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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3. 불확실한 것은 언제나 나쁜 일이었다
1.
엔저를 경고한 리안과의 전화를 끊고 나는 하성철을 따로 불렀다.
하성철은 예전 홍콩 페레그린 채권 팀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해외 채권 매매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 중 하나는 바로 환율이었다.
현재 같은 금액이라도 그 나라 화폐로 발행된 채권이나 달러 표시 채권이나 엔화 채권이냐에 따라서 만기가 끝났을 때는 엄청난 금액 차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면에서 하성철은 외환 거래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었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인도네시아 외환 거래를 했을 때였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하성철이 물었다.
“홍콩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엔화 가치가 내려갈 수 있다고 하더군요.”
나는 내가 리안에게 들은 이야기를 하성철에게 해 주었다.
하성철이 놀란 표정을 짓더니 잠시 후 입을 열었다.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13억 달러가 전체 엔화 외환 거래 규모에 비하면 아주 큰 금액은 아니지만 시기가 시기이니 단기간에 달러를 확보하려고 할 테니 환율에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하성철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시기요? 혹시 연말이라서 그런 겁니까?”
“예. 아시겠지만 일본 은행들은 보수적인 면이 강합니다.”
“은행들은 어디나 비슷하지 않나요?”
일본 은행이 아니더라도 어느 나라나 은행은 대부분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기업이었다.
다른 사람의 돈을 받아 운용하는 만큼 정부의 감시를 받아야 하므로 어쩔 수 없었다.
“좀 더 심하죠. 같은 경우라도 미국 투자 은행들이라면 달러를 최대한 싸게 확보하려고 하겠지만 일본 은행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비용이나 손해를 최소화하려고 하기보다는 장부를 깔끔하게 정리해서 문제가 될 소지를 없애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월말이나 분기 말이라도 그럴 텐데 연말이라면 말할 것도 없죠.”
일본은 상당수의 은행이 파산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어느 나라보다 정부의 간섭도 심했다.
이번에는 엔론의 파산이라는 명분도 있었다.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되도록 빨리 달러를 확보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는 그럴듯했다.
“한마디로 엔론 파산으로 엔저가 될 수도 있다는 말씀이군요.”
리안을 통해 전해진 조민의 생각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하성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다만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나라의 환율도 마찬가지지만 엔저는 단순히 엔화에 대한 수급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하성철이 말했다.
그는 조심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렇겠죠. 환율이 단순히 수요와 공급만으로 결정된다면 환율 위기라는 것 자체가 없을 테니까요.”
환율이라는 것이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이상적이라면 소로스가 영란은행을 털어먹지도 못했을 테고 아시아 경제 위기도 없었을 것이다.
특히 환율은 각국의 정치경제적인 이해 관계가 연결되어 있었다.
시장의 수요 공급과 실제 환율이 차이가 날 수 있었다.
“그렇습니다. 특히 엔저는 일본 정부만이 아니라 다른 국가 특히 미국 정부의 용인이 필요합니다. 만약 미국의 용인이 없다면 엔저는 아주 일시적일 겁니다.”
결국, 엔저가 일시적이냐 아니면 지속하느냐는 미국이 어떤 생각을 가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의미였다.
일본 정부에 관한 이야기라면 전화로도 할 수 있지만, 미국 정부의 방침도 관계된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단테 패트릭에게 전화를 걸어서 들을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았다.
일본으로 단테 패트릭을 직접 찾아가 봐야 할 것 같았다.
“엔저에 대해서는 제가 더 알아보겠습니다. 하성철 씨는 한국에 남아서 엔저가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하성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자연스럽게 나온 표정이었다.
엔저가 왔을 때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국가가 어디일까?
두말할 나위 없이 한국이었다.
일본은 세계 최대 채권국임과 동시에 한국 주력 수출품의 경쟁국이기도 했다.
엔저가 지속하면 한국에서 자금이 일본으로 빠져나가고 한국 수출품의 대외 경쟁력이 약화된다.
