는지 알고 있거든.”

“맞아. 조민이 기분이 나쁠지도 모르지만, 나로서는 당연한 조치야. 지금 조민은 공매도의 대성공으로 기가 살아 있는 상태야. 여기서 투자금까지 늘려 주면, 너나 내가 감당할 수가 없어.”

이번 공매도 성공 전에도 카지노 투자 문제나 공매도를 밀어붙인 것을 생각하면, 조민의 기를 한번 꺾어 줄 필요가 있었다.

“알아! 나도 그냥 찾아와 본 거라니까.”

리안이 말했다.

말을 마친 리안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냥 찾아온 사람의 표정이 아니었다.

“왜 그렇게 쳐다보는데······? 이해한다면서?”

“이해는 하지. 그런데 말이야, 다음에 이런 일이 있으면 나에게 미리 경고를 해 주면 안 되겠냐, 친구? 날벼락을 맞을 때 맞더라도 마음의 준비라도 하게 말이야.”

“네가 미리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조민 씨가 알게 되면 감당할 수 있겠어? 그때는 그냥 눈물 흘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텐데?”

“그런가?”

“뭐가 그런가야? 그렇지. 너 은근 표정 관리 안 되잖아. 조민 씨는 눈치도 빠르고······. 단번에 걸릴걸.”

“그럼 말이라도 좀 부드럽게 해 줘라.”

“뭔 소리야,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했는데······.”

“내가 예전부터 말했잖아. 어떻게 매번 이야기해도 계속 까먹냐!”

“무슨 말?”

“내가 말했잖아. 너 말하는 것 대놓고 싸가지없다고······. 너 듣는 사람 아주 기분 나쁘게 이야기하는 재주가 있어.”

리안이 말했다.

“이번은 아닌데? 내가 나름 네 약혼녀라고 조민 씨에게 얼마나 조심하는데······.”

“너는 아니겠지.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게 아니어서 그렇지.”

리안은 나를 향해 고개를 젓더니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공매도 이익금이 들어오면 어찌할 거야?”

“넌 어떻게 했으면 하는데? 조민에게 맡기자는 소리는 아니지?”

내 질문에 리안이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아니지. 여기서 기가 더 사는 것은 나도 싫어.”

“그럼 어떻게 했으면 하는데?”

“3 대 2 어때?”

“3 대 2라니?”

“브레이크에게 이익금 중에서 3을 맡기고 나머지 2는 조민에게 맡기는 거지.”

“글쎄······.”

“왜, 너는 따로 생각이 있는 거야?”

“지금 내가 2팀과 AAM 자금을 따로 투자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지?”

“알아. 이번에도 필리핀에서 거의 2천만 달러를 벌었다면서?”

“맞아. 지난주에는 필리핀에 투자하기는 했지만 주로 타이완에 투자하고 있거든······. 일본, 한국, 타이완이 동아시아 주요 3개국이잖아. 지금까지는 일본과 한국에는 투자했는데, 앞으로 타이완에도 정기적으로 투자할 생각이야. 알겠지만 타이완 주가가 일본이나 한국보다 나스닥 지수와 같이 움직이는 경우가 많으니, 상대적으로 방향을 예측하기도 쉽고

말이야.”

“타이완에서 가장 시가총액이 높은 곳들은 아이티 기업들이잖아. 그래서 나스닥 아이티 기업들의 주가와 같이 움직이는 경우가 많고 말이야.”

“잘 알고 있네.”

“내가 당연히 알고 있지. 너 잊었나 본데······ 내가 나스닥 투자를 맡기 전까지만 해도 주로 아시아 증시에 투자했었잖아. 그때 주요 투자국이 타이완이었어.”

“하여간 그래서 타이완에 정기적으로 투자하려고 하는데, 그걸 이번에 번 이익금으로 하려고 했지.”

“지금 투자하고 AAM 자금은 어쩌고?”

“따른 데 투자해야지.”

내 이야기에 리안이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면 더더욱 조민에게 맡겨야 하는 것 아니야? 이미 팀에서 일본과 한국을 맡고 있으니 타이완도 조민이 맡아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도 몇 달 동안 내가 하다가 조민에게 넘겨주려고 했었어.”

“그래?”

리안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그는 당장에라도 조민에게 달려가서 소식을 전해 주고 싶은 표정이었다.

“그런데······.”

리안이 순간 고개를 갸우뚱하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라니?”

“네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내 생각에도 브레이크와 조민에게 3 대 2로 나눠 주는 게 좋을 것 같아.”

“갑자기 왜? 타이완에 투자한 AAM의 투자금을 대체한다면서?”

“브레이크가 예전부터 독일 말고 영국에도 투자하려고 했잖아.”

“그야 그렇기는 하지.”

유가증권 투자자의 최종 목적지는 영국의 ‘더 시티’와 미국의 ‘월 스트리트’였다.

