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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 작은 일도 쓸모가 있다
1.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엘리어스와 팀원들은 회의하고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서 자리로 가서 의자로 앉는 내내 엘리어스는 나를 노려보았다.
의자에 앉아 내가 컴퓨터를 켜자마자 엘리어스가 나를 보며 말했다.
“얼굴 잊어먹겠군.”
엘리어스의 말투에는 가시가 돋쳐 있었다.
“죄송합니다. 출근이 늦었습니다.”
“출근이 늦어? 그게 스무날 동안 겨우 하루 출근했던 사람 입에서 나올 말인가?”
엘리어스는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자네는 출근이 늦은 게 아니라 하지 않은 거지.”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제 계약 조건에는 매일 출근한다는 이야기는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대사관과의 내 임시직 계약에는 출근에 관한 조항은 없었다.
나나 엘리어스 모두 내가 대사관에 매일 출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기야 하지. 하지만 그건 자네를 존중하고 자율성을 주려고 한 조항이지 놀라고 만든 조항은 아니네. 지금 자네는 아예 일을 안 하고 있지 않나.”
“제가 놀러 다니기라도 한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놀러 다니는지 아니면 다른 일을 하면서 다니는지 우리야 알 수 없지. 자네가 아예 출근하지 않으니 말이야.”
엘리어스도 내가 놀러 다녔다는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그는 내가 CIA 일을 도와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내가 뭘 하고 다니는지 이야기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사무실에 있는 엘리어스 팀원들이 대사관 직원이기는 하지만 CIA 일을 들을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엘리어스는 내가 하고 다닌 일을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용해서 나를 궁지에 몰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아무런 대비도 없이 출근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저는 나름대로 팀이 도움이 될 일이 없나 해서 일을 하고 왔는데 이런 식의 대접을 받을 줄은 몰랐네요.”
나는 실망했다는 듯 엘리어스와 팀원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여기 있는 다른 팀원분들이야 저를 안 시간이 적지만 팀장님이 저와 같이한 일들이 있는데 저를 그렇게 보실 줄은 몰랐네요. 제가 일을 팽개치고 놀러 다니는 사람으로 보셨다니요.”
내 말에 엘리어스가 조금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팀을 위해 일을 하고 다녔다는 말인가?”
엘리어스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떡였다.
“예.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 나름대로는 일본과 홍콩을 방문해서 조사한 것이 있습니다.”
“뭘 조사했다는 말인가?”
여전히 당황한 표정으로 엘리어스가 물었다.
“다음 주에 해리 우와 페리 링크가 홍콩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엘리어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해리 우? 페리 링크? 중요한 인물인가?”
“해리 우는 인권운동가이고 페리 링크 교수는 중국 관련해서 비판적인 논문을 여러 편 발표했습니다. 중국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인물입니다. 둘 다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고요.”
중국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포함됐다는 이야기에 엘리어스가 비로소 흥미가 생긴 듯했다.
“방문 목적은?”
“다음 달이면 홍콩 반환 5주년 아닙니까. 해리 우는 5주년을 맞아 시위를 계획하고 있고 페리 링크 교수는 홍콩 반환 5주년을 기념하는 홍콩 대학 학술회의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중국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들어 있다면 입국이 거부될 수도 있겠군.”
엘리어스가 말했다.
역시 엘리어스는 눈치가 빨랐다.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퉁칭화는 최근 취임 2기를 맞이해서 일방적으로 장관을 임명할 수 있게 제도를 바꾸려고 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행정장관이 의회와 상관없이 장관을 임명할 수 있게 바꾸는 것입니다. 벌써 일부 장관은 지난주에 임명했다고 하더군요.”
“야당이 강하게 반발하겠군.”
“당연하죠. 퉁칭화는 말로는 여론에 휘둘리지 않도록 제도를 바꾸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 속셈은 뻔하죠. 야당은 물론이고 주민들도 반대 시위에 점점 많은 수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홍콩에는 파룬궁도 있으니······ 시위가 꽤 커질 수도 있겠군. 자네 말대로라면 해리 우나 페리 링크나 홍콩 입국이 거부되겠군.”
