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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질병보다 치료제가 해로울 때도 있다.
1.
나는 뉴스를 보자마자 엘리어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백악관 발표 봤습니다. 몰랐던 일입니까?”
- 나도 발표 직후에 들었습니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어젯밤 부시 대통령이 발언한 ‘악의 축’ 국가에 대한 발언이었다.
이번에는 지난번 연두교서와는 달리 직접 이란, 이라크, 북한을 거명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악의 축’ 발언 이후 중지됐던 대화가 재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대통령의 두 번째 발언이었다.
북한을 직접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영향이 없을 수는 없었다.
외국 정상까지 동원한 이후에야 겨우 재개된 상황에서는 말 그대로 날벼락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본국과 이야기가 끝난 것 아니었습니까?”
지난달 말 인도네시아의 메가와티 대통령이 북한과 남북 방문 배후에는 미국 국무부와 CIA가 있었다.
메가와티 대통령을 움직이는 강수를 쓰지 않아도 한국 청와대가 원하는 특사파견을 할 방법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내가 메가와티 대통령을 움직이자는 제안을 하고 엘리어스가 그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남북 대화 재개에 대해 국무부와 CIA의 협조를 받기 위해서였다.
거래해 가며 메가와티를 움직인 이상 미국 국무부도 남북 대화 재개를 지원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부시 대통령이 나서서 이런 분위기에 재를 뿌리고 나온 것이다.
- 아무래도 국방부 장관인 럼즈펠드가 나선 것 같습니다. 굳이 북한을 목표로 했다기보다는 CIA와 국무부가 나선 것이 못마땅한 거겠죠.
미국 정부에서 부시 대통령을 제외하고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두 사람은 딕 체니 부통령과 럼즈펠드 국방부 장관이었다.
그중에서 럼즈펠드 국방부 장관이 CIA를 공개적으로 적대시한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영향은 없겠습니까?”
“바로 북한도 대화를 중지하지는 않을 거라는 이야기군요.”
- 예. 이번 달 말에 있는 남북 이산가족상봉까지는 계획대로 진행될 것 같습니다.
남북 관계 진전을 보여 주는 여러 가지 이벤트가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직접 보여 줄 수는 있는 이벤트는 남북 정상회담과 남북 이산가족상봉이었다.
그중에서 정치적으로 조율해야 할 것이 많은 남북 정상회담과는 달리 남북 이산가족상봉은 부담이 그나마 적은 편이었다.
“다행이네요.”
- 그렇죠. 남북 이산가족상봉도 무산됐으면 메가와티를 움직인 일이 그냥 사라질 뻔했으니까요.
“전에도 말했지만, 남북 문제에서는 조금 거리를 두십시오. 저보다 잘 아시겠지만, 한국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입니다. 북한이 뭘 원하든 지금 한국 정부가 그 요구를 맞추기는 어렵습니다.”
- 그렇지 않아도 이번 일만 처리하고 손을 뗄 생각입니다. 이제는 중국 문제에 전념할 생각입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럼 바쁘실 텐데 다음에 제가 전화하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안심이 되었다.
다행히도 첫 번째 뉴스는 생각보다 충격이 적은 것 같았다.
오히려 이번 일로 엘리어스가 북한 일에서 손을 뗀다면 그건 다행이었다.
엘리어스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다행한 일이었다.
나는 얼마 후면 반년 동안 꼼짝없이 엘리어스와 일을 함께해야 했다.
그런데 그때도 북한 일을 해야 한다면 말 그대로 짜증이 날 것 같았다.
엘리어스를 도와서 북한 관련 조언을 할 때마다 성과는 있었지만 나는 그때마다 한계를 느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정보분석과 그 정보분석을 이용한 여론 공작이었다.
그런데 북한을 대상으로 한 여론 공작은 한계가 분명했다.
도대체 언론이라는 것도 제대로 없는 나라에 여론 공작을 무슨 수로 한다는 말인가?
반대편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은 여론 공작 자체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최근 빠르게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언론사가 늘어나고 있었다.
갑자기 언론사가 늘어나면 필연적으로 그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이용하기도 쉬웠다.
문제는 한국은 좋게 말하면 역동적인 나라였고 나쁘게 말하면 온갖 사건이 끊이지 않는 나라였다.
이슈를 만들기는 쉽지만, 그 이슈를 끌고 가서 내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기는 그리 쉽지 않았다.
2.
첫 번째 뉴스를 처리한 나는 두 번째 뉴스를 집중했다.
혼자서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국 투자를 이끄는 하성철을 불렀다.
“요즘 정신이 없으시죠?”