일본 주식시장은 오를지 모르지만, 한국 주식시장은 하락한다.
1997년에서 1998년 한국을 휩쓸고 갔던 외환 위기의 원인 중에는 1990년대 중반 엔저가 오랜 시간 지속한 것도 있었다.
2.
나는 일본으로 가서 단테 패트릭과의 약속을 잡았다.
그를 만난 것은 이탈리아 요리 전문점이었다.
단테 패트릭은 비스테까 피오렌티나(Bistecca alla Fiorentina)를 주문했다.
비스테까 피오렌티나는 소고기 요리였다.
나는 그가 예전에 스테이크를 즐겨 먹었던 것이 떠올랐다.
“취향은 여전하시네요.”
사실 조금은 의외였다.
최근 일본에서는 연일 광우병 소 추가 발견에 관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예전에 아무리 좋아하는 요리였다고 소고기 요리를 피하는 것이 일반적 반응이었다.
“요즘 좀 불안하기는 하지만 조심만 하면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겠나.”
단테 패트릭이 음식을 앞에 두고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가? 자네가 일본까지 나를 찾아온 것은 이번이 처음 아닌가?”
“그런가요?”
우리가 일반 직장인도 아니고 정보 요원끼리 친분으로 만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은 아니었다.
“자주 좀 찾아오게.”
단테 패트릭이 비스테까 피오렌티나를 나이프로 자르며 말했다.
그는 입가에 가득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단테 패트릭은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내게 굉장히 친근한 표정을 지었다.
이유를 모르지만 어쨌든 단테 패트릭은 지위가 나보다 높았다.
상대가 친근하게 대하는데 사무적으로 대할 수는 없었다.
“그게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아서요.”
나는 나름대로 변명을 했다.
“요즘 바쁘지 않은 회사 사람이 누가 있겠나. 그나저나 일본까지는 무슨 일인가? 아무 일도 없이 자네가 찾아오지는 않았을 테고 말이야.”
단테 패트릭이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어쨌든 기분이 좋은 것 같았기 때문에 나는 바로 용건을 꺼냈다.
“제가 일을 하다가 엔저가 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혹시 그에 대해서 아시는 것이 있는지······?”
내 말에 단테 패트릭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엔저라······. 그런 이야기가 있기는 하지.”
“엔저에 대한 일본 정부와 본국의 입장이 나온 것입니까?”
나는 다시 물었다.
“일본 정부가 엔론 사태로 발생한 채권을 처리하면서 환율에 개입하려고 하는 것은 사실이네. 자네도 알겠지만 지금 일본 정부는 대대적인 경제개혁을 하려고 하고 있어. 그 개혁에 대한 일본 국민의 지지도 높고 말이야.”
단테 패트릭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이 오기 전 조사해 보니 고이즈미에 대한 지지율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지지율이 거의 80%대더군요. 연초에 모리 내각 지지율이 5%가 채 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의 지지율입니다. 경제는 오히려 지금이 더 나쁜데도 지지율이 더 높다니······.”
경제가 나쁘면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낮은 것이 상식이었다.
그런데 일본은 경제 상황이 나쁨에도 지지율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일본에 있는 나도 이해가 안 가는데 자네는 더하겠지. 일본 국민은 지금 총리인 고이즈미를 아주 좋아해.”
단테 패트릭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습니다.”
고이즈미 총리가 아니더라도 어떤 정치 지도자에 대한 지지율이 80%의 가깝게 나온다는 것은 정책을 떠나서 그 지도자를 좋아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수치였다.
고이즈미 당선에는 단테 패트릭과 내가 꽤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우리가 아니더라도 고이즈미는 시간이 문제였을 뿐 총리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런 경제 상황에서는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고이즈미가 다른 것은 몰라도 국민을 어떻게 다룰 줄 알더군. 신문을 통해서 정책을 발표하는 대신 방송을 통해서 직접 국민과 대화하는 쇼맨십도 뛰어나고······. 다른 미디어도 활용하는 데 뛰어나더군.”
