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171화 (172/270)

(171)

#  172. 축제가 끝난 후에 계산서가 날아온다

1.

하성철 옆에서 정신없이 가이닉스 주식을 사고파는 사이에 다시 리안에게 전화해야 할 시간이 돌아왔다.

나는 리안에게 내가 없는 사이 홍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어느 사이에 홍콩이 집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 별일 없어. 부동산 가격이 조금 오르고 있다는 정도?

“왜 둥칭화 행정장관이 재선됐다면서? 그 정도면 큰일 아니야?”

홍콩 행정장관은 다른 나라로 따지면 총리나 대통령에 해당하는 직위였다.

- 어차피 오래전부터 재선될 거라고 예상됐던 일이니까.

리안이 심드렁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물론 투표로 뽑히는 형식과는 달리 중국 본토에서 지명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투표인단 자체가 중국 정부가 반 이상 지명하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말은 하지 않지만, 둥칭화 홍콩 행정장관이 재선됐다는 사실이 별로 내키지 않는 듯했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둥칭화 장관은 리안 집안과는 껄끄러운 사이인 상하이방과 가까웠다.

리안에게 둥칭화 장관은 상하이방과 다를 것이 없었다.

“너무 신경 쓰지 마. 둥칭화가 재선되기는 했지만 5년 임기를 채우기는 어려울 테니까. 아마 후진타오가 주석이 되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둥칭화는 가장 먼저 바꾸려고 할걸.”

- 그렇게 생각해?

“너라면 안 그러겠어? 중국의 경제력이 많이 올라왔다고는 하지만 홍콩은 중국의 어지간한 성 몇 개를 합친 경제력을 가지고 있어. 그런 상황에서 장쩌민 주석과 가까운 사람에게 홍콩을 맡겨 둘 수는 없지.”

장쩌민이 주석직을 후진타오에게 넘긴다고 바로 상하이방이 몰락할 리는 없었다.

그렇지만 중국의 관문인 홍콩의 장관은 공청단과 가까운 사람으로 교체할 것이 분명했다.

홍콩의 의원 절반 이상은 중국 정부에서 지명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중국에서 지명된 홍콩의 의원들이 상하이방이나 공청단 같은 특정 정파와 가까운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중국 정부의 뜻을 따르는 것이었다.

후진타오가 주석이 된 이후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교체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상하이방도 중앙이나 상하이 같은 자신들이 거점이 아니고 홍콩의 둥칭화를 지키기 위해서 공청단과 각을 세우지는 않을 것이다.

- 그때가 빨리 왔으면 좋겠네.

리안이 말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둥칭화에 대한 불만이 많은 듯했다.

“미리미리 비리 자료나 모아 놔. 자료가 많으면 많을수록 둥칭화를 쉽게 밀어낼 수 있을 테니까.”

- 이미 아저씨가 차곡차곡 모아 놓고 있어. 감옥에 보내지는 못하겠지만 네 말대로 장관직에서 쫓아내는 데는 지금도 충분해.

둥칭화는 기업인 출신이었다.

기업인 출신들 대부분은 비리가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공직 생활의 시스템과 맞지 않았다.

자신들은 효율을 생각해서 하는 일이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둥칭화는 이미 특정한 기업이나 특정인에게 특혜를 줬다는 구설에 올라 있었다.

둥칭화가 비리를 저질렀다고 해도 그 일로 감옥에 갈 가능성은 낮았다.

둥칭화 집안은 오래전부터 중국 본토와 막강한 인맥을 가지고 있었다.

둥칭화 집안의 해운 사업을 파산에서 구한 것이 바로 중국 정부였다.

더구나 초대 홍콩 행정장관이라는 상징성이 있었다.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 정부에서 그를 사법 처리할 가능성은 없었다.

“그래, 그렇게 미리미리 준비해 놓으면 쓸 날이 올 거야.”

- 너는 어때? 한국에서는 지낼 만해?

“나도 뭐 그렇지. 한국은 홍콩과는 또 달라. 장중에 가격 변화가 큰 편이라서 요즘에는 주식시장이 열렸을 때는 모니터 앞에서 앉아서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

- 거래는 잘하고 있는 거야? 너 꽝 손이잖아. 거래할 때마다 손해를 보는 것 아니야?

리안이 오랜만에 꽝 손을 언급했다.

꽝 손은 예전 리안과 함께 주식을 거래할 때 정확한 방향을 예측하고도 조금씩 늦어서 손해를 봤을 때 생긴 별명이었다.

