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178화 (179/270)

(178)

#179. 모든 일에는 처음이 있다

1.

장샤오이는 완강하고 강경한 태도로 중국 투자에 반대하고 나왔다.

이런 그녀의 태도 변화에 나는 당황해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동안 나에게 호의적인 모습을 장샤오이였기 때문에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예정된 투자였다.

에이펙 회의와 타이완의 선거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집행되었을 투자였다.

그런 투자를 장샤오이가 갑자기 반대하고 나온 것이다.

잠시 내가 천슈비엔 타이완 총통의 측근인 에버그린을 통해 투자하는 것 때문인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 정도 이유라면 말했을 것이다.

“일단 장 팀장님의 생각은 알겠습니다. 가서 회의를 해 보고 결론이 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장샤오이는 짧게 대답했다.

나는 결국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돌아와야만 했다.

내가 뭔가 잘못했나 하는 생각부터 내가 CIA에 근무하는 것을 알아냈나 하는 생각까지 온갖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장샤오이는 태도가 강경할 뿐 나에게 특별히 불만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리안을 찾아갔다.

“너 혹시 2팀장에 대한 소식 들은 것 있어?”

“장 팀장? 왜 무슨 일이라도 있어?”

리안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아니······. 오늘 찾아갔는데 꽤 오래 이야기가 오갔던 중국 투자를 연기하자고 하더라고······.”

“그 자동차 부품 공장 말이야?”

리안이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맞아, 그 투자. 자동차 부품 공장만은 아니지만······.”

내가 중국에 투자하기로 한 금액은 1억 5천만 달러였다.

원래 투자하려던 금액은 1억 달러 정도였지만 지난 기간 동안 타이완 증시의 호황으로 5천만 달러 정도 늘어나 있었다.

계약한 회사도 없는 상태에서 이 금액을 모두 자동차 부품 공장 건설에 쏟아부을 생각은 없었다.

자금을 공장 설립 명목으로 중국으로 일단 들여 가서 이런저런 투자를 할 생각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별것 없는데? 왜 그러지?”

“그걸 알면 내가 너한테 찾아와서 묻겠냐?”

“나는 아는 것이 없어. 일단 내가 아저씨에게 물어볼게.”

카이 황은 현재 홍콩에 없었다.

리안은 카이 황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 아는 것이 있는지 물었다.

전화를 끊은 리안이 입을 열었다.

“아저씨도 들은 것이 없다는데······.”

“그래?”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공장 건설을 포기할 거야?”

“글쎄······.”

“이번에 세우려는 태국 자동차 부품 공장의 기술력이 꽤 괜찮다면서? 그럼 굳이 장 팀장을 통해서 투자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야? 내가 다른 사람 알아봐 줄까?”

리안이 물었다.

아직 계약한 곳은 없었지만, 중국의 자동차 산업은 이제 걸음마 단계였다.

좋은 부품이 있다면 계약을 따내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특히 꽌시가 있다면 말이다.

리안의 말에 마음속으로 갈등이 생겼다.

이번 중국 투자는 나만 관계된 것이 아니었다.

태국의 리레이에게 내가 먼저 제안한 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예정보다 늦어졌는데 기약 없이 미뤄진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고민이 되기는 했지만 나는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아니, 됐어. 굳이 다른 사람 통해서 투자하고 싶지는 않아.”

나는 일단 장샤오이를 믿어 보기로 했다.

어차피 꼭 중국에 투자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태국의 리레이에게는 양해를 구하면 그만이었다.

장샤오이는 지금까지 나에게 호의적이었다.

반대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럼 그렇게 해.”

“오늘이 지나면 이제 네가 팀장인가?”

이틀 후 1월 2일부터 리안이 팀장 자리를 맡기로 되어 있었다.

내가 한국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홍콩을 비우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이유는 사실상 W&R과 합친 류오린의 아시아 3팀을 리안 중심으로 개편하는 작업이었다.

“아니지.”

리안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팀장이 되는 것은 다음 첫 출근부터이니 연휴 동안은 네가 여전히 팀장 아닌가?”

“그런가?”

