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168화 (169/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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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9. 선물은 주는 사람을 두려워하라

1.

리안이 피곤함에 지친 모습으로 나를 새벽부터 찾아왔다.

“엔론 주식 공매도는 다 청산했어.”

엔론 주식 공매도와 아침에 있을 투자 회의 전 의견을 나누기 위해서였다.

“수고했다.”

내 이야기에 리안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수고는 무슨······. 그런데 오늘 같은 날은 좀 쉬게 해 줘야지 굳이 새벽부터 오라는 것은 뭐야?”

“투자 방향 정해야지.”

“말이 회의지 어차피 네 생각 이야기해 주는 거잖아. 오늘 같은 날은 나도 그냥 회의에서 들어도 되잖아.”

“이제 투자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으려고.”

회의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말에 리안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투자 회의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또 왜, 어디 가?”

“내일 타이완에 가 보기는 할 생각인데 그것과 상관없이 나 한동안 한국에 가 있을 생각이야.”

“한국에는 무슨 일로?”

“무슨 일은, 내가 한국에 투자하는 이유는 알잖아.”

“네 아버지의 일?”

“맞아. 홍콩에 있다 보니 한국에서의 일이 진행되지 않는 것 같아서······.”

“그게 네가 홍콩에 있어서 그런 거야?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네가 홍콩에 계속 있는 줄 알겠다. 한 달에 홍콩에 있는 시간이 열흘은 되냐?”

리안이 말했다.

그의 말의 틀린 말도 아니었다.

최근에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의 일로 꽤 오래 자리를 비웠다.

“그래서 더 한동안 한국에 있으려고 하는 거야. 해외에 나가 있는 시간이 많은데 그나마도 홍콩에 살다 보니까 한국에 신경을 쓸 시간이 전혀 없어서.”

“하긴, 틀린 말도 아니기는 하네.”

“그래서 앞으로는 투자 회의는 예전에 했던 것처럼 회의 전에 나와 투자 방침에 관해 이야기하고 방침을 중심으로 투자 방향을 정하는 것이 좋겠어.”

“그게 나에게 회의를 맡기는 이유 전부야? 다른 이유는 없고?”

리안이 다시 물었다.

“팀장도 이제 네가 맡는 게 좋을 것 같아.”

“팀장도?”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내년에 우리가 독립하면 W&R의 대표는 네가 맡아야 하잖아. 그러자면 지금부터 W&R의 직원들에게도 네가 실질적인 대표라고 생각하게 해야지.”

홍콩에서 리안을 W&R의 간판으로 내세우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자면 W&R의 직원들부터 리안이 실질적인 주인이라고 생각하게 해야 했다.

예전에는 팀과 W&R의 사무실도 따로 있었고 팀에서 투자 결정을 내리고 W&R에 지시를 내리는 것이 가능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식으로 투자를 운용하기에는 투자금의 규모가 너무 커졌다.

예전에는 하루 이틀이면 선물을 구매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어려웠다.

류오린에 거래 자체를 맡긴다고 해도 혼자서도 어려웠고 매매 시점이나 매매량을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W&R 직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현재 우리 팀원은 나 리안 그리고 브레이크 리안 네 명이었고, 이들은 W&R의 직원들과 함께 사실상 한 명 한 명이 별개의 팀을 이끄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팀원들이 W&R과 같이 일을 하는 것을 며칠 지켜보다 보니 우리 팀과 W&R이 거의 하나나 다름없더라고······.”

“그야 어차피 내년이면 하나가 될 거잖아. 팀원들이나 W&R의 직원들도 다 그 사실을 알고 있어. 류오린도 지금 상황을 인정한 상황이고 말이야.”

“내가 직원들이 하는 말을 우연히 들었는데, 나는 뭐 하는 놈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팀장이라는 놈이 회사 내팽개치고 회사 출근도 안 하고 놀러 다니기만 한다나 뭐라나.”

“누가 그런 소리를 해?”

“모르지. 화장실에서 들은 이야기니.”

목소리만 들은 것은 사실이지만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는 알고 있었다.

W&R의 직원이 꽤 늘어나기는 했지만 채 40명도 되지 않았다.

겨우 그 정도 인원의 목소리를 구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누군지 안다면 리안이 가만있지 않을 텐데, 그건 그것 나름대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화장실에서 들은 이야기로 징계를 한다면 그게 웃긴 일 아니겠는가?

“아니, 그걸 가만 듣고만 있었어?”

