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189화 (190/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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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약점이 없으면 만들어라

1.

이반 부카드에게서 다니엘 펄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CIA를 그만두겠다는 내 결심은 더 확고해졌다.

나는 우선 싱가포르에서 홍콩으로 돌아왔다.

무엇을 하든지 본진이 튼튼해야 했다.

사무실에 출근하자 리안이 내 사무실을 찾아왔다.

“이 사무실에서 보는 것은 오랜만인 것 같네?”

리안의 말에 나는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리안의 말을 듣고 보니 내 사무실인데도 어딘지 낯설어 보였다.

사무실의 구조나 인테리어가 낯선 것은 아니었다.

내 사무실은 말 그대로 전형적인 사무실이었다.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 사무실이었다.

사무실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보니 내 생각이나 취향이라고는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티가 나는 것처럼 사무실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사람이 근무하지 않는 빈 사무실은 티가 나게 마련이었다.

내가 느끼는 낯섦도 아마 그런 부분일 것이다.

“자리를 오래 비워서 그런가? 내 사무실인데도 남의 사무실인 것 같기는 하네.”

“이 사무실이 이 층에서 대표 사무실 빼고 가장 큰 사무실이야.”

“그래?”

“이 사무실이 내 사무실보다 약간 큰 것 알고 있어? 큰 차이는 아닌데 내 사무실보다 네 사무실이 조금 크다고 하더라고······.”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내 사무실도 자주 오지 않는데 다른 사무실 크기를 내가 알 리가 없었다.

내가 이 건물에서 가장 많이 가 본 사무실은 바로 카이 황이 근무하는 대표 사무실이었다.

“네가 팀장일 때 정해진 사무실이라서 조금 차이를 두었다고 하더라고. 풍수도 신경 써서 배치했고 말이야.”

“내 사무실에 관심이 많네? 왜 난 어차피 안 쓰는데 바꿀까?”

내가 물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뭐······. 네가 굳이 바꾸고 싶다면 나는 상관이 없어.”

속이 들여다보이는 이야기였다.

찾아와서 사무실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사무실을 바꾸고 싶은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굳이 알고 싶지도 않고 묻고 싶지도 않았다.

어차피 나는 여기 사무실에 자주 나오지도 않았다.

아니 사무실에 자주 나도더라고 사무실의 크기나 위치 풍수 같은 것은 적어도 여기서는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급하지 않으면 다음 주에 내가 없을 때 바뀌면 될 것 같네.”

“급하지는 않은데······. 이번 주에는 홍콩에 있을 거야?”

“그럴까 해. 다음 주가 춘절이잖아.”

내가 대답했다.

춘절은 음력 1월 1일로 중국을 비롯한 동양권 최대의 명절이었다.

“잘됐네. 작년처럼 나랑 같이 춘절 축하 파티에 참석하면 되겠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진정세라서 파티는 예정대로 열릴 것 같아.”

리안이 말했다.

나는 작년 춘절 파티가 생각났다.

내가 장샤오이를 처음 본 것도 바로 그 춘절 파티였다.

“됐어. 집에서 좀 쉬려고.”

나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너 꽤 지쳐 보이기는 하네. 그렇게 1년 내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니 안 피곤하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지.”

리안의 말 그대로 요즘 꽤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나도 느끼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일주일에 짧게는 두세 시간에서 길게는 스무 시간 정도를 비행기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비행기를 통해 다른 나라로 갈 때마다 시차가 많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시차도 있고 기온도 차이가 났다.

이런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 데도 체력이 소모된다.

“잠시만······.”

리안이 휴대전화를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며 나를 바라보았다.

“너 시간 언제 한가해? 한두 시간이면 되는데.”

“시간은 왜?”

“우리 집안과 대대로 거래하는 의사분이 있는데 이분 보약 먹으면 말 그대로 사체도 살아나지.”

리안의 말에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난 됐어. 보약은 무슨······. 효과도 없는 것 먹어서 뭐해.”

나는 동양에서 말하는 보약이 영양제 하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다.

“효과가 없기는······.”

리안은 하던 전화를 끊더니 나에게 말을 이어 나갔다.

“보약이라고 다 같은 보약이 아니야. 우리 집안과는 400년 전 본토에 있을 때부터 거래해 온 집안이야. 우리 집안이 바보라서 계속 거래를 했겠어.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면······.”

한동안 보약을 먹고 자신의 윗대에서 일어났던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마치 약장사처럼 한참을 보약의 약효를 이야기하는 리안에게 결국은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보약 한 번 먹어 보지 뭐······.”

