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182. 돈은 나무에서 자라지 않는다.
1.
골카당의 대표인 아크바 탄둥을 제거하는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인도네시아 검찰이 나설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언론을 이용하는 일이었다.
떠오른 이름은 월 스트리트 저널 아시아 지부장이자 정부 요원인 다니엘 펄이었다.
“펄 요원에게 연락할 수 있을까요?”
나는 이반 패트릭을 찾아가 말했다.
“그쪽을 통해서 기사를 내려고?”
이반 패트릭이 말했다.
“예. 월 스트리트 저널에서 기사만 내 준다면 굳이 인도네시아 언론에 제보하거나 기사를 내 주도록 부탁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지금 다니엘 펄은 파키스탄에 들어가 있네.”
“아······. 전에 말했던 그 건 때문입니까?”
이반 부카드는 전에 다니엘 펄이 911 테러에 가담한 파키스탄인들을 추격하고 있다는 말해 주었었다.
“그 일도 있지만 최근 아프가니스탄에서 넘어온 대량의 헤로인을 추적 중이네.”
“헤로인요? 갑자기 헤로인은 왜?”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탈레반의 주요 자금원 중 하나가 바로 헤로인 밀매였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
“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탈레반 정권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헤로인의 원료가 되는 양귀비 재배를 금지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헤로인이 탈레반의 주요 자금원이기도 했다.
탈레반 막강한 자금원의 출처가 바로 이 헤로인 거래였다.
“탈레반이 도망치면서 가지고 있던 헤로인 일부가 이번에 거래된다는 정보가 들어왔네.”
“거래가 성사되면 탈레반이 다시 살아날 자금원이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테러를 위한 자금으로 사용될 수도 있겠군요.”
“그렇지. 다행히도 펄 요원이 파키스탄 내 탈레반 동조자들을 조사하다가 거래를 알아낸 모양이야.”
“열심히 하네요. 그런데 펄 요원 괜찮은 거예요? 지금 파키스탄에서 활동하는 것은 조금 위험할 것 같은데요?”
“지난번 암살 때문에 그러나?”
“예.”
다니엘 펄은 지난번 암살에 관여했다.
“한창 정보부가 독이 오른 상태에서 파키스탄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어 보여서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펄은 인도로 오기 전까지 미국에서 기자 경력 대부분을 보냈으니 요원이라는 사실을 알기는 어려울 거야. 더구나 이번 단속은 기자 신분으로 파키스탄군과 합동작전이고 말이야.”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나는 더는 묻지 않았다.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현장 요원도 아닌 내가 여기서 더 이야기하는 것은 선을 넘는 일이었다.
까놓고 한 번 만난 사이에 더 이야기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이반 부카드가 물었다.
다니엘 펄과 월 스트리트 저널이라는 에이스 패를 이용할 수 없었던 나는 예전에 사용했던 방법을 다시 사용할 생각이었다.
“미국의 작은 신문사에 기사를 내고 다시 그 신문 기사가 인도네시아 언론에 인용해 보도되는 방법을 쓸 생각입니다.”
이반 부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꽤 많은 나라에서, 특히 아시아에서는 미국 언론에 실린 기사라면 덮어 놓고 믿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
물론 아시아보다 미국의 기사들이 믿을 만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말 그대로 주요 언론사의 기사일 경우였다.
“기사를 내 줄 신문사는 찾았나?”
“본국에 예전부터 작은 언론사가 많았지만, 지금은 그 수가 훨씬 늘어났죠.”
미국은 영토가 넓다 보니 한두 개 신문사가 미국 전역에 신문을 보급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렇다 보니 말 그대로 작은 도시에도 신문사가 몇 개나 있을 정도였다.
“최근에는 종이 신문을 발행하지 않고 인터넷 사이트만을 운영하는 신문사들이 꽤 늘어났습니다. 이런 신문의 기자 중에는 돈만 주면 어떤 기사든 써 주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한 단계를 더 거칠 생각입니다.”
“한 단계를 더 거치다니?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이반 부카드가 물었다.