“그럼 화장실에서 볼일 보다가 중간에 나가서 따져? 나가서 뭐라고 해? 내가 W&R의 대주주고 투자 방향을 정하는 데도 관여를 한다고?”

“네가 투자 방향을 정한다는 말은 해도 되잖아. 그리고 대주주라는 사실은 숨겨야 한다지만 어느 정도 지분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도 되고 말이야.”

“됐어, 그런 이야기를 뭐 하러 해. 직원들 말이 틀린 말도 아니고 말이야.”

“뭐가 틀린 말이 아니야. 대주주가 아니더라도 네가 이 회사를 이끌어 가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됐어,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 보니 내가 굳이 팀장이어야 하는 이유가 없더라. 예전에 내가 팀을 독립시키고 팀장을 맡은 가장 큰 이유는 류오린 내에서 투자에 관여하는 것을 피해가 위해서였잖아. 그런데 지금은 이름만 류오린에 있을 뿐 독립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내가 팀장일 필요가 없잖아. 무엇보다 내년에 네가 회사를 장악하자면 지금부터 네가 팀장

인 게 좋을 것 같고 말이야.”

“네가 팀장을 맡으면 한국에서 홍콩에 왔다 갔다 해야 게 귀찮아서는 아니고?”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여?”

“그럴 사람으로 보여. 너 다른 사람이랑 회의하는 것 싫어하잖아. 아니야?”

내가 투자 회의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것은 맞았다.

그렇지 않아도 나는 CIA 일 때문에 CIA 요원들과 회의를 자주 하고 있었다.

CIA 일 때문에 하는 회의는 내가 거절할 수도 없고 말 한마디 한마디 항상 긴장해야 했다.

“그렇게 생각하든지. 어쨌든 오늘부터 나는 어지간하면 회의에 참석하지 않을 거야. 한국에 들어가면 특별한 일이 없으면 투자 방향도 너와 전화로 끝낼 생각이고 말이야.”

내가 말했다.

리안이 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네 말은 나하고 아저씨에게 다 맡기고 한국에서 아버지 일을 처리하겠다는 말인데······. 안 불안하냐?”

“불안? 뭐가?”

“나는 네가 간이 큰 것인지 아니면 나를 그만큼 믿는 것인지 모르겠다. 지금 투자금 얼만지 알지? 이것저것 다 청산하면 15억 달러도 넘어. 나한테도 큰돈이라고.”

“그래서?”

“네가 한국에 있든 동안 나와 아저씨가 이 투자금 다 빼돌릴 수 있다는 것 알고 있지? 나중에 네가 무슨 주장을 하더라도 내가 가진 인맥이면 무마할 수 있고 말이야.”

“그래서 할 거야? 안 할 거잖아.”

“날 그 정도로 믿는 거야? 큰돈이 걸린 일에 가장 믿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이야.”

“아니, 너도 믿지만 네 욕심을 믿는 거지. 겨우 15억 달러 먹고 떨어지려고?”

“와······. 얘 1년 사이에 간덩이가 커졌네. 겨우 15억 달러라는 말이 나와?”

“네 말대로 난 1년 전까지만 해도 전 재산이 몇십만 달러였어. 운도 좋았지만 어쨌든 1년도 안 되는 시간에 15억 달러를 벌었다는 말이지. 내가 앞으로 얼마나 더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아? 10년 후에 W&R 지분 10%가 15억 달러보다 적을까?”

“그건 네가 앞으로 계속 투자에 성공해야 할 때나 가능한 이야기 아니야? 넌 네가 앞으로도 투자에 성공해서 돈을 벌 거로 생각해?”

“적어도 크게 잃지는 않을 거로 생각하지.”

“돈을 벌 때는 다 그런 생각을 하지. 저러다가 한번 알거지가 되어야 정신을 차리지.”

리안이 나를 보며 다시 고개를 저었다.

“난 너를 믿어.”

내 이야기에 리안이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투자 방침 이야기나 하자.”

적어도 지금은 리안을 완전히 믿었다.

리안이 말했듯이 15억 달러는 리안에게도 큰 금액이었다.

하지만 리안의 목표는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다시 집안을 예전 홍콩에서 차지했던 위치로 돌려놓고 싶어 했다.

그렇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난 5년은 긴 시간이었다.

특히 그 5년은 홍콩이 중국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 기간이었다.

홍콩에서 어지간한 이권은 이미 현재 중국을 장악한 상하이방과 가까운 가문에게 상당수 넘어갔다.

앞으로 홍콩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이미 넘어간 이권이 가진 가치는 점점 커질 것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차이였다.