“누가 팀장이든 상관있나? 어차피 거래도 없는데······.”

리안이 말했다.

2.

1월 2일.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나는 투자 회의에 참석했다.

리안은 회의실에 들어가기 전에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매일 하던 회의인데 정식 팀장으로 한다니까 조금 떨리네.”

리안은 긴장한 듯 표정이 굳어 있었다.

“팀장이 뭐라고 떨려? 네 말대로 나 없을 때 네가 항상 진행했던 회의인데.”

“글쎄? 아마도 이번 팀장을 맡는 게 사실상 나나 우리 가문이 전면에 나서는 전초전이나 마찬가지여서가 아닐까?”

리안은 다양한 표정을 지으며 얼굴 근육을 풀었다.

나와는 팀장에 대해 가지는 의미가 다른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내가 팀장이라는 직위를 너무 가볍게 여겼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야 다른 팀장들의 간섭을 피하고자 맡은 직책일 뿐 무슨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

우리 둘은 나란히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가 시작하고 리안이 나를 불렀다.

“에드릭 부팀장님!”

그는 어느새 한껏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인위적인 표정이었다.

아마도 억지로 저런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다.

“예?”

“투자 현황 보고해 보세요.”

나는 리안을 한번 노려보고는 서류를 집어 들었다.

말투는 조금 다르지만 내가 예전에 리안에게 시켰던 일이었다.

“우선 아르헨티나 임시정부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고 26일을 기점으로 선물 투자한 지수가 모두 상승했습니다.”

“현재 팀이 관리하는 투자금 규모가 어떻게 되죠?”

“팀장님이 관리하시는 투자금의 규모는 지난주 기준으로 9억 3,500만 달러, 브레이크 씨가 관리하는 자금은 2억 2,500만 달러, 조민 씨가 관리하는 자금은 닛케이와 코스피가 각각 1억 5,000만 달러와 1억 2,000만 달러입니다. 그 외에 따로 타이완에 투자하고 있는 자금이 2억 8,000만 달러와 1억 5,000만 달러입니다. 여기에 제가 따로 한국에 투자하고

있는 자금이 1억 4,000만 달러 정도 됩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한 2억 8,000만 달러는 본래 엔론 공매도에서 벌어들인 투자금이었고 1억 5,000만 달러는 중국 자동차 부품 공장을 위해서 따로 빼놓았던 투자금이었다.

“다 합치면 얼마죠?”

리안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옆에서 듣고 있던 조민이었다.

“모든 투자금은 합치면 현재 우리 팀이 투자하고 있는 자금은 20억 달러입니다.”

“그럼 카이 황 대표께서 직접 관리하시는 4억 4,000만 달러를 합치면 24억 4천만 달러군요.”

“맞습니다.”

처음 종잣돈이 성과급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수리로 4,000만 달러를 빼고도 1년 동안에 24억 달러를 넘게 벌어들인 셈이었다.

여기에 더해서 AAM의 자금도 3억 달러나 있었고 따로 러시아에 투자하는 RAM도 있었다.

RAM은 우리가 신경을 쓰지 못하는 사이에도 차곡차곡 투자금이 늘어나고 있었다.

회의를 들어오기 전에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내가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 금액이었다.

초보자의 행운이라고 하기는 너무도 운이 좋았던 1년이었다.

“아시겠지만 여름에 3팀은 류오린에서 독립해서 W&R에 합류할 예정입니다. 그 전에 일단 투자금을 재조정하겠습니다. 에드릭 부팀장님!”

리안이 다시 나를 불렀다.

“재조정된 투자금 배분을 이야기해 주세요.”

“예. 현재 팀이 위탁 관리하는 투자금을 미국 투자를 맡고 계시는 리안 팀장님이 9억 달러, 브레이크 씨와 조민 씨에게 각각 3억 6천만 달러씩 배분하도록 하겠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 브레이크와 조민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두 사람 모두 투자금이 거의 1억 달러 이상 늘어난 것이다.

나는 두 사람을 보며 말을 이었다.

