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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일을 꾸미는 건 사람이 하지만 이루어지는 건 하늘에 달려 있다
1.
리안을 만나고 나는 서울로 돌아왔다.
돌아온 서울은 월말에 개최될 월드컵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방송에서는 월드컵의 경제 유발 효과가 몇십조 원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한국 지사도 마찬가지였다.
나와 마찬가지로 미국인인 하성철조차 어딘가 들뜬 분위기였다.
그는 심지어 안쪽에 ‘Be the Reds’라고 쓰여 있는 붉은 티셔츠까지 입고 있었다.
나름 자유로운 복장을 하고 근무하도록 정해 놓기는 했지만 저런 티셔츠까지 입고 근무할 줄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축구 좋아하시나 보네요.”
“예, 뭐······.”
일단 축구 이야기를 꺼내자 하성철은 미국 대표 팀은 물론이고 한국 대표 팀의 최근 친선경기까지 이야기하며 한동안 축구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워낙 열정적으로 이야기해서 나는 그의 말을 막을 기회를 놓쳤다.
나는 하성철의 이야기에 다시 한번 이야기했다.
“축구 정말 많이 좋아하시나 보네요.”
내 이야기를 듣고서야 하성철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는지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미국에 있을 때도 좋아했었지만 아시다시피 제가 미국에서 홍콩으로 온 것이 1990년대 초반이니 아시아에 온 지가 거의 10년입니다. 이쪽에서는 축구에 대해 모르면 술집에서도 이야기에 끼기가 어렵습니다.”
축구가 빠르게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아이들을 중심으로 축구를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여전히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풋볼, 아시아에서 말하는 미식축구였고 그다음이 농구 야구 아이스하키 순이었다.
나도 미국에서 야구는 해 본 적이 있고 꽤 좋은 성적을 내기도 했지만, 축구는 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축구는 일부러 멀리했다는 말이 더 맞았다.
미국에서 어린 시절 축구를 많이 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마이너 스포츠라는 인상이 강했다.
운동하는 이유가 주류에 끼고 무시당하기 싫어서였던 나로서는 관심 밖의 스포츠였다.
아버지나 동생은 축구를 좋아했지만 말이다.
“축구를 좋아하시는 것이야 자유지만 다른 사람들과 같이 들떠서야 제가 하성철 씨에게 지사를 맡길 수 있겠습니까?”
이미 하성철에게 내가 한국 지사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를 한국 지사를 맡기겠다는 이야기를 해 놓았다.
나는 하성철의 얼굴을 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지사장이 되더라도 지금과 하는 일은 별로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그래도 대외적으로나 내부적으로 하성철 씨의 행동 하나하나는 바로 W&R 한국 지사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조심해 줬으면 합니다.”
“죄송합니다.”
내 질책에 하성철이 사과했다.
“본사 투자 방침이 정해졌습니다.”
나는 화제를 바꿨다.
더 이야기해 봐야 반감만 더 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시겠지만 본국의 최근 경제정책 방향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지난번 철강 관세에 이어서 지난주에는 대규모 농업 보조금을 야당인 민주당에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였죠. 말은 하지 않지만 달러 약세를 한동안 유지할 생각이고요.”
“한국에서도 카드 사태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는데 좋은 이야기는 아니네요.”
“한국 지부로서는 특히 그렇죠.”
부시 행정부는 경제를 살리는 방향으로 보호무역주의를 선택했다.
철강과 같은 제품에 보호관세를 부과하고 막대한 농업 보조금을 지원하고 달러 약세를 통해 수출을 늘리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이런 정책이 진정으로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정책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최근 백악관은 911 테러 이전에 이미 CIA에서 관련 경고를 받고도 무시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연말 중간선거를 앞둔 백악관으로서는 엄청난 악재였다.
미국 내부에서는 일련의 보호무역주의 조치가 경제를 살리려는 목적보다는 연말 중간선거에서 대통령을 살리려는 목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목적이 무엇이든 그리고 과연 보호무역주의로 미국 경제를 살릴 수 있느냐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세계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분명했다.
악재였다.
특히 대미 수출 비중이 큰 한국으로서는 미국 달러화 약세는 곧 한국의 수출 경쟁력 약화였다.
그렇지 않아도 카드사의 부실 문제가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무역까지 줄어드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짐작하시겠지만 W&R 본사에서는 다음 주 주식시장 전망을 어둡게 보고 있습니다.”
“역시······.”
하성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은 아직은 월드컵 개최 열기로 이런 분위기에서 잠시 비켜나 있지만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개별적으로 보유한 주식 중에 아직 가지고 있는 주식이 있나요?”
