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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할머니에게 부엌일에 대해 충고하지 마라
1.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이 위독하다는 소식에 당연히 만남도 연기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네. 현재 파키스탄의 상황이 도저히 투자할 상황이 아니니 말이야.”
리안이 말했다.
그의 말대로였다.
“지금은 공청단이 아니라 설사 장쩌민 총서기라도 홍콩기업은 고사하고 중국 국영기업에도 파키스탄에 투자하라는 말을 꺼낼 분위기가 아니잖아.”
내 말에 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런데 역시 핵보유국이 다르기는 다르네. 핵이 말 그대로 비대칭 전략무기이기는 하네. 전력으로는 인도에 열세인데 핵무기를 가졌다는 이유로 어찌 넘어갈지도 모르는 상황 아니야?”
나는 이번 파키스탄 사태를 보면서 약소국들이 핵미사일을 가지려고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실 인도와 파키스탄이 전쟁을 벌인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파키스탄은 건국 이후 지금까지 몇 번의 인도와의 전쟁에서 매번 패배했다.
애초에 현 파키스탄의 대통령인 무샤라프 당시 참모총장이 쿠데타를 일으킨 이유가 1998년 인도와의 전쟁에서 패배에 대한 책임으로 해임될 위기였기 때문이었다.
파키스탄은 인도와 함께 핵무기를 가진 핵보유국이었다.
“그래도 이번은 좀 너무 지나친 것 아니야? 인도가 지난번 군 캠프 공격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고 나서는 와중에 파키스탄은 전격적으로 핵탄두 미사일 실험을 강행하다니, 미친 것도 아니고······.”
리안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인도가 전략상으로는 파키스탄보다 우위지만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공멸할 수밖에 없었다는 위협이겠지.”
“어쨌든 우리로서는 상관없디. 말했다시피 아무리 공청단이라도 리안 너에게 파키스탄 투자를 재촉할 분위기가 아니니까.”
“이번에는 인도가 양보하는 건가?”
리안이 물었다.
“그렇겠지. 어찌할 거야. 핵전쟁을 감수할 생각이 없으면 물러나야지.”
“아무리 그래도 파키스탄도 위협이지 핵을 실전에 쓸 생각은 아니잖아.”
“그럴 가능성이 크기야 하지. 그런데 어차피 무샤라프 대통령으로서는 이런 방법밖에는 쓸 카드가 없기는 해. 회심의 한 수였던 국민투표를 통한 임기 연장은 패배뿐인 승리로 끝났고 지난번에 이어서 다시 인도에 양보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말이야.”
“하긴 이미 무샤라프 대통령은 지난번 인도 의회 습격 사건 때 한 번 인도에 양보했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물론 내부 반대파를 견제하는 목적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양보는 양보였지.”
“이번에도 물론 빌미는 파키스탄 쪽에서 먼저 도발했지만 다시 양보하기는 어렵기는 하겠지.”
“맞아. 특히 국민투표로 지도력이 타격을 입은 상태에서 또다시 양보한다면 군에 대한 장악력을 완전히 잃을 수도 있어.”
내 말을 곰곰이 듣던 리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나는 리안의 질문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냐니 뭘?”
“이번 핵탄두 미사일 실험 말이야.”
리안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지금 파키스탄에 미군을 비롯한 다국적군이 여전히 머물고 있잖아. 그런데도 핵탄두 미사일 실험을 강행했다는 것은 다국적군, 아니 정확하게는 미국도 그 실험을 허용했다는 의미일까?”
“아무래도······ 전에 말했다시피 미국은 무샤라프를 지킬 생각일 거야. 지금 미국으로서는 파키스탄에 무샤라프보다 더 맞는 지도자가 없을 테니까 말이야.”
미국이 전략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가 지도자로 가장 선호하는 지도자는 바로 약점이 많은 지도자였다.
예전부터 미국은 항상 그런 지도자를 선호했다.
내가 지난 작년 한 해 동안 했던 일들 대부분이 국민에게 인기 있는 지도자를 끌어내리고 바로 그런 지도자로 대체하는 일이었다.
인도네시아의 메가와티가 그랬고 필리핀의 아로요가 그랬고 일본의 고이즈미도 예외가 아니었다.
최대계파를 이끌던 하시모토 류타로가 아니라 고이즈미를 미국이 선택한 이유는 단지 하시모토의 친중 성향 때문이 아니었다.