“돈을 주고 실은 기사를 다시 미국 내 인도네시아 이민자들이 주로 보는 사이트에 올리는 거죠. 아시겠지만 다른 아시아나 아프리카 미국 이민자들과 마찬가지로 인도네시아 출신 이민자들은 골카당에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겠지. 대부분이 수하르토 독재를 피해서 미국에 이민 온 사람들이니 말이야.”
“예. 그들 중 상당수는 고학력이어서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편입니다. 인도네시아에 사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연락도 활발하고요.”
“인도네시아 언론에 실리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나?”
“글쎄요······.”
이반 부카드의 질문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미국 작은 신문사에 실린 수하르토 정부 시절 아크바 탄둥이 실행한 정책에 관한 폭로 고발기사가 인도네시아 주요 신문 1면을 장식하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3일이었다.
그 속도에 이반 부카드가 많이 놀란 듯했다.
“시대가 변하기는 변했군.”
이반 부카드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해외 언론과 이민자들을 움직여서 여론을 조작하는 것이야 예전부터 써 오던 방법이기는 하지만 겨우 3일이라니······.”
“요즘은 지구촌이라고 하더군요.”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가장 변한 것은 뉴스나 정보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부분이었다.
예전에는 위성방송을 통해서나 들을 수 있었던 해외의 뉴스를 컴퓨터만 켜면 볼 수 있었다.
“대니얼 펄이 파키스탄 남동쪽 국경 근처에서 마약을 운반하던 자들을 잡았다더군.”
“성공하셨나 보네요.”
“이번에 적발한 헤로인 양이 무려 630킬로나 된다니 큰일을 한 셈이지.”
“630킬로요? 허······ 대단하네요. 630킬로면 시중 가격으로 9천만 달러에서 1억 달러나 되는 양 아닙니까?”
1억 달러라는 것은 여기 파키스탄에서 팔리는 금액이 아니라 소비자 가격 기준이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630킬로라면 불법 매매로 판다고 해도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그렇지. 단 1천만 달러만 탈레반 잔당이나 알 카에다에 흘러 들어갔어도 곤란해질 뻔했어.”
“다른 모든 조직도 마찬가지겠지만 테러 조직을 움직이는 것도 결국 자금이죠. 그 자금원을 차단했으니 한동안 탈레반도 힘을 쓰기 어려울 겁니다. 위험한 걸 알면서도 630킬로나 되는 헤로인을 갑자기 팔 정도라면 그만큼 자금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테니까요.”
활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어떤 조직은 마약을 밀매하고 어떤 조직은 납치하고 또 다른 조직은 해적질하고 어떤 조직은 광산에서 금이나 다이아몬드를 채굴한다..
빈 라덴이 알 카에다라는 테러 조직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억만장자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무샤라프도 카슈미르 민병대가 ‘자유 전사’라는 명칭을 더는 써서는 안 된다고 발표했더군.”
‘자유 전사’란 카슈미르 파키스탄 내에서 활동하는 무장 단체들을 파키스탄 정부에서 부르는 명칭이었다.
이번 인도 의회에 대한 테러를 저지른 단체들도 바로 이 ‘자유 전사’들이었다.
이런 명칭을 더는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은 단순한 명칭의 문제가 아니었다.
파키스탄 정부에서는 지금까지 카슈미르에서의 무장 단체들을 일종의 성전을 위한 군사 조직으로 대우한다는 의미였다.
그런 명칭을 더는 쓸 수 없다는 것은 카슈미르 내 무장 단체들을 파키스탄 정부가 허락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영토 내에서 정부가 허락하지 않은 무장 단체는 불법 조직이었다.
이 단체가 소유한 무기는 물론이고 자금 그리고 이 단체를 지원하는 것도 불법이 된 셈이었다.
인도가 지속해서 ‘자유 전사’의 해체를 요구해 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사실상 파키스탄 정부의 항복 선언이었다.