그 차이는 15억 달러 정도로는 절대 메울 수 없었다.

리안과 카이 황이 내가 하는 일에 협조하는 이유이자 내가 리안을 믿는 이유였다.

리안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대로 보였다.

나는 리안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입을 열었다.

“지난주 세계 증시는 전반적으로 조정 장세였잖아. 지금처럼 자금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에서는 곧 다시 오를 것 같아.”

지난주 증시는 전반적으로 내림세였다.

한 달 동안 지속해서 오른 세계 증시는 테러 전 수준을 거의 다 회복했다.

경계 매물이 나올 시기였다.

여기에 엔론의 다이너지와의 인수 합병에 실패하고 파산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도 주가에 안 좋은 영향을 주었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과 독일 증시는 3주간의 상승세를 마감했다.

하지만 미국 연준과 유럽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뿐 아니라 일본은 대규모 추경으로 통과시켰다.

시장에 어느 때보다 자금이 풍부하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사상 최악의 테러가 일어나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

다른 투자처인 부동산 투자에 투자하기에는 아직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단기적으로 자금이 증시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다시 투자를 다 롱 포지션으로 전환하자는 말이지?”

“맞아. 내일 당장은 아니고 목요일 오후부터 금요일까지 집중적으로 다시 사들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전체적으로 다 같은 방향으로?”

“뭐, 우리가 투자한 곳은 그렇게 해야지. 사실 일본이 좀 불안하기는 한데······. 뭐 이런 상황이면 일본처럼 상황이 나빠도 어느 정도는 오르겠지.”

일본은 지난주 일본 정부의 대규모 추경에도 근본적으로 경제가 좋지 않았다.

일본은 유동자금이 풍부하다고 꼭 그게 주가 상승으로 곧바로 연결되는 나라는 아니었다.

“세부적으로는 어떻게 하냐면 말이야······.”

투자 방향을 이야기한 나는 세부적인 투자 전략을 리안과 협의해 나갔다.

2.

다음 날 나는 타이완에 와 있었다.

작년에만 해도 타이완에 자주 온 편이었지만 올해는 아주 뜸했다.

타이완이 중요한 국가이기는 했지만, CIA가 할 일은 딱히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온 이유도 CIA가 아닌 투자를 위한 것이었다.

타이완 호텔 회의실에서 나는 한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

“류오린의 에드릭 손이라고 합니다.”

30대 중반의 사내였다.

우리는 악수했다.

“에버그린의 창세린입니다. 회사에서는 구매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장샤오이 씨에게 말은 많이 들었습니다. 엄청난 투자금을 움직이고 있으시다고요?”

내가 만든 창세린은 나이는 젊지만 대만 최대 운송업체인 에버그린 그룹의 실세였다.

“장샤오이 씨가 제 얼굴에 금칠을 하셨네요. 그냥 투자자분들의 의견에 따라서 자금을 움직이는 것뿐입니다.”

“무슨 일로 저를 만나자고 하셨는지 들을 수 있을까요?”

“타이완에 투자하고 싶어서요.”

“투자요? 투자야 언제든지 환영입니다만······. 제가 듣기로는 주로 선물에 투자하신다고 들었는데요?”

“이번에는 개별 주식을 사 볼까 합니다.”

“그래요?”

“예. 예를 들어서 에버그린해상이나 에버그린 국제 화물 및 운송. 여력이 있으면 에바에어 같은 기업들이요.”

“그런 이야기를 저에게 하는 이유가 뭡니까? 어차피 그냥 주식을 사시면 되는 것 아닙니까?”

내가 이야기한 회사들은 모두 에버그린 그룹의 주력 계열사들이었다.

“제가 듣기로는 오늘 내일 꽤 많은 자금을 동원해서 주식을 사들인다고 하던데 저도 그 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창세린이 시치미를 뗐다.

“선거 전에 주가가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제가 가진 투자금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조금이라도 보태면 회장님 걱정이 좀 덜어지지 않겠습니까?”

창융파 회장님은 민진당 천수이볜 총통님의 경제자문관이었다.

민진당,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서 기업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선거 직전 갑자기 증시하락을 반전시키기 위해 민진당은 에버그린 같은 관련된 기업인은 물론이고 공공기관까지 이용할 생각이었다.

나는 이번 선거에서 민진당이 압승하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주가는 다시 오를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하는 투자라면 이왕이면 두 마리 토끼를 쫓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내가 에버그린 주식을 사기 전에 굳이 관계자를 만나는 이유도 어차피 투자하는 것 기왕이면 꽌씨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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