“그럼 이따가 오후에 시간 비워 둬. 내가 회사로 오라고 할게. 그렇지 않아도 아저씨도 보약 한 재 먹으실 때가 됐는데 잘됐네.”

나는 서둘러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보약 이야기를 더 듣다가는 리안에 대한 믿음이 사라질 것 같았다.

“아까 조류인플루엔자 이야기 나와서 그런데······. 다음 주에는 내가 관리하는 자금을 태국에 투자할 생각이야.”

내가 말했다.

“조류인플루엔자하고 태국이라······. 하긴 광둥성 양계 농가도 이번에 꽤 손해를 입었지. 작년에 이어서 올해 연이어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하고 있고······.”

얼마 전 홍콩 정부가 10만 마리 닭을 살처분하기로 했다.

하지만 살처분되는 10만 마리 중 대부분은 홍콩이 아닌 홍콩과 인접한 광둥성의 양계 농장에서 기르는 닭이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홍콩과 광둥성에서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했다는 부분이었다.

홍콩과 광둥성에서 조류인플루엔자가 일상화된다면 닭을 재료로 사용하는 식품 업계는 다른 구입처를 구해야 했다.

“입지나 기온을 생각할 때 가장 좋은 대체 국가는 태국인데 마침 지금 정부가 꽤 적극적으로 해외 식품업계 투자를 끌어들인다고 하더라고······.”

“지금 태국의 총리가 탁신 총리라고 했나? 꽤 유능한 모양이네. 하긴 능력이 없다면 아무리 특혜를 받았다고 해도 10년 만에 태국 최고 부자가 되지는 못했겠지.”

“능력은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내가 대답했다.

“태국은 네가 알아서 할 부분이고······. 다른 나라는 어떻게 투자 방향을 정할 생각이야?”

리안이 물었다.

“아시아 쪽은 춘절이 있으니 소비가 늘어나고 있으니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상승에 포지션을 잡으면 될 것 같고······. 미국이나 유럽은 특별한 호재는 없지만 특별한 악재도 없고 2주 정도 내렸으니 이제 오를 때가 된 것 같아.”

“한국은? 한국은 요즘 계속 내렸잖아.”

“특별한 호재나 악재도 없으니 별 변화가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악의 축 발언이 너무 커서······. 한국은 부시 대통령이 방한에서 뭔가 이야기를 하기 전까지는 계속 안 좋을 것 같은데?”

“그럼 투자 포지션 유지하지 뭐······. 생각과는 달리 올라도 아직은 여유가 꽤 있어.”

리안이 말했다.

“그럼 대충 이렇게 정하자. 세부 투자 방향은 각자 정하면 될 것 같아.”

내가 말했다.

“알았어. 그럼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홍콩에 있으니 투자 회의에는 들어올 거야?”

리안이 물었다.

“들어는 가야지. 그런데 내가 더 할 말이 있겠어? 조금 전 이야기한 것으로 세부 자료만 첨부해서 회의는 팀장인 네가 지금까지처럼 하면 되잖아.”

나는 투자 방향이 정해진 상황에서 회의 중에 굳이 끼어들 생각이 없었다.

세부 자료를 준비해 줄 수도 있지만, 리안 주변에는 카이 황도 있고 그의 팀원들도 있었다.

나 혼자 자료를 준비하는 것보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나았다.

오후에 리안이 이야기한 의사에게서 진맥을 받았다.

리안과는 달리 그는 자신의 선대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

홍콩에 머물며 나는 CIA를 그만둘 좀 더 확실한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단순히 존 베비스를 믿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엘리어스와 친분을 쌓고 그에게 말을 해 두기는 했지만, 아직 확실한 확답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엘리어스에게는 기부금을 약속받은 본 베비스와는 달리 내 CIA 퇴직을 도울 명확한 이유가 없었다.

아니, 엘리어스보다 좀 더 힘을 가진 사람이 필요했다.

문제는 그들에게 무엇을 주고 내 퇴직을 돕게 할 것이냐 하는 점이었다.

내가 그들에 비해서 나은 점은 정보 분석력과 돈이었다.

내가 거래할 수 있는 것도 이 두 가지였다.

그렇지만 정보 분석력은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내 정보 분석력은 오히려 숨겨야 할 부분이었다.

내 퇴직을 도울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나를 CIA에 그대로 두고 공짜로 부려 먹으려고 할 것이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내 목줄을 놓으려고 할 리가 없었다.

그럼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돈이었다.

물론 이것도 직접 거래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었다.

직접 거래 대상으로 삼으려면 내가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를 말해야 하는데 이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나는 우선 존 베비스를 확실히 회유하기로 했다.

나는 조사를 마치고 존 베비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접니다. 에드릭!”