“브레이크 씨는 미리 말씀드린 대로 이번 투자부터 영국과 독일에 각각 1억 8천만 달러씩 나눠서 투자하시면 됩니다. 조민 씨도 역시 일본, 한국, 타이완에 각각 1억 2천만 달러씩 투자하시면 되고요.”

3억 6천만 달러라면 예전이라면 두 사람이 관리하기 버거운 금액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W&R이 최근 해고된 홍콩의 외국계 투자 회사 직원을 대거 채용한 상태였다.

두 사람 모두 각각 자신의 팀을 이끌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조민과 브레이크 두 사람이 나를 보며 말했다.

둘 다 투자금을 증액하는 결정을 내린 사람이 나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내가 W&R의 대주주이자 주식 대부분을 가진 회사를 대리한다고 알고 있었다.

물론 두 사람은 정확히 내가 얼마나 많은 지분을 가졌는지는 알지 못했다.

현재 내가 가진 지분 87%는 예전보다 20개가 넘는 회사로 분산되어 있었다.

남은 자금은 카이 황이 예전처럼 4억 4천만 달러의 투자금을, 내가 3억 8천만 달러 관리할 예정이었다.

내가 투자금이 가장 작기는 하지만 나는 따로 AAM의 3억 달러를 관리하고 있으니 리안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투자금을 관리하는 셈이었다.

여기에 따로 필리핀과 태국 그리고 인도네시아 투자까지 관여하고 따로 CIA에서 내려오는 임무까지 하려면 몸이 두 개여도 모자랐다.

“다음 주에도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주가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브레이크 씨와 조민 씨는 이런 예상을 바탕으로 투자를 해 주시면 됩니다.”

회의가 끝나고 조민과 브레이크는 바쁘게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리안의 경우는 투자금 일부인 3,500만 달러 정도를 정리하면 됐지만, 조민이나 브레이크는 할 일이 많았다.

투자금 비중도 조정하고 타이완과 영국이라는 새로운 시장에서 투자해야 했다.

조민의 경우는 내가 관리하는 타이완 계좌를 넘겨주면 됐지만, 브레이크는 런던 주식 시장에 새롭게 투자해야 했다.

오늘 할 일이 아주 많았다.

3.

두 사람이 나간 회의실에는 이제 나와 리안 두 명뿐이었다.

“홍콩에는 언제까지 있을 거야?”

리안이 물었다.

“이제 할 일도 다 했는데 서울로 가 봐야지.”

실제로는 한국에 갔다가 바로 인도네시아로 떠나야 했다.

지난번 이반 부카드와의 통화가 내내 마음에 걸렸다.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참, 카이 황 씨는 파키스탄에서 언제 귀국하셔?”

카이 황은 지금 파키스탄에 있었다.

지난주만 해도 전쟁 위협이 있어서 위험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중국 정부가 권한 투자였다.

상황을 이유로 투자를 하지 않더라도 직접 가 봐야 할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 투자 여부를 결정하려면 누군가는 파키스탄에 가 봐야 했다.

리안이 갈 수 없으니 갈 수 있는 사람은 카이 황뿐이었다.

“주말에. 그나마 전쟁 위험이 낮아져서 다행이지.”

“그래서, 투자하려고?”

“아저씨가 돌아오고 난 다음에 이야기를 나눠 보고······.”

“전에 이야기했지만, 위험한 곳이야. 하지만 금광에 투자하면 손해는 보지 않을 거야.”

“너 무슨 예전부터 투자하라면서 광산 이야기만 한다. 특히 금광 말이야.”

“중국인들 금 좋아하잖아.”

중국인들은 금을 좋아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겉치레나 체면을 중시했고 금은 그런 겉치레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는 수단이었다.

“뭐······. 그렇기는 하지.”

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중국 경제 성장률을 보면 중국에만 매년 중산층이 수백만에서 수천만 명씩 늘어나는 셈이잖아. 그 사람들이 가장 먼저 그렇게 늘어난 재산을 과시하기 위해서 뭘 사겠어.”

“그게 금이라는 거야?”

“내가 본 중국 사람은 그런데 아니야?”

리안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입을 열었다.

“다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데······. 반박할 수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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