고이즈미는 자신이 이끄는 계파가 없었기 때문에 국민적지지, 즉 지지율을 항상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고이즈미가 열심히 한다고 해도 그런 고이즈미 정권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내부적 노력 외에 지지율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외부 요인 중 가장 큰 변수를 만드는 것이 바로 미국이었다.
고이즈미 정부는 태생적으로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너도 나스닥에 투자했으니 알겠지만, 미국의 정책은 그게 외교 정책이든 경제정책이든 모두가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이 무엇이든 미국의 국익을 위한 거야. 그리고 대통령이 초선일 경우에는 재선이 모든 정책의 우선 목표지. 테러와의 전쟁도 따지고 보면 911 테러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봐야지. 그것을 위해서라
면 파키스탄 대통령이 무샤라프가 아니라 히틀러라도 미국은 지지할 거야.”
내 말에 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겠지. 그게 이상하거나 나쁜 일도 아니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정책을 추진하는 건 나쁜 일이 아니었다.
다른 나라도 하는 일이었다.
미국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미국에 대한 환상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최소 한두 달 동안은 세계 증시 상황이 나쁠 거야.”
“그렇게 생각해?”
“연말에 미국 중간선거가 있잖아. 계속 주가가 상승할 수는 없으니 지금 조금 조정을 거치면 선거가 있는 연말쯤에는 오르겠지.”
사람은 그렇게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이성적인 존재라면 증시라는 합법적인 도박판이 존재할 수 없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이성적인 판단을 내린다면 주식을 팔고 사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애널리스트들은 수많은 수학적 이론과 회계학적 이론을 이야기하며 주식을 평가하지만 주식시장은 인간의 광기로 움직이는 경우가 더 많았다.
아직 미국 경제가 완전히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그건 주가도 마찬가지였다.
주가가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해야 한다면 정부로서는 선거가 있는 연말에 오르는 것이 더 유리했다.
“다음 주에는 그럼 대부분 매도 포지션을 잡으면 되는 건가?”
“한동안 그렇게 유지해줘. 아! 타이완 쪽만 빼고 타이완은 다른 곳 오를 때도 떨어졌으니 한 번 정도 숨 고르기를 할 때가 됐어.”
“알았어. 그건 조민에게 말해 볼게.”
리안이 대답했다.
그는 잠시 내 눈치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홍콩에는 언제까지 있을 거야?”
“왜? 무슨 일이라도 있어?”
내가 물었다.
리안의 표정이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바쁘지 않으면 서울로 돌아가기 전에 브레이크하고 이야기 좀 해 봐.”
“브레이크······. 왜? 주식시장이 파산한 것 때문에 그래?”
“맞아. 큰 손해는 아닌데 주식시장이 파산하는 바람에 몇몇 기업 주식을 파는 게 힘든가 봐.”
생각해보니 브레이크를 만나서 이야기한 지도 꽤 오래전이었다.
한 번 정도 이야기를 나누면서 관리해 줄 필요가 있었다.
2.
“이번에 투자에서 손해를 조금 보셨다면서요?”
“그렇게 됐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브레이크는 예전 서핑을 좋아하던 그때의 브레이크가 아니었다.
조금 힘이 없어 보였다.
“투자를 하다 보면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는 것이지. 너무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그래도 이런 경우는 전혀 예상하지 못해서······.”
“투자한 회사가 파산하는 경우라면 모르겠지만 아예 판 자체가 사라진 경우는 아무리 분석해도 막기 어렵죠.”
브레이크가 처한 상황은 조금 복잡했다.
아시아 쪽은 주식시장을 정부가 운영하는 경우 많았지만, 유럽의 주식시장은 대부분 그 자체로 주식회사인 경우가 많았다.
얼마 전 그중 하나인 독일 전자 결제 주식시장이 파산했다.
닷컴 버블이 붕괴하면서 독일 관련 기업들이 타격을 입고 그 여파로 벤처 기업들이 주로 거래되던 시장 자체가 파산한 것이다.
“어렵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그렇다고 파산을 할 줄은······.”
기업은 파산을 했다가도 다시 살아날 수도 있겠지만 주식시장이 파산하는 경우는 재기가 불능이라고 봐야 했다.
당장 독일만 해도 다른 대안이 많았다.
어떤 기업에 파산했던 주식시장에서 자신의 기업을 상장시키려고 하겠는가?