- 오랜만이네. 그동안 잘 지냈나?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 다행이군.

“혹시 제 퇴직 문제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 노력은 하고 있는데 자네도 알다시피 지금 그쪽이 제정신이 아니야.

“그럼 제가 퇴직하지 못할 수도 있겠군요.”

- 노력은 하고 있네. 자네가 퇴직해야 내게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네.

존 베비스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전화상으로도 그렇게 믿음이 가지 않았다.

“말 그대로 어려울 수도 있다는 말이군요.”

나는 다시 물었다.

- 말했지만 지금 사정이 복잡해.

불안했다.

911 테러 이후 회사는 냉전 이후 축소됐던 조직을 다시 확대하고 있었다.

작년 초에만 해도 줄어들던 입사 지원자도 급증했다는 한다.

그렇지만 어느 때나 위기의 순간 경험이 있는 직원은 필요한 법이었다.

좀 더 확실한 방법이 필요했다.

“이번 선거에 출마하실 생각입니까?”

존 베비스의 목표는 올해 11월 선거에서 하원 의원이 되는 것이었다.

- 그게 준비는 하고 있는데······.

“마땅한 선거구가 없군요.”

- 아니라고 하지는 못하겠군.

존 베비스가 출마하려고 하는 버지니아는 전통적으로 공화당의 세가 강한 곳이었다.

오죽하면 민주당으로 당선되었던 의원 중 한 명이 탈당해서 현재는 무소속으로 있을 정도였다.

버지니아주 하원 의석수는 11석 중에서 현재 7명이 공화당이었다.

무소속이었던 의원도 다음 선거에서는 공화당으로 출마한다는 소문이었다.

무엇보다 존 베비스가 CIA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지역 정치계에는 신인이었다.

특별한 계기가 없는 이상 아무런 지역 정치에서의 기반도 없이 하원 의원에 당선되는 것은 어려웠다.

“제가 생각해 봤는데 그나마 앞으로도 당선 가능성이 있는 지역은 제2선거구더군요. 공화 당세가 강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직전까지는 민주당이 장악했던 선거구니까요.”

내 생각을 말했다.

- 그렇기는 한데······. 거기 현직 의원이 만만치 않아.

“알고 있습니다. 에디 쉬록 의원이죠. 베트남전에도 참전한 전직 해군 장교였고요.”

2002년 선거는 911 테러 이후 처음 열리는 선거였다.

어느 때보다 군인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 그런데도 거기서 출마하라는 말인가?

“지금으로서는 답이 없습니다. 버지니아 지역 의원들 대부분이 확고한 지역 기반을 가진 의원들입니다. 길게는 30년에서 적게는 10년 정도의 경력을 가진 의원들이죠.”

의원 내각제인 국가의 의원들이 대부분 다선 의원인 것에 비해서 대통령 중심제인 국가에서는 의원들이 비교적 임기가 짧은 편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연방제 특성 때문에 상원이나 하원 의원, 다선 의원이 흔한 편이었다.

상원 의원은 사실상 종신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하원 의원도 2년마다 한 번씩 선출되기 때문에 다선 의원들 대부분이 선거의 전문가들이었다.

존 베비스가 그런 베테랑들을 상대로 지역 경선에서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나마 만만한 것이 경험이 적은 초선 의원이었다.

“이번이 처음 임기는 의원은 총 세 명인데······. 버지니아 1지역구는 최근 수십 년간 공화당이 무패인 지역입니다. 다른 지역은 민주당 의원에서 공화당 의원이 지역구가 넘어간 것은 맞지만 그 공화당 의원이 무려 랜디 포브스더고요.”

- 듣고 보니 더 갑갑하군. 에디 쉬록도 만만치 않은 인물인데 그나마 가장 만만한 의원이라니······.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일단 2선거구에 출마하는 것으로 준비해 보십시오. 제가 알아보니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민주당 쪽에서도 제2선거구에는 특별히 후보를 낼 생각이 없다더군요. 민주당 후보 경선은 무혈입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선 가능성이 없는 경우 후보를 내지 않는 경우는 아주 드문 경우는 아니었다.

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버지니아주 선거구 중 다섯 곳 정도가 상대 후보가 없어서 무투표 당선이 사실상 결정된 상태였다.

- 자네 말대로 그걸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하여튼 알았네.

나는 전화를 끊고 즉시 조사 기관에 에디 쉬록에 대한 조사를 의뢰했다.

약점을 잡기 위해서였다.

조사하는 데 들어갈 예산은 사실상 무제한이었다.

만약 약점이 없다면 약점을 만들어서라도 꼭 존 베비스를 이번에 당선시킬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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