“괜찮습니다. 우리 일이 항상 그렇죠.”
“지난주에는 주가가 7% 가까이 폭락했으니 걱정이 많으셨겠습니다.”
내 말에 하성철이 조금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뭐 그렇기는 하죠. 저희는 선물이나 옵션은 못 하게 하시니······.”
홍콩의 류오린 아시아 3팀은 한국 코스피와 코스닥을 대상으로 선물과 옵션에 투자한다.
당연히 방향만 정확히 잡는다면 주가가 내려가도 이익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하성철이 이끄는 팀은 개별 기업 주식에 투자하게 했다.
하락장에서도 주가가 오르는 회사가 있기는 하지만 그런 회사 주식을 매번 거래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성철은 한국에서도 지수 선물 옵션에 투자를 허용하기를 원하고 있지만 아직은 내가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아직 선물 옵션에까지 신경을 쓰기는 이릅니다. 차라리 우리는 우량 기업을 인수 · 합병하는 쪽으로 갔으면 합니다.”
“사모펀드처럼 말입니까?”
“예. 이미 제가 이야기했지만 몇 달 후면 류오린 3팀이 독립해서 W&R에 합류할 예정입니다.”
“홍콩의 대표님께 들었습니다.”
홍콩의 대표란 당연히 카이 황이었다.
“그때가 되면 한국 지부를 중심으로 따로 사모펀드를 구성할 생각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하성철이 대답했다.
그의 표정은 이때만 해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하성철 팀장님도 미리미리 준비를 해 두시면 좋겠죠. 그때가 되면 사모펀드의 대표를 맡으셔야 하니까요.”
“제가 말입니까?”
하성철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직접 맡으시는 것 아니었습니까?”
“저는 한동안 다른 일을 해야 해서요. 더구나 아무리 외국 투자사 산하라고 해도 제가 사모펀드의 대표를 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문제가 되죠. 더구나 한국에서는 그게 더 어렵고요. 무엇보다 나이도 문제고요.”
투자회사는 거래 상대방들에게 신뢰를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하지만 그나마 월스트리트에서는 젊은 나이에도 투자사를 대표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한국은 여전히 나이를 연륜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분위기는 2년 전 닷컴 버블이 붕괴하면서 더욱 심해졌다.
당시 젊은 창업자들이 중심이 된 벤처 회사들이 대부분 파산하면서 한국에서는 나이가 어린 창업자들에게 투자를 꺼리는 투자회사가 대부분이었다.
내가 한국에서 사모펀드의 대표가 될 생각도 없지만, 만약 대표라고 나선다면 거의 모든 모임에서 따돌림을 받을 가능성이 컸다.
“제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하성철 씨도 30대 후반이니 그렇게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적어도 자리에 낄 정도는 된다고 할 수 있죠. 더욱이 하성철 씨에게는 제가 가지지 못한 장점이 있지 않습니까. 인맥요.”
하성철은 한때 홍콩 금융계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페레그린 출신이었다.
비록 인도네시아 외환 위기 때 파산하기는 했지만, 페레그린은 당시만 해도 홍콩에서 가장 이름이 높았던 투자회사였다.
“뭐, 일반적으로 투자는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기는 하죠. 자신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누구를 알고 누구와 함께 있었느냐가 더욱 중요한 법이니까요.”
“그 말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한국에 있던 동방페레그린증권 사람들과도 연락하고 지내십니까?”
홍콩에서 페레그린이 한창 명성을 날리고 있을 때 한국에는 페레그린의 한국 자회사인 동방페레그린증권이 있었다.
한국만 생각할 때 동방페레그린증권은 홍콩 페레그린 증권에 못지않았다.
동방페레그린증권은 한때 한국 재계 30위권이었던 대농 그룹에 대한 적대적인 인수 합병을 시도할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
“한국에 온 이후 계속 연락을 하고는 있습니다만 그건 왜 물으시는 것인지?”
비록 동방페레그린증권은 인수 합병 실패와 이어진 외환위기로 사라졌지만, 사람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동방페레그린증권은 당시만 해도 한국 증권계의 인재를 빨아들였다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인재들이 모여 있었다.
그때 모였던 직원들 대부분은 지금도 한국 금융계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마이크론의 가이닉스 인수 조건에 대해서 가이닉스 경영진과 채권단이 불만을 품고 있다는 소리가 있어서요.”
내가 알기로는 마이크론의 가이닉스 인수는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에 요구한 일이었다.
시중은행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이 강한 한국의 상황을 생각하면 마이크론이 가이닉스를 인수하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하지만 외부로 가이닉스 경영진과 채권단이 인수 조건에 불만을 품고 있다는 사실은 채권단에 대한 정부 영향력이 흔들린다는 의미였다.
