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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목적을 위해서는 사람들은 기꺼이 눈을 감는다
1.
이반 부카드가 돌아간 후 나도 필리핀을 떠났다.
목적지는 한국이 아닌 홍콩이었다.
파키스탄의 일도 신경 쓰이고 서울보다는 아직은 홍콩이 마음이 편했다.
서울에 있는 것보다 홍콩에 있는 것이 대응하는 게 낫다고 판단도 있었다.
크리스마스 휴가 동안 홍콩에는 많은 파티가 열렸다.
몇몇 파티에는 참석했지만 내 관심은 파키스탄에 향해 있었다.
이미 지난 1년 동안 CIA와 꽤 많은 일을 했었고 그 작전 과정에서 여러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렇지만 그건 작전을 하는 와중에 발생한 희생이었다.
하지만 이번은 이전 작전들과는 순서가 완전히 반대였다.
파키스탄군 정보부의 위장 요원인 내무부장관 동생의 목숨을 노린 것은 아니지만 경호원들은 희생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내가 이반 부카드에게 제안한 작전은 아무리 포장해도 테러였다.
목적을 위해서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일에 눈을 감는다는 점에서는 다른 테러범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죽었어?”
뉴스를 찾아보고 놀란 나는 곧바로 보안 회선으로 이반 부카드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뉴스를 보니 파키스탄 내무부장관의 동생이 카슈미르 무장 단체에 살해당했다고 나와 있던데요?”
- 그렇게 됐네.
“그렇게 되다니요?”
- 자네 계획을 바탕으로 우리가 계획을 짠 것은 우리지만, 이번 일을 주도한 것은 네이비실이네.
“그런데요.”
- 군 고위층에서는 그냥 공격당한 것으로는 약하다고 생각한 것 같아.
“그게 전부입니까?”
석연치 않았다.
정보기관의 간부를 암살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큰 일이었다.
- 뭐,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에서 파키스탄의 협조에 대한 불만도 있었던 것 같고······.
“그게 말이 됩니까? 내무부장관의 동생이지만 파키스탄군 정보부의 간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인물을 겨우 그런 이유로 암살하다니요?”
- 일단 그렇게만 알고 있게.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서 하기는 어렵네.
이반 부카드가 말했다.
생각처럼 아무래도 이번 암살에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 계획을 이렇게 마음대로 변경하다니······.
- 그래도 성공적이지 않나. 뉴스에서는 인도 테러 이후 파키스탄 경찰이 파키스탄 카슈미르 민병대를 탄압한 것에 대한 반발이라고 보고 있네.
“하지만······.”
차마 파키스탄군 정보부는 어쩌려고 이런 행동을 했느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파키스탄군 정보부는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평가를 받는 정보기관이었다.
어느 정도 과장됐을 수도 있지만, 소문의 반만 되어도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파키스탄 내에서 벌어진 테러에 대해서 진상을 파악하지 못할 정도의 기관이 아니었다.
정보 세계는 냉정한 계산으로 움직이는 곳이었다.
일대일이 원칙이었다.
우리 요원 한 명이 희생되면 상대편 요원 한 명을 희생시키는 원칙이었다.
내가 세운 작전으로 그런 곳의 간부가 암살당한 것이다.
암살을 하려고 한 것은 아니라는 말을 믿어 줄까?
파키스탄에는 절대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자네 내년 초에 인도네시아에 한 번 왔으면 하네.
“인도네시아요?”
- 그래. 아까 못한 이야기도 그렇게 자네에게 부탁할 일도 있어서 말이야.
썩 내키지 않았다.
단순한 위협이 암살로 바뀌었는지는 궁금했다. 그렇지만 이반 부카드와는 뭔가 계속 맞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파키스탄 지부로 간다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 그랬는데 몇 년 여기 더 있어야 할 것 같아. 새로운 지시가 내려와서 말이야.
“무슨 중요한 일이 있나 보네요.”
- 중요한 일이지. 자세한 이야기는 자네가 자카르타로 오면 하도록 하지.
“확실히 간다는 대답은 못 하겠습니다. 따로 할 일이 있어서요.”