“그렇겠죠.”
취임한 이후 반년이 넘은 상황에서도 유지되는 80%의 지지율은 그런 이유가 아니면 설명하기 어려웠다.
“고이즈미는 지금이 일본 경제와 정치를 바꿀 기회라면서 고통을 견디면 일본 경제가 나아져서 10년 전으로 되돌릴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지. 체질을 바꾸자면 지금까지 일본 정부에서 사용했던 대규모 토목공사 같은 인위적인 전통적인 경기 부양책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야. 문제는 일본 국민이 고이즈미의 개혁 약속을 너무 확실하게 신뢰한다
는 거야.”
“그게 문제라고요?”
정부의 정책을 국민이 신뢰한다는 것이 문제라는 이야기는 오늘 들은 이야기 중에서 가장 황당한 이야기였다.
“취임 이후 거의 반년 동안 자신은 인위적 경기 부양책을 쓰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이끌어 왔는데, 지금 일본 경제는 뭐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거든······. 물가하락, 불황, 막대한 공공 부채 여기에 부실 은행까지. 말 그대로 일본 경제는 총체적 난국이지. 얼마 전 추경이 통과되기는 했지만, 그거로는 부족해. 그럼 어떻게 해야겠냐?”
다른 나라라면 이런 상황에서 통화정책을 쓰겠지만 일본의 금리는 이미 마이너스 금리에 가까웠다.
경기를 회복을 위해 정부가 흔히 사용하는 재정 정책과 금리정책 모두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일본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다.
인위적인 환율 개입.
“그게 엔저라는 말입니까?”
“맞아. 그게 유일한 방법이지.”
“일본 정부 상황은 그렇다고 해도 본국도 엔저를 허락한 겁니까?”
하성철이 말했듯이 엔저는 일본 정부가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아니었다.
엔저에는 미국 정부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맞네, 이미 본국 재무부와도 이야기가 끝났네. 당장 며칠 후부터 조금씩 단계적으로 엔화 가치가 내려갈 거야.”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금리 인하 카드를 꺼내 든 상황에서 엔저를 허용하는 것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조치였다.
“폭이나 기간은요?”
“폭은 잘 모르겠고 적어도 내년 초까지는 엔저가 지속할 거야.”
단테 패트릭이 말했다.
이야기하는 것을 봐서는 아무래도 엔저의 분명한 정책 목표가 있는 것 같았다.
“본국이 엔저를 받아들이는 이유가 뭡니까?”
“난 자세히 모르겠는데 내년에 발행될 유로화와 관계가 있다고 하더군.”
“유로화 강세 때문이군요.”
유로화는 이미 출범했지만, 유로화는 아직 전산상으로만 존재하는 통화였지 아직은 실생활에서 쓰이는 통화는 아니었다.
하지만 바로 내년부터 유로화 지폐와 동전이 실제로 유통될 예정이었다.
이에 대한 기대감으로 유로화는 달러에 대해서 강세를 이어 가고 있었다.
다른 나라라면 자국 통화가 약세인 것이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달러는 기축통화였다.
달러가 어떤 화폐에 비해서 약세라는 것은 그것도 새로 출범하는 화폐에 그 기축통화 위치가 흔들린다는 의미였다.
미국 정부는 엔저를 허용함으로써 지금 당장 경제적 피해를 보더라도 엔화를 통해 유로화를 견제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만약 이런 이유라면 생각보다 엔저가 지속될 수도 있었다.
약간은 곤란한 상황이었다.
아시아 경제는 미국 경제도 미국 경제지만 일본 경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내가 머무는 한국은 더 그랬다.
투자 정책을 재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3.
일본에 온 목적을 달성한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식사를 끝난 이후 나는 단테 패트릭과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도 자네 꽤 바쁘겠지.”
“예. 뭐 그렇죠. 우리 일이 항상 바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바쁜데 큰일도 있었고요.”