“그 문제라면 이미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요?”
내가 되물었다.
“예. 들어 보니 마이크론의 인수 조건이 조금 가혹하기는 하더군요.”
“조건요?”
“마이크론은 가이닉스 중에서 메모리 부분만을 인수할 생각이라고 합니다.”
“음······ 알짜만 가져가겠다는 거네요.”
한국 반도체 회사 중에서 가이닉스는 한국의 다른 경쟁사인 사성에 비해서 저가 메모리 제품 위주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이닉스가 비메모리 제품을 아주 만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나마 경쟁력이 있는 메모리 부분과는 달리 비메모리 부분에서는 막대한 적자가 나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마이크론이 인수 대금 거의 전부를 마이크론 주식으로 지급하려고 한다더군요.”
“예? 현금 한 푼 없이요?”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주식으로 지급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더구나 인수 후에 채권단에게 추가 대출까지 요구하고 있답니다.”
“날로 먹으려고 하는 셈이네요. 더구나 마이크론 주가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의 문제도 만만치 않고요.”
채권단이 가이닉스를 매각하려는 이유는 가이닉스가 빌린 대출금을 상환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마이크론이 가이닉스 인수 대금을 주식으로 지급하고 심지어 추가 대출까지 해야 한다면 채권단으로서는 가이닉스를 매각할 이익이 별로 없었다.
“가이닉스 경영진은 비메모리 부분을 제외한 인수 조건 때문에 반대하는 거겠군요.”
“예. 비메모리 부분이 버려지는 것도 문제지만 지금으로 봐서는 마이크론이 가이닉스의 메모리 부분을 인수한다고 해도 장래가 밝지 않으니까요.”
마이크론이 가이닉스를 인수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공급과잉으로 떨어진 메모리 가격의 공급을 조절하려는 것이었다.
아주 극단적으로 말하면 마이크론은 가이닉스를 인수해서 그대로 공장을 폐쇄하는 것이 오히려 생산을 계속하는 것보다 이익이 될 수도 있었다.
물론 매각 조건에서 그런 일을 막기는 하겠지만 어느 정도 인수 이후에 어느 정도 공급량 조절이 필수적이었다.
그리고 그 공급량 조절은 미국의 마이크론 본사보다는 인수한 가이닉스를 통해 이뤄질 것이 분명했다.
마이크론이 미국 정부에 한 로비를 너무 믿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정부가 마이크론에 매각을 약속했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한국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떨어질 때로 떨어진 상태였다.
채권단이 순순히 한국 정부의 뜻을 따르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조금 더 알아보세요. 들으셨겠지만 한국 대통령이 지원했던 여당 대선 후보가 현재 다른 후보에 밀리고 있습니다. 여당 내에서도 한국 대통령의 영향력이 그만큼 약해졌다는 의미죠. 이런 상황에서는 무슨 일이 발생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마침 직원 중에서 가이닉스 경영진 쪽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요?”
“예. 이사급 임원의 아들입니다.”
“당연히 우연은 아니겠죠?”
투자회사의 직원 중에서 가이닉스 경영진 아들이 있다는 것이 우연일 리가 없었다.
“하하, 뭐······ 아시다시피 몇 년 동안 한국에서 가장 돈을 털어먹기 좋은 회사가 가이닉스다 보니······.”
“알아서 하시겠지만 조심하세요. 한국이 내부자거래에 대해서 사실상 처벌이 없다지만 그래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럴 일도 없겠지만 무슨 일이 생겨도 제 선에서 알아서 하겠습니다.”
하성철이 대답했다.
물론 내부자거래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만약 미국이었다면 하성철과 이런 대화를 나누는 일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내부자거래는 관행이라고 할 정도로 처벌받는 전례가 없었다.
“그리고 이 일도 좀 알아봐 주십시오.”
나는 내가 봤던 외신 기사를 하성철에게 보여 주었다.
기사는 한국 특파원이 쓴 한국 카드 발급 상황에 대한 우려에 섞인 논평이 나와 있었다.
“최근 한국에서 발급된 카드 수나 카드채의 발행액······. 그리고 연체 액수 등을 알아봐 주십시오.”
“이게 문제가 될 거로 생각하시는 겁니까?”
“예.”
내가 대답했다.
외신에까지 나올 정도라면 이미 꽤 문제가 진행되고 있다고 봐야 했다.
카드 위주의 소비는 한국 정부가 외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때로는 치료제가 질병 그 자체보다 나쁜 경우도 있었다.
신용에 의존한 소비는 언제든 붕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