나는 일단 직접적인 대답을 피했다.
- 알겠네. 본부에서도 주시하는 사건이기는 하지만 급한 일은 아니니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네.
본부까지 언급하는 것을 보니 나를 꼭 데려갈 생각인 것 같았다.
“······.”
내무부장관의 동생이 암살된 직후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진심인지는 모르겠으나 동생의 암살에 분노한 파키스탄의 내무부장관은 경찰력을 총동원해서 카슈미르의 민병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암살 바로 다음 날 인도 국회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두 단체의 지도자를 체포했고, 주요 조직원에 대한 체포에 들어갔다.
그리고 단체가 소유한 은행 계좌도 동결했다.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도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인도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서 인도가 증거를 제시하면 체포된 단체의 조직원을 인도에 송환할 수 있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곧 벌어질 것 같았던 인도와 파키스탄 두 핵보유국 사이의 전쟁 위험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이런 파키스탄 정부의 행동은 국제사회의 환영을 받았지만, 파키스탄 내부적으로는 강한 반발을 가져왔다.
하지만 나는 더는 파키스탄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남미의 경제 대국인 아르헨티나가 1,550억 달러나 되는 대외 채무에 대해 지급유예, 즉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것이다.
2.
크리스마스 휴가 기간이었지만 나는 팀원들을 모두 회사로 불러들였다.
가장 먼저 온 것은 브레이크였다.
“호주로 서핑하러 간다고 하더니 홍콩에 있었나 보네요.”
브레이크는 가벼운 반소매 차림이었다.
12월 말의 홍콩은 반소매만 입고 다니기에는 조금 추운 날씨였다.
“막상 가려고 하니 피곤하더라고요. 팀에 합류하고 돈은 많이 벌었지만, 밤낮이 바뀌는 생활을 하다 보니······.”
브레이크가 가벼운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런 사람을 휴일에도 회의하자고 불러들였으니······. 제가 무슨 악덕 고용주라도 된 것 같네요.”
내 말에 브레이크가 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의미로 한 말은 아닙니다. 요즘 같은 시기에는 해고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데 저는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는데요.”
지난 1년은 투자은행에 근무하는 사람들로서는 어려운 시기였다.
대부분 주요 투자은행에서 적게는 10%에서 25% 정도의 직원을 해고했다.
당연히 여기 홍콩 투자회사들도 상당수 직원이 해고되었다.
홍콩 금융의 중심가인 센트럴에는 크리스마스임에도 우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런 상황에서 브레이크가 성과급으로 받은 돈은 월스트리트 대형 투자은행의 임원급이었다.
“그런 자세 마음에 드네요. 저 아는 분은 1년에 성과급으로만 1천만 달러를 벌었다고 하더군요. 브레이크 씨도 더 노력하면 불가능할 것 같지 않네요.”
나는 브레이크를 보며 진짜 악덕 고용주가 된 것 같은 말을 했다.
1년에 1천만 달러를 벌어들인 사람은 에디 미첼이었다.
이것도 그가 메릴린치에 있을 때 이야기였다.
도이치뱅크에서는 그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물론 그는 그만한 자격이 있었다.
독일에 국한됐던 도이치뱅크의 투자 부분을 국제적인 위상으로 끌어올렸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그가 죽은 때가 바로 이맘때였다는 것이 생각났다.
엄청나게 오래된 것 같은데 겨우 1년이었다.
브레이크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리안과 조민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이게 뭔 일이야. 하필 크리스마스와 연말 휴가 기간에······.”
리안은 회의실에 들어오면서 불평을 늘어놓았다.
“한가한 소리 한다. 저기 방송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냐?”
내가 가리킨 CNN 뉴스에서는 거리를 가득 메운 아르헨티나 시위대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어차피 저 나라가 저 모양 저 꼴이 된 것이 어제오늘 일도 아닌데 뭐······. 진작에 저런 꼴 될 줄 예상했잖아.”
“그렇기는 하지만······.”
아르헨티나 경제는 몇 년 전부터 좋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아르헨티나의 몰락은 군사정부 때부터 내려온 부채를 감당하지 못한 결과였다.