큰일이란 당연히 911 테러를 의미했다.
그 이후로 CIA에서 하는 작전의 목표가 완전히 변경되었다.
“요즘 골치 아픈 일이 너무 많아. 그나마 일본은 무슬림 신자가 적어서 다행이지 다른 곳은 난리더군.”
“그래도 요즘은 전쟁이 마무리되고 있지 않습니까?”
말 그대로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은 마무리 국면이었다.
탈레반이 쫓겨난 아프가니스탄의 새로운 대통령도 정해졌다.
전쟁이 마무리라는 내 이야기에 단테 패트릭이 고개를 저었다.
“오사마 빈 라덴이 잡히지 않았는데 전쟁이 마무리된 것은 아니지. 탈레반도 여전히 산악 지대에서 항복하지 않고 산발적인 저항을 하고 있고 말이야.”
“어차피 알 카에다나 탈레반의 항복을 받을 생각은 아니지 않습니까?”
미국이 주도한 연합군의 항복 조건은 가혹했다.
오사마 빈 라덴과 주요 지휘관을 연합군에 인도하고 해산하라는 것이었다.
알 카에다와 탈레반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그렇기야 하지. 어차피 지금은 겨울이니 당장은 어렵겠지만 오사마 빈 라덴을 잡는 것은 시간문제야.”
“파키스탄으로 탈출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나는 내가 들었던 정보를 이야기했다.
“그렇더라도 마찬가지지. 파키스탄까지는 어떻게 도망갔을지도 모르지만 그래 봐야 거기서 다른 나라로 도망가는 것은 불가능해. 이른바 독 안에 든 쥐라고 할 수 있지. 지금 문제는 아프가니스탄이 아니라 중동이야.”
“그렇기는 하죠. 이번에 알 카에다를 붕괴시킨다고 해도 중동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제2의 알 카에다가 나타날 테니까요.”
알 카에다가 나타날 수 있는 배경은 중동, 그중에서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이었다.
911 테러 이후 중동 국가들은 그 테러에 협조를 약속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을 끝내 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중동 국가의 협조가 필요한 미국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을 중재하기 위해서 특사를 파견했다.
“그렇지. 하지만 요즘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단기간에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 같아.”
단테 패트릭의 말대로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관계는 말 그대로 점입가경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이스라엘의 군사 공격에 팔레스타인, 그중에서도 과격파인 하마스는 테러로 응답했다.
2주 전 예루살렘에서 하마스의 자살 폭탄 테러로 20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스라엘은 그나마 대화를 하던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수장인 아라파트와의 직접 대화를 아예 끊고 군사 공격에 나섰다.
“그래도 인도네시아나 필리핀에서 무슬림 쪽 세력이 최근에 좀 잠잠해진 것이 다행이지. 내가 알기로는 자네가 그 일에 꽤 큰 역할을 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단테 패트릭의 말에 나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큰 역할은요. 그냥 작전 초반에 조금 관여한 것뿐입니다.”
“초반이라······. 일본에서 했던 정도를 생각하면 조금은 아닌 것 같은데?”
“일본에서 일이야 단테 패트릭 선임 요원이 하신 일이죠. 보고서에도 그렇게 나와 있지 않습니까?”
단테 패트릭이 웃으며 말했다.
“나를 남의 공을 가로챈 사람으로 만드는군. 보고서에는 제대로 쓰지 못했지만, 자네가 한 일은 내가 다 기억하고 있네. 내가 내년에 본부로 돌아가면 자네가 한 일에 대해 맞는 보답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네.”
단테 패트릭의 말에 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본부로 돌아가십니까?”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나를 잘 보신 분들이 있어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네. 자네 공이 꽤 크지.”
단테 패트릭이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예.”
나는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돌덩어리를 얹은 것처럼 답답했다.
단테 패트릭이 본부로 돌아가는 일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알 수 없었다.
불확실한 것은 언제나 나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