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199화 (200/270)

(199)

#200. 아이와 바보만이 진실을 말한다

1.

스즈키 무네오 제거 계획은 급조한 계획치고는 잘 진행되었다.

“내가 시오자키 야스오와 접촉해 보겠네. 요즘 자민당 내 개혁 보고서를 만들고 있으니 스즈키 무네오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 관심을 가질 거네.”

“시오자키 야스오라면 적당하네요. 모리파 소속이기도 하니 하토야마파인 스즈키 무네오를 제거하는 데 별로 거리낌도 없을 테고요.”

“그렇기야 하지. 이러면 우리가 지지부진한 고이즈미 개혁을 도와주는 셈인가······.”

“덕분에 우리도 스즈키 무네오 같은 거물을 쉽게 제거할 수 있으니 서로 돕는 셈이죠.”

예전이라면 아무리 나라고 해도 졸속으로 만들어진 계획으로 그를 몰락시키는 것이 어려웠을 것이다.

스즈키 무네요는 자민당 내에서 외무성의 요괴라고 불리는 거물이었다.

그렇지만 시대가 변했다.

이런 변화를 끌어낸 것은 고이즈미 총리의 개혁이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작년 총리 선거에서 나올 때부터 정치와 경제 개혁을 내세웠다.

일 년이 조금 안되는 지금에 와서 고이즈미 총리의 개혁은 별다른 성과를 내는 데는 실패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고이즈미 총리가 내세우는 정치와 경제 분야의 병폐는 1950년대 자민당이 탄생할 때부터 내려온 것이었다.

그런 병폐를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고이즈미가 이뤄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특히 고이즈미는 이전의 총리들과는 달리 특별한 계파의 보스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높은 고이즈미의 지지율은 일본 유권자들이 개혁을 얼마나 바라는지를 보여 주었다.

이런 열망을 바탕으로 고이즈미 총리는 작년 7월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

자민당의 의원들이 변화기를 원하지 않더라도 유권자의 이런 개혁 요구에 따르는 척이라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치인이 말했듯이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여전히 원숭이지만 선거에서 떨어진 국회의원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런 분위기를 잘 이용하면 스즈키 무네오를 개혁해야 할 구태로 만드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스즈키 무네오로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를 제거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비록 내 목적을 위해서 감옥에 보내려고 하는 것이지만 스즈키 무네오는 억울한 희생자는 절대 아니었다.

그는 정경유착으로 유명한 전형적인 하시모토파의 정치인이었다.

다른 자민당 의원들과 비교하면 더 썩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꽤 구린 곳이 많았다.

그건 에스트라다 전 필리핀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고민했던 것은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의 석방을 막은 것에 대한 죄책감은 아니었다.

에스트라다를 충동적으로 제거하기로 한 내 행동에 대한 반성이었다.

에스트라다 전 필리핀 대통령은 영화 속 이미지를 이용해서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을 속이고 거액을 횡령한 범죄자였다.

그런 그가 감옥에서 석방되는 것은 정의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CIA인 내가 필리핀의 사법 정의를 이야기할 만한 자격이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단테 패트릭이 자민당 의원인 시오자키 야스히사를 만나는 사이 나는 예전 몇 번 이용했던 기자들을 만났다.

나는 기자들을 만나서 스즈키 무네오가 내각에 있던 시절 러시아와의 교류 과정에서 대규모로 돈을 챙겼다는 소문을 전해 주었다.

기자들은 내가 고이즈미 총리를 위해서 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스즈키 무네오의 비리 정보를 전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스즈키 무네오는 하시모토 전 총리의 최측근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자민당의 간사장인 노나카 히로무와 가장 친한 정치인 중 하나였다.

노나카 히무로는 일본 내에서 하층민 대우를 받는 부라쿠민 출신이었기 때문에 총리가 되기는 어려웠지만, 누군가를 총리로 만들 힘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거물이었다.

물론 이런 평가는 지금은 조금 퇴색된 면이 있었다.

지난번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하시모토를 지원했다가 고이즈미에게 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민당 내에서 여전히 노나카 히무로의 힘이 막강했다.

기자들은 이번 일도 고이즈미 총리를 위해서 노나카 히무로의 측근을 제거하는 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기자들을 만나고 단테 패트릭을 찾아갔다.

“시오자키 무네오는 며칠 안에 자민당 개혁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스즈키 무네오의 비리를 폭로하면서 탈당을 요구할 거네. 바로 다음 달에 재보궐 선거가 있으니까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하면 스즈키 무네오도 오래 버티기 어려울 거야.”

다음 달에 열리는 재보궐 선거는 고이즈미 총리 아니 자민당 정권으로서는 중간 평가의 의미가 있었다.

“하시모토 전 총리와 노나가 히무로 간사장이 측근이라고 해도 탈당 요구를 거부하기 어렵겠군요.”