“여기서는 그럭저럭 손해는 안 보고 있어.”

- 다행이네.

한국에서 나는 나름 선전을 하고 있었다.

내 거래 실력이 예전보다 많이 늘어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아무리 거래에 서툴어도 그건 전문 투자자들에 비해 서툰 것이었다.

한국에서, 특히 내가 거래하는 주식을 매매하는 투자자 중에는 개인 투자자 비중이 대단히 컸다.

물론 나는 이런 이야기를 리안에게 할 생각은 없었다.

“투자 이야기나 하자.”

- 다음 주 투자 방향은 어떻게 정하려고? 지금처럼 계속 갈 생각이야?

“연준이 다시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어.”

- 나도 알아. 지난주부터 이번 회의에서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고 기정사실로 생각하더라고······.

아마 이번 연준 정기회의에서 금리를 인하하지 않으면 주식 시장은 폭락을 면치 못할 것이다.

투자자들이 모두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상황에서는 연준도 금리를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대부분 사람이 금리 인하를 예상하는 상황에서 금리를 인하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 시장에 충격을 주기 때문이었다.

“맞아. 그래서 말인데 투자 방향을 다 숏 포지션으로 바꿔야 할 것 같아.”

- 연준이 금리를 인하하는데도 주가가 내려갈 것으로 생각하는 거야?

리안이 물었다.

금리 인하는 일반적으로는 주식 시장에 호재였다.

연준이 금리를 인하하면 주가가 오르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번에 금리 인하에도 주가가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이번에 금리가 인하되더라도 그건 사람들이 예상한 일이잖아. 이미 주가에 다 반영됐다고 봐야지. 보통 이런 경우에 그린스펀은 시장의 예상보다 인하 폭을 크게 잡아서 시장 예상을 벗어났는데······. 이번 경우는 그게 어렵잖아.”

그린스펀이 자본주의 시장의 신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러시아 경제 위기와 닷컴 버블이 붕괴했을 때 과감한 금리 인하로 시장의 불안을 잠재웠기 때문이었다.

그린스펀은 0.25% 정도 금리 인하를 예상했을 때 그보다 훨씬 금리를 인하하고는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방법을 쓸 수가 없었다.

- 하긴 그렇기는 하지. 이미 금리가 너무 낮잖아.

연준은 올해 들어서 연속적으로 금리를 인하했다.

현재 연준 기준 금리는 2%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을 생각하면 이번에 내릴 수 있는 금리는 기껏해야 0.25% 정도였다.

아무리 천하의 그린스펀이라도 시장의 예상을 벗어난 금리 인하를 할 수가 있는 여지가 적었다.

1.5%로 0.5%를 내릴 수도 있지만 이건 연준 스스로 금리 인하라는 정책 수단을 포기하는 일이었다.

일본이 바로 이런 경우였다.

일본의 중앙은행은 경기 침체에 대응한다면서 이자율을 0%에 가깝게 내렸고 사실상 그 이후 일본의 중앙은행은 유명무실해졌다.

정부의 재정 정책만으로 경기를 조절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일본이 장기 불황에 빠진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린스펀이 그런 악수를 둘 리가 없었다.

“그래서 말하는 거야. 금리 인하 호재는 이번 주 주가 상승으로 이미 반영됐다고 봐야 하는데 그 외에는 특별한 호재가 없잖아. 이번 주에 올라도 너무 많이 올랐어.”

이번 주 나스닥은 8.4%나 상승했다.

독일도 7.1% 상승했고 심지어 홍콩도 5.5%나 상승했다.

한 주에 이 정도 주가가 상승하면 경계 매물이 나오기 마련이었다.

세계 경제는 불황에서 막 빠져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불황에서 빠져나온 것은 아니었다.

- 알았어. 지수 선물을 숏 포지션으로 바꿀게.

“그리고 회의가 끝나면 2팀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지금 보유한 주식은 한 주 더 가지고 있으라고 전해 줘.”

다른 나라와는 달리 나는 타이완 시장은 상승할 여력이 더 있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민진당의 선전에 대해 타이완 국민들의 반응이 좋았고 반도체 기업의 실적도 나쁘지 않았다.

더욱이 가이닉스와 미아크론의 전략적 제휴도 타이완의 반도체 관련 기업에는 호재였다.

- 직접 전화 안 하고?

“특별한 내용도 없는데 굳이 걸 필요 없잖아.”

- 그래도 네 전화 기다리고 있을 텐데?

