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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슈퍼리치 되다-222화 (223/270)

(222)

#223화. 서로 다른 것은 다른 것이다

이반 부카드에게 제안을 한 다음 나는 일단 호텔로 돌아왔다.

이반 부카드도 국방부와 이야기를 해 봐야 하는 일이었다.

호텔로 돌아온 나는 홍콩에 전화를 걸었다.

다음 투자 방향을 정하기 위해서였다.

에이전트 에스 팀으로 정식으로 활동하기로 했지만 이제 내 본업은 CIA 직원이 아니라 투자자라고 할 수 있었다.

전에는 CIA 요원으로 살아남기 위해 내 안전을 위해서 투자했다면 이제 투자를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서 에이전트 에스 팀으로 활동하는 것이었다.

“나야 에드릭!”

-번호가 인도네시아 전화번호인데 지금 인도네시아에 있는 거야?

“일이 있어서······.”

-하여간 너는 회사에 다닐 때나 회사를 그만둔 다음이나 뭘 그렇게 돌아다녀?

“내가 전에 이야기했잖아. 나는 일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지 휴가 때도 여행 가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야.”

-전에도 들었지만 나는 왜 네가 아무리 그런 말을 해도 믿기지를 않냐?

“네 말을 듣고 보니 뭐라고 할 말이 없네.”

생각해 보니 리안을 만난 이후로는 더 정확하게는 홍콩에 간 이후로는 비행기에서 보낸 시간이 정말 많았다.

지금은 나도 내가 미국에 있을 때 휴가 때도 집이나 기숙사에서 보내던 때가 아득한 옛날같이 느껴졌다.

-뭐 나야······ 네가 여행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알 바가 아니지. 투자 방향만 정확히 알려 줘서 내 돈을 불려 주면 그만이니까.

“너 말을 해도······. 알았어. 어차피 나도 시간이 없으니 짧게 이야기할게.”

-알았어. 그래, 다음 주는 시장이 어떨 것 같은데?

리안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어느새 진중해졌다.

“전에 말했다시피 달러가 약세라서 시장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안 좋을 것 같아.”

-숏 포지션을 유지하자는 말이지.

“맞아.”

-알았어. 그리고 브레이크가 이번 투자부터 영국 런던 주식 시장에 투자한다고 하더라고······.

“네가 지난번에 만났을 때 영국에도 투자하는 것이 어떠냐고 이야기했어.”

-잘했네. 브레이크도 좀 의기소침해 있더니 지금은 꽤 의욕이 넘쳐서 걱정될 정도야.

“다행이네.”

-그리고 조민이 이야기할 것이 있다더라. 전화 한번 해 줘.

“그래?”

조민이 이야기할 것이 있다는 말에 나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이야기하는 것이 조금 껄끄러운데······.”

어쨌든 그녀가 제안한 다이너지에 대한 공매도를 반대했다가 기회를 놓친 셈이기 때문이다.

-뭘 그렇게 신경 써?

“단순히 직원이기만 했다면 별로 신경 쓸 필요가 없겠지 하지만 리안 네 약혼녀잖아.”

-그냥 직원으로 대해.

“그냥 직원은 무슨······. 당장 지금도 단순한 직원이었다면 팀장인 너를 통해서 전화해 달라는 이야기를 전할 수 있었겠어?”

-그런가?

“뭘 ‘그런가’야. 그런 거지.”

-부담을 줄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나도 이야기를 전해 달라는 정도의 부탁을 거절하기도 그렇고······.

“알았어. 내가 알아서 할게.”

-미안! 그리고 수고해!

리안이 먼저 전화를 서둘러 끊었다.

아마 조민의 이야기를 내게 전한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 것 같았다.

“조민 씨, 에드릭입니다.”

나는 되도록 정중하게 말했다.

어차피 지금은 그의 상사도 아니었기 때문에 되도록 예의를 갖춘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연락을 요청하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공매도 문제로 연락을 드렸습니다.

“공매도요? 그 문제라면 이미 브레이크 씨를 통해서 큰 규모가 아니면 상관없다고 이야기를 드렸는데요?”

-그래도 공매도하기 전에 먼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

“알겠습니다. 말씀해 보세요.”

-제가 들은 정보에 의하면 미국의 가스 업체인 엘 파소가 엔론과 비슷한 회계 부정을 저질렀다고 하더라고요.