두 곳은 말 그대로 세계 금융의 중심지였다.

브레이크가 훨씬 투자 금액이 큰 RAM을 포기하고 W&R의 독일 투자를 맡은 것도 영국에 투자하기 위한 중간 단계였기 때문이다.

“지금 독일 DAX 선물에만 투자하는 것은 처음에 러시아만 전담하다가 영국과 독일 두 나라에 투자하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서잖아. 이제 영국에 투자해도 될 때인 것 같아.”

“······.”

리안의 눈동자가 맹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말 때문에 내가 조민에게 전부 맡기려던 계획을 바꾼 사실을 조민이 알게 됐을 때를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잠시 후 흔들리던 리안의 눈동자가 안정을 되찾았다.

“너 원래 3 대 2로 나누려고 했던 것 아니야? 앞에 조민에게 다 맡기려고 했다는 것은 나를 놀리려고 한 소리고 말이야.”

“글쎄? 내가 그랬을까?”

“야! 너 나 놀리는 게 재밌냐?”

리안이 소리쳤다.

나는 그런 리안의 모습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리안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재밌어서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럼 너라면 이 상황이 재미없겠냐? 나야말로 묻고 싶다. 너 왜 이렇게 된 거냐? 도대체 내가 홍콩에 없는 사이에 뭔 일이 있었던 거야?”

“있기는 뭔 일이 있어!”

강하게 부인하며 리안이 몸을 젖혀 소파에 몸을 기댔다.

“친구로서 부탁하는데, 다음에 미국 회사 주식 공매도를 할 생각이면 조민 말고 딴 사람에게 맡겨라. 24시간 붙어 있는 게 어떤 느낌인 줄 아냐?”

“나야 모르지. 알고 싶지도 않고 말이야.”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내 원칙 중 하나가 주변에 있는 사람과는 절대 사귀지 않는 거야.”

“그래? 그래서 장 팀장과 거리를 두는구나.”

“뭐야?”

리안의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몸이 굳어졌다.

“그럼 내년에 류오린 그만두고 장 팀장과의 거래가 끝나면 걸림돌이 사라지는 건가?”

“그건 또 뭔 소리야!”

“설마 장 팀장이 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 묻는 거야? 조민이 장 팀장과 자주 만나는데, 장 팀장이 네가 자신과 거리를 두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이야기했다더라.”

그렇지 않아도 장샤오이의 호의가 부담되는 경우가 많았다.

장샤오이는 미모나 성격이나 내가 좋아할 부분이 많았다.

그렇지만 그렇게 상대가 나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추측하는 것과 간접적이라도 직접 듣는 전혀 달랐다.

장샤오이와 만날 때마다 리안이 한 말이 생각날 것이다.

“그런 말을 지금 나에게 하는 이유가 뭐야?”

“이유가 뭐가 있어, 그냥 하는 말이지.”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지.”

“알았어. 그런데 내가 조민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아마 바로 장 팀장에게 전할 것 같던데······.”

내가 장샤오이를 멀리하는 것은 장샤오이가 주변 인물이라서가 아니었다.

그녀의 배경 때문이었다.

지금도 부담스러운데 저 말을 전해 듣고 장샤오이가 행동하면 곤란했다.

“뭐야! 지금 협박하는 거야?”

“협박은 무슨······. 윈윈하자는 거지.”

“입을 다물어 주는 조건이 뭔데? 말해 봐.”

“뭐긴 뭐겠어. 네가 조민에게 원래 계획은 공매도 이익금을 타이완에 투자해서 그걸 조민에게 맡길 생각이었다느니 하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지.”

“알았어, 알았어. 거래 받아들이지.”

괜히 조민으로 장난을 쳤다가 마음의 짐만 늘어났다.

“그런 이야기 집어치우고 다음 투자 이야기나 하자.”

나는 화제를 돌렸다.

“미안. 나는 회사에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아.”

리안이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은 내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지금 조민 씨 회사에 있냐?”

“당연히 있지. 우리 팀하고 같이 엔론 공매도 청산하기 위해서 뉴욕 주식시장이 열리기만 기다리고 있어.”

“설마? 조민에게 가서 이익금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당연히 이야기해야지. 3 대 2로 나눠서 그중 40%를 조민에게 맡길 생각이라면서? 이런 소식은 가장 먼저 전해 줘야지.”

“제발 예전 리안으로 돌아와라. 공매도 청산에 집중해도 모자란데 거기에 그런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이야기해도 공매도를 다 청산한 다음에 해야지.”

“그런가?”

“뭘 그런가야! 당연하지!”

처음 조민이 나타났을 때부터 리안이 조민에게 잡혀서 살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지만······.

결혼하기 전부터 저렇게 끌려다닐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신기할 정도였다.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리안이 저렇게 끌려다니는지 조민에게 묻고 싶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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