“자꾸 나를 2팀장이랑 엮으려고 하는 것 좀 그만둬.”

- 엮기는 누가 엮어.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인데······.

“전화 끊어. 일이 있으면 전화를 걸게.”

나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장샤오이와의 관계는 여전히 부담스러웠다.

나도 상대가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런 식으로 피하기만 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장샤오이는 배경도 부담스러웠고 지금에 와서는 배경이 아니더라도 일을 같이하는 사이에 이런저런 개인적으로 엮이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딱 잘라 상대의 호의를 거절하기도 쉽지 않았다.

2.

다음 날 내가 가이닉스와 대성전자 주식을 매매하고 있을 때 리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무슨 일이야?”

- 오늘 투자 회의에서 나온 이야기가 있는데 너도 알아 둬야 할 것 같아서.

“무슨 일인데?”

- 조민이 회의 중에 이야기했는데 조만간 엔화가 약세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대.

리안이 말했다.

조금은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외환 거래는 조민의 전문 분야도 아니었다.

“엔화가?”

- 그럴 가능성이 크다네.

“그걸 조민이 어떻게 알고? 무슨 근거로?”

- 얼마 전에 엔론이 파산했잖아. 그 일 때문이라는데······.

엔론은 지난 2일 드디어 파산 보호 신청을 했다.

엔론의 파산은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우리는 그 전에 공매도를 대거 청산해서 이런저런 비용을 제외하고 1억 8천만 달러를 벌어들였기 때문이다.

그 돈은 지금은 모두 타이완 주식 시장에 투자되어 있었다.

“그런데? 엔론 파산과 엔화 약세가 무슨 상관인데?”

나는 미국의 에너지 기업인 엔론과 일본 엔화 약세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 내가 들어 보니까. 일본 은행들이 가지고 있는 엔론 채권이 1천억 엔 정도 되는데······.

“그 정도나 되나?”

일본은 현재 세계 최고의 채권국이었다.

말 그대로 일본의 돈을 빌리지 않는 나라가 없었다.

엔론은 올봄만 해도 미국의 초우량 기업이었기 때문에 일본 은행들이 돈을 빌려주거나 채권을 샀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다만 기업 하나에 일본 은행이 1천억 엔, 달러로 8억 달러나 되는 채권을 매입했다는 것은 조금 과한 부분이 있었다.

- 응. 그 정도는 된다고 하더라고. 어쨌든 이 채권이 달러 채권이기 때문에 부도가 나면 엔화를 달러로 바꿔서 대손충당금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고······.

“그럴 수도 있겠네.”

- 그리고 엔론이 따로 엔화 표시 채권도 발행했는데 엔론이 채권을 통해서 받은 엔화를 다 달러로 바꿔 놓고 대신 나중에 달러 선물 매각을 걸어 놓았다고 하더라고.

“엔론이 부도가 났으니 선물 달러 매각이 공중에 떴겠군. 그럼 달러를 추가로 매입해야 하고 말이야.

- 맞아. 그래서 두 가지로 2천억 엔 정도를 팔아서 16억 달러 정도를 매입해야 한다더라고.

외환도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였다.

수요가 적어지면 가격이 내려가고 수요가 많아지면 가격이 올라간다.

리안이 전한 조민의 말대로라면 단기간에 16억 달러 정도가 급히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 달러를 사들이기 위해서 엔화를 사용할 테니 당연히 달러는 올라가고 엔화는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엔화의 약세는 전 세계 금융시장에 큰 영향을 줄 사건이었다.

역시 세상은 공짜가 없는 것 같았다.

파티가 끝나면 계산서가 날아오기 마련이었다.

엔론의 파산으로 큰돈을 벌어들였지만 엔론의 파산이 엔화 약세라는 대가로 돌아온 셈이었다.

“조금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네.”

- 그래, 알아보고 결과를 알려 줘.

이번 엔론 부도에서 보듯이 일본 자금은 세계 각국에 투자되어 있고 그건 투자회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상당수의 투자회사가 일본계 자금을 빌려서 투자하고 있었다.

만약 엔화 약세가 지속한다면 당장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을 비롯한 세계 주식 시장에도 영향을 줄 사건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는 엔화 약세가 사실인지 그리고 얼마나 계속될 것인지 알아볼 필요를 느꼈다.

다행히도 나에게는 일본 정부의 동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일본의 미국 대사관에서 일하는 단테 패트릭이었다.

단테 패트릭은 지금까지 일본 정부와 관련된 일을 전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 사정에 밝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