“예. 반환 5주년을 앞두고 중국 블랙리스트에 든 인사들이 홍콩 입국이 거부된다면 꽤 파장이 클 겁니다.”
중국은 영국에게서 홍콩을 넘겨받으면서 상당한 양보를 했다.
처음 홍콩 반환이 결정되던 때만 해도 영국과 중국의 국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던 것도 있지만 홍콩으로 일종의 체제 실험을 하기 위해서였다.
체제 실험이란 이른바 1국 2 체제를 통해 홍콩에 일정 수준의 자율권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타이완을 합병했을 때를 대비한 실험이었다.
1국 2 체제 상황에서 중국 블랙리스트에 든 인물이라는 이유로 홍콩 입국이 거부되면 그건 1국 2 체제가 불안정하다는 이야기였다.
“다음 주중이라는 말이지.”
혼잣말하던 엘리어스가 고개를 들어 샤론 화이트를 바라보았다.
“당장 국무부에 연락해서 해리 우와 페리 링크가 언제 홍콩에 입국하는지 알아보세요. 그리고 홍콩행 비행기를 타는 즉시 우리 쪽에 연락 달라고 하시고요.”
“알겠습니다.”
샤론 화이트의 대답을 들은 엘리어스는 다른 직원에게 고개를 돌렸다.
“클라이트 씨는 오후까지 입국이 거부됐을 때 어떻게 그걸 이용할지에 대한 계획을 잡아서 보고하세요.”
“예.”
“다른 팀원들도 오후까지 모두 이번 일이 어떤 파문을 가져올 것인지에 대한 생각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팀원들의 대답을 들은 엘리어스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에드릭 씨는 잠시 나 좀 보죠.”
엘리어스와 나는 엘리어스의 사무실로 향했다.
2.
쾅!
사무실에 들어서자 엘리어스가 내 팔을 잡아서 끌었다.
나는 힘을 빼고 그가 이끄는 대로 엘리어스 앞에 섰다.
엘리어스가 나를 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무슨 수작입니까?”
그는 조금 전보다 더 적대적이었다.
“무슨 수작이라니요? 저는 나름대로 열심히 조사해서 알아 온 사실인데요?”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혹시 CIA의 작전입니까?”
“그럴 리가요. 제가 CIA의 작전을 이렇게 공개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뭡니까? 우연이라는 말은 하지 마세요. 아무리 에드릭 씨가 홍콩에서 2년 가까이 일했다고 해도 홍콩에 방문 예정인 두 사람이 중국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사실을 미리 아는 것은 불가능하니까요.”
“정말 우연히 알게 됐는데 믿지 않으시니······. 참 답답하네요.”
나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물론 당연히 내가 홍콩 방문이 거절될 사람들의 명단을 확보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리고 CIA 작전도 아니었다.
엘리어스의 말대로 CIA의 작전이라고 해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중국 정부와 그 중국 정부의 지시를 받는 퉁칭화 홍콩 행정장관에게 타격이 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작전이라면 에이전트 에스 팀의 작전 즉 내가 꾸민 일이었다.
홍콩 거주민으로서 최근 독주하고 있는 퉁칭화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두 사람이 입국이 거부되는 즉시 그 사실을 서방에 알릴 기자들도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어떻게 홍콩 입국 예정자 명단을 입수해서 그중에서 중국 블랙리스트에 든 인물들을 알아냈냐고?
나중이라면 모르지만 지금으로서는 입국 예정자 명단을 내가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설사 명단을 입수했다고 해도 그중에서 중국 블랙리스트에 든 인물을 찾기에는 내가 가진 인적 자원, 즉 에이전트 에스 팀의 팀원이 부족, 아니 없었다.