“그렇지. 뭐······ 자네는 거기서 멈출 생각은 아니겠지?”

“예, 스즈키 무네오가 탈당한다고 해서 외무성에 있는 인맥아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러시아가 가까운 스즈키 무네오가 요즘 같은 상황에서 일본 외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알겠네.”

“스즈키 무네오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려면 조금 시간이 걸리겠죠?”

“그렇지. 자민당을 탈당한다고 해도 스즈키 무네오는 여전히 지역구인 훗카이도에 막강한 기반을 가진 거물이네.”

“선배님께서 계속 지켜봐 주십시오.”

“알았네.”

“그럼 저는 일단 돌아가서 진행 상황을 보고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스즈키 무네오 같은 거물을 검찰 조사 받게 하려면 나도 열심히 뛰어야겠군.”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이었다.

2.

일본에서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곧바로 다음 투자를 위한 분석을 하기 위해 이틀 밤을 꼬박 새워야만 했다.

이제는 팀원들이 어느 정도 자신이 투자하는 시장에서 의견을 내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조사를 하지 않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리안에게 전화를 걸었다.

- 주말에 일본에 있었다면서? 일본에는 무슨 일로 갔다 온 거야?

리안이 물었다.

“‘일본 상황이 심상치 않아서 갔다 왔지.”

- 그래? 일본은 지금 어떤데?

“일본 경제 개혁이 아무래도 지지부진한 것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 같더라고······. 1년 전부터 개혁하겠다고는 하는데 구체적인 성과도 없고, 그렇다고 경제가 나아진 것도 아니니까.”

- 개혁이 그렇게 쉬울 리가 있나. 일본 국민이 뭔가 크게 착각한 거지. 고이즈미가 신도 아닌데 1년도 안 됐는데 뭘 하겠어. 더구나 개발도상국도 아니고 일본 같은 선진국에서 뭔가를 하기에는 1년은 너무 짧지.

“그래도 사람 마음이 그런가. 더구나 방향성이라는 게 있잖아. 그런 점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개혁은 말은 번지르르한데 실제로 방향성이 모호하니까.”

-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게 어제오늘 이야기도 아니잖아. 갑자기 심상치 않다는 이야기는 뭐야?

“뭐 전반적으로 세계 경제가 살아나고는 있는 것 같은데 일본은 구체적인 성과가 없으니까. 더구나 최근에 미국이 철강에 보호관세를 부과했잖아. 그 조치로 일본 철강업계가 직격탄을 맞은 셈이잖아.”

- 하긴 뭐······. 일본 기업들은 타격이 있기는 하겠다. 일본은 미국에서 공장을 세웠으면서도 일본에서 철강을 미국으로 수입해서 쓰잖아.

“미국 철강 보호관세로 타격을 입는 나라가 일본만은 아니지. 당장 한국도 그렇고 유럽연합도 그렇고.”

- 이번 주에도 주가가 암울하겠군. 어째 경기는 살아난다고는 하는데 이건 나스닥은 도대체 몇 주가 내리기만 하니······.

“그게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매도 포지션을 잡고 있으니 주가가 내려도 돈을 버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 넌 계속 외국으로만 도니까 그런 소리 하는 거야. 시장이 안 좋으면 내가 돈을 벌어도 센트럴 분위기가 얼마나 안 좋은데······. 나가서 만나는 사람들이 죽상을 하고 있는데 내 기분이라고 좋겠어. 똑같이 이익이 나더라도 다른 사람도 기분이 좋은 것이 좋지.

“누가 부잣집 도련님 아니라고 할까 봐 아주 한가로운 소리를 하네. 돈이 많으니 나 혼자서는 돈을 벌어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다 뭐 이런 거야?”

- 너한테 돈을 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이상하네. 지분만 따지면 네가 나보다 거의 8배는 버는 것 알고 있지?

“그래도 내가 홍콩 억만장자의 후계자만 하겠어. 요즘 홍콩 부동산 가격이 무섭게 오르고 있다면서?”

전 세계적으로 시장의 유동자금이 많아지면서 자금이 부동산에 몰리고 있었다.

주식시장은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닷컴 버블을 겪으면서 실물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부동산에 몰린 자금 중 상당수가 비교적 안전한 곳인 미국의 뉴욕이나 영국 런던에 투자되고 있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부동산에 가장 많은 자금이 몰리는 곳이 중국의 상하이와 홍콩이었다.

중국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상하이와 홍콩의 부동산은 투자만 하면 확실히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엘도라도였다.

특히 아직도 중국 반환 이전의 부동산 가격에 비해서 낮은 홍콩은 상승할 여력이 충분했다.

홍콩 부동산 가격 상승의 혜택을 입는 것은 홍콩의 일반 시민들이 아니라 바로 리안과 같은 부동산 부자들일 것이다.

- 내 부동산 가격이 올라 봐야 네가 투자로 버는 것에 비하겠냐?