설사 있다고 해도 그런 시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기업에 투자하려는 투자자는 적을 것이다.
차라리 상장하지 않고 장외거래를 통해 주식을 파는 것보다 못했다.
주식이 거래되는 시장이 파산했으니 당연히 그 시장을 통해 거래되던 기업들의 주식 매매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독일 DAX 지수가 매일 떨어지는 상황에서 이런 기업들 주식을 매각하는 것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손실 처리를 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매매를 포기한 상태였다.
전체 투자금에 비해서는 일부지만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투자한 돈 전체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은 처음이었다.
“위험이 있으면 위험을 분산해야죠. 이번 기회에 독일 말고 영국까지 본격적으로 투자를 확대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영국까지 투자를 확대하는 내 이야기에 브레이크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영국요?”
되묻는 브레이크의 눈은 어느 때보다 커 보였다.
“예. 물론 지금도 FT100 지수에 투자하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런던 주식시장에는 FT100 말고 다른 지수도 있고 기업도 있으니까요. 지금은 독일에 투자하는 비중이 훨씬 높은데 비중을 확대하자는 말이죠.”
유럽 투자자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영국 런던 주식시장이었다.
그건 브레이크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막대한 이익이 나는 러시아에 대한 투자를 포기하고 독일에 대한 투자로 바꾼 것은 언젠가는 영국 런던 시장에 입성하겠다는 야망 때문이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습니다만······. 지금 전체적으로 주가도 좋지 않은데 투자를 확대할 때인지는 조금······.”
브레이크는 조금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의 눈빛에서 야심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요. 조금 전 리안과도 이야기했지만 나는 적어도 한두 달은 전 세계 증시가 내림세를 보일 거로 생각합니다. 투자 방향을 확실히 알고 있는데 지금보다 더 투자하기 좋은 때가 있을까요?”
개별 기업 주식에 투자할 때라면 당연히 지금은 좋은 시기가 아니었다.
바닥에 사서 어깨에 팔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지금은 주식시장의 바닥이 어디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하물며 개별 주식의 바닥은 더더욱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지수 선물이나 옵션에 투자하기에는 나쁜 시기가 아니었다.
“적당한 근거가 있다면 큰 규모가 아닌 이상 공매도를 해도 허용할 생각입니다. 물론 투자에 영향을 주지 않을 범위에서요.”
개별 기업에 대한 공매도는 위험이 큰 투자 방법이기는 했지만 따지고 보면 지수 선물이나 옵션에 투자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공매도가 문제가 되는 것은 전체 투자에 영향을 줄 정도로 큰 규모로 공매도를 하는 경우였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그렇지만 언제나 투자에 성공할 수 없었다.
매번 모든 것을 걸면 한 번만 져도 모든 것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브레이크를 보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조민 씨를 보면 내가 공매도를 일정 규모 내에서는 허용했다는 말을 전해 주세요.”
“아니, 왜 직접 하시지?”
내 이야기에 브레이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을 이었다.
“조민 씨가 지금은 잠시 투자자를 만나러 나가서 회사에 없는데 이제 들어올 시간이 됐습니다.”
나는 시계를 재빨리 확인했다.
“약속이 있어서 저는 가 봐야겠네요.”
나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지 않아도 조민이 회사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온 것이었다.
내가 조민을 피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내 예상과는 달리 조민이 전에 공매도를 제안했던 다이너지의 주가가 대폭락했기 때문이었다.
현재 다이너지는 회계 부정으로 대규모 조사를 받고 있었다.
심지어 어제는 작년 말 엔론 인수 합병을 협상했던 회장 겸 대표이사가 물러났다.
만약 그때 조민의 제안을 받아들여 공매도했다면 또다시 대박을 터트렸을지도 몰랐다.
내가 항상 모든 투자에서 정확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공매도를 직접 해 본 적이 없었다.
그에 비해 조민은 엔론과 휴렛팩커드 두 거대 회사의 공매도를 성공적으로 끝냈다.
적어도 나보다는 공매도에 전문가인 셈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내가 조민에게 공매도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 것은 할머니에게 부엌일에 대해 충고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모든 것을 거는 공매도는 반대하고 있지만, 조민을 보기는 껄끄러웠다.
브레이크를 통해서 공매도를 작은 규모에서 허용하는 것으로 내 사과를 대신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