이전 조민이 공매도를 제안했던 엔론이나 다이너지와 비슷한 경우인 것 같았다.

“어떻게 알게 된 정보인데요?”

-미국에 있을 때부터 알던 동료를 통해서 들은 정보예요.

혹시나 해서 물어봤지만 역시 정보 출처는 내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그 공매도는 포기하죠.”

-예? 분명 공매도에 대한 재량권을 주신다고······?

조민은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최근 미국 SEC가 내부자 거래에 대한 집중적인 단속을 하고 있습니다. 엔론이야 워낙 충격적인 일이었고 우리 말고도 공매도에 참여한 사람들이 많았으니 상관없지만, 또다시 에너지 관련 기업에 공매도하는 것은 너무 위험합니다. 내부자 거래로 조사를 받게 되면 회사 전체가 타격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조민에게 정보를 알려 준 것은 아서앤더슨의 전 동료들일 것이다.

엔론과 다이너지 그리고 이번에 엘 파소 모두 앤더슨이 회계감사를 맡은 기업들이었다.

그들이 그런 정보를 외부로 빼돌려서 공매도하려는 이유는 이해할 수 있었다.

현재 한때 세계 최대의 회계 법인이었던 아서앤더슨은 회계 부정이 드러난 기업들의 주주들 그리고 그 기업들에 투자했던 채권자들에게 집중적인 소송을 당하고 있었다.

물론 금융감독 당국과 미국 정부의 조사를 받는 것은 물론이었다.

소송이 아니더라도 아서앤더슨은 회계 법인으로서 기본적인 신뢰를 잃었다.

아서앤더스의 운명은 끝났다고 봐야 했다.

배가 침몰하면 빠져나가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었다.

그리고 그런 혼란의 와중에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고 하는 사람이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조민에게 연락해서 공매도하려는 전 동료들도 그런 인간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명백한 내부거래였다.

엔론과 다이너지에서 멈췄다면 나도 굳이 조민에게 경고를 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지만 이번에 또 다른 기업에 대해 공매도를 하는 것은 정도가 지나쳤다.

이건 침몰하는 배에서 단순히 자신의 물건을 챙기는 정도가 아니라 혼란을 이용해서 강도질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비도덕적인 것을 떠나서 너무 무모한 행동이었다.

지금이야 금융 당국도 이어지는 대규모 회계 부정으로 조사하는데 정신이 없어서 이런 행동을 감시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공매도에 대한 조사가 이어질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나선다고 해도 홍콩에 있는 W&R을 조사하는 데는 한계가······.

조민은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했다.

“리안은 조만간 W&R의 대표가 될 겁니다. 리안이 내부자 거래로 미국 당국의 추적을 받게 하고 싶으십니까?”

-아니에요.

“알아들은 것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전 동료들에게 정보를 얻는 것은 말리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들은 정보로 투자하기 전에 저에게 미리 연락을 주십시오. 그리고 앞으로 저에게 연락할 일이 있으면 직접 연락을 주시고요. 리안이 아니라요.”

-알았어요.

“그럼 알아들은 것으로 알고 끊겠습니다.”

* * *

이반 부카드에게서는 바로 연락이 오지는 않았다.

이틀 정도 자카르타 호텔에 묵었을 때 마침내 전화벨이 울렸다.

-자네 제안을 받아들이겠네. 인도 파키스탄 전쟁을 막을 방법을 듣고 싶은데?

“알겠습니다. 제가 지금 가겠습니다.”

나는 지난 며칠간 정리했던 자료를 챙겨 CIA 안가로 향했다.

“어서 오게.”

이반 부카드가 나를 맞았다.

안가 한쪽에는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중화기를 동원한 전투가 벌어졌다는 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뉴스를 보고 이반 부카드가 나에게 급히 전화를 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마 뉴스가 나오기 전에 교전 소식을 듣고 바로 전화를 건 것 같았다.

“장갑차까지 동원됐나 보네요.”

나는 뉴스를 보면서 말했다.

나로서는 나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 상황이 급박해. 백악관에서 지금 인도 파키스탄 양국 정상에게 자제를 요청하는 전화를 한다고 하더군.”

“럼즈펠드 장관만으로는 전쟁을 막는 데 한계가 있었나 보네요.”

이반 부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보다 지난번 캠프 습격 희생자들이 여성과 아이 들인 것에 인도 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인도 바즈파이 총리가 자신도 어쩔 수가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정보야.”

