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201화 (202/270)

(201)

#202.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돕는다

1.

아버지에게서 기다렸던 연락이 왔다.

- 백악관과 이야기를 끝냈다. 이번 달 28일에 메가와티가 북한을 방문했다가 이틀 후인 30일에 한국을 방문하기로 했다.

“그렇게 빨리요?”

엘리어스는 아버지의 말에 놀라 되물었다.

아버지에게 부탁하면 인도네시아의 메가와티 대통령을 움직일 수 있다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빨라도 너무 빨랐다.

메가와티는 대통령이 된 다음부터 일종의 신비주의로 인도네시아를 통치하고 있었다.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오직 측근들만 만나 정책을 결정하고 있었다.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이라기보다는 절대왕권을 가진 국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런 메가와티를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북한을 방문하게 하다니······.

자신이 부탁한 일이고 아버지가 백악관을 움직일 수 있다고는 하지만 너무나 빠른 결과였다.

아버지가 빠른 결정이 내려진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 메가와티가 자신이 인도네시아의 주인이라고 생각한다는 소문이 사실인 모양이야.

“저도 듣기는 했습니다만 그런 생각과 이번 일이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메가와티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독립 영웅이자 초대 대통령인 수카르노 대통령의 딸이었다.

제3세계의 많은 독립 지도자들처럼 수카르노 전 대통령도 자신을 국가와 동일시하는 인물이었다.

이런 경우 가족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는 경우가 많았다.

인도네시아의 메가와티 대통령이 대통령 자리를 자신이 당연히 차지해야 할 자리를 되찾은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아는 사람은 아는 이야기였다.

메가와티가 대통령이 된 다음 사실상 은둔 생활을 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라는 소문이었다.

오랜 인생의 목표를 이룬 뒤에 오는 허탈감에 빠져 있다는 뭐 그런 이야기······.

- 국내 정치에 관여하는 일이야 귀찮은 일이지만 다른 나라의 분쟁을 중재하는 일은 자신의 격에 맞는 일이라고 생각하나 보지. 더구나 북한의 김정일과는 아버지 때부터 친분이 있는 사이고 한국의 경우는 당장 대통령이 애가 타는 상황인데, 가기만 하면 극진한 대우를 받을 테니 뿌듯함도 느낄 테고 말이야.

“그런 말이군요. 대통령이 대통령의 임무는 관심이 없으면서 대접만 받으려고 한다니······. 인도네시아도 앞날이 그렇게 좋지는 않겠네요.”

대통령의 자리는 나서서 열심히 일해도 성공하기 어려운 자리였다.

더구나 인도네시아처럼 오랜 독재에서 벗어난 국가는 할 일도 많을 텐데 저런 태도라니, 인도네시아 국민이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 이번 일만 잘 해결하면 적어도 외국에서는 메가와티의 이름이 먹힌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니 어느 정도는 버티겠지.

“어쨌든 그래도 메가와티가 그렇게 빨리 움직인다니 다행이네요. 미국 정부를 통하면 메가와티 대통령을 움직이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조금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요.”

엘리어스가 말했다.

- 에드릭이라는 자 말대로 메가와티가 CIA 덕을 꽤 많이 본 모양이더구나. 정확히는 이야기하지 않는데 이 정도로 협조적으로 나오는 것으로 봐서는 아무래도 작년에 있었던 탄핵 과정에 CIA와 관련이 된 것 같아. 그렇지 않으면 이런 빠른 반응은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

에드릭이 어떻게 그런 사실을 알았는지 궁금했지만, 지금은 그런 일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어쨌든 다행이네요. 그렇지 않아도 여기 한국 정부는 한시라도 빨리 특사를 보내서 뭔가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안달을 내더라고요. 일단 내일 본국에서 관련된 지시가 내려오면 한국 관계자를 만나면 될 것 같아요.”

자신이 아버지를 통해서 해낸 일이지만 본국에서 관련된 지시가 내려오기 전에는 움직이기 어려웠다.

작년 9월에 부임한 현 주한 미국 대사인 토머스 허버드는 민주당에 가까워 지금은 국무부 내에서 약간 중심에서 밀려난 상태였다.

특히 한국 대사에 부임한 다음 날 911 테러가 일어남으로써 동아시아가 미국 외교의 중심에서 벗어난 이후에는 국무부 중심에서 완전히 밀려났다고 봐야 했다.

아마도 한국 대사를 마지막으로 공직에서 물러날 것이 확실했다.

그렇지만 토마스 허버트 대사는 실세라고는 하지만 사무관에 불과한 엘리어스가 무시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국무부 내에서 손에 꼽히는 동아시아 전문가였기 때문이다.

외교관 생활을 주로 동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했을 뿐 아니라 90년대 초에는 북한 핵 관련 협상을 주도했고 클린턴 정부 때는 동아시아 차관보를 역임하기도 했다.

북한과의 협상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하는 엘리어스라도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더구나 엘리어스의 목표는 중국 대사관으로 옮겨서 동아시아 전문가가 되려는 것이었다.

나중에도 토마스 허버트와 친하게 지낼 필요가 있었다.

- 중동에 관한 정보는 에드릭에게 잘 전했겠지?

엘리어스의 아버지가 물었다.

엘리어스는 에드릭에게 메가와티를 이용하라는 계획을 듣고 아버지에게 들은 중동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전달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을 명분으로 이란과 이라크가 석유 생산 감산을 은밀히 논의하고 있다는 정보였다.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두 나라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의 도시들에 탱크를 밀고 들어가 불법으로 점령하고 있는 영토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석유 생산을 줄이겠다는 발표를 할 예정이었다.

당연히 두 나라가 석유 생산을 줄이려는 이유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역 점령이 전부는 아니었다.