그리고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이 내부 화합보다는 외국과의 협력을 통한 자신을 중심으로 한 내부 통합을 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제 인도 파키스탄 사이의 갈등은 해결 국면으로 넘어가는 것 같네요. 다행입니다.”
“계획대로 잘 진행되는 것 같은데 이럴 때일수록 조심해야지. 이 바닥 일이 모든 것이 잘되어 가는 것처럼 보일 때가 가장 위험한 법이거든···.”
이반 부카드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2.
아크바 탄둥에 관한 기사가 인도네시아 주요 신문에 실리기 하루 전.
에드릭에게서 전화를 받은 리안은 조민과 함께 카이 황의 사무실로 향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카이 황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에드릭에게서 전화와 메일을 받았습니다.”
“전화요? 투자 회의는 이틀 정도 남았지 않습니까?”
“급히 투자를 해야 할 곳이 있다고 해서요.”
리안이 말했다.
“급히 투자할 곳요?”
“예.”
리안은 에드릭이 보내 준 신문 기사를 출력한 서류를 카이 황에게 건넸다.
“미국 기사인데 인도네시아 관련한 내용이네요.”
“야당인 골카당 아크바 탄둥 대표의 장관 시절 예산 집행에 관한 폭로 기사입니다.”
리안의 말에 카이 황은 기사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미국 기사인데 꽤 자세한 내용까지 나와 있네요.”
카이 황이 말했다.
이때 옆에서 듣고 있던 조민이 끼어들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낸 기사 같아요.”
“그런가요?”
카이 황이 물었다.
“거의 확실해요.”
조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제가 이 신문의 예전 기사를 살펴봤는데 지방의 작은 지방지라서 주로 기사 대부분이 그 지역의 가십 기사였어요. 정치 뉴스라고 해 봐야 시장이나 시의원에 관한 기사 정도였지 주 정부 관련 기사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밖에 없더라고요.”
“전에는 인도네시아에 대해 이런 심층 기사를 쓴 적이 없다는 말씀이군요.”
“쓴 적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이 기사를 쓴 기자의 예전 기사만 봐서는 쓸 능력이 없는 게 확실해요.”
조민이 말했다.
“그럼 이 기사는?”
“다른 사람이 써 준 기사죠.”
“그럼 이런 기사를 쓴 의도가 있겠군요.”
“예.”
조민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에는 누군가 골카당의 아크바 탄둥 대표를 끌어내리려고 하는 것 같아요.”
조민이 말했다.
카이 황은 리안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 기사를 에드릭 님께서 보내셨다고요? 이야기 들어 보니 작은 신문인 것 같은데 이런 기사를 어떻게 아시고?”
리안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건 저도 모르겠지만 이 기사를 보내면서 자신이 관리하는 자금 중 1억 4천만 달러를 인도네시아 주식에 투자하라고 하더라고요.”
카이 황은 다시 기사로 시선을 옮겼다.
“에드릭 님은 이 기사가 인도네시아 주가를 상승시킬 호재로 보신다는 이야기군요.”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현재 메가와티 대통령의 가장 큰 정적인 아크바 탄둥이 위기에 빠지면 인도네시아 정치 안정성이 높아지고 결국 그게 주가를 끌어올릴 거라고······.”
리안이 말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조민 아가씨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카이 황이 고개를 돌려 조민을 바라보았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리고 우리가 위험한 사람과 손을 잡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카이 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부터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투자금의 규모가 커지니 이제 인구 2억이 넘는 나라의 정치에 개입하시려고 하네요.”
“이 정도면 인도네시아 여당과도 어느 정도 말을 끝냈다고 봐야겠죠?”
조민이 물었다.
“그렇겠죠. 이 정도 기사만으로 1억 4천만 달러를 움직일 사람이 아니니까요.”
카이 황이 잠시 말을 멈췄다고 리안을 보며 말했다.
“대단한 친구분을 두셨네요. 물론 조민 아가씨 말대로 위험하기도 하고요.”
카이 황의 말에 리안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돈을 벌려면 이 정도를 해야 하나 보죠. 돈이 나무에서 자라는 것은 아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