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179화 (180/270)

(179)

#180. 행동이 그 사람을 만든다.

1.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정윤호, 하성철을 불러들였다.

이전에 이미 말해 둔 이야기의 반복이었다.

“올해부터 한국 지사는 독립 법인으로 운영됩니다. 한국 지부의 이름은 W&R 코리아입니다. 한국 지부장은 정윤호 씨가 맡아 주십시오. 하성철 씨는 지금처럼 투자 부분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투자하시면 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정윤호의 대답은 약간은 형식적이었다.

이미 전에 이야기해 둔 상태였고, 대표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명목상에 불과했다.

한국 지부를 독립 법인으로 전환하는 것이나 지부장을 정윤호가 맡는 것은 예정된 절차였다.

대표인 정윤호가 권한을 가진 부분은 여전히 부동산 투자뿐이었다.

더구나 내가 한국에 머무는 이상 실질적인 대표는 바로 나였다.

지분은 49%가 W&R 홍콩 본사였고 나머지 51%는 내가 홍콩에 세운 회사들이었다.

W&R도 내가 대주주이기는 했지만 조금 더 자율성을 가지기 위해서였다.

정윤호가 한국 지부장을 맡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중국이나 홍콩도 마찬가지지만 한국도 인맥이 중요한 사회였다.

국정원 직원이었던 정윤호가 한국에서 인맥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외국인인 나나 하성철보다는 나았다.

무엇보다 나는 아직 류오린의 직원이었기 때문에 별개의 법인인 W&R이든 W&R 코리아든 직원조차 될 수 없었다.

반면 정윤호는 국정원 시절에 알던 사람들이라도 있었고 학연이나 지연 그리고 혈연도 만들자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없을 때 이런 인연을 맺는 것이 어렵지, 성공하면 본인이 원하지 않더라도 찾아오는 것이 이런 인맥이었다.

무엇보다 정윤호에게 대표를 맡긴 이유는 한국 법인 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정윤호도 부동산 투자를 성공적으로 하고는 있지만, 주식에서 나오는 수익이 워낙 압도적이었다.

“한국 법인의 자본금은 현재 1억 4천만 달러입니다만 곧 추가 투자가 있을 겁니다.”

“투자라면 얼마나?”

정윤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현재 한국에 투자된 자금 규모는 1억 4천만 달러로 늘어 있었다.

그중 4천만 달러는 부동산에, 1억 달러는 주식에 투자되어 있었다.

투자금 규모는 주식에 투자된 금액이 2.5배 많지만, 자산 규모로 따지면 오히려 부동산이 많았다.

부동산은 거액의 대출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수익률만 따지면 주식에서 얻은 수익률이 압도적이었다.

“내일 1억 달러를 한국에 들여올 예정입니다.”

1억 달러라는 말에 나를 바라보는 정윤호, 하성철 두 사람의 눈빛이 반짝였다.

홍콩에서 투자금을 재조정한 후에 내게 배분된 투자금은 3억 8천만 달러였다.

하지만 그중 1억 4천만 달러는 한국에 투자된 금액으로 내가 실질적으로 권한을 재량권을 가진 자금은 2억 4천만 달러가 전부였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1억 4천만 달러는 본래 중국에 투자하기 위해 빼 둔 금액으로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한국에 추가 투자하려는 1억 달러는 W&R의 투자금 중에서 내가 가용할 수 있는 전부였다.

“두 분께 각각 5천만 달러씩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5천만 달러를 맡기겠다는 말에 두 사람이 동시에 감사 인사를 했다.

현재 한국은 돈이 있으면 돈을 벌 기회가 많은 시기였다.

한국의 부동산 가격은 정부의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로 빠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하루가 지나면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말이 시중에 돌고 있었다.

주가 상승률은 더 놀라웠다.

작년 한국의 주가도 러시아를 제외하면 주요국 증시 중에서 가장 많이 상승했다.

상승률은 무려 43%였다.

심지어 우리 수익률은 그 몇 배였다.

“정윤호 대표님!”

“예.”

“추가 투자된 5천만 달러는 당장 수익이 없더라도 조금 장기적인 투자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장기 투자라면?”

“아파트나 토지 같은 것요.”

지금까지 정윤호는 주로 빌딩이나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 상업용 건물 위주였다.

경제가 회복하고 있었다.

공실률이 낮다면 임대료를 통해 이자를 어느 정도 보존할 수 있는 투자였다.

그렇지만 부동산 투자에서 진짜 대박은 개발을 통해 얻는 경우가 많았고 그런 개발에 필요한 부동산은 현재 수익성이 낮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 내가 한국에 진출할 때 투자한 금액은 2천만 달러 정도였다.