두 나라는 북한과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목된 나라이자 북한보다 미국의 다음 목표가 될 가능성이 훨씬 큰 국가들이었다.

두 나라로서는 이번이 아랍권에 지지를 얻으면서 유가를 상승으로 수익도 높일 수 있는 여러 가지 이익을 함께 얻을 기회였다.

“마침 도와주는 대가라는 명목으로 전하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굳이 귀중한 정보를 전해 줄 필요가 있었나요?”

엘리어스가 말했다.

- 아까운 모양이구나. 어차피 나는 내부 거래 위험 때문에 써먹지 못하는 정보를 잘 이용했다고 생각하는데?

아버지의 말대로 엘리어스는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거대한 투자금이 오가는 것이 석유 선물 시장이었다.

이런 확실한 정보라면 엄청난 돈을 벌 기회였다.

“우리야 내부 거래로 걸릴 위험성 때문에 원유 선물에 투자하지 못한다지만 이 정보가 알려지면 유가가 최소 5% 이상은 오를 겁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최소 수백만 달러에서 수천만 달러가 될 수도 있는 정보 아닙니까?”

- 너는 에드릭이라는 자가 얼마나 많은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지 궁금하잖아? 얼마나 위장 취업했던 회사에서 잘나가기에 CIA를 그만두려고 하고 네가 국무부에서 출세를 보장하는데도 그 제안을 거절하는지 말이야.

아버지의 말대로였다.

도대체 무슨 기회를 봤기에 확실한 직장을 그만두고 벌판으로 나가려고 하는지, 에드릭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궁금하기는 하죠. 에드릭은 제가 보기에도 CIA나 국무부에서도 꽤 성공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학력도 훌륭하고 아시아계인 것은 조금 그렇지만 나이를 생각하면 20년이나 30년 후에는 아시아계 최초의 국무부장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국무부장관은 말이 장관이지 미국에서 적어도 한 손에 드는 직위였다.

엘리어스는 에드릭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 지금 국무장관이 아프리카계 국무장관이니 아시아계도 그때가 되면 아시아계도 충분히 가능하겠지.

현 국무부 장관은 콜린 파월이었고 그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즉 흑인이었다.

언젠가 히스패닉계나 아시아계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 그래서 너에게 정보를 넘기라고 한 거야. 원유 선물 시장은 내 안마당 같은 곳이니 정부의 도움만 받으면 대규모 자금이 움직이면 바로 알아낼 수 있으니 말이다.

역시 아버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누구도 완전히 믿지 않은 사람이었다.

“이번에 에드릭이 어느 정도 자금을 어디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파악해 보려고 하는 거군요.”

- 그래. 적으로 삼을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상대의 역량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기본이지. 이번 기회는 에드릭을 조사할 좋은 기회야. 지금 에드릭이 있는 투자회사는 도대체가 뭘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말이야.

“워싱턴에서도 힘들다던가요?”

에드릭이 좀 특이한 투자회사에 다닌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그렇지만 미국 정부에서 나서도 파악하기 어려운 기업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 그 회사가 중국 고위층의 해외 자금 유출 통로라서 더 파고들면 중국 정부가 알아차릴 거라고 하더라.

“어디서 회사를 들어가도 그런 회사를······. 아닌가? 그런 사실을 알고 CIA가 잠입시켰겠군요.”

- 가서 CIA를 그만둘 생각을 할 정도로 능력이 있다면 제대로 된 파견한 셈이지. 관리를 제대로 못 해서 결국 놓치게 된 것으로 보이지만 말이야.

아버지의 말에 엘리어스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CIA로서는 아까운 일이겠지만 어쩌면 자신으로서는 그게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2.

‘이란과 이라크가 원유 생산량 감산을 곧 발표할 예정이라······.’

엘리어스가 대가라며 건넨 정보였다.

내가 CIA 정보망을 통해 알아보니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정보였다.

물론 내가 접속한 CIA 정보망은 정말 중요한 정보가 올라오는 내부 정보망은 아니었다.

예전에는 특별한 단말기를 이용하면 외부 정보망을 통해서도 내부 정보망에 접속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 연결이 끊어져 있었다.

당연히 외부에서 몇 가지 절차만 걸치면 접속할 수 있는 외부 정보망에 올라온 정보는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지는 단편적인 정보들이었다.

내부 정보망에 접촉할 수도 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에이전트 에스 팀의 보안 등급이라면 내부 정보망에 접속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접속 기록을 남길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단편적인 정보를 통해서 큰 그림을 알아내는 일은 내가 가장 잘하는 일 중 하나였다.

외부 정보망에는 최근 이라크와 이란 정부 관리들이 자주 접촉을 하고 있다는 정보도 있었다.

예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라크와 이란은 전통적인 적대 국가였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이 담긴 연두교서가 발표된 이후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른바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같은 처지이다 보니 힘을 합치려는 듯했다.

미국이라도 두 나라를 동시와 전쟁을 벌일 수는 없으니 결국 갈라설 수밖에는 없겠지만 지금은 비슷한 처지라고 할 수 있었다.

얼마 전에는 예전 이란이라크전쟁 당시 잡힌 포로를 교환하기도 했다.

이런 정황과 두 나라가 가지고 있는 위기감을 생각하면 원유 생산량 감산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한 달 동안 원유 가격은 20% 이상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과 이라크가 원유 생산량을 줄이면 원유 가격은 다시 급등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막 경기가 회복되고 있는 미국과 세계 경제로서는 큰 부담이었다.

문제는 이 정보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였다.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은 원유 선물에 투자한 이후에 이란과 이라크가 원유 생산량 감산을 발표하기를 기다렸다가 파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뭔가 찜찜한 부분이 있어서 바로 결정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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