“내수주 중심으로 저평가 우량주로 시장에서 평가받는 주식들 몇몇을 제외하고는 전부 다 매각한 상태입니다.”
“좋습니다. 이번 주는 일단 관망세로 지켜보는 것으로 하죠. 최근 한국 선물 옵션 시장이 늘고 있으니 거기에 집중하세요.”
“알겠습니다.”
2.
한국에서 원래 계획은 시진핑과 송더푸를 만족시킬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문제가 터져 나왔다.
가장 먼저 문제가 터져 나온 것은 미국의 존 베비스였다.
- 이번에 출마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네.
존 베비스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왜 그러십니까?”
- 자네도 알다시피 이 지역 의원인 에디 셔록이 만만치 않아.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에디 셔록은 미 해군 장교 출신이잖아. 예전부터 군 출신이 선거에서 유리한 경우가 많았지만 911 테러 이후에는 더욱더 미국 유권자들이 군 출신을 선호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어. 더구나 주 상원 의원도 지내서 지역적 기반도 만만치 않고 말이
야. 오죽하면 지난번 에디 셔록과 맞붙었던 조디 와그너가 의원을 포기하고 주 재무부 장관이 됐겠나.
“덕분에 당내 경선을 별로 어렵지 않다면서요?”
존 베비스가 출마하려고 하는 지역은 버지니아 2지역구였다.
이 지역구는 오랜 세월 민주당의 텃밭이었지만 민주당 의원이 은퇴한 이후 지금은 에디 셔록이라는 공화당 의원이 차지하고 있었다.
지난 선거에서 경제학자 출신으로 민주당 후보였던 조디 와그너는 올해 초부터 주 재무부장관이 되었다.
덕분에 존 베비스는 버지니아 정치계에서 신인임에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민주당 후보가 될 예정이었다.
- 그렇기야 하지만 당내 경선에서 이기면 뭐 하나, 본선이 중요한 거지.
“지금 에디 셔록 의원에 대한 제가 따로 조사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만약 사실로 밝혀지면 아주 치명적인 문제라고는 하는데, 확실한 증거는 없어서 아직 밝힐 단계는 아니라고 합니다.”
- 그 치명적인 문제라는 게 뭔데?
존 베비스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서 다급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아직은 확실하지 않은 것이라서······.”
- 그래도 대충은 들었을 것 아닌가? 뭔데 그러나?
“그게······ 에디 셔록 의원이 사실은 게이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미국 공화당은 여전히 기독교의 영향이 막강했다.
기독교의 영향으로 동성 결혼이나 낙태에 대해서 반대하는 처지였다.
만약 공화당 의원이 게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선거에서 막대한 지지표가 이탈할 것이다.
더구나 에디 셔록은 군인 출신이었다.
미군은 군대 내 게이 문제에 관해 이른바 묻지도 않는다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다.
대신 군인이 게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불명예제대를 시키고 있었다.
- 뭐? 자네 장난하나?
존 베비스에게서는 놀랍다기보다는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 에디 셔록은 해군 출신이야. 월남전에도 참전했고 무려 24년을 근무했어. 더구나 게이라는 게 말이 안 되는 게 그는 의회에서 군대에 게이가 입대하는 것이나 동성 결혼을 앞장서서 반대하고 있어.
나는 에디 셜록의 배경만 알고 있을 뿐 에디 셔록의 의정 활동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관심도 없었다.
아마 존 베비스가 출마할 생각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이름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습니까? 그럼 더 잘됐네요. 만약 게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의정 활동까지 묶어서 정계 은퇴까지 시킬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만약 존 베비스의 말대로라면 위선자라는 낙인과 함께 그나마 얻을 수 있는 동성연애자들이나 동성연애를 하지는 않지만, 그 권리는 지지하는 사람들의 표까지 이탈시킬 수 있었다.
- 그렇기야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에디 셔록이 게이라는 것은 좀 믿기가 어려운 일이라서······.
존 베비스는 여전히 믿기지 않은 듯했다.
“그래서 포기하실 생각입니까?”
- 그건 아니네.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런 이야기가 있지는 않을 테니 명확한 증거가 아니라 정황증거만이라도 충분히 이용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야망이 있는데, 그 야망을 실현할 가능성이 있는데 포기할 리가 없었다.
“일단 팀장님은 모른 척하십시오. 혹시 조사도 하지 말고요. 만약 공화당 쪽에서 눈치를 채면 경선을 포기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나중에라도 팀장님께서 조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좋을 것이 없습니다.”
- 알겠네.
3.