그나마도 그중 절반이 조금 안 되는 돈이 현재 우리가 본사로 사용하는 건물을 사들이는 데 사용됐다.

건물을 추가 매입하려면 아무리 낮은 이자로 대출을 받더라도 이자를 갚으려면 임대 수익이 있는 부동산에 투자가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이번 추가 투자도 투자지만······.

투자 부분과 합치면 현금성 자산으로 분류되는 자산만 2억 달러, 2,600억 원이 늘어난다.

부동산을 구매할 때 대출에서 특혜 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는 규모였다.

“그렇지 않아도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조사해 놓은 곳은 있습니다.”

“역시······.”

“그동안은 여력이 없었습니다만 이제는 다른 곳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해 주십시오.”

나는 정윤호에게서 하성철에게 고개를 돌렸다.

“추가 자금이 들어오면 앞으로 한동안 가이닉스와 사성전자를 집중적으로 매입해 주십시오.”

“괜찮겠습니까? 주가가 회복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엔고가 계속되고 있는데요?”

하성철은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면서 사성전자와 가이닉스의 주가도 가판은 상승세를 보였었다.

그렇지만 엔고는 한국 경제 경쟁력에 악재였다.

더구나 작년 한국의 주가가 43%나 올랐다는 것은 어느덧 한국 주식 시장의 큰손이 된 외국인 투자자들이 시세 차익을 얻고 빠져나갈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엔고의 영향은 지난달에 어느 정도 반영되었고 무엇보다 경기가 나쁠수록 대형주에 투자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더구나 미국 정보산업 분야 기업 실적이 괜찮으니 반도체 관련 주식 전체가 전망이 나쁘지 않고요.”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매수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성철이 대답했다.

그동안 내가 보여 준 성과가 있으니 내 지시를 바로 받아들였다.

지시를 내린 나는 두 사람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한국에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조금 그렇기는 하지만 내일부터 한동안 자리를 비울 예정입니다.”

다시 자리를 비운다는 말에 정윤호와 하성철이 눈을 크게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다시 출국하신다는 말입니까?”

“일이 그렇게 됐네요. 두 분만 믿겠습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윤호와 하성철은 고개를 돌려 상대를 바라보았다.

내게 말은 하지 못하지만 둘 다 뭐 이런 일이 있냐 하는 표정이었다.

오자마자 다음 날.

그것도 한국 법인을 만들고 다시 한국을 떠나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이번 출국은 나도 어쩔 수 없었다.

2.

다음 날 나는 자카르타로 향했다.

서울에서 자카르타는 비행시간만 8시간 가까이 걸리는 꽤 먼 거리였다.

오전에 출발했는데도 도착했을 때는 오후였다.

당연히 자카르타에 내렸을 때는 조금도 움직이기 싫을 정도로 피곤했지만 나는 짐을 호텔에 두고 곧바로 이반 부카드와의 약속 장소로 향했다.

“이번에는 자네가 자카르타도 직접 왔군.”

이반 부카드는 지난번 내가 필리핀으로 자신을 부른 것을 입에 올렸다.

그때 일이 상당히 기분이 나빴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법이죠. 이번에는 제가 목이 마르네요.”

내가 자카르타에 온 것은 이반 부카드의 요청도 요청이었지만 지난번 작전이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자네 갈증을 채워 줄 수 있을지 모르겠군.”

“돌리지 않고 묻겠습니다. 지난번 작전이 변경된 이유가 뭡니까? 제 원래 계획은 내무부장관의 동생인 정보부의 관리를 암살하는 것이 아니라 습격만 하는 정도였는데요.”

이반 부카드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가 문제인가? 자네 계획 덕분에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전쟁이 멈추지 않았나? 그럼 된 것 아닌가?”

“정보부에 경고하는 동시에 인도 의회에 테러를 벌인 것으로 추측되는 단체를 단속할 명분을 얻는 정도는 습격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나요? 실수로 내무부장관 동생이 죽은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분명 지난번에 그게 아니라고 말씀하셨죠.”

“자네 말이 맞아. 그자가 죽은 것은 실수가 아니야.”

나는 다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암살은 자칫 역풍을 가져올 수도 있었다.

아니, CIA가 관련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분명 문제가 생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베테랑 요원인 이반 부카드가 모를 리가 없었다.

알면서도 암살을 진행한 것이다.

“이유가 뭡니까? 저는 들을 자격이 있을 것 같은데요?”

내 계획을 바탕으로 실행된 일이었다.

“지난달 22일에 파리에서 출발해서 마이애미로 향할 예정이었던 아메리칸 에어라인에서 테러 시도가 있었네. 리처드 레이드(Richard Reid)라는 파키스탄 태생의 영국 국적자가 폭탄이 설치된 신발을 신고 타려다가 적발되었지.”