현재 인도 총리인 인도 인민당 출신의 아탈 비하리 바즈파이였다.

바지파이 총리는 인도 인민당에서도 온건파 정치인으로 인도 정치인 중에서도 인격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하긴 현 바즈파이 총리의 성격을 생각하면 전쟁을 원할 리가 없기는 하겠죠.”

“그렇지만 정치 지도자라고 전쟁을 원한다고 하고 원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을 수 있는 게 아니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그렇듯 말이야.”

국가 지도자는 국민의 여론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인도 인민당은 힌두교를 기반으로 하는 정당이었다.

인도 인민당은 종교를 기반으로 하는 다른 정당과 마찬가지로 다른 종교를 가진 국가와의 분쟁에서 호전적인 성향을 보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몇 달 전에 발생해서 수만 명이 목숨을 잃은 구자라트 사태였다.

부시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911테러에 대한 국민적인 분노 때문이었다.

“지금 상황은 국민의 분노를 등에 업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일으켰던 본국이 인도 파키스탄 전쟁을 막아야 하는 상황이네요.”

“그런 셈이지. 이제 이야기를 해 보게. 무슨 방법으로 인도 파키스탄 전쟁을 막겠다는 이야기인가?”

이반 부카드가 물었다.

“간단하다면 간단합니다. 지금 인도인의 분노를 파키스탄이 아닌 다른 쪽으로 돌리는 거죠.”

이반 부카드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다른 쪽으로 돌리다니? 이번 일을 벌인 것은 파키스탄 민병대인데 어떻게 분노를 다른 쪽으로 돌린다는 말인가?”

이반 부카드의 질문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공공의 적이 있지 않습니까.”

“공공의 적이라니?”

“알카에다와 탈레반요.”

“알카에다와 탈레반이라······.”

이반 부카드가 무언가가 생각난 듯 눈이 순간적으로 커졌다.

“자네, 그럼?”

“예. 인도군 캠프를 공격한 배후를 알카에다와 탈레반으로 모는 거죠.”

이반 부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기는 한데······ 그게 먹히겠나?”

“물론 쉽지는 않겠죠. 전부를 믿게 할 수도 없고요. 하지만 인도인 중에는 핵무기를 가진 파키스탄과 전쟁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을 겁니다. 특히 인도 파키스탄 국경과 가까운 지역의 유력자들은요.”

인도도 남부보다는 북부가 훨씬 더 잘살았다.

대부분이 파키스탄 핵무기의 사정권이었다.

“전투를 잠시 중단할 ‘명분’을 주자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우선 바즈파이 총리를 설득해서 인도 쪽에서 군 캠프 배후에 알카에다가 있다는 주장을 하게 하는 겁니다. 그러면 파키스탄 무샤라프 총리도 군 캠프 공격에 관여한 민병대를 체포해서 조사할 명분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군 캠프 공격 직후 인도 정부는 파키스탄 정부에 군 캠프를 공격한 민병대의 인도 송환을 요구했다.

파키스탄의 무샤라프 대통령은 그 제안을 당연히 거절했다.

얼마 전 무샤라프 대통령은 자신의 집권 정당성을 마련하기 위해 실시했던 대통령 임기 연장 국민투표의 낮은 참여율로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그런 상황에서 인도가 요구한다고 해서 자국민을 적국인 인도에 넘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만약 민병대의 인도 군 캠프 공격 배후에 알카에다가 있다면 체포해서 조사할 명분을 가지게 된다.

알카에다는 바로 지금 파키스탄이 지원하는 다국적 연합군과 싸우는 적이었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에 이반 부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군. 하지만 그 정도로 괜찮겠나?”

이반 부카드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부족하죠. 이 정도로는 당장 전투를 멈추게 할 수는 있지만 이대로 끝난다면 곧바로 전투가 재개될 겁니다. 후속 작업이 필요합니다.”

“후속 작업이라면?”

이반 부카드가 물었다.

“그건 일단 싱가포르에 가서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진행 상황을 보면서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어서요.”

이미 계획은 준비되었지만 한 번에 다 알려 줄 필요는 없었다.

“싱가포르? 국방부 장관 회의에 참석할 생각인가?”

“예. 가서 만날 사람이 있어서요.”

싱가포르에는 엘리어스가 참석할 예정이었다.

회의에 참석한 엘리어스에게 보여 주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와 내가 다르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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