겨우 존 베비스를 진정시키고 며칠 후 이번에는 단테 패트릭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
내가 주한 미국 대사관에서 일하는 이상 주일 미국 대사관에서 일하는 단테 패트릭과는 마주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단테 패트릭을 관리해 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 나야 잘 지내지. 정작 총리가 잘 지내지 못해서 그렇지.
“무슨 일이라도 또 생겼습니까?”
- 무슨 일이 있겠나. 문제라면 지지율이 떨어진 것이 문제지. 최근 조사에서 38%까지 지지율이 떨어졌어.
“내년 선거까지는 시간이 남았으니 그동안 반전의 기회가 오겠죠.”
- 당내에서 반대파들이 모이고 있으니 문제지. 지금 같아서는 월드컵에서 일본 대표 팀이라도 성적이 좋기를 바랄 뿐이야.
단테 패트릭도 월드컵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축구와 총리의 지지율이 무슨 상관이냐고 묻고 싶지만, 실제 남미나 아시아 지역에서 축구 팀의 성적이 어느 정도는 정부 지지율에 영향을 주는 것이 사실이었다.
심지어 남미 같은 국가인 아르헨티나나 브라질의 경우는 대표 팀이 월드컵에서 우승했을 때 경제 상승률이 어느 정도 오른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였다.
엄청난 영향은 아니지만, 브라질이 남미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소수점의 영향이라도 무시할 수 없는 숫자였다.
특히 이번에 한국과 일본은 개최국이었다.
대표 팀의 성적이 대통령이나 총리의 지지율과 관계가 없다고 단언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제가 알기로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개최국이기는 하지만 이번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는 어려울 것 같던데요?”
- 16강이라도 가기를 바라야지.
“그런 불확실한 것보다 어수선한 틈을 타서 지난번에 이야기한 다나카 전 외상을 보내 버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 다나카 전 외상을?
“예. 어차피 지금 자민당 내에서 고이즈미 총리 정도라도 인기가 있는 인물은 다나카 외상 정도입니다. 다음 총재 선거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이기도 하죠.”
- 그렇기야 하지.
“더구나 다나카 전 외상은 국민 사이에서는 아직 인기가 많습니다. 그게 아버지인 다나카 전 총리에 대한 향수인지 아니면 다나카 전 외상의 거침없는 언행에 대한 지지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 그야 나도 알지. 따지고 보면 고이즈미 총리의 지지율이 지금처럼 떨어진 이유도 1월에 다나카 전 외상을 외상 직에서 물러나게 한 탓이 크니까.
“아시겠지만 다나카 전 외상은 언제든지 일본의 메가와티 총리가 될 수도 있는 인물입니다. 만약 다나카 전 외상이 일본의 총리가 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 본국이 관리하기 껄끄럽기는 하지. 그래서 이번에 제거하자?
“다나카 전 외상 정도 거물을 검찰 조사로 정계에서 은퇴시킬 수는 없겠지만 고이즈미 총리에 대항해서 다음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오는 것을 막을 수는 있겠죠.”
- 무슨 말인지 알겠네. 고이즈미 지지율을 높일 수는 없으니 유력한 총리 후보인 다나카를 흠집 내자는 말 아닌가.
“그렇죠. 여전히 다나카 외상의 높은 인기를 생각하면 일본 국민의 관심이 축구에 쏠려 있는 지금이 좋겠다는 말입니다.”
- 알겠네, 내가 한번 이야기해 보겠네. 자네에게는 매번 도움만 받는 것 같군.
“서로서로 돕는 거죠.”
- 그럼 다음에 다시 연락하겠네.
단테 패트릭이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 후에도 문제는 계속 터져 나왔다.
부시 대통령은 유럽을 순방하면서 911 사태 책임을 회피하려는 목적인지 쿠바, 이라크, 이란, 시리아, 수단, 북한을 테러 지원국으로 거명하며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유럽 정부의 지지를 요청했다.
엘리어스로서는 조금 힘이 빠지는 뉴스였다.
내가 겨우 시진핑과 송더푸를 설득할 계획을 세우고 홍콩으로 갔을 때 쟝사오이에게서 뜻밖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시진핑 성장 아버지인 시중쉰이 위독하다고요?”
“예. 그래서 지금 푸젠성에 가도 시진핑 성장을 만날 수 없어요. 당연히 시진핑 성장이 없는 상황에서는 송더푸 당서기도 만날 수가 없고요.”
어차피 직접 만날 생각은 없었다.
나는 다음 달이면 임시직일지언정 미국 대사관에서 일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차기 지도부의 핵심 인물을 직접 만나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그렇지만 시중쉰이 사망하기 이전과 이후는 시진핑이 가지는 위상 자체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 점도 고려해야 했다.
일을 꾸미는 건 사람이 하지만 이루어지는 건 하늘에 달려 있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