테러가 시도된 것은 22일, 암살이 행해진 것은 23일이라는 이야기였다.

“그 테러 미수 사건이 이번 암살과 관련된 것입니까?”

내 질문에 이반 부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관계가 있지. 신발에 설치됐지만, 만약 폭파됐다면 승객 전원이 사망할 정도로 위력적인 폭탄이었네. 지난번 자네가 만났던 다니엘 펄의 조사에 의하면 이번에 사용될 뻔한 폭탄이 제조된 것이 바로 파키스탄이네. 파키스탄에서 만들어진 부품이 북유럽을 거쳐 파리까지 배달된 것이지. 우리는 그 폭탄 제조에 파키스탄군 정보부가 관여됐다고 보고 있네.”

“이번에 죽은 사람은 그럼?”

이반 부카드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그럼 조사를 해야지 왜 암살을······?”

“이게 최선이니까. 파키스탄군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는 사이네.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탈레반과 알카에다 정보는 거의 파키스탄군 정보부를 통해서 얻고 있고 말이야. 그런데 그 간부를 어떻게 조사한다는 말인가? 파키스탄 정부도 허락할 리가 없지.”

“복잡하네요.”

정보기관 사이의 관계나 국가 간의 외교 등등······.

여러 가지가 걸린 문제인 것 같았다.

“복잡하지.”

이반 부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파키스탄 정부에서는 뭐라고 항의하지 않습니까? 말씀대로라면 파키스탄 내무부장관의 동생을 우리가 암살한 것인데 파키스탄 내무부장관은 무샤라프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명 아닙니까?”

파키스탄 정부나 정보부가 바보가 아닌 이상 암살을 실행한 것이 카슈미르 무장 단체가 아니라 미국이라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동생이 죽은 이후 파키스탄 정부, 특히 파키스탄 내무부장관은 대대적으로 경찰력을 동원해서 카슈미르 무장 단체를 압박하고 있었다.

사건이 벌어지고 10일 조금 넘는 시간에 체포된 무장 단체 조직원만 100명이 넘었다.

“형제라고 꼭 사이가 좋다는 법은 없지.”

이반 부카드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 이번 암살에는 파키스탄 국내 문제, 정확하게는 파키스탄의 무샤라프 대통령의 요청도 있었거든······.”

“예? 무샤라프 대통령이 암살을 요청했다고요?”

잠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반 부카드의 말대로라면 무샤라프 대통령이 자국민을, 그것도 자신의 최측근의 동생이자 자신의 가장 큰 권력 기반 중 하나인 정보부의 관리 암살을 미국에 요청했다는 의미였다.

“올해 10월에 파키스탄 선거가 있지.”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예전처럼 총리가 파키스탄 최고 권력자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의석수는 필요하지. 그런데 지금 예상으로는 무샤라프는 많아야 의석 중 20% 이상을 차지할 가능성이 없어.”

지난 정부 때까지 파키스탄은 의원내각제 국가였다.

하지만 무샤라프가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고 작년 여름 대통령에 스스로 취임하면서 사실상 대통령제 중심 국가로 바뀐 상태였다.

“그런데요?”

“설사 어느 정도 선전을 한다고 해도 무샤라프는 다른 당 인물에게 총리직을 넘겨야 하지. 무샤라프는 그 전에 자신에게 반대하는 군과 정부, 특히 정보부 내 반대파를 정리할 생각이야. 그런 내부 숙청의 명분이 이번 암살이고 말이야.”

사람 한 명의 죽음에 관련된 일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파키스탄 정보부는 미군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함께하면서도 다른 편으로는 인도나 미국에 대한 테러를 지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파키스탄의 무샤라프 대통령은 그런 테러를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권력 기반을 튼튼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미국은 파키스탄 정보부의 테러 지원에 대해 보복을 하면서 동시에 파키스탄 대통령의 의뢰를 받아 전쟁을 함께하는 나라의 정보부 간부를 암살했다.

규모만 다를 뿐 갱 영화에 나오는 마피아가 하는 짓거리와 별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 제가 요즘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자네는 아주 잘하고 있지.”

내 얼굴에는 저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그런가요?”

범죄자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일을 내가 잘하고 있다니······.

행동이 곧 그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년 나는 이미 범죄자라고 할 수 있었다.

이반 부카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자네는 내가 본 어떤 요원보다 이런 일에 소질이 있어. 그래서 이번에 내가 자네를 부른 것이고.”

아무래도 내가 이번에 할 일도 비슷한 일인 것 같았다.

이번에는 누구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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