그중 가장 최악은 물가 폭등과 외채를 갚겠다면서 달러와 아르헨티나 페소를 1 대 1로 교환할 수 있게 하는 페그제도와 무분별한 민영화를 추진한 것이었다.
페그제도는 90년대 말 미국 경제 호황과 맞물린 달러 강세로 아르헨티나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켰고 무분별한 민영화는 물가 폭등을 가져왔다.
기본적인 공공서비스까지 민영화했지만 더는 민영화해서 팔 기업이 없어지자 아르헨티나에서 자본이 급속히 빠져나갔다.
작년 내내 IMF가 몇 번의 자금을 지원했지만 빠져나가는 외화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리안과 같이 온 조민이 끼어들었다.
“우리 투자와 아르헨티나 모라토리엄은 별 상관이 없지 않아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우리가 투자하는 주요 투자처는 아시아와 미국 유럽이었다.
아르헨티나가 파산한다고 해서 큰 영향은 없었다.
“없는 것은 아니죠. 달러와 페그로 묶인 것은 아니지만 중국과 홍콩 모두 달러와 사실상 고정환율을 유지하고 있잖아요.”
“그렇기는 하지만 큰 영향 없을 것 같은데요? 위안화는 오히려 저평가되어 있잖아요.”
생각해 보니 그도 그랬다.
저평가되지 않았다고 해도 현재 중국의 대외 부채 수준과 경제 성장률이라면 큰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아르헨티나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는 소식에 급히 불러들였지만 당장 큰 영향을 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휴가 중에 사람들을 불러 놓고 다시 돌려보내는 것도 모양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자세히 살펴볼 필요는 있어요. 이미 휴가 전부터 아르헨티나 사태로 주가가 내려가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기는 하죠.”
고개를 끄덕이던 조민이 고개를 돌려 리안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리안이 물었다.
“연휴가 끝나고 26일에 시장이 개장되면 투자 포지션을 상승으로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아.”
“소문에 사고 뉴스에 파는 것의 반대인가?”
“그야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문에 사고 뉴스에 파는 것은 호재일 경우였다.
이 경우는 그 반대였으니 투자 포지션을 역으로 가져가는 것이 맞았다.
나는 말을 이었다.
“1월 1일에는 유로 실물 화폐가 도입되잖아. 그리고 저기 뉴스를 봐.”
내 이야기에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벽에 걸린 CNN 뉴스로 향했다.
텔레비전에서는 백화점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에 이브에 아르헨티나 국민이 이대로는 못 살겠다고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뉴스 다음으로 백화점을 가득 채우고 있는 미국 뉴욕 백화점을 사람들의 인터뷰가 나오고 있다.
“미국 경기가 회복되는 건가?”
리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네.”
아르헨티나의 현실과는 달리 세계 경제는 회복되고 있었다.
3.
휴가가 끝나고 다른 팀원들이 투자 포지션을 바꾸는 동안 나는 장샤오이를 만났다.
타이완의 선거가 끝나고 시간이 지났으니 이제 오래 연기됐던 중국 투자를 다시 시작할 시간이었다.
“타이완을 통해서 자금을 투자하는 계획은 변함이 없는 건가요?”
장샤오이가 물었다.
“예. 에버그린에서 도움을 주기로 했습니다.”
지난번 타이완 선거 전에 나는 에버그린을 도와서 주식을 매입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 그에 대한 대가로 자금 출처를 감출 생각이었다.
내 이야기에 장샤오이가 썩 내키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에버그린이라면 그 천슈비엔 타이완 총통의 경제자문관이 회장인······.”
장샤오이는 예상대로 타이완 독립을 주장하는 집권 여당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타이완이 중국에 투자한 자금이 600억 달러입니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타이완 사업가가 5만 명이 넘고요.”
“글쎄요. 저는 지금에 와서 굳이 타이완을 통해서 투자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네요.”
장샤오이가 왜 갑자기 이렇게 나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리고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자동차 면허 건은 생각보다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자동차 부품 공장을 지어도 판로가 없고요.”
장샤오이가 말했다.
그녀의 태도는 지금까지와도 다르고 꽤 강경했다.
뭔가 잘못되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