내가 쓴 방법은 간단했다.
익히 알려진 중국 반체제 인사와 비판적인 학자들의 명단을 뽑아서 그들을 홍콩 반환 5주년 학술 대회에 초청한 것이다.
보름 전 나는 돈으로 대학 직원을 매수해서 그들의 이름을 명단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참석 가능성이 큰 사람들에게 초대장과 항공권 숙박권을 대학 이름으로 보냈다.
시간이 촉박했는지 참석하겠다고 나온 사람은 두 사람뿐이었지만 두 사람이면 외신에 보도가 나가기에 충분한 인원이었다.
“말하기 어렵나 보군. 역시 CIA와 관련된 일인가? 그럼 그 이야기는 더 묻지 않지.”
엘리어스는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며 결론을 내리며 말을 이었다.
“대답하기 어려우면 다른 질문을 하지. 왜 이런 정보를 가져온 거지? 팀에 들어올 생각인가? 지금이라면 내 팀에 임시직으로 있을 필요 없이 그냥 투자회사로 돌아가도 될 것 같은데?”
엘리어스가 물었다.
그의 말대로였다.
처음 엘리어스와 대사관 임시직으로 일할 계획을 세울 따와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지금이라면 굳이 대사관 임시 직원으로 있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굳이 그만두지도 않을 생각이었다.
에이전트 에스 팀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임시직이나 대사관 직원인 것이 유리한 점이 많았다.
나는 대사관으로 일하면서 에이전트 에스 팀으로 활동하기 위한 사람들을 모을 생가이었다.
그렇게 정식으로 에이전트 팀을 만들기 전에 명목상 내 상사인 엘리어스의 협조가 필요했다.
“그냥 처음 계획대로 하는 것뿐입니다. 팀장님이 억지로 일을 떠안기지만 않는다면 저도 팀을 도울 생각입니다.”
“이번처럼 말인가?”
“이번처럼은 아니더라도 도울 일이 없겠습니까?”
“어떻게 말인가?”
나는 이 즈음해서 승부수를 띄울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주에 제가 일하던 홍콩 회사에서 중국에 대규모 투자를 할 예정입니다. 최소 3억 달러에서 많게는 그 두 배 정도를 중국에 투자할 예정이죠.”
“그래서 그게 우리 일과 무슨 상관이라는 말인가? 자네 회사가 투자하는 게······?”
“이미 아시겠지만 제가 예전 투자회사에서 꽤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중국 투자에 대한 정보를 저에게 계속 공유할 정도로요.”
“그래서?”
“한마디로 투자하기 위해서 중국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정보를 요청한 상태고 그렇게 정보가 넘어오면 바로 저도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는 말이죠.”
“음······.”
엘리어스가 신음을 내뱉으며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생각 같아서는 바로 내게 말을 하고 싶은데 자존심 때문에 먼저 말을 못 하는 표정이었다.
“여기에 CIA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중국 관련 정보도 있죠. 이 태스크포스팀의 목적이 중국 지도부 교체를 대비하는 것이라면 제가 꽤 팀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내가 졌네! 그래 자네가 원하는 게 정확히 뭔가?”
엘리어스의 대답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별것 아닙니다. 그냥 지금처럼 저에게 재량권을 줬으면 하는 거죠.”
“아무리 재량권을 준다고 해도 이번처럼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 출근하지 않는 것은 곤란하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번은 특수한 경우였고 앞으로는 출장을 가기 전에 미리미리 팀장님께 보고하겠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보고 정도는 충분히 해 줄 수 있었다.
“알겠네. 그래 중국에 투자는 언제 한다고?”
“바로 할 생각입니다. 일단 오늘 상하이 주식 시장에 투자하고 그 시간을 두고 푸젠성과 저장성에 투자할 예정입니다.”
“바로 투자한다는 말이지······.”
좋은 정보를 알았다는 듯 엘리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액의 투자가 중국에 투자된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정보이기는 했다.