작년 리안이 W&R에 현물 출자한 부동산의 가치만 3천만 달러가 넘었다.

이미 리안이 출자한 부동산 가격도 꽤 오른 상태였다.

지금 W&R이 입주한 빌딩도 그중 일부일 뿐이었다.

리안을 그 빌딩 외에도 센트럴에만 몇 개의 빌딩을 가지고 있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너 홍콩에 부동산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 거야?”

내가 물었다.

- 미국이 철강제품에 보호관세를 부과한 영향이 다음 주까지는 가겠지?

리안이 말을 돌렸다.

“말하기 싫다는 것이지?”

- 내가 들으니 TSMC가 대규모 투자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하더라고. 마이크론의 가이닉스 인수도 잘 진행되고 있다니······. 다른 곳과는 달리 타이완 쪽은 주가가 괜찮을 것 같아.

리안이 계속 말을 돌렸다.

화교들 상당수는 자신의 재산을 외부로 드러내기를 원하지 않는다.

화교 중에서 진짜 부자들은 포브스 억만장자 명단에 오르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리안도 상하이방과 사이가 좋지 않은 만큼 재산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듯했다.

나는 이번에는 넘어가 주기로 했다.

“타이완은 조민 담당 아니야? 이제 약혼자들끼리 투자도 같이하는 거야?”

- 너 때문이잖아. 네가 휴렛팩커드 공매도를 이야기해서 요즘 밤에 내가 선물옵션 거래를 하는 옆에서 공매도를 점검하고 있어.

“무슨 소리야. 내가 아니더라도 조민은 다른 기업 공매도를 하려고 했어. 나는 이왕이면 휴렛팩커드를 하는 것이 어떠냐고 말한 것뿐이야.”

- 어쨌든 네 지시로 공매도를 하는 것은 사실이잖아.

“설사 그렇다고 해도 약혼자랑 같이 일하면 오히려 나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니야? 예전에야 조민을 피해 다녔다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카이 황 씨에게 듣자니 내년에는 결혼할 생각이라면서?”

- 하여간 솔로인 사람이 이게 문제야. 아무리 애인이 죽고 못 사는 사이라도 24시간 같이 지내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어.

“내가 그 이야기 조민에게 꼭 전해 줄게.”

- 뭐야! 그럼 나도 2팀장에게 네가 연락해 달라고 이야기해 줘야겠네. 매일 투자 방향을 메일로만 보낸다고 섭섭해하던데······.

나는 브릭스에 대한 투자를 장샤오이를 통해서 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메일이나 문자로 투자 방향을 이야기하고는 했다.

내가 장샤오이와 전화 통화를 하는 것은 2주에 한 번 정도였다.

“내가 투자 방침 정리해서 보낼 테니까. 팀에서 회의해 보고 다른 의견이 있으면 연락해 줘.”

나는 투자에 대한 전화 통화를 서둘러 끝냈다.

장샤오이는 이야기만 들어도 여전히 부담스러웠다.

아마도 개인적인 호감과 장샤오이의 배경에 대한 거부감에 오는 본능적인 반응인 듯했다.

3.

서울에 돌아오고 얼마 후 엘리어스를 만났다.

“주말에 일본에 갔다 오셨더군요?”

엘리어스는 대사관에 있는 만큼 내가 출입국 기록을 파악하고 있었다.

“예. 갑자기 그쪽에 볼일이 있어서요.”

“무슨 일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좀 어렵겠습니다. 엘리어스 씨와 여러 가지 일을 하고는 있지만, 엘리어스 씨가 요원은 아니니까요.”

“그쪽 일로 다녀오셨군요. 일본에서 단테 패트릭 씨를 만나신 것은······.”

“저 같은 말단 요원이 그런 고위 간부를 만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나는 만난 사실을 숨겼다.

아이와 바보만이 진실을 이야기하는 법이었다.

특히 나 같은 요원은 잘 꾸며 낸 혹은 들키지 않는 거짓말이 곧 진실이었다.

단테 패트릭이 작전에 대해 말할 리는 없으니 엘리어스가 만난 사실을 알 수는 없었다.

아니 단테 패트릭은 내 진짜 이름도 알지 못했다.

“아. 그렇군요. 저는 혹시나 해서······.”

“만나 뵙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단테 패트릭 요원이 주말에 한국에 오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일이 있어서 한국에 오시지 못했습니다. 일이 생겨서 한동안 일본을 떠나시기 어렵다고 하시더군요.”

“그랬군요. 저도 한번 뵙고 싶었는데 안타깝네요.”

“그러게요. 에드릭 씨께 큰 도움이 됐을 텐데······.”

“어쩔 수 없죠. 그런데 오늘은 왜 저를 보자고 하셨는지?”

나는 화제를 돌렸다.

“에드릭 씨의 조언을 구할 일이 